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존속기간만료

存續期間滿了/료스미치

똘맥 by 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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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아마 유명하신 분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럼 필연도 선택이라 부를까?

필연. 어쩌면 자연의 섭리. 세상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두고 자연이라는 말로 꾸며댄다. 신이 자연의 뜻인 건지, 자연의 뜻이 신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은 착각 중일뿐이다. 근거는 물론, 내가 그들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분명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착각 중인 것은 누구일까. 어쩌면 착각을 착각이라 착각하는 것이야말로 진리인 것은 아닐까.

이는 내가 어느 시절 술을 마시고 생각에 잠겼을 참에 떠오른 몇 가지의 망상이다.

어린 시절이라 함은 한없이 하득하지만 아주 존재하지 않지는 않는 것으로, 나의 토대이자 기초, 또 다른 말로는 밑바닥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쓰레기통 속 밑바닥 삶을 사는 이에게 지금보다 더 한 바닥이 있을 수 있겠냐고 하겠지만 이보다 더 불행한 것은 없다. 내게 있어 그 시절이란, 하나의 영화로 만들어 상영한다고 가정하면 여느 관객이 진부하다던 가엽다던 그 어떠한 반응을 내놓기도 전에 모든 것이 끝나 있을 것이기에 딱히 힘을 쏟을 가치가 없다.

사고하지 못하는 존재란 참으로 부정하다.

반복적으로 식탁 위로 올라오는 냄새나는 물렁한 덩어리들과 뒷골목의 냄새 나는 시체 산의 구분이 불필요한 것처럼, 눈앞에 지나다니는 사람 또한 그 가치는 비슷하다. 결국 언젠가 바스라져 누군가의 음식물이 되어 식탁 위로 올라갈 운명이지 않은가. 누군가는 그것조차 되지 못해 쓸모를 다하지 못하고 흙 속에 들어가 영원한 망상을 하는 것이 진정 삶임을 바라지만, 정지된 삶은 사고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런 생각은 일을 하며 강해졌다. 일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순전히 세월의 흐름 때문일 거라는 친구의 말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1이 되든 10이 되든 100이 되든 결코 0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니까.

무언가를 깨닫는다는 것은 사고한다는 의미다. 다만 무언가를 깨달은 직후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사고는 끝내 정지한다. 짧은 순간이지만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삶은 가치가 없지만 1이 0이 된다면 그야말로 나의 존재를 없애는 것의 반증이기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언가 의미 있는 행위를 해야만 한다. 끊임없이 사고하고, 생각하고, 반복하고, 떠오른다. 전형적인 호모사피엔스의 행동범위이지 않은가. 스스로도 그러한 삶에 만족하고 있엇다. 하지만 내게 있어 직후라는 기간이 너무 벅찼을 뿐이다. 나는 차라리 그날 내가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하고 후회하고 싶지 않아 오늘의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있어, 생명체에게 있어 반복되는 삶의 커리큘럼이란 생존을 위하여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무언가의 생명을 위협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지 않은가. 당연한 먹이사슬이다. 가설에, 이론에, 적용이 되었으니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니까 습관은 곧 내 삶의 연장선을 결정한다는 이야긴데, 그날도 몇 부 째일지 모를 새 부를 인쇄 중이었던 것이다.

그래. 솔직히, 감흥을 느끼지 않았다. 매일 아침 바뀌었을 자신의 얼굴을 보며 오늘도 바뀌지 않았다고 한탄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인간에게 새로 만난 이에게 특별한 감상을 요구하는 것은 혹독한 일이기에. 모든 필연은 우연히 시작된다. 아니, 그냥 우연이라고 믿고 싶은 것일 수도. 그 인과성 속 스스로의 멍청한 판단력에 납득하고 싶지 않은 것뿐이지 않을까.

인간이란 동네를 거닐다 길거리 동물들의 변화에 나도 모르게 주목하게 되는 것처럼, 눈에 익던 습관이 변화하려는 것이 보이면 반응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에, 그런 순간이 없을 수야 없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애당초 의미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나의 생각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어떠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아니, 분위기라고 하기 보다는…… 좀 더, 수정하기 좋은 단어가 있을 것이다.

그날 가장 손에 꼽을 만한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면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눈이 마주쳤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문제가 된 것은 내가 피하지 못한 것. 그 다음으로는 물론…… 반응이었다.

“왜?”

상대에서 물어왔다. 이런 건 전혀 예상하지 못 했는데. 여기서 아무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가장 후회되는 일로 그 선택을 꼽게 될 테니 그건 그만뒀다.

“뭐가요?”

하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대답에 질문을, 질문에 대답을 한다면 그렇겠지.

음.

“화장실에 가려던 참이었는데요, 저는.”

대답했다.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 가. 오늘은 일이 적은 편이니 느긋해도 상관은 없어. 하지만…… 게을리 해도 된다는 건 아니야.”

선배는 정리가 다 된 건지.

“네, 물론이죠.”

뭔가 조금 차갑게 대답한 것 같지 않나.

평소와 같았다. 무엇 하나 다른 것 없었다. 그저 잘못된 것은 하나였고, 그 실수는 하나의 나비가 되어 천천히 빠르게 날갯짓했다.

그저…….

내가 선배를 너무 의식했어.

타인이나 무언가 사물을 인식하는 것으로 사고가 정지하고 멍청이가 되어 버린다니,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찌나 부정한가. 이러니 아낄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번복할 수는 없었고, 나는 그 잠시조차 후회하며 시간을 썩히고 싶지 않았다.

아.

눈앞에 빈 유리병이 넷 정도 쌓였을 쯤 문득 깨달았다.

의식한 것이 아니다. 사고를 멈춘 것이다. 정확히는, 사고가 멈춰진 것이다. 오직 한 사람에 의해서. 스스로도 나의 사고를 멈추지 못 했는데, 예상조차 못 한 존재가 날 죽이고, 죽여버리고 만 것이다.

인간에게 무언가 기대를 하는 행위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고에 포함되는가. 이를 반복하면, 나는 죽지 않은 것이 되는가. 끊임없는 사고를 반복하며 죽어있기를 반복할 때였다.

그 사람은 사람이다. 어쩌면 평범한. 나는 평생 그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 할 것이고, 그건 아마 그녀조차 그럴 것이다. 하지만 간혹 그런 견해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을 세간에서는…….

세간의 말 따위 참고할 것이 되지 못 한다. 이런 식으로 회피만 하며 시간을 사치스럽게 쓰는 것보다는 차라리 인정하고 편해지는 편이 낫다.

…….

이런 걸 보자면 참으로 유치하지 않은다, 삶이란 것은.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는 듯한데, 이것은 나의 삶이 곧 당신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것은 영원한 정체다.

나는 당신에게 이를 말할 수 없을 테니까.

어떠한 공책에도 적지 못하고 글로조차 정리하지 못한 채 다시 이런 하루를 반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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