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외출 사유
도코메이
여러분. 갑작스럽지만 여기서 고백을 하나 하고자 한다.
사실 내게는 남자친구가 있다. 그것도 굉장한 매력을 풍기는. 너무 팔불출이라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다. 나는 그에게 이끌렸다. 단순 착각 중인 것일지도 모르지만, 우선은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라고 한다면 그 부분일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얼굴(정확하게 말한다면 미소, 사람들은 자주 웃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 같지만 내가 보는 그는 항상 웃는 낯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으므로). 밝힌다고 한다면 밝히는 사람이 될 것이고 손가락질 받겠지만 이렇게 생각하든 저렇게 생각하든 결국 내 소유니, 그것도 별 수 없다.
매력이란 무엇일까? 매력이란 사람을 잡아들이는 힘이다. 그는 항상 혼자였고 내가 돌이켜 보기에도 그는 변함없이 혼자였지만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면 내가 그의 곁에 남아있었다. 별로 그래야 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는데도. 눈치챈 순간 이미 그의 곁을 떠날 수 없어서 묘한 불쾌감을 단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내가 그를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나는 불필요함을 감수하는 일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다른 말로는, 나는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사람은 사람과 살며 베풀고 배려하고 아끼고 나누며 살아가야 하지만 그런 듣기 좋은 소리는 정작 내게 깊이 다가오지 못했다. 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하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지 못했다. 우리는 이기적으로 살아가지 않던가. 어느새부턴가 그것이 옳다고 인정하며 속세를 산다. 나도 그런 것뿐이라고 위로하며 살아가던 나날이었을 뿐이다.
때로는 대학교 졸업은커녕 대학이라는 존재 자체가 잊힐 즘이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지. 그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참 멋들어진 인생이다. 누군가 그렇게 욕했다. 하지만 나는 성장이란 걸 하지 않는 인간이다. 하다못해 변화조차 하지 않는 인간이다.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죽고자 하였는데 그 변화를 인정할 수 없어 여기 방바닥에 누워 호흡만을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어떤 의미로 변화라고 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담배를 피우기 위해 손을 움직였다. 손끝에 담뱃갑이 닿았다. 이제 내 손에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담뱃갑을 들어 올리지도 못할 정도의 근력으로 손을 내둘렀다. 하지만 담뱃갑은 저 멀리 날아갔다. 더 이상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지금 내 표정을 보면 꼴이 웃길 텐데.
자해를 그만둔지는 꽤 되었다. 몇 개월쯤 되었을까. 누군가가 보면 기뻐할 일이리라. 나 역시도 기뻤다. 자해하고 싶어지지 않을 만큼 죽고 싶어진 것이 나 같은 이에게 있어 얼마나 더 한 축복인지. 새어 나오는 신음을 애써 틀어막았다. 흐느낄 기력조차 없었으니까. 대신 무언가 이룰 수 없는 고양감에 휩싸였다.
그대로 아무 겉옷도 입지 않은 채로 문을 열고 밖을 향했다. 왜였을까? 그건 아마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이해할 수 없었다. 추웠다. 시간이 꽤 지났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지나다녔다. 소란스러웠지만 공허했다. 내가 들을 소리가 아니었다.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내가 가야 할 곳은 한 곳 밖에 없었다.
땡그랑. 데스크에서 나를 향해 뭐라고 외친듯했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담배를 사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것이 오늘의 외출 사유였다. 나는 다급하고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담배.”
“가장 잘 나가는 걸로…… 주세요.”
말을 절었던 탓이었는지, 몰골이 영 아니어서인지.
“저…… 손님, 신분증 소지하고 계실까요?”
오랜만에 듣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아니, 외출했을 때부터 계속 듣고 있었다. 경적소리. 웃음소리. 뭐라고 한들 나와는 상관없는 소리. 하지만 이번엔 경우가 달랐다. 명확히 나를 향한 질문이었다.
“아…….”
“아니요.”
그 뒤로 나지막이 죄송합니다…라고 말했지만 편의점 직원에게는 들리지 않은 듯했다. 아니, 애초에 내가 생각해도 무음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 당연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런 꼬락서니니.
나는 하는 수 없이 문을 젖혔다. 이토록이나 허무한 외출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한다면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일 것이다. 나는 삶을 회고했다.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회고라 함은 지나간 일을 돌이키는 것인데 그것만큼은 전문가였으니. 하지만 어쩐지 이 외출로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그것은 내가 변함없는 쓰레기였기 때문인지, 내가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인간임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어서인지. 커터칼을 마지막으로 뒀던 곳이 어디었더라, 휴지가 다 떨어지지 않았던가, 닦기 귀찮은데…… 그런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퍽.
아. 사람과 부딪혔다.
나는 고개를 들 힘이 없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내 고개는 위를 향했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았다. 너무 오랜만의 외출이었던 것인지 빛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애당초 제대로 뜬 적도 없긴 했지만.
“아, 괜찮으세요?”
어느 한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그것은 이미 듣는다는 행위(라고 분류해야 할지 가만두어야 할지)를 넘어선 무언가였다. 혼을 빼앗긴 듯한, 마치 한 순간 꿈을 꾼 것 같았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과장해서 말한다면 그 정도.
“…….”
“다치셨을까요?”
아차.
“괘, 괜찮습니다.” 나는 다급하게 대답했다. 덕에 말을 절였다. “그러시구나…….” 말끝은 흐리게 들렸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에게는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가? 예를 들면 이런 상황 말이다. 급한 용무가 생겨 잠시 집에서 나와 빠르게 처리한 후 집으로 돌아가던 참이었다. 친구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와 부딪혔다. 앞을 주시하지 못한 나의 잘못도 있을 것이다. 아니, 명백하게 나의 잘못이다. 그야 상대가 쓰러졌기 때문이다. 다쳤냐는 물음에 좀 얼버무리는 것 같기는 해도 대답은 하길래 괜찮은 줄 알는데. 이래서 살면서 언제나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로군. 그래, 이것은 첫 번째 무례. 그런 일이 있었지만 역시나 내게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길 가다 부딪혀 쓰러진 사람을 집안으로 데려오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나는 자취생이었고, 침대 정도는 구비해 두고 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래, 이것은 무례의 연속이었다.
물론 내게도 ‘내 자신이 무례한 사건’(물론 나도 어디까지나 사고였다고 말하고 싶지만 이건 일방적인 무례함이라 설명해야 옳다)를 저지르기 전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갑자기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와 통화를 하는 바람에 나뭇가지에 걸려 넘어진 바람에 팔에 상처가 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친구는 이런 내 소식에 숨쉴 틈도 없이 웃어댔다. 이런.
물론 이조차도 변명이라, 적은 상처였고 피도 얼마 안 가 멎을 참이었지만 옷에 피가 묻을 것이 두려워 잰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만한 점은, 지금 내 옷에 묻은 피가 상대의 피가 아닌 나의 피라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윗옷을 벗고 있었다.
부스럭.
“…….”
소리가 나는 곳에 눈을 돌리자 공포에 질린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살면서 그런 표정과 마주할 일이 얼마나 있을까. 놀랍게도 방금 눈을 뜬 사람은 상황 판단을 마쳤고 잠시 숨을 돌리려던 내쪽의 상황 판단이 훨씬 느렸다. 나는 이런 것이 좀 흠이다.
죄송합니다……. 쥐가 지나가도 이보단 크겠다 싶은 웅얼거림이 귀에 밟혔다. 아니, 그것보다.
그런 게 아니야.
오해다.
“저기, 아, 옷은. 옷은, 제 옷이 더러워져서요. 그래서 빨래통에 넣으려고. 여기에 묻은 피는 그쪽이 아니라 제 피예요. 아, 부딪혀서 생긴 게 아니고요.”
나는 놀랐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대처했다. 그래야 했다. 어디 범죄자 취급 받고 싶은가? 안 그래도 저쪽은 피해자다. 이쪽이 명백한 가해자란 말이다. 여기서 얼마나 더 인상을 구겨야 만족하냔 말이다, 신은. 아니, 사실은 그런 게 아닐지도 모른다. 상대방 입장에서 볼 때 얼마나 얼빠진 사람이겠는가. 자기랑 부딪힌 사람이 앞서서 넘어진 바람에 피를 봤고, 그게 본인이 아니라 자신의 피이니 안심하라. 이 인간은 호구인 걸까, 그런 생각이 들겠지. 살며 첫인상을 이렇게 망쳐 본 적이 없었다.
“…….”
“그러니까, 그…….”
“사과하지 않으셔도 되니까요.”
그 사람의 눈동자에서 공포감이 사라졌다. 대신에 무언가 다른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그런 것과는. 그러니까…… 무언가, 구제받은 듯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맞긴 하지만. 그렇지만 그렇게 치면 내가 재해이기도 하는 셈이 되니까. 방금 한 말은 없던 일로 치자.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 사람은…… 어쩐지 당황한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마 내가 이리저리 휘둘리느라 앞을 보지 못 했기 때문에. 하지만 그래도 그 사람한테서는 빛이 났다. 태양빛을 착각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한테는 그렇게 느껴졌다.
다시 올려다 본 하늘에는 구름 한 점조차 없었다. 햇빛이 너무 강했던 탓일까. 그런 생각을 곱씹으며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 돌이켜 보면…….
그날 하루는 재수가 그리 나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건 지금 사랑하는 이가 나의 곁에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겠지. 하지만 사랑과 삶은 그런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저주가 아니라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닐까. 내 옆자리에서 잠에 든 이의 감긴 눈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일어나면 공원에 놀러가자고 해야지. 나는 그의 코에 입술을 갖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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