분리수거함

[문단속] 있었는데요 없어졌습니다.

스즈메의 문단속/ 스즈메+소타. 결코 연애가 아니어서 곤란한 유대

to be continued... by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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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3

공개: 2024/05/20

세상 어디에도 수요없을 스즈메의 썸남(오리캐) 시점.

소타스즈 미만. 둘은 서로에게 별 연애감정이 없습니다. (이 글 한정)


내가 이와토 스즈메란 여자아이를 처음 의식한 것은 입학 직후의 MT에서였다.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빼들고 오던 사이 건물 쪽문 앞 층계참이 어느새 여학우들의 잡담 모임의 자리가 되어있었다. 조용한 밤공기를 타고 잡담의 내용이 여기까지 선명하게 들리고 있었다.

간호과가 여초라고는 해도 남학생이 없는 것은 아니었고 그 중에는 제법 괜찮은 외모의 선배나 동기도 있어서. 뭐 사람이 모이면 이성에 대한 화제가 나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남학생이 좀 더 많았다면 우리라고 그런 이야기 안할 것 같지도 않았고.

그렇더라도 아직 낯도 안익은 동기 여자아이들이 남학생 외모 품평을 하는 자리를 마주치는 것은 정말 본의가 아니지만!

한창 때의 여자애들이 모여있으면 화제가 연애로 가게된다는 것도 물론 이해해. 이해하는데…….

하지만 나는 거길 지나가야 방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그러나 무척 지나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난감했다.

‘…여자애들은 역시 그런 타입을 미남이라고 생각하는 구나.’

5명 중 4명이 미남이라고 동의한, 자신하고는 어디도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밝은 염색머리의, 솔직히 말해서 무책임하고 경박해보인다고 생각했던 3학년 선배의 얼굴을 떠올리고 의기소침해졌다. 딱히 이성교제를 기대하고 여초인 과로 진학한 건 아니지만 애인없는 세월에 앞으로 +4년, 미리 각오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음, 그 선배가 잘생겼나? 난 잘 모르겠어."

하지만 만장일치의 직전, 마지막 한명인 이와토 씨—그때는 아직 성도 애매했던 포니테일의 동기—는 그렇게 말하고 어깨를 으쓱 했다.

"난 굳이 우리과에서라면 —군 쪽이 인상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내 이름이 나와서 다른 의미로 식은땀이 나왔다. 이거 진짜로 들키면 앞으로의 대학생활 그대로 끝이다.

하지만 곧이어 그게 누구야?하고 소근거리는 소리가 흐림없이 전달되어 역시란 기분도 되었다. 몇 되지도 않은 남학생 중에서도 얼굴과 이름을 연결시켜 기억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릴 정도…로 인상 옅은 건 저도 압니다.

그 키 좀 작고 마른? 반바지? 어렴풋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이리저리 조각을 맞추어 곧 그녀들은 나를 특정해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뭔가 실망한 듯한 반응이 이어지는 것도 뭐 이 역시 익숙한 일이란 거죠.

"이와토 씨 남자 보는 눈 없지 않아?"

"왜 사람 좋아보이잖아. 아, 웃을 때 덧니 보이는 것도 귀엽다고 쳐줄 수 있지 않아?"

"치열 안좋을 뿐이잖아……."

적나라한 반응을 돌려준 게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렇게 말하며 키득거리며 웃던 이와토 씨의 느긋한 얼굴이 어쩐지 묘하게 인상에 남았다. 내가 이와토란 이름을 기억하게 된 것도 아마 이때였던 것 같다.

혹시 이거 그린라이트?라고 바로 생각할 정도로 주제파악을 못하진 않습니다만.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이와토 씨는 정말로 남자의 외모에 별 관심이랄까 취향이랄까 그런게 없는 사람이었던 모양이었다.

덕분에 그 쿨함이 학기 초엔 묘한 자존심이 걸린 멍청한 미남들의 도전 정신을 자극해, 뒤에선 어지간히 얼굴값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타과 선배의 치근거림을 얼굴조차 붉히지 않고 냉담하게 거절—내게 이 이야기를 전한 목격자는 퇴치란 단어를 썼다—한다거나 뭐 그런저런 에피소드 몇가지가 있었다고도 한다. 아무래도 좋지만 그 선배는 여자한테 거기까지 시큰둥하고도 싸늘한 대응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며 이후 제법 트라우마가 되어 덜 그러고 다니게 되었다는 잘된 일인지 안된 일인지 모를 후일담이 붙어있기도 한 것 같은데.

이야기 해보거든 딱히 미추에 대한 감각이 없는 것 같지는 않았으니, 그냥 잘생김의 기준선이 좀 다른 차원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일설에는 유명 영화배우가 대상일 때 정도는 되어야 이와토에게서 저 사람 어디가 좋더라 같은 코멘트를 한 줄이라도 얻어낼 수 있다던가…….

그리하여 여름을 넘겼을 무렵엔 이와토는 어째서인지 주변에서 일종의 진정한 미남 리트머스지 같은 것이 되어있었다. 남의 애인과 최애의 사진을 곤란한 얼굴로 감평하고 있는 장면은 나조차도 한 두번 조우한 것은 아니다.

바라는 대답 어차피 뻔한데 대충 잘생겼다고 대답해주면 되지 않아? 하고 의아한 듯이 참견했더니 뭐랬더라. '근데 안 잘생긴 걸 잘생겼다고 할 수는 없잖아'였나. 이와토의 솔직함은 이상한 곳에서도 올곧았다.

이와토는 그런 여자아이였다.

그 하늘 꼭대기에 붙은 감식안을 알고나면 혹시 내가 좀 맘에 들었나 싶어져 잠시 부풀었던 마음이 침착하게 가라앉기엔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렇지, 그냥 문자그대로 인상이 좋다는 이야기였던 거겠구나. 착하게 생겼단 이야긴 종종 듣긴 했어. 친척아주머니한테나, 동네 할머니한테. 보통 잘생겼다고 빈말해주기도 애매할때 쓰는 표현이긴 하지.

잘생겨보이는 건 절대 아니고. 호감에 의한 콩깍지 같은 건 더더욱 아닐테고. 제 얼굴에 자만한 적도 없는데 새삼스럽게도 머슥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렇더라도. 그 인물평에 딱히 대단한 호감이 포함되어있는 것은 아니었다고 해도, 나를 어떤 식으로든 좋게 봐주는 사람을 나도 좋게 보게되는 건 인지상정인지라.

나도 가끔 이와토 씨 쪽을 한번이라도 더 보게 되고, 나는 이와토 씨와 달리 평범한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서 자꾸 보다보면 처음엔 수수하다고 생각했던 살짝 볕에 그을린 화장기 적은 얼굴 같은 것도 건강미가 있어 좀 귀엽지 않나?라고 생각하게 되기도 하는 거고.

이와토 씨가 처음부터 별 생각없이 내 이름을 말했던 탓에 여자동기들 사이에선 약간 밀어주는 분위기 같은 것도 생겨서.

그렇게 계절이 몇번 지나, 해가 바뀌었을 무렵에는 우리는 친구라기엔 약간 가깝고, 사귄다기엔 명확히 말로 나온 것은 없는, 데이트와 친구와의 놀이의 중간쯤에 걸친 시간을 거듭하며 애매한 썸 같은 것을 타는 사이가 되었다.

* * *

"으으 고어텍스 좋긴 한데 역시 너무 비싸."

학교식당 테이블 옆자리에 앉아 내가 오늘 구입한 캠핑 잡지를 훌훌 넘겨보면서 이와토가 투덜거렸다. 전부터 대화할 때 화제가 제법 통해서 어렴풋이는 관심있나라고 생각했는데 잡지에 소개된 등산화의 스펙을 꽤 디테일하게 살피고 있는 걸 보니 이와토 쪽도 어째 한두 번 다닌게 아닌 모양이라 괜히 동지애가 샘솟는다.

"역시 내구도를 생각하면 그냥 가죽 워커인가. 하지만 곧 장마철이니까 역시 방수…"

"이와토 의외로 아웃도어 취미였어? 아니 의외는 아닌가. 운동신경 좋고."

지난 자전거 하이킹의 추억을 곱씹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와토는 주말에 종종 바쁜 것 같았지만 저번 봄에는 어찌 시간과 배짱이 맞아 벚꽃길을 자전거로 같이 달렸다. 이와토가 만들어온 캐릭터 도시락 맛있고 귀여웠었지. 그 뒤로 그대로 중간고사가 이어져 어쩌다보니 이미 여름이지만.

"아웃도어…라긴 애매한데, 아는 사람 따라 몇 번 다니다보니 완전히 익숙해져서."

"등산?"

"…어, 폐허 탐방?"

응과 아니의 중간쯤 되는 애매한 어 의 뒤로 낯선 단어가 튀어나왔다.

"……매니악한 취미네."

"아, 그래도. 다니다보면 예쁜 풍경들을 보게 되니까. …조금 쓸쓸하긴 해도."

그렇게 말하고 이와토는 카메라를 켜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핸드폰 화면을 보이느라 옆에 바짝 붙어앉은 이와토의 머리카락에서서 플로럴한 샴푸 냄새가 나서 괜히 동요했다.

남자 상대로 퍼스널 스페이스 너무 좁은 거 아냐? 친하게 생각해주는 거야 이성으로 의식을 안하는거야? 이건 가망 있음? 없음?

내가 속으로 무어라 투덜대든 이와토는 그저 성실하게 사진에만 집중하고 있을 뿐이라 나는 얼마 전부터 재고 있던 고백의 타이밍을 다시 두 주쯤 미루기로 했다. 한주 두주 미룬게 벌써 한 삼개월 째인 것은 못본 셈 치기로 한다.

"이게 에히메의 폐촌, 이건…"

폐허라고해서 괴담에나 나올것 같은 으스스한 병원 같은 것을 떠올렸는데 쇠락한 촌락의 흔적이나 폐교된 분교 사진 같은 것이 몇 장이고 나왔다. 사진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이와토는 다닌 곳들의 이름을 읊었다. 아는 지명도, 아예 어디 붙었는지도 모를 지명도 하나 잊은 것 없이 차례차례 튀어나온다.

사람이 없고 조금 쇠락하고 쓸쓸하고 그렇지만 찍은 사람의 마음이 보이는 어딘가 애틋한 광경.

가끔 주말에 먼 곳을 다녀오던 건 이것 때문이었을까.

고즈넉하고 고풍스러운 풍경 안에서 어딘가 곧고 투명한 곳이 있는 이와토는 필시 녹아들듯 배경에 스며들 것이다. 나는 어쩐지 이것이 평범한 등산보다도 이와토에게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캠핑 다니지?"

"응 고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혼자도 다니기 시작해서 지금은 제법 베터랑."

"그런 거 어쩐지 좋네… 느긋하고."

"겨울철에 나갈 때면 사서 고생하는거 아닌가 싶어지긴 해."

어 잠깐 이거 기회? 좀있으면 방학이고 나도 이와토도 취미는 비슷하니까. 캠핑 권유? 대뜸 숙박 포함 장거리는 많이 그렇고, 당일치기 권해볼까?

"저기 이와토, 캠핑에 관심있으면—"

"아, 캠핑은 아니고."

아니었다. 역시 고백은 한 주 더 미루자.

……고백하고 바로 여름방학인 것도 결과가 어느 쪽이든 추스릴 수 있으니 차라리 나을지도 몰라.

짝사랑남의 용기는 상처입기 쉬워서.

"나갈 일이 생각보다 늘었으니까 용품 쪽을 좀 갖춰두고 싶긴 해. 침낭도 하나 정도 있으면 좋을 거 같고."

"그럼 아는 샵이 주말까지 세일이니까 같이 갈래?적당한 제품 추천해줄 수도 있고, 가게만 알려주는 것보다 나을거 같은데."

"정말? 시간 괜찮아?"

"기말 아직 남았으니까. 이와토는?"

"이번 주는 예정 없으니까 나도 오케이."

얼렁뚱땅 약속이 잡혔다. 쇼핑데이트도 나쁘지않다. 고백 디데이를 한주 당길까~ 같은 나로서는 제법 대범한 생각을 하던 차, 이와토가 어쩐지 눈치보듯 우물쭈물하며 말을 덧붙였다.

"혹시 괜찮으면 아는 사람도 같이 가도 돼? 침낭은 내거 사려는 건데 등산화는 선물 용으로 보고있던 거라… 신발이면 역시 본인 사이즈 확인하라고 하는게 나을 거 같고. 아, 불편하면 괜찮으니까!"

이건 그린? 옐로?

제3자가 끼어도 될 사이라고 생각하면 가망 적음, 생일을 챙길만한 상대한테 나를 소개해도 된다는 뜻인거면 가망 있음?

"—씨가 내 학교 친구 궁금하다고도 했어서……"

작게 말한 이름은 들리지 않았지만, 살짝 수줍은 얼굴이 어쩐지 가망 있음 쪽인 것 같아서 해가 바뀌고는 내내 이와토의 딱히 깊은 뜻 없을 한마디에도 일희일비하던 몸임에도 새삼스럽게 어안이 벙벙해졌다.

* * *

이와토가 종종 투덜거리던 남자의 외모는 다 마찬가지라는 말이 좀 다른 의미로 들렸다.

어차피 일반인 수준에서 좀 잘생겨봤자 거기 굴러다니는 돌멩이니, 도토리 키재기만큼도 의미없는 외모 차이보다는 성격 좋은 쪽이 가산점이 붙는다거나. 뭐 그런 의미셨던 걸까요……?

"앗 소타 씨! 여기요! 이쪽은 전에 말했던 친구. 같은 학교!"

들뜬 얼굴로 이와토가 내 소매 끝을 잡고 위로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다른 때라면 이와토의 그런 격없는 접촉에 내심 기뻐했겠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저 두사람은 이미 익숙해졌는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했으나 소시민인 나는 느끼고 있다. 지금 주변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저 꽃미남한테 박혔다가, 남자가 쳐다보는 방향을 따라 이와토에게 온 후, 근데 저 미남이 웃어주는 여자애하고 손까지 잡고있는 말린 생선 같은 남자애는 대체 뭐야?하는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훑어보고 있다는 것을.

"스즈메 씨."

캠핑용품점 입구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미인이 있었다.

딱히 중성적일 것도 없는 체격좋은 남자지만 미남이라기보다는 미인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는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와토의 이름을 불렀다. 정중하고, 상냥하고, 허물없이.

치졸한 자존심은 1분도 버티지 못했다.

세상엔 얼굴값한다는 말이 있지만, 이 규격 외 미남은 성격도 좋았다.

남자는 상냥하게 웃으면서 무나가타 소타입니다 하고 자기 소개를 했다. 4살 위, 사회인. 초등학교 교사라고 이와토가 자기 일처럼 자랑스럽게 덧붙였다. 저 얼굴로 심지어 건실하고 멀쩡하다.

밸런스 패치는요?

사람은 존재할 법 하지 않은 것에 조우하면 머리가 멈추는구나.

어딘가 혼이 빠진 얼굴로 안녕하세요 하고 대답하는 내 건성인 태도에도 남자는 어디까지나 정중하고 친절했다. 이해심 깊은 눈이 흘끗 이와토 쪽을 쳐다보고 알겠다는 듯이 시선을 맞추고 미소짓는다. 고생하고 있네요 하고 위로를 전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아닙니다 평소라면 몰라도 지금 제 멘탈을 공격한 건 이와토가 아니라 댁의 존재입니다.

옅은 수심을 띈 얼굴 위로 깜빡 하고 긴 속눈썹이 내려갔다 올라가고… 그 순간 갑자기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아름다운 얼굴이 확하고 밝아졌다.

"혹시 스즈메 씨 남자친구?"

그리고 남자는 스즈메 씨가 남자친구, 같은 말을 두어번 곱씹으며 훈훈하게 웃었다. 여기만 지나간 봄날의 볕이 잠시 돌아온 것만 같은 온기였다. 장마비가 내리는 중인데.

"미안, 데이트였는데 눈치 없이 끼어들었네."

남자는 이와토의 어깨를 툭치며 타마키 씨한테는 아직 비밀?하고 즐거운 듯이 키득거렸다. 설령 친오빠라고 해도 여동생의 남자친구 후보를 저기까지 반기지는 못할 것 같은데요.

잘 알지 못하는 이일텐데 뭔가 거죽을 뚫고 안쪽을 들여다보는 것같은 투명하게 다정한 시선. 만난지 며칠 밖에 안되는 모르는 남자아이를, 그 애는 좋은 애라고 단언하던 어느 소녀의 얼굴에도 있었던.

남자의 웃는 얼굴은 무척 어느 날의 이와토와 닮았다고 멍청해진 머리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남매의 닮음이라기보단…….

부끄러움으로 달아오른 볼을 부풀리며 그런거 아니거든? 하고 누가 봐도 '그런 거'에 걸쳐있다고 보일 듯한 대답을 돌려준 이와토는 여전히 귀여웠지만.

아마, 10분 전이라면 그녀의 그런 반응을 보며 나는 좋아 가능성 있어 하고 속으로 주먹이라도 불끈 쥐었겠지만.

나는 이 남자가 연적이 아님을 안다.

내가 환대받고 있음도 안다.

열등감을 가지기엔 격이 달라 자존심 조차 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남자의 얼굴에는 언젠가의 이와토와 같은 그저 순수한 호의 만이 존재한다.

그 어떤 속셈도 경계도 없이 그저 다정한 얼굴로 이와토와 나를 달갑게 바라보는 남자는,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시시한 연적보다도 끔찍한 벽은 아닌가.

나는 이와토가 내게 가진 호의가 가짜라고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이와토가 사람을 대할 때의 솔직함을 알고, 그녀 같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일의 가치를 안다. 1년의 세월동안 오간 것의 온기와 무게를 안다.

초면인 남자에게도 삐딱한 의심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들은 보이는 대로의 사람들이고, 본심을 순수히 보여주는 사람들이고, 틀림없이 내 인생에 스쳐지나갈 이들 중 외면뿐만 아니라 내면도 손꼽게 아름다울 이들이란 것을.

허나 그렇기에.

선연한 예감에 숨이 막혔다.

틀림없이 그는 이와토 스즈메가 어떤 사람과 사랑을 하더라도, 설령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루더라도 당연하다는 듯 변함없이 저 자리에 있으리라. 저 지독히도 아름답고 지독히도 사람같지도 않고 그저 한 사람과 그녀의 세상을 이루는 모든 것—심지어 그녀의 연인까지도—에 대한 박애로 가득한 존재가.

그녀의 인생에 영원히.

"친구입니다."

나는 차라리 시원할 정도로 후련한 기분으로 단언했다.

나는 인간이라서요. 평범하고 그릇 작은 소시민이라서. 좋아하는 사람과 평범하게 결혼해서 일남일녀쯤을 꿈꾸며 평범하게 나이드는 미래 밖에는 아는 행복의 형태가 없어서.

그런 장대하게 비뚤어진 심연에 알면서도 기꺼이 몸을 던질 용기는 조금도 없어요.


(썸이) 있었는데요 없어졌습니다 적인 이야기.

이 뒤로 이와토 스즈메 씨는 살며 n명정도의 썸남이 생기고 n번 정도 그냥 좋은 우정으로 끝나는 역사를 반복합니다……인 무언가.

매번 특유의 사람보는 눈으로 괜찮은 사람과 그럴듯한 분위기가 되곤 하지만, 스즈메가 고른 사람답게 다들 괜찮고 멀쩡하고 평범하고 안정적인 사람이라 이런 장래적으로 영구히 원치않은 옵션+1이 따라오는 평범치 못한 인간관계를 굳이 시작하지들 않는.

확실히 원작의 저 둘의 관계성은 굳이 연애라고 한정지어 말하지않아도 되는 유대라고 생각합니다만, 보고있자면 차라리 연애라고 치는게 건강하지 않을까요 싶어지고.


주인공과 연애관계의 오리캐인데 드림조차 아니라니 2차창작으로서 이따위게 있어서 괜찮냐란 기분이 들었기에 분리수거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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