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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기억의 파편 (사이코메트러 IF)

사이퍼즈 합작용 팬픽 / 공미포 3,312

※ 합작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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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만 해도 맑은 하늘이였지만 검은 먹구름이 잔뜩인 걸 보니 곧 소나기가 쏟아질 것 같았다. 먹구름이 짙어질수록 거리를 돌아다니던 사람들도 서서히 사라져갔다. 잭은 골목에서 사람들이 지나가는 거리를 지켜보았다. 그가 서 있는 골목은 빛 한 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곳이었지만 잭에겐 사람들이 다니는 큰 골목보다 어두운 골목이 더 익숙했다.

“후….”

이젠 그를 알아볼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생전 살인마로 지내온 터라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니는 것이 습관으로 베여있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서서히 거리가 한적해지는 것을 보고는 옷깃을 여미고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슬슬 거리로 나가볼까.”

잭은 짧게 휘파람을 불며 한적해진 거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인적이 드문 거리를 걸을 때면 자신이 살아있다는 감각을 최대한으로 느낄 수 있었다. 발걸음이 생각보다 가벼웠다. 딱히 어딘가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지만 지금 이 시간 동안 거리를 활보하며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한참 길을 걷던 그는 한적해진 틈을 타 인적이 드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런 기분, 참 짜릿하군.”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에게 길다면 긴 시간이었고, 짧다면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일이 일어났었다. 분명 과거에 자신은 생을 다했지만, 자신이 어떻게 살아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끝으로 자신은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안도감에 눈을 감았었다.

“흠….”

그러나 눈을 뜬 것은 자신의 육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육체였다. 그는 어떠한 이유로 자신의 인격이 다른 사람에게 스며들어 갔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이 역으로 작용해서 한 동안 다른 이에게 자신의 자아가 묶인 채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클리브에게 묶여있던 자신의 인격을 겨우 분리하고 각자 새로운 삶을 얻은 것이 이제 일 년이 다 되어간다. 그러나 잭은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기보다는 편안한 죽음을 더 그리워했다. 이미 자신의 인생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놓인 채 어디에도 편하게 발을 놓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편히 쉬고 싶군.’

잭은 여전히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지금도 가끔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다.

뚝-, 뚝. 검은 하늘에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더니 금세 거리엔 빗소리로 가득했다. 잭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를 굳이 피하지 않았다. 문득 잊고 있던 자신의 존재, 잃어버린 기억과 관련된 것들이 떠올랐다. 분명 잭은 다른 이들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살인마로 변해버리기 전, 과거에 무슨 삶을 살았는지, 잃어버렸던 시간, 감정들, 그리고 ‘잭 더 리퍼’가 아닌 진짜 이름을 떠올리려 애썼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떠오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짧게 내뱉은 깊은 한숨이 허공에서 부서져 감을 느꼈다. 숨을 들이켜고 내뱉어도 가슴 한쪽에 남아있는 공허함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공허함이 커져만 가는 기분에 잭은 눈을 감고 다시 눈을 떴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능력을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그리고 왜 그 중심에 자신이 있었는지에 대해 사물에 담긴 기억을 읽어가며 흔적을 쫓아갔다.

‘두 번 다시는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잭은 짧게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능력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흔적을 쫓을 때는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었지만 대부분 알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상처와 충격으로 다가올 때가 많았다. 최근에 알아낸 사실은 그가 살인마로 변하기 전, MI7의 소속 일원이었다는 것이었다. 과거에 그가 살인마가 될 수밖에 없던 이유도 자신이 갖고 있던 사이코메트리 능력 때문이었다.

과거 영국 정부 기관인 ‘MI7’의 일원으로 활동하던 당시에도 잭은 자신의 능력을 자주 이용했다. 그는 사물에 담긴 기억을 추적하고 단서를 찾는 역할을 맡아 사람을 찾거나 정부가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는데 기여를 했다. 본인은 그 능력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환경에 만족감을 느꼈지만, 그 능력이 자신을 살인마로 만드는 계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침착하자, 침착해.”

능력을 이용해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생각이 스칠수록 괴로움이 더욱더 커졌다. 차갑게 식다 못해 얼어붙은 분노가 온몸을 휘감다가도 짧은 한숨 하나에 분노가 조금은 차분해져 가는 오묘한 기분을 느끼는 것을 반복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줄기가 점점 굵어진다. 비가 떨어지는 하늘에는 천둥소리도 제법 크게 울렸다. 잭은 거리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목적지는 정하지도 않은 채.


발걸음을 옮기며 도착한 곳은 낡은 폐건물이었다. 소나기가 내려 가뜩이나 밖은 어두웠고 건물 내부는 더 어두웠다. 대게 보통 사람들이라면 이런 곳을 기피할 법했지만 잭은 아무렇지 않은 듯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또각또각-. 발을 떼며 걸음을 걸을 때마다 그가 신고 있던 신발 굽 소리가 건물을 울렸다. 건물을 둘러보던 그의 발에 무언가가 부딪히는 것을 느꼈다.

“뭐지?”

그의 신발 끝에 닿은 것은 어지럽게 널린 약병이었다. 약병에는 알 수 없는 화학 수식이 그려져 있었고, 일부분은 담겨있던 약물이 치명적이라는 듯 경고문이 가득 적힌 병도 있었다. 썩어가는 약물 냄새가 코끝을 간헐적으로 찔렀다. 잭은 이 건물이 단순한 폐건물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흥미롭군.”

알 수 없는 복잡한 기계들과 약병들이 어지럽게 놓여있었다. 의료용으로 사용했을 법한 철제형 대차에는 메스를 포함한 수술용품들이 놓여있었고, 대부분 녹이 슬어 형편없었다. 손이 닿는 곳마다 케케묵은 먼지와 거미줄이 가득했다. 잭은 자신을 제외하고 이곳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럼 한번 읽어볼까.”

잭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의료용 대차에 손을 가져다 댔다. 손을 댄 순간 눈앞에 기억들이 선명하게 그려지듯 보이기 시작했다. 한 남성이 대차에 놓인 메스와 약품을 꼼꼼히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남성의 얼굴은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체구는 제법 왜소한 편이었으며 가운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아 이곳의 연구원인 듯했다.

‘부족해.’

얻을 만한 정보가 부족했던 탓에 잭은 대차에 손을 떼고는 다른 곳으로 시야를 돌렸다. 건물 안으로 들어갈수록 빛이 들어오지 않는 탓에 제법 어두웠지만 잭의 발걸음엔 망설임이 없었다.

한참 안으로 걸어 들어가 보니 눈에 띄는 철제문을 발견했다. 입구에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문구가 적혀있었고, 제법 낡아서 녹가루가 묻어날 정도였다. 잭은 철제문을 열었다. 문을 열어보니 용도를 가늠하기 어려운 기계들과 그 주위로 시약이 담겨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공병들이 가득했다. 적어도 이 공간이 실험실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그는 짐작할 수 있었다.

‘복잡하군.’

그러나 자신이 원하던 흔적을 찾기가 더욱더 어려워졌음을 직감했다. 잭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주위를 더 둘러보았다. 내부는 상당히 큰 구조로 되어있었고 성인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법한 큰 인큐베이터가 있었다. 잭은 인큐베이터를 보며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보다는 익숙한 감각들이 물밀려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이 경험이 처음이 아닌 어디선가 한번 마주했던 순간을 다시 바라보는 기분이 들었다.

“익숙한 기분인데.”

그는 피식 웃으며 실험실 안에 놓인 인큐베이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물건에 담긴 기억을 읽어보기로 했다. 익숙한 목소리의 중년남성이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잭은 조금 더 목소리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아버지….”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이자 자신을 강화 인간으로 만들었던 아돌프 박사였다. 침착하고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아버지를 부르며 기억을 쫓아갔다. 잭은 이곳에서 자신이 죽음을 –정확히는 폐기처분을 받았다.- 맞이한 이후에 아돌프 박사가 독단적으로 자신의 자아를 분리했던 곳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알고 싶지 않았던 과거와 그 연장선에 자신이 그토록 찾아다녔던 아버지의 행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분노와 증오에 휩싸이는 기분을 느꼈다.

“아버지, 당신이었군.”

잭은 밀려드는 분노와 허탈함에 웃음을 터트렸다. 차오르다 못해 차갑게 식어버린 분노를 느끼던 그는 주위에 돌아다니던 메스를 하나 집어 들었다. 시간의 흔적에 먼지가 많이 묻어있지만 다른 것들과 달리 녹이 슬어 형편없지는 않았다. 나름 상태가 양호한 메스를 손에 쥐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만하면 쓸만하겠군.’

잭은 실험실을 뒤로하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하늘은 흐리다. 잭은 물끄러미 하늘을 쳐다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더 떠올렸다. 그는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흔적을 찾으며 길을 떠났다. 자신이 앞으로 더 마주하게 될 진실을, 그리고 자신에게 일어난 잔인한 놀이를 똑같이 돌려주기 위해.

* 아래에는 해당 글의 캐해석이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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