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Lee

No. S-4

TOHELL by TO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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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올까요…?”

[ 일단 기다려보죠. 안 온대도 우리 쪽에서 중국에 연락하면 되니까. ]

“계약서 내용을 마음에 안 들어하면 어떡하죠….”

[ 물론 우리 쪽에 유리하게 작성하긴 했지만 그가 원하는 게 돈이 아니라 다른 거라면서요? 들어 줄 사람이 아가씨밖에 없으니까 정말 필요하면 들어주겠죠. 정 아니여도 수정하면 되는 문제고. …대가가 뭔지 정말 안 알려주실겁니까? ]

“저한테 해가 되는 건 아니예요. 문제 될 것도 없구요. 이미 이런 부탁 드리는 것도 죄송한데 다른 것 까지 신경쓰시게 하고 싶지 않아요.”

[ 당연히 부탁해야죠. 사장님한테는 말씀 안 드릴테니까, 걱정 마시고요. 어차피 소문 나면 다 아시겠지만. ]

“감사해요….”

[ 아무튼, 그 놈이 원하는게 뭐던간에 이상한거면 조항 들먹이면서 쫓아내면 되니까 말만 하세요. 아, 이만 끊어야겠어요. ]

“네. 다시 연락드릴게요. 들어가세요.”

변호사와의 통화를 끝마친 수애가 아일랜드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계약서를 다시 읽어보았다. 센티넬과 가이드의 표준 파트너 계약서…에서 조금은 변형된 내용이었다. 방금까지 통화하던 이가 가장 신경 쓴 대목은 이 부분이었다.

‘ 원치 않는 접촉은 일절 금하며 이를 위반할 시 계약 내용 불이행으로 간주하여 을에게 계약 파기를 청할 수 있다. 단, 갑의 생명이 위험한 위급상황 시는 제외한다. ’

그리고 가장 밑에 비어있는 부분은 그 가이드가 본인이 원하는 조건을 적을 공간이었다. 같이 지내자고 했던가…. 정말로 원하는 게 그것일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고서야 짐작 가는 부분이 없었다. 의자에 걸터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이제 해가 지는데 언제 온다는거지….

띵동-

그 때, 인터폰에서 기계음 소리가 들렸다. 가디건을 여미며 거실로 나가자 인터폰 화면에 까만 물체가 보였다. 사람인가…? 통화 버튼을 눌러 말을 걸었다.

“누구세요…?”

[ 온다고 했는데. ]

짧은 생각 후에 그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정말로 찾아왔네…. 걸음을 옮겨 현관문을 열어주니 까맣게 차려입은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 오셨네요….”

“그럼 안 올 줄 알았어? 들어간다.”

멍한 얼굴의 수애를 지나쳐 웨이가 신발을 벗고 복도로 걸음을 옮겼다. 마치 제 집에라도 온 마냥 옆에 걸려있던 슬리퍼 하나를 툭 내려놓고 발을 끼웠다. 지나치게 꼭 맞는 슬리퍼의 모습이 어쩐지 우스워 수애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다시 표정을 갈무리한 뒤 빠른 걸음으로 그의 앞에서 거실로 길을 안내한다.

“여기 잠깐 앉아계시겠어요? 커피 드시나요?”

“응. 아이스.”

거실에 놓인 넓은 테이블에 자리잡은 그를 두고 부엌에서 커피를 내린다. 제가 마시던 것과 같은 종류의 캡슐로 얼음컵 위에 쏟아지는 진한 내용물을 바라보며 그에게 물었다.

“계약서는 준비했는데. 리 웨이 씨가 원하시는 조건은 적어주셔야해서요. 한글로 적으실 수 있나요?”

“적는 건 잘 못 해.”

“음…. 그럼 말씀 해 주시면 제가 적을게요.”

얼음이 찰랑거리는 투명한 유리컵을 웨이 앞에 내려놓는다. 맞은편에 앉은 수애가 준비해 둔 계약서를 웨이 쪽으로 밀었다.

“한번 읽어보시면… 아니, 읽어드릴까요…?”

“응, 읽어줘.”

수애가 제 앞에 놓인 동일한 계약서의 내용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조금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 핸드폰으로 중국어를 검색해 서툰 중국어로도 설명을 덧붙였다. 가만히 턱을 괴고 수애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웨이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네?”

“왜 리 웨이 씨. 라고 불러?”

“그럼 뭐라고… 불러드릴까요…?”

“웨이. 라고 불러. 그리고 반말 써.”

“…제가 전달받은 바로는… 리 웨이 씨 나이가 서른 하나인 걸로 알고 있어서요….”

“웨이.”

“ㅇ,웨이…. 제 나이가 올해로 스물 하나예요. 열 살이나 많은 분께 반말을 쓸 수는 없어요….”

상처받았다는 듯 가슴을 움켜쥐는 그의 모습에 작게 웃음이 터졌다. 웃는 얼굴에 웨이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이어진 설명이 마무리되고 수애가 펜을 들어 계약서 맨 아래의 빈 공간을 펜 끝으로 가리켰다.

“이 부분에는 당신이 원하는 조건을 적을거예요. 말씀하시면 제가 한국어로 받아쓸게요.”

“말 했잖아. 나랑 같이 지내는거. 24시간, 하루종일.”

“하룻동안 말씀하시는건가요…?”

“…? 하루종일. 아침에 눈 떴을 때부터 밤에 잠 들 때 까지. 자는 동안에도 옆에 있어야해.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날도. 쭉.”

“전 이 집을 떠날 생각이 없는데요….”

“응. 이 집 좋네. 사이즈 적당하고.”

“침실도 하나밖에 없고, 나머지는 서재같은….”

“어차피 같은 침대 쓸 거니까 침실 하나면 충분해.”

“같은…침대요…?”

“…안 건드린다. 계약서.”

웨이가 ‘원치 않는 접촉’ 항목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수애가 침음을 흘리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그래도 낯선 타인을 제 집에, 그것도 같은 침대를 사용하는 게 과연 맞을까? 작은 머리로 한참을 고민하는 꼴을 보던 웨이가 테이블을 툭툭 건드리고는 수애 눈 앞에 손을 내밀었다.

“손 잡아봐.”

“네…?”

“손 잡아봐. 생각 정리될거야.”

머뭇거리던 수애가 손을 느리게 내밀자 웨이가 그 손을 낚아채 강하게 움켜쥐었다. 맞닿은 손바닥을 통해 또 다시 그의 청량한 기운이 흘러들어왔다. 마치 그의 몸에서 뿜어지지 못해 한참을 맴돌다 겨우 숨구멍을 참은 것 처럼 수애의 몸 속으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손가락 끝에서부터 발가락 끝까지 한순간에 퍼지는 그의 짙은 기운에 갑자기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소름이 돋아 몸을 으스스 떨며 느리게 시선을 올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럴 줄 알았다며 입꼬리를 올려 씨익 웃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무슨 정신으로 서명을 했는 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정신을 차린 것은 집 현관에 그의 소박한 짐이 내려놓아진 순간이었다.

“짐이… 이게 다예요…?”

“응. 나 원래 짐 없어.”

“…옷은요…?”

“…여기서 사면 돼.”

이 대책없는 남자와 과연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갑자기 눈 앞이 캄캄해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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