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무서리

순무 서리 1

순무를 찾는 시간

순무밭 by U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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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정말 좋아하고 동시에 싫어하는 모순적인 감각들을 느끼며 살아왔다.

남들에게 소개를 해야 할 땐 대충 남미새, 젠녀, TG 뭐 그런 이름들로 소개하며 지내는 요즘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저런 이름들로 인지하고 감각하게 되었는 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내가 겪은 감각들을 설명 해 줄 용어들 중 가장 인지도가 높고 퉁칠 수 있는 말들이었다.

이름표를 굳이 굳이 지금 그래도 있는 말들로 나열 후 설명해 보자면 현재 내 성별에 대한 감각은 “트랜스젠더_우먼-엄브렐라-데미_걸_플럭스*” 정도의 익숙치 않은 단어들로 설명하는 게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트랜스젠더 여성의 범주에 속해 있는 여성이며, 여성과 비-여성 어딘가에 위치한 두 감각이 강도 차이를 지니며 병행하기에 내 정체성 설명에 그나마 가까운 단어로써 채택함)

인지도도 낮고 대중들은 잘 모르기에 그냥 젠녀 로 퉁치는 편이다.

이 감각이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 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어느 순간부터 나의 감각이었고 그걸 인지한 순간부터 설명하기 어려워했을 뿐.

처음 트랜스젠더 라는 단어를 접한 건 초등학교 3학년(대충 10살) 즈음인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여자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걸 좀 더 좋아했고 그렇다고 남자아이들과 노는 걸 꺼려하진 않았다.

그냥 성별을 신경쓰지 않고 같이 어울려노는 게 좋았고 성관념과 무관하게 소꿉놀이도, 운동도, 로봇도, 드레스도, 놀이터에서 하는 각종 답습된 규칙들도 두루두루 좋아하던 아이였다.

여전히 연락하고 친하게 지내는 건 초등학교 때 내가 정말 좋아하던 여자애들이지만 이 역시 가까워지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어릴 때의 나는 위생관념이 정말 없었고 더러웠다.

부모님은 맞벌이고 나는 세 살 터울 동생을 챙겨야 하고 학교가 일찍 마치면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기 일수.

어떻게 씻어야 하고 어디를 씻어야 하고, 언제 씻어야 하는 지, 무엇이 비위생적인지의 개념은 또래의 남아무리와 여아무리 양측에서 배척당해가며 익혔고 미디어 매체에서 우연히 접하며 익혔다.

어찌저찌 홀로 터득한 위생과 보건의 개념은 훗날 나의 결벽증에도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아무튼 더럽기도 했고 커가면서 점점 홀로 지내는 시간이 늘다보니 미처 기르지 못한 사회성 덕에 더욱 또래 애들의 순간 다같이 모여서 어울려 놀 때는 끼어주지만 따로 놀거나 깊이 엮이거나 친해지긴 싫은 존재로 확실히 각인 됐던 것 같다.

정말 모순되는 점은 볼 일을 보고 손은 잘 씻으면서도 케어를 제대로 받지 못하다 보니 중1 때까지는 머리를 언제 감아야 하고 샤워를 언제 해야하는 지 모르는 상태로 살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동생은 사회화가 잘 되었다는 점이다.

시스헤녀인 동생의 정상성 집착이 동생의 K-여자력과 어린 시절 생존에도 한 몫 했겠다는 생각이 문뜩 든다.

내가 기억하는 내 첫 트젠 선언은 “트랜스젠더는 군대에 안 간대” 라는 말을 듣고 당시 어울려 놀던, 지금의 몇 없는 실친 여자애들에게 “나 트랜스젠더 할래, 군대 안 갈 거야”라고 한 게 초3이었다.

그리고 내가 인지한 적도 없는 더 어릴 때의 기억은 막내삼촌이 내가 담배피는 걸 알게 된 날이었다.

“너 어릴 때 나보고 담배 끊으라며, 나중에 커서 담배 피면 너 꼬추 떼어내겠다며” 라는 막내삼촌의 말이 너무 달가웠다.

막내삼촌은 모르겠지, 내가 지옥불에서도 잘만 버티는 멘헤라 젠녀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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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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