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기의 하루

이것저것 by ak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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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쉬 킬레만의 방은 귀족치고 소박한 편이었다. 가문이 돈을 못버는 편은 아니었다. 장례식은 언제나 끊임없이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후에 신경을 안쓸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죽음은 신의 영역이고, 무탈한 안식을 위해서는 신에게 빌거나 [묘지기]를 찾아야하니까.


신들은 총애하는 자의 영혼을 가져가고, 남겨진 시체에는 더이상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그 시체는 자신에게 더이상 없는 생기를 탐하려고 다시 일어나 걷는다. 그 방황은 짐승과 벌레가 꼬여서 더이상 움직일 수 없이 흙과 먼지로 돌아간 이후에나 끝나버린다. 가끔 제대로 기도받지 못한 떠돌이 잡귀가 너댓명씩 비집고 들어가 터져버리기도 한다. 신체는 영혼의 그릇. 감당할 수 없는 양의 영혼이 들어간다면 신체도 무사하지 못한다.


살아있을 때라면 물론 육체를 넘보지도 못할 잡귀들이다. 평소에 신실하게 살았다면 그 영혼이 이승에 남아 떠돌 일이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작은 신이나 악한 신이라도 자신의 신도는 굽어 살피고 거둘 깜냥이 있다. 생전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살기에 급급해 사후를 소홀히 하는 자.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불신자. 항상 게을러 영혼에 녹이 슬고 이끼가 끼게 만드는 자. 어떤 신도 굽어 살피지 않고 거둬가고 싶지 않은.


아직 죽음이 닥치지 않은 산자에게 그런 잡귀가 들어가는 것은 지극히 드문 일이다. 육체라는 그릇에 담긴 영혼은 서로 틈새없이 꼭 맞물려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매우 큰 충격으로 서로 분리되거나, 신의 개입이 있지 않는 이상 그 그릇이 비는 일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혹은 특이 체질이거나.


도쉬는 평소보다 가까운 천장을 바라보다가 빙글 몸을 뒤집었다. 그 아래에는 방을 부지런하게 돌아다니면서 아끼는 물건들을 쏘삭거리는 자신의 몸이 있었다.


잡귀의 입장으로 보자면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식지 않은 따스한 육신, 다른 경쟁자도 없거니와 방의 모양새로 미루어보건데 최소한 귀족 가문의 사용인이다. 이 기회를 잘만 사용한다면 후회없는 두번째 인생을 만끽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도쉬는 짤막하게 잡귀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았다. 어렵지는 않았다. 어려서부터 줄곧 떠올렸던 생각이었다.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대신하는 것. 주변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도쉬라고 부르고, 잡귀는 원래의 도쉬보다 훌륭하고 능숙하게 그 자리를 채워버린다. 이대로 자신은 영겁을 떠돌다가 이성을 잃고 스러지다가 메아리가 되겠거니, 하는.


"<대체 이게 뭐야.>"


문득 생소한 언어에 도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무래도 장례식에는 사용할 언어가 많기에, 능숙하게 구사하지는 못해도 저 멀리 바다 건너의 언어까지 익혔다. 언어란 서로 영향을 받기 마련이라 발음을 들으면 어느정도 미루어 짐작이 간다. 하지만 이 언어는…


"<빙의…? 요즘은 읽는 로판도 없었는데? 아니 잠깐만….>"


슬슬 현실도피에서 벗어날 시간이다. 어디서 온건지 모르겠지만 저렇게 말도 생소하고 잠옷 바람으로 방 밖에 나서려는 잡귀는 도쉬쪽에서도 사양이다. 허공에서 깃털처럼 내려온 도쉬는 자신의 그릇을 살짝 기울였다.


"<여보세요...저기요. 거기 사람 없나요…. 으헉?!>"


쏟아진 잡귀가 정신차리기전에 잽싸게 자기 자리를 찾아들어간 도쉬는 꼼지락 손가락을 쥐었다 피었다. 좋아. 잘 붙었군.


"<뭐, 뭐뭐. 뭐야?? 어? 누, 누구세요?>"


그러니까 이제 이 잡귀를 보내주고 일을 하러갈 시간이다. 도쉬는 짤막하게 기도문을 외우고 신을 부르는 손짓을 했다. 실내에 작은 바람이 불어 잡귀를 실어갔다.


"오늘도 묘비를 세우시는 킬레만이시여. 당신의 까마귀를 굽어살피사."


"<잠깐 잠깐만요. 저기요. 으악!>"


그나마 묘지를 관장하는 킬레만에게 왔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의 유노였다면 번개로 태웠을 것이고, 달의 디아나였다면 바람구멍이 대여섯개는 났을터다. 저 잡귀는 이제 킬레만의 묘지에서 안식을 취할 수 있다.


도쉬는 침대 맡의 밧줄을 두어번 잡아당겼다. 도르래와 톱니바퀴로 만들어진 장치는 벽을 타고 내려가 고용인들에게 주인의 기상을 알린다. 세안 준비를 기다리면서 도쉬는 창 너머 새벽 안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오늘 처리할 시체는 열두구. 꽤나 바쁜 하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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