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그러하다네.

호명



 … 어딘가의 마을이 불타 사라졌다는 소식이 들렸더랬다. 다만 그것이 당신이 머물던 마을인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알고도 부정했으리라. 그가 한동안 술식 연구에 목을 매었던 것도 결국에는 당신을 마주하기 힘들다는 무의식의 발현이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귀신, 요괴. 사이하고 사특한 것이라 불리는 그것들. 명은 그저 괴이한 어둠을 퇴치하려 했던 그날을 가만히 상기했다. 제 앞의 어둠에게서 읽히는 모든 것들은 고통이었다. 슬픔이었고, 절망이었다. 어둠으로 태어나 그림자로 살아가던 당신에게 그 모든 일련의 사건들은 감당하기 힘들 만큼 아픈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 사특한 것. 예가 어디라고 감히 흙발을 들이미느냐!”


 냅다 외쳤더랬다. 어떤 해도 끼치지 않았지만, 어둡고- 괴이하며 그 기운이 사특하기 그지없었기에. 제대로 된 형체도 갖추기 전의 어둑시니. 괴이할 정도로 어두운 그림자, 빛 한 점 들지 않는 동굴 속과 같은 칠흑. 그것이 명의- 영화에 대한 첫 만남이었다.


 명은 당연하게도 읽히는 당신의 과거, 그리고 현재를 읽어내었다. 어떤 해도 끼치지 않은, 그저 존재할 뿐이었던 당신을. 그리고 저와 같이 외로워하던 당신을. 자연스레 친우가 되었고, 언젠가 지키는 아이들을 서로 자랑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더랬다.


 … 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명은 당신을 바라보았다. 불타는 마을, 검은 연기. 낯선 인간들, … 날붙이. 읽혀지는 기억들 하나 하나가 모두 괴롭기 그지없었다. 목놓아 우는 어둑시니와 공포에 질린 인간들. 욕심과 욕망, 살의, 악의.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은 공포. 이후의 것들은 읽을 수 없었다. 차마 눈에 담을 수 없는 참상. 명은 제 오랜 자책이 다시금 고개를 들이미는 것을 느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업보이려니.


 당신이 이리 아파하는 것마저, 그 날. 차라리 당신을 가차없이 해치웠다면. 자신은 그저 외롭게 남았더라면. 아니, 애초부터 만나지 않았더라면.


 준비하던 술식은 퇴마의 의식이렸다. 제 손 위를 어지럽게 돌아다니던 술식을, 가만히 주먹을 쥐어 멸했다. 이 죄업은 결코 당신의 것이 아니었기에.


 [ 인간들에게 해를 입히지 않았는데, 퇴치하실 생각입니까. ]


 그저 존재하는 당신에게. 명은 가만히 웃어 보였다. 제가 다가가도 아마 별다른 반응은 없으리라 짐작했다.


 “글쎄. 내 언제고 이 술식을 자네에게 된통 먹여주리라- 그리 다짐하며 만들긴 했네만.”


 쓰게 웃는다.


 “그게 지금은 아닌 것 같군.”


 율선생을 데리고 올 것을, 실수했나 싶었다. 하지만 이제 와 후회한들 무엇할까. 명은 천천히 어둠으로 다가선다. 제 앞의 상처받은 어둠을 가볍게 감싸쥐었다. 쓸어내리고, 제 품에 안고자 하였다.


 “벗이여, 자네의 죄가 아닐세.”


 조용히 속삭인다. 당연한 말이지만, 조금도 와닿지 않을 말을 뱉어낸다.


 생은 사로, 명은 암으로. 하늘에서 땅으로. 상류에서 하류로. 세상이 돌아가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기에 어둑시니의 사랑은 그 공포스러운 몸뚱이보다 더욱 거대했다. 웅크린 어둠은 공포스러웠으나, 어둠은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할 뿐. 애시당초 공포스럽지 않았다. 혹자는 당신을 편안하다, 그리 평하지 않던가.


 “왜 그리 울고 있는가. … 기별이 없다 싶더라니.”


 그리고 명은 한숨을 쉬며 근처의 바위에 기대앉는다. 당신이 이야기를 듣건 말건. 천천히 입을 열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


 인간이란.


 그렇지 않은가. 자네가 그리 사랑했던 자들 또한 인간일진데, 어찌하여 인간들은 서로를 탐하고, 욕망하며, 결국에 살하는지. 그 그득한 욕심과 악의는 어찌하여 그들이 그리도 공포스러워하는- 요괴든 귀신이든.- 것들과 다르지 않은지. 아니, 그보다 더한지.


 인간이란.


 자네가 사랑한 인간들과, 자네를 절망케 한 인간들이. 크게 다를 바 없을 텐데 말이야. 물론 종으로서의 이야기라네. 성품, 성정, 어느 것 하나 자네 아이들이 훨 낫지. 아무렴. … 다만, 다만 말일세.


 인간이란.


 참으로 야속하지 않은가. 그 짧디 짧은 생에, 그토록 불타듯 살아감이. 생을 태워 빛을 내고, 종래엔 사를 맞는 것이. 그네들의 시간과 우리네 시간이란 너무도 달라서, 금새 떠나버리곤 하는 것이.


 늘상 있던 일이라네. 인간을 아끼고, 사랑하고. 그러다 너무나 빨리 떠나가 버리고.


 어떻게 말을 해 주어야 할까.


 -


 조금 잠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낮게 깔리는 목소리는 호랑이의 그것과 같이 땅을 울린다.


 -


 사랑 또한 그러하지.


 자네를 둘러싼 것들 말일세. 명계라고 들어 보았나. 염라국이라고 불러도 괜찮겠군. 뭇 생자들은 사자가 되어, 시왕의 판결을 받지. 그 혼의 생애 내내, 지은 죄를 벌하고, 쌓은 업을 청산하지. 자네 아이들은 곧 선계에라도 태어나지 않겠는가. 이리도 자네를 아껴 주었으니, 염라께서 그 업을 칭찬하지 않겠는가.


 자네 또한 그러하네.


 영화. 야속한 이름이라 생각했지. 그림자 꽃이라니. 초목으로 태어나 빛을 탐하는 것이 그 명운일진데, 그림자 속의 꽃이란. 하나 그만큼 자네와 어울리는 이름도 없으리라 생각핬다네. 아무리 어두운 그림자라 할 지라도, 그 가운데서 피워내는 한 송이 꽃과도 같아서.


 이보게 영화.


 언제나 이별은 슬프다네. 그것이 자네의 계획, 의도와는 다를 지라도. 그렇기에 이별이 아프다네.


 원망, 절망. 슬픔. 고통. 생을 이어감에 원하지 않아도 따라붙는 그것들을. 우리네는 오래도록 살아가지 않는가. 하물며 짧은 생을 사는 아이들조차, 삶에 희로애락이 있건만. 애도를 말리지는 않겠네. 다만-


 -


 명은 웃었다. 어딘가 슬픈 미소로. 당신의 어둠을 바라보며, 조금이나마 그 상처 나아지길.


 -


 다만. 너무 오래 슬퍼하면, 그 아이들이 구천을 떠돌지 않겠나. 늘상 자네를 걱정하던 아이들인데.


 -


 “... 미안하네. 내 잔소리가 길었어.”


 천천히 일어나 다시금 당신을 응시한다.


 “자네 친우가 왔는데, 인사도 하지 않을 셈인가?”


 명은 다시 웃으며 당신을 마주한다. 예의 쓰디 쓴 웃음과 함께. 저와 어울리는, 어두운 미소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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