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빚은 어른

13주차, HBD

B에게 by H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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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은 까마득하게 깊고 어둡다

그 안을 흰 우유로 채우자는 발상은 나름대로 획기적인 것이었어, 검정을 몰아내는 하양, 그런 것을 우리는 본 적이 없으니까, 들어 본 적도 겪어 본 적도 느리게 느리게 호출해 본 적도 없으니까, 그래서 그런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 했던 거야, 몇몇 아이들은 네 주장에 동조했고 몇몇 아이들은 너를 의심했고 몇몇 아이들은 우리를 멸시했는데 나는 너를 절대적으로 믿었어, 너는 우리 중 빛을 본 유일무이한 아이였고

어쨌거나 우리는 흰 우유를 열 박스 가져왔다

네가 선두로 그것을 콸콸 쏟아붓기 시작하면 남은 아이들이 머뭇거리며 네 행동을 따라 하기 시작했어 우유는 계속해서 낙하하고 낙하하고 낙하하고

어둠으로 검정으로 미지로 공포로 떠밀리는 우유의 마음을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하고

신이 나서 더 많은 우유를 붓고 붓고 또 붓다가 어느 순간 우유 범벅이 된 아이가 그 우물로 뛰어들었어

첨벙도 쿵도 아니고 뭔가가 깨지는 소리도 아니고

다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여긴 너무 포근하고 아늑해

어쨌거나 우리는 우유 열 박스에 대한 값을 치러야 했고

한 푼 두 푼 모아오던 저금통을 깨는 데 불만을 가진 아이들은 여자에게 그냥 이 우물을 가져가세요라고 말했어 당신이 팔던 우유보다도 훨씬 더 값진 것이 되었어요 주장하면서

여자는 생각보다도 쉽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 우물을 가져갔고

그다음 날 우유 냄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너는 어둠을 본 첫 번째 어른이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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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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