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Lee

No. S-5

TOHELL by TO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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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님. 수애요. 요즘 기량이 남다르던데요.”

“그 중국인 가이드가 실력이 좋긴 한가보네….”

“아니, 그 수준이 아니예요. 지난주에 인천 현장이요.”

“말도 마. 그 때 현장 잘 마무리 해놓고 그 가이드 센터에서 폭주할뻔한 거 잊었어? 나 그거 생각만 해도 머리 아파.”

“그 때 애들한테 듣기로는 수애가 능력 하도 써서 과호흡에 쓰러지고, 결국 회복하는 동안 그 가이드가 가이딩 가볍게 해줬는데… 그게, 다르대요.”

“뭐가 다르다는거야?”

“리 웨이 씨가 가이딩 한 거랑, 김수애가 능력 써서 치유해준거랑 차원이 다르대요.”

“당연히 다르겠지. 그 사람 등급이 말만 A야. 20대 때 이후로 재심사를 거부해서 그렇지 지금 검사하면 A 등급 평균치는 훌쩍 넘을 걸.”

“그 반대예요. 가이딩보다 능력으로 치유한 게 훨씬 좋다던데요. 회복이야 입 아프고, 컨디션까지 최상이라고.”

“…뭐? 그게 가능해?”

“무슨 얘기 하세요…?”

복도 반대편에서 수애가 두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고개를 돌리니 수애의 모습보다 그 뒤에 나무처럼 수애를 감싼 검은 남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자신보다 훨씬 작은 여자를 가두다시피 몸을 끌어안은 커다란 남자. 최근 센터에서 유명한 조합이었다. 불편하지도 않은지 웨이에게 안긴 채 두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온 수애가 눈을 깜빡이며 다시 말했다.

“제 이름이 나오길래… 무슨 일 있나요?”

“지난 주 인천 얘기 하고 있었어.”

“아…. 그 때 제가 너무 무리했죠. 죄송해요.”

동시에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웨이가 목 깊은 곳에서 경계하듯 짐승처럼 목울대를 진동시켰다. 습, 하고 소리를 낸 수애가 제 몸을 감싼 팔을 풀고 뒤를 돌아 웨이를 마주보았다.

“웨이. 그건 다른 팀원들이 아니라 제 잘못이에요. 그래서 다음부턴 당신 말 먼저 듣기로 했잖아요.”

“그 놈들이 너 능력 믿고 설쳤어. 안 그랬으면 너 쓰러질 일 없었다.”

“그래도 다치진 않았잖아요. 당신이 잘 챙겨줘서 금방 회복했고. 그러니까 우리 그 얘기는 그만해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투덜거리며 중국어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당분간 큰 건은 없을거야. 별 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일단 대기하면서 쉬도록 해.”

“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과장님.”

“그래. 다음에 보자.”

두 사람을 지나 건물 밖으로 나선 이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관리자로 살아온지 10년이 넘어갔지만 저렇게 센티넬에게 맹목적인 가이드는 보지 못했다. 반대라면 모를까.

“저게 사람이야… 맹수야….”

“수애는 고양이 같다던데요.”

“재규어 아니고? 저게 대체 어딜 봐서 고양이야?”

“경위서에는 폭주까진 아니였던데. 센터 와서 터진거예요?”

“이제 보니까 현장에서는 김수애 있으니까 자제했던 것 같아. 병원 이송되고 직후에 난리났거든.”

“저 가이드… 수애 좋아하는 건 아니겠죠…?”

“글쎄다…. 김수애는 아무 생각 없어보이던데. 애가 좀 맹해야지…. 인천 팀 경위서 다 확인한거야?”

“네. 리 웨이 씨가 한 말 그대로긴 해요. 조만간 팀 재배정 시즌이니까 경고로 마무리 하기로 했어요.”

“아무튼 아까 한 얘기는 자세히 알아보고, 이번엔 저 가이드 좀 활용할 수 있는 조합으로 팀 만들어보자. 우리 미처리 던전 리스트 있지.”

“고위험 던전 말씀하시는거죠…? 한번 알아볼게요.”


“수. 집에 갈거야?”

“네. 웨이는요?”

“당연히 같이 가. 같이 있기로 했잖아.”

“당분간은 일정 없으니까 굳이 저랑 계속 있지 않아도 괜찮아요.”

“내가 일 때문에 옆에 있는 것 같아?”

“…저랑 있으면 가이딩도 안정되니까… 그거 아니였어요?”

“바보 여자.”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수애가 멀뚱히 웨이를 올려다보았다. 그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웨이가 큰 손바닥으로 수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앗, 소리를 내며 헝크러진 머리를 정리한 수애가 억울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짧게 한숨을 내쉰 웨이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고 뒷걸음질을 치며 주차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그럼 나 오늘 외박해. 내일 봐.”

“…그래요…? 으응, 내일 봐요.”

“바이바이. 수.”

큰 보폭에 금방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쩐지 울렁거리는 기분에 고개를 갸웃하며 주차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돌아온 집은 어느새 해가 저물어 캄캄했다. 자동으로 들어왔어야 할 센서등에 반응이 없었다. 고장났나…. 구두를 벗고 현관을 지나 침실로 들어섰다. 침대 위에 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그대로 드러누웠다. 적당하다고 생각한 퀸 사이즈의 침대가 어쩐지 넓게만 느껴졌다. 한 달 내내 그와 같이 잠들어서 그런가. 베개를 사이에 두고 끝자락에서 잠든 것도 하루 이틀이지, 아침마다 침대에서 떨어지며 깬 탓에 일주일이 채 지나기 전에 백기를 들고 편하게 잠들기 시작했다. 먼저 건드리지 않겠다던 그의 말도 지켜졌고.

언제였던가, 잠버릇에 그를 끌어안은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는 평범하게 잠들어도 아침에 깨면 항상 그의 품 속이었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며 움직이는 그의 몸과 따뜻한 체온. 그리고 포근한 느낌이 좋았다. 저도 모르게 그의 품 속으로 파고들면 그는 놀라지도, 거절하지도 않은 채 당연하게 마주 안아주었다.

그에 비해 홀로 누운 이 침대는 싸늘했다. 당연한가….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키고는 편한 옷차림으로 갈아입었다. 약 때문에 억지로 김밥을 욱여넣고 나서야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하루가 길다. 이상하게 피곤해 눈만 감으면 그대로 잠에 빠져들 것만 같았다….

.

.

.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다.

으슬으슬한 몸에 방 안의 온도를 높이고 창고에서 전기장판까지 꺼내 코드를 꽂았지만 몸만 뜨거워지고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소화가 덜 되었나? 거실에 요가매트를 깔고 스트레칭을 해 보았으나 여전했다. 눈을 감고 한참동안 양을 세어도 그저 양이 삼백마리가 넘어갈 뿐 잠은 오지 않았다. 이리 뒤척이고 저리 뒤척이다 결국 베개를 들고 침실을 나왔다.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베개를 끌어안고 무릎을 세우고 있으니 마치 천둥이 치는 날 밤, 밖을 무서워하는 어린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비슷한 상황인가? 스스로의 상태를 고민해보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새벽 세 시. 밤이 될 때까지 전화 한 통, 문자 한 개 없는 그가 야속했다.

왜? 어째서 그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있는거지? 수애는 갑자기 의문이 들어 느리게 파묻은 고개를 들었다. 그래, 맞아. 이건 매일 끌어안고 자던 바디필로우가 갑자기 사라진. 그런 거랑 비슷한거야. 합리화를 시도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제법 잘생기고… 능력도 좋은… 바디필로우였으니까. 스스로 결론을 내린 수애가 핸드폰을 들고 심호흡을 했다.

[ 웨이. 자요…? ]

…문자를 지웠다. 다시 손가락을 움직인다.

[ 리 웨이 씨. 우리 다음 일정은…. ]

다음 일정 같은 건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 다시 문자를 지운다.

[ 뭐 하길래 저녁 내내 연락이 안 ㄷ…. ]

나는 그의 가족도, 애인도, 뭣도 아니었다. 그러니 그가 자신에게 일정을 보고 할 의무는 없었다. 우리는 업무 상 파트너일 뿐, 그냥… 같은 집에 사는 룸메이트… 아, 그래.

[ 웨이. 현관의 센서등이 고장났어요. 혹시 고치는 방법 알아요…? ]

두어번 심호흡을 하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문자를 보내고 십 여 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에게 전화가 왔다. 허둥지둥 핸드폰을 겨우 들어 수신 버튼을 눌렀다.

“리 웨이…? 혹시 내 문자 때문에 깼어요…?”

[ 안 자고 있었어. 고장? 센..? 그게 뭐야?“ ]

“현관에 사람 들어오면 자동으로 불 켜지는거요. 그게 고장났는지 불이 안 들어와서…. 새벽에 미안해요. 아침에 보낸다는게…”

거짓말이다. 일부러 새벽에 보냈다.

[ 아. 그거. 안 그래도 불 약해졌다. 부품 샀는데. ]

“아… 그래요?”

전화기 너머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왜 안 자? ]

“…센서등이 고장나서….”

[ 그거 안 켜지면 잠 못 자? ]

“그건 아닌데….”

[ 잠 안 와? ]

“…네….”

[ 문 열어봐. ]

“네?”

[ 나 손 없어. 문 열어줘. ]

수애가 느리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터폰으로 다가가 카메라를 켜자 익숙한 몸체가 액정에 보였다. 세상에. 슬리퍼를 신지도 못하고 맨발로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양 손 가득히 짐을 든 웨이가 눈 앞에 보였다. 저도 모르게 환하게 웃으며 짐 너머로 그를 꼭 끌어안았다.

“수, 아가네. 불 안 들어와서 무서웠어?”

“보고싶었어요.”

아주 조그맣게 중얼거린 소리를 웨이는 놓치지 않았다. 짐을 내려놓고 현관문을 닫은 웨이가 그녀를 번쩍 안아들었다. 그제서야 희미하게 들어온 불이 수애의 뒤로 비추었다.

“웨이…?”

“다시 말 해봐.”

“…보고싶었어요.”

“왜?”

“그건…모르겠어요. 그냥… 당신이 없으니까 쓸쓸해서….”

장난스럽게 입꼬리를 올려 웃는 그의 얼굴을 보고있자니 낯이 부끄러워져 그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내려주세요….”

“싫은데. 나 오늘 지내던 곳에서 짐 갖고왔어. 정리하느라 피곤해. 졸려. 자자.”

그대로 신발을 벗은 웨이가 걸음을 옮겨 침실로 향했다. 거실에 놓인 요가매트, 소파에 굴러다니는 베개, 올라간 보일러 온도와 비스듬히 깔린 전기장판. 웃음을 겨우 참은 그가 조심스럽게 수애를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가까이에 몸을 눕히고는 그녀의 머리 아래에 제 팔을 밀어넣었다. 팔베개를 한 꼴이 되자 수애가 고개를 들어 팔을 잡았다.

“저 베개 있어요…. 팔 저릴텐데.”

“너 베개 없다. 거실에 버렸잖아.”

“다시 갖고오면….”

“졸려. 나 잘거야.”

다른 쪽 팔을 수애의 위에 얹은 채 가볍게 끌어당겼다. 그의 품 속에 쏙 들어간 모양새가 되자 수애가 고개를 빼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말은 들을 생각이 없는 듯 눈을 꾹 감고 그저 옅게 숨을 내쉬는 남자가 보였다. 끌어당겨진 품은 단단했지만 답답하지 않고 포근했다. 그리고 따뜻하고,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숨이 느껴졌다. 일정하게 뛰는 심장박동소리. 혼자 누웠을 땐 느끼지 못한 소리였기에 그에게서 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제 심장이 뛰는 소리였다.

조금 빠른 속도로, 거슬리지 않게 쿵쿵대는 심장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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