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S-3
흥미로운 시선이 집요하게 수애의 얼굴을 바라본다. 뚫릴 것만 같은 뜨거운 시선에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린다. 두 사람 사이에 앉은 남자가 한숨을 내쉬며 안경을 고쳐썼다.
“자…. 일단 리 웨이 씨. 한국어를 할 줄 안다고 하셨으니 미팅은 한국어로 진행하겠습니다. 괜찮으실까요?”
“응.”
“…. 네, 그럼…. 파트너로 김수애 씨를 신청하셨다고요. 타국 센티넬, 가이드 간 파트너는… 현재 국내에는 없습니다.”
“응.”
“……. 저희는 관련 법령도 없고, 중국에도 외국인과 파트너를 맺는 경우는 드물다고….”
“응.”
“……. 저 좀 보면서 대화하실까요. 수애 씨 얼굴 뚫어지겠습니다.”
“….”
일방적인 대화 끝에 그제서야 웨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는 남자를 바라본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낀, 한껏 거만한 자세에 남자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맘 같아서는 귀한 센티넬 건드리지 말고 애초 국가 간 지원 계약대로 진행하자고 하고 싶었지만 눈 앞의 남자는 조금 경우가 달랐다. 전투가 가능한 가이드라니. 듣기만 했지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확실히 이런 가이드에 비전투형 센티넬을 붙이면 현장에서 센티넬이 위험에 빠질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이런 가이드를 김수애 센티넬에게 매칭시켜도 되는지였다. 사실 외국인 파트너가 국내에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정식으로 파트너쉽 계약서를 작성한 이가 없을 뿐이지 여러 방법으로 국내에서, 해외에서 타국인 간 파트너를 맺은 사람들은 많았다. 어찌되었던간에, 이 남자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수애의 적극적인 거절의사. 그게 안된다고 하더라도 무슨 의도를 가지고 이러는지만은 알아야했다.
“현재 리 웨이 가이드는 센터에 계약되어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니 센터 내에서 배정되는 센티넬과 가이딩이 가능하고, 그건 고정되지 않아요. 그러니 한 명과만 가이딩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내가 싫어. 그럼 나 팀 안 해.”
“…. 중국 파견 팀에서 나간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애초에 계약된 인원이 있는데…!”
“응. 인원. 사람 누구인지 미리 안 정했어. 사람 수만 있잖아. 그러니까 나 빠지면 다른 놈 올거야. 그리고 난 프리렌서야.”
“그런…!”
동급의 가이드가 충원된다고 하더라도 그보다는 가이딩 능력이나 피지컬이 부족할 것이 분명했다. 안절부절 못하는 남자와 씩 웃음짓는 웨이를 번갈아서 보던 수애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동급 가이드 충원하고 리 웨이 씨는 팀에서 빠지는 건 어떨까요.”
“수애 씨…!”
“그리고 리 웨이 씨는 저랑 계약하고요.”
지난 번의 사건 때 느꼈다. 이렇게 최소한의 접촉만으로도 이 정도의 가이딩이 가능한 사람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특히나 제 앞까지 올 일은 더더욱. 이 남자를 잡아야만했다. 간절해진 수애는 꽉 쥔 주먹을 테이블 위로 올려 다시 한번 말한다.
“저랑 계약해요. 센터 말고. 전 센터에서 나온 일만 하니까, 결과적으로는 센터에서 손해 볼 일은 없을거예요. 원래 센터 계약금으로 받기로 하신 돈은 제가 개인적으로 지불할게요.”
“돈은 필요 없어.”
“그럼….”
“나랑 같이 지내. 한국에 있는 동안. 24시간 내내.”
생각치도 못한 말에 남자가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수애가 멍한 표정으로 웨이를 바라보았다. 이 남자가 지금 뭐라고 하는거야?
“너가 원하지 않으면 나 안 건드려. 가이딩 할 때도. 음.. 지난번 같은 위급상황 빼고. 그래도 섹스 안 해도 웬만한 상처 다 나을 수 있다.”
적나라한 단어선택에 수애의 귓바퀴가 붉게 달아올랐다. 그 모습을 본 웨이가 소리내어 웃으며 다시 등받이에 몸을 기대앉았다. 저 귀여운 아가씨를 더 자세히, 오래 보고싶었다. 그 사달이 난 것이 그저께. 그녀에 대한 서류를 받은 것이 어제. 깨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어제 저녁이었다. 이렇게 금방 소식이 본인에게 전달 될 줄은 몰랐는데. 한국인들 일처리 빠른 거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속으로 중얼거리며 제 앞에 놓인 서류를 죽 밀어 남자에게 건넨다.
“그럼 그렇게 하는걸로 알고. 다시 적어야겠다.”
“하아…. 여기 잠시만 계세요. 저도 얘기를 좀 해 봐야해서…. 수애 씨, 괜찮겠어요? 같이 갈래요?”
“…. 아뇨. 괜찮아요. 다녀오세요.”
남자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수애를 바라보며 회의실을 나섰다. 잡아먹을 듯 한 시선을 겨우 견디던 수애가 머뭇거리며 입술을 열었다.
“왜… 저랑 파트너 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궁금해서. 예뻐서. 아, 예뻐서가 먼저.”
“네…?”
“너 바보야? 왜 여기서 계속 잡혀있어? 안 좋은 일 있었다며?”
“그걸 어떻게….”
“다 알아. 아는 방법 있어.”
“…. 거기랑은 다른 센터예요. 여기 지부장님이 신경도 잘 써주시고….”
“흐음….”
“그래서 저랑은 왜….”
“가이딩할 때 느낌 좋아서? 그리고 너처럼 바보같이 착한 여자 처음 봐. 우리 진짜 파트너일 수도 있어.”
키득이는 남자의 모습을 본 수애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진짜 파트너라니. 그 운명의 짝처럼, 죽을 때 까지 한 쌍을 구경이나 할까 말까 하는 그 진짜 파트너를 얘기하는건가? 수애는 그런 게 진짜로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웠다. 본디 파트너란, 가이드와 센티넬이 서로 일생에 단 한 명 뿐인 운명의 짝을 만나면 이루어지는 그 능력의 시너지가 대단하기에 붙는 명칭이었다. 하지만 전 세계에 널린 가이드와 센티넬이 운명의 짝을 만날 일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 보다 어려웠기 때문에 현대에 와서는 그저 1:1 전속 계약을 맺은 사이를 표현하는 단어로 전락한지 오래였다. 진짜 파트너인 지 알아보는 방법은 아무도 몰랐다. 애초에 진짜 파트너라는 관계 자체가 극히 드물었고 가이드가 턱없이 부족한 한국에서는 한 쌍도 나타나질 않았으니까.
한참을 생각에 잠긴 수애의 얼굴을 구경하던 웨이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집중이 흐트러진 수애가 화들짝 놀라 조금 뒤로 물러나자 웨이가 웃으며 상체를 숙여 그녀의 손을 잡아 검지손가락을 아프지 않게 물었다. 한 순간에 맞닿은 곳에서부터 강렬한 기운이 몸 안으로 빨려들어온다. 아주 화하고 청량한 기운. 느껴보지 못한 깔끔하고 순한 기운에 수애의 긴장된 어깨에 힘이 풀렸다. 잡힌 손을 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 웨이가 소리 내어 웃으며 손을 떼고 완전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실 문을 열고 뒤를 돈 채 나가는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을 급하게 주워담았다.
“계약서 준비해 둬. 내일 집으로 찾아갈게.”
“…? 네? 집이요..? 저희 집은 어떻게…. 리 웨이 씨…!”
부르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회의실 문이 닫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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