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phany

Epiphany - 10

TOHELL by TO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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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탭 한 명이 수애에게 다가와 마이크를 채워주었다. 방송에서 자주 사용했던 유선 마이크가 아닌 무선 마이크가 간단하게 셔츠 앞섶에 걸렸다.

“마이크 이것만 가지고 하나요?”

“네. 아마 방송인 거 까먹을 수도 있어요. 저희가 카메라는 다 숨겨놓기도 했고 마이크도 최대한 안 거슬리는 걸로 하려고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준비가 끝났는지 웨이가 먼저 다가왔다. 그 사이 마이크 점검을 끝낸 수애도 카메라 앞에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다섯명이 겨우 되는 듯 한 스탭의 수와 세 대의 작은 카메라에 어쩐지 낯선 느낌이 들었다.

“디렉팅은 아무것도 없을거예요. 그냥 두 분이 편하게 설정만 맞춰주시면 되고 집 안에 들어가는 것 까지만 촬영하고 저희는 지하 연습실에서 계속 대기할거예요. 연습실 쓰실거면 미리 연락만 주시고, 저희가 계속 모니터링 하고 있을게요. 야외 촬영도 스탭은 많아야 지금 정도일거예요.”

PD의 말에 웨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카메라에 붉은 빛이 들어오자 웨이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에스코트를 하듯 팔을 뻗어 길을 안내했다. 옅게 웃으며 걸음을 옮겨 그의 집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닫히고 집 안을 둘러보자 최근에 다녀갔던 모습 그대로인 집 내부가 보였다. 다만 천장 구석이며 가구 여기저기에 벽지와 비슷한 컬러의 천이 씌워진 카메라가 눈에 띄었다. 내부 카메라맨이 없어도 편집에는 무리가 가지 않게 한 것이 사실인 듯 꽤 여러개 보이는 카메라에 조금 긴장한 듯 입술을 물었다. 그 모습을 보던 웨이가 손가락으로 입술을 꾸욱 눌렀다.

“입술 물지 마.”

“아, 맞다.”

익숙한 두 사람의 스킨십에 카메라가 소리 없이 각도를 움직였다. 고개를 흔들어 잡생각을 지운 수애가 부엌으로 다가가 커피머신에 익숙하게 커피 두 잔을 내렸다.

[ 집의 가전이나 구조에 익숙해보이던데, 혹시 전에도 와 본 적이 있었나요? ]

“ 아…. 선배님의 집은 일 때문에 여러번 와 본 적이 있어요. 제 연기 지도를 직접 도와주신 적도 있어서요. ”

수애가 건네는 커피를 받아든 웨이가 컵을 기울였다. 웨이의 취향에 맞게 시원한 얼음이 잔뜩 들어간 커피가 입 안으로 금방 사라졌다. 따뜻한 커피를 홀짝이며 어색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수애가 주머니에서 큐카드 한 장을 꺼냈다. 아까 카페에서 첫 촬영을 하며 PD에게 받았던 첫번째 미션 종이였다.

[ 1. 신혼집 구경하기 / 2. 신혼집 입주에 필요한 것 쇼핑 ]

고개를 기울여 같이 종이를 바라보던 웨이가 컵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집 소개 필요해?”

“음…. 그래도 소개받은 적은 없으니까 해주세요.”

“좋아. 따라와.”

웨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수애가 잔을 내려놓고 그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가장 먼저 서재의 문을 열자 그 안에는 전과 다름없는 책상과 컴퓨터, 책장이 보였다. 그리고 원래는 검은색의 푹신하고 커다란 디자인이었던 의자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카라멜색의 조금은 귀여워보이는 디자인의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의아한 얼굴로 가까이 다가가 의자의 가죽을 만지작거리던 수애가 웨이를 보며 물었다.

“전에 있던 의자는요?”

“그거 너가 높다고 해서 바꿨다. 이제 너도 같이 쓸거니까.”

“아니, 그렇다고 의자를….”

당황한 듯 말이 작아지는 수애의 어깨를 잡은 웨이가 그녀를 밀며 서재에서 빠져나왔다. 또 무슨 잔소리를 들을지 몰랐기 때문에 걸음을 옮겨 드레스룸의 문을 열었다. 원래 옷이 많은 편은 아니라 빈 공간이 많았는데 이상하게 행거에 옷들이 잔뜩 걸려있었다. 그리고 그의 취향에 맞지 않은 노란색… 하늘색… 분홍색… 저거 내 옷 아닌가…? 믿기지 않는 듯 눈을 두어번 꿈뻑이던 수애가 느리게 행거 가까이로 다가갔다. 만져보니 제 옷들이 분명히 맞았다. 이게 왜 여기 걸려있는거지? 당황한 얼굴로 웨이를 돌아보자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난 죄 없어. 너네 매니저가 갖다준거야. 촬영하는 동안은 여기서 출근해야한다고.”

“이걸…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편이 아내 옷 갖고 있는게 뭐가 나빠.”

능청스러운 그의 말에 수애의 얼굴이 결국 발갛게 달아올랐다. 반응을 피하려는 듯 먼저 드레스룸을 빠져나가는 그녀의 모습에 웨이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걸음을 빠르게 옮겨 그녀보다 앞서 화장실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거울 아래에 그의 검은색 칫솔 옆에 하늘색의 칫솔이 나란히 걸려있었다.

“이건 수 칫솔이야. 앞으로 이거 써.”

“이것도 샀어요?”

“응. 수 온다고 해서 내가 어제 다 사뒀다.”

“같이 사지….”

그리고 바로 옆에 있던 침실의 문을 열자 평소에도 큰 사이즈의 침대를 쓰는 그의 매트리스 위에는, 작은 토끼와 초록색의 토끼풀 그림이 규칙적으로 수놓인 깜찍한 디자인의 베개 하나가 새로 놓여있었다. 베개와 그의 얼굴을 번갈아서 보는 수애의 얼굴을 바라보던 웨이가 뿌듯한 얼굴로 칭찬이라도 바라는 듯 자랑스럽게 말했다.

“응. 저것도 같이 샀다. 수랑 잘 어울려.”

“웨이….”

“감사인사는 안 해도 된다.”

“그럼 우리 오늘 뭐 사요…?”

“뭐?”

“미션이요. 칫솔이나… 베개 같은 거 사는거일텐데….”

“아.”

딱히 그것까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듯 짧은 답을 뱉는 웨이의 모습에 결국 수애가 웃음을 터트렸다. 까르르 웃는 소리에 웨이가 미간을 긁적이며 슬쩍 등을 돌려 거실로 발을 옮겼다. 그를 따라 소파에 앉은 수애가 핸드폰을 열어 가까운 마트를 검색해보았다.

“그럼 장이라도 볼래요? 다른 건 웨이가 이미 사 두어서 더 살 게 없는걸요.”

“요리는 내가 해. 수는 먹기만 해.”

“장도 혼자 보려구요? 같이 해야죠.”

[ 가상 아내가 김수애 씨라서 프로그램 제안을 받으셨다는 얘기가 있어요. ]

“ 수 아니면 할 사람 없으니까. ”

[ 수… 는 김수애 씨 말씀하시는거죠? 김수애 씨도 리웨이 씨를 ‘웨이’ 라고 부르던데요. ]

“ 애칭. ”

[ 가상 남편이 리웨이 씨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떠셨어요? ]

“ 저는 너무 좋았어요. 사실 낯을 많이 가려서 다른 분이었다면 친해지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을거라서요. ”

[ 그럼 영화 촬영하기 전에 제안을 받았으면 썩 내키지 않았을 수도 있겠네요. ]

“ 음…. 그건 아니였을 것 같아요. 웨이는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라서요. ”

[ 리…웨이 씨가요? ]

“ …아닌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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