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RN] 眞義
"누나. 혹시 나한테 쌓인 거 있는 건 아니지?"
첫인상? 그저 그런 여인이었다. 동양인인 걸 티 내지 못해 안달이 나서 태어난 건지 저보다 한참 작은 키에 유난히 볼록한 뺨과 둥그런 얼굴, 축 처진 눈꼬리에 매일 헤―하고 벌어진 입까지. 맹하다. 너무 맹해. 사부는 저런 여인의 어디에서 가능성을 보고 키우겠다며 붙들고 있는 건지. 설마하니 애정? 그렇다면 제 사부님 되는 사내에게도 실망을 금치 못할 수가 없을 것이다. 연애 감정 하나에 휘둘려 사람을 끼고도는 건, 좀 그렇잖아. 그러다가 처음으로 참여한 공성전. 작두날처럼 빛나는 안광으로 전장을 뛰노는 작은 여인의 모습을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괜히 저걸 키우겠다고 하는 게 아니구나, 하고.
그 외의 접점? 딱히 없었다. 곁눈질로만 보던 여인이 어느 날부터 슬슬 다가오며 호감을 보이기 전까지는. 곤란하다고. 등 뒤에 잡귀를 달고서 친한 척을 하면 나는 매일 저것과 조우해야 하는 거잖아. 그렇게 밀어내고 밀어내다가, 이 사람의 호감이 동생을 감싸는 누이의 마음인 걸 알았을 때 무거운 입을 열었다.
“저기, 누나.”
“응?”
“어디서 뭘 하고 다니기에 그런 걸 달고 다녀?”
사지가 찢어져 피 칠갑이 된 모습으로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작은 뒤통수만을 뚫어져라 노려보는 망령. 그 모습이 어찌나 처참한지 저 잡것이 거리를 유지하지 않았더라면 그 자리에서 토악질을 했을 것이다. 새카만 머리를 길게 늘어트리고 옥색 한복을 피로 적셨는데, 아무리 봐도 조선인의 모습이 아닌가. 그리 설명하니까 여인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 그 새끼 거 결국 뒤졌나 보구먼.”
여인은 뒷짐을 지고 어슬렁어슬렁 그랑플람 건물 안으로 모습을 감췄고, 그녀 뒤의 망령 역시 시야에서 사라졌다. 등골에 싸한 기운이 훑고 지나갔다. 저것이 여인 손에 죽은 것이구나. 그래서 해하고 싶으나 그 기운을 이기지 못해 다가오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것이구나. ……괜한 시비를 걸던 날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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