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의 코드로 갈까요

5회차, 나후 님

B에게 by HBD
11
0
3

5월의 마지막 주제 <유령이 된 나는 어디로 가면 좋을까>


현악기가 자신의 살을 벌려 내어주면 나는 그 줄을 밟고 오래 잠들고는 했습니다 당신의 기울어진 어깨축을 따라 비단의 셔츠가 흘러내리고 선상 위에 그은 오래된 상흔 다섯 줄이 당신과 나의 춤이 되었지요

오션의 코드로 갈까요?

나의 무게가 점점 가벼워지고 있었습니다, 나의 발을 묶었던 우리의 노래는 당신의 손을 떠나 점점 멀리로 희미해지고 이제는 어떤 것도 남지 아니할까요? 내가 당신의 것이었다는 사실조차도 우리가 정박에 쪼개어 쓴 오션의 코드가 되어서

나는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푸르도록 영원한 곳에는 아무런 그리움 없이 잠드는 어린 동물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열리기 전의 이곳에는 우리의 욕심이 없어서 아무것도 아쉽지 않습니다 이루지 못한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없다는 듯 쿨쿨 잠을 새며 밤을 자는 아이들의 웃음

그저 사고처럼 모든 것은 정연해집니다

나는 숙연하게 이곳을 벗어납니다 아마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겠지요, 그런데 마음 한켠 쓰라린 것은 어쩔 수가 없나봅니다 나는 당신의 오선 위에 잠들고 싶어 다시 아무리 맴돌아도 소리는 나의 길이 아니어서

당신이 연주하는 음악이 없으면 갈 곳이 없어

나는 웃으며 오선을 그립니다, 오션을 넘은 낙원을 그리고 싶어서 우리의 언어로 가사를 적습니다, 아나키도 엔트로피도 어떤 파동이나 파장일 수도 없는 긴 속삭임을

오션의 코드로 갈까요.


지난 번 시를 읽어 주시고 연 간의 연결성이 궁금하다고 말씀해 주셔서 조심스럽게 사족에 첨언해 봅니다! 지난번 시는 특정 계층에게 사회가 허락한 방식이 비이성적이고 무논리하다는 생각에, 그리고 그것을 택하게 되는 사람들에게 오롯 그들의 정신적 사유를 비난하고 조롱하고만 있는지 화내며 쓴 글이었기에 어떤 논증을 펼치기에는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읽는 데에 재미가 더 되었으면 합니다.

2연과 4연, 6연에 대해 정확히 무언가를 짚어 드리지 않았는데도 일말의 연결성을 보신 것 같아 기뻤습니다!!! 사실 이 글은 아주 평범한 고통인 2연에서 출발합니다. 찔러넣었다는 말은 회고하는 화자의 입장에서 던진 말이자 의문을 제기하는 출발에 불과합니다.

표현하는 이는 선생이라고 불렀지만, 그 선생은 어떤 가르침의 선생이 아닌 무조건적인 이른 태어남일 뿐입니다. 자기 자신을 선생이라고 칭하며 세상에 많은 깨달음이 있고 자신은 거기에 통달했다 주장하는 너무 많은 이상한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할 것이었습니다.

나를 믿으면 너의 다리는 온전할 것이며 (그럴 리가 없으나) 나와 함께 간다면 너는 온전한 다리로 다시 태어날 것이며 (그리고 그것을 위해) 나를 위해 너는 죽어야 한다고. 그 임시방편의 애매한 위약 효과를 믿으며 실제의 의학이 아닌 대체적 의학을 선택하게 되는 과정에 분명히 돈이라는 요소가 개입되어 있다는 점을 굳이, 있는 사람들, 이라고 표현하지 않아 밝혔습니다.

그리하여 걸음을 걷는 아이를 보라!

불신하고 있니?

두 번은 없다고.

모든 걸 겪고 나서야 두 번은 없다는 걸 알게 되는 취약성은 언제쯤 해결되는 문제일까요. 그런 마음에 아파하며 썼던지라 제가 울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 장면을 매우 빠르게 전환하는 것은 저의 오랜 문제이자 문체이기도 하고, 어쩌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서술 방식입니다. 무엇인가 정들게 만들고 그것을 잘라내 아쉽게 만드는 것이 누군가에게 작은 외상을 입힌다고 생각하는데, 그 아쉬움이 어떤 시를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고 느껴서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시를 쓰는 이유는 정말 재미있자고 쓰는 거기도 하고, 누군가의 머릿속에 남을 문장을 만들고 싶어서이기도 해서!

즐겁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새벽이잖아요. 시에 듭시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3


  • 즐거운 새우

    코드라는 건 합성음이라 더 풍부한 소리를 낼 수 있는데 오선 위에서 함께 추는 춤이 이를 뜻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둘이서 함께 있는 것이 아마 오션이자 낙원일 것 같다고도요 화자는 '당신'이라는 존재 없인 무언가 불안정해 보이는데 두 발로도 선 두 개는 밟을 수 있다고 전해 주고 싶네요. 잘 읽었습니다!

  • 수집하는 나비

    전 개인적으로 제목이 시 내에서 여러 번 반복되는 걸 그리 선호하지 않는데 나후 님의 시는 오히려 그런 점이 매력적인 특징으로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는 제목을 시 속에 '잘 살리지 못하는' 작품을 경계해왔던 것일지두요 ㅋㅋㅋ 오션과 오선의 반복 그리고 이 두 가지 심상이 시를 완벽하게 관통하는 게 너무 신기해요 나후 님이 설계하시는 시의 구성이 정말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 시도 너무너무 기대 돼요……

  • HBD 창작자

    나후 님! 다음번 시에도 꼭 사담 넣어주세요! 너무너무 재밌게 읽었답니다. 사실 저는 지난 몇 년간 시를 합평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모든 시인이 왜 이런 시를 썼는지 밝혀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반, 아니 작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독자가 상상할 수 있게 내버려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반. 전자는 궁금해서 그런 것이고 후자는 아쉬워서 그런 것입니다. 시의 매력은 알쏭달쏭 알듯 모를듯한 지점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나후 님의 사담은! 정말 무척 흥미롭게 읽었어요. 다음번에도 짬이 난다면 부연해 주셨으면 합니다(강요x, 안 덧붙이셔도o, 생각나실 때 부담없이 써 주세요). 이번에도 오선지의 오선과 바다인 오션을 통한 말장난이 인상 깊습니다. 언어를 가지고 논다는 느낌은 바로 이런 것이겠지요. 사담에서 장면을 빠르게 전환하는 것은 나후 님만의 문체이며 그것은 의도된 것이라고 말씀해 주셔서 참 좋았어요. 제가 늘 말씀드리는 거지만 <~이런 점은 ~이런 것 같아요. 의도하신 건가요?> 라고 여쭤볼 때 그건 진짜 문제가 아닌 문체일 때가 잦거든요.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알게 되어서 좋습니다. 금번의 시도 같은 마음가짐으로 감상했네요. 모르겠습니다 나후 님처럼 쓰려면 뭘 얼마나 더 열심히 해야 할지… 저는 나후 님의 글이 참 좋아요. 앞으로도 많이 써 주셨으면 합니다.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