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NRN] 지레짐작

"아니면 우리 하루만 더 놀다 가는 건 어떻소? 그대 말대로 방을 잡으세."

맞은 날 중 가장 평온한 아침이었다. 허름한 창 너머로 막 하루를 시작한 사람들의 활기와 함께 그것과는 반대되는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으나, 다행히도 이불 속은 따뜻해서 적당한 소음과 시원함, 따뜻함. 모든 게 조화로웠다.

 

옆자리가 텅 비어있는 것만 빼면.

 

전날 종일 붙어서 달큰한 말만 속삭이던 여인은 어디로 갔나. 그 작은 몸으로 자신과 함께 살아가겠다면서 자신만만하게 말하던 여인은 어디로 갔느냔 말이다. 애초에 맺어본 적 없는 관계를 길게 이어갈 생각 따윈 하지도 않았다. 얼마 가지 않아 끊어질 게 분명한 관계니까 그전까지만 완벽하게 맺어놓자고. 그러니까 너무 가까워지지 않기를 먼저 원한 쪽이 나였거늘. ……아니. 아니지. 여인이 거짓말을 한 것이 거슬리는 거다. 온종일 자신에게 애정을 퍼붓더니만 먼저 달음박질친 게 괘씸한 거다.

소리 없이 떠난 여인과의 지난날을 버려두고 여관을 나섰다. 3년 만에 소식을 전하면서 데리러 오라기에 발품을 팔았더니만. 헛수고를 했군. 망설일 것도 없이 항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예 없는 인물로 두는 것이 좋겠군. 그렇다면 3년 사이 데려온 하랑을 성장시켜서……. 이후에 해야 할 일들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티엔―――!”

 

……? 허. 매정히 떠난 이와 기이할 만큼 닮은 여인이 막 건너온 길 너머에서 손을 붕붕 휘둘렀다. 반대쪽 손에는 용케 놓치지 않는구나 싶을 만큼 많은 봉투를 우악스럽게 쥔 채로. 그녀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목청껏 제 할 말을 꽥 질렀다.

 

“갈 땐 가더라도 밥은 먹으세!!”

어이없어서 실소가 나왔다. 그녀의 행동은 일터로 나가기 전 식솔들을 챙기기 위해 내조하는 가장의 모습이기도 했고, 편식하는 자식을 따라다니며 챙기는 모습이기도 했으며, 전날 속삭이던 것처럼 사랑하는 이를 위하는 인물 같기도 했다. 그 탓에 실소가 나온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웃을 리가 있나. 어쨌든 나는 나를 놓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표정을 짓고 헐레벌떡 뛰어오는 여인을 보면서 티가 나지 않게, 목 아래로 소리를 삼키며 하염없이 웃었다.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이것저것 다 사 왔다오!”

“씀씀이가 헤픈 게 자랑인가 보군.”

“다 먹을 수 있는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여인의 눈이 순진무구했다.

 

“그럼 이걸 어디서 먹을 생각인 거지?”

“엥? 당연히 여관에서 먹어야 하지 않겠소?”

“체크아웃 했다.”

 

뭐어어? 그녀는 선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네가 나를 두고, ……몰래 도망친 줄 알았다는 말은 입이 찢어져도 하지 못하겠고. 그저 덤덤하게 작은 등에 손을 얹어 길을 이끌었다.

 

“아무래도 다른 방을 구해야겠군.”

“방?”

“그럼 그걸 길바닥에서 먹을 생각인 건가?”

“아니, 뭐. 저기 공원에서 먹으면 되는 거 아니오? 날씨도 좋구먼.”

“…….”

그렇군. 굳이 같은 방에 단둘이 있을 필요는 없을 테니. ……크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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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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