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우주

13회차, 소란 님

B에게 by H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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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어릴 때는 빨랫줄 사이에 지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청바지와 운동화 끈과 넓은 여름 홑이불 사이에서 누구나 새로운 우주의 냄새를 맡았다 속치마의 미끄러운 천 안에서부터 바람에 말리려고 내어놓은 신발의 밑창에까지 행성들이 있어 숨을 참고 건너가야 했다 왜냐하면 우주는 진공이니까

누구도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말할 수 없었고 숨을 쉴 수 없었다

여름에는 반나절이면 빨래가 말랐다 숨을 참고 행성 사이를 여행하다 청바지 사이로 돌아오면 어느 샌가 바지는 뻣뻣하게 서 있었다 마른 빨래, 죽은 동물의 가죽처럼 뻣뻣한 천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다 양팔 넓이의 빨랫줄 사이에는 갑자기 우주 없는 진공이 찾아와

숨을 막던 손을 떼고 나오지 않던 말을 내뱉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야만 했다

그것은 오로지 빨랫줄 아래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것은 오로지 빨랫줄 사이에서만 존재하던 우주였다

휴스턴 없이도 멀리까지 여행할 수 있었지만

숨 한 번에 지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평행 우주

나의 가장 오래된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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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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