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건드리지 않는 신은 재앙을 내리지 않는다

白色矮星 by 퍼피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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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후미 아마시로입니다. 신입 트레이너입니다. 오늘부로 심볼리 가의 아가씨 우마무스메와 담당 계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제 담당 우마무스메의 이름은 시리우스 심볼리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 저를 구해 줬던 사람이고 어쩌다 보니 트레센 학원에서 만났는데 어쩌다 보니 선발 레이스에서 저를 지목해 주어서 제가 담당 트레이너가 되었습니다. 어제요.

 

왜요?!

 

“왜?!”

 

꿈인가?!

 

아니, 꿈인가?!

에?! 믿기지 않아...... 뭐지? 아니 정말로 안 믿기기 때문에, 어제는 집에 돌아와서 토했다. 뭔가 잘 모르겠어서......

토하고 나서 정신을 차리고 트레이닝 메뉴를 계획했다.

두 시간 잤다.

별로 잔 것 같은 기분은 들지 않는다.

 

‘꿈이 아니야......’

 

손발의 감각을 되새긴다. 피부 위에 닿는 공기, 코와 가슴 안쪽을 통과하는 숨과, 입천장에 들러붙은 혓바닥의 감촉— 꿈속에서는, 이토록 섬세하고 생생한 것들은 느낄 수 없다. 아무리 간절해도 그렇다. 진짜라고 믿고 싶은, 둔하고 무딘 망상만이...... 뜻대로 돌아갈 뿐이다.

수도꼭지의 물줄기 아래 이마를 적시며, 날카로운 현실감을 느낀다.

 

세수를 하고 나와도 바닥과 책상 위에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트레이닝 자료는 사라지지 않는다. 밤새 ‘시리우스 심볼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트레이닝 교본과 참고서 따위, 지금까지 나름대로 연구하고 있던 방침들을 정리해 뒀던 노트들을 마구잡이로 끄집어내서, 책장도 탁자도 엉망진창, 몇 권이나 늘어놓은 책이 중간 페이지에 볼펜이나 포스트잇 따위가 끼워진 채로 반쯤 펼쳐져 있다.

 

현실감이 굉장했다.

언제 다 치우지.

 

—일단 오늘은 아니다, 네 시간 정도로 급하게 내려받고 정리한 데이터는 한참이나 모자라고, 책도 몇 권 가져오지 못했다. 그런데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니까, 나름대로 만든 메뉴도 엉성하기 그지없다. 담고 싶은 것이 너무 많으니까 깔끔하지도 못하고, 요점을 정리할 수 없었으니까 횡설수설. 정직, 타인에게 보여주기에는 부끄러운 것이다......

수건에 물기를 대충 문지르고 책상 앞에 앉아 노트를 확인한다. 분명 일전의 트레이너 분의 담당이 독특한 선행 주법을 사용했으니까, 참고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볼 수 있도록 점심 시간을 비워두자, 도서관의 A구역 뒤쪽에 가볍게 보고 지나갔던 ■■년도의 선행 주법 서적이 있었으니까 그쪽으로 가 볼 것, 시리우스 심볼리의 이전 기록과 이번 해의 선발 레이스 자료에서 출전인원을 확인할 것, 데뷔 후의 레이스 루틴은? 분명 클래식 3관이겠지만.

 

지나치게 이상적인 것들을 작성하고 있으니까, 현실감이 전혀 남지 않는다. 이룰 수 없을 듯한 목록들이 해야 할 일들에 넘쳐흐른다. 무거운 머리를 누르며 절전 상태로 열려 있는 노트북의 화면을 켠다.

 

세 번이나 끝까지 봤던, 멈춰 있는 동영상의 검은 화면을 다시 클릭한다.

 

[—오옷! 여기에서 시리우스 심볼리! 강해요, 강합니다! 완전히 빠져나갔다!]

“......하아.”

 

......레이스 영상의 카메라는 한 사람만을 담지 않아, 그것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애달프다.

엉키고 뒤집어지는 우마무스메들의 무리 사이에서 도드라지게 튀어나오는 그녀만을 응시한다. 단정하고 반듯한 정석적 선행, 흘러넘치는 듯한 파워가 눈에 띄는 스트라이드 주법의 달리기...... 강해, 아름답다. 육체는 만들어져 있고, 만들어지지 않은 부분까지도 이미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기틀이 잡혀 있다.

결과를 알고 있으면서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다시 보고 싶다. 오로지 앞만을 바라보는 그 눈동자, 온 열을 폭발시키듯이 뻗어나가는 다리가, 목표를 통과하는 순간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적정은 중거리지만, 마일 거리에서도 그다지 뒤처짐은 없다.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장거리도 여력적으로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정석적 선행 중거리라니, 역량이 부족한 나로서는, 요행을 부릴 구석이 없으니 오히려 어렵다고, 생각한다.

더 찾아봐야 해...... 관련된 것, 바닥까지 끌어모으지 않으면.

 

......배가 고프다. 뭔가 먹고 출근해야 한다.

시간이 야속해서 어쩔 수 없다, 촉박하고 절박하고 아무튼간에 엉망진창이다. 위장에 제대로 된 게 들어갈 것 같지도 않은데.

 

‘—역시, 진짜 같지가 않아......’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앗, 라인 아이디 받아뒀어야 했어...... 라고, 집에 도착해서 토한 다음 씻으면서 떠올렸기 때문에, 뭔가, 정말로 나는 바보일까, 하고 생각했다.

 

계약, 정말로, 된 건가? 나, 그 사람의, 담당, 인 건가?

정말로, 오늘부터......

 

약속한 장소에 도착해도 나타나지 않는다든지, 깜짝 카메라였습니다, 하고 계약 같은 거 거짓말이라고 한다든지...... 아니, 깜짝 카메라는 확실히 조금 가능성 높다. 왜냐면 위기에서 구해준 그 사람이 사실은 트레센 학원의 학생이었는데 나를 지목해서 담당 우마무스메가 되어 주었습니다, 같은 거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일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나는, 진심인가? 이런 거 깜짝 기획 하는 쪽이 더 말도 안 되는 일 아닌가? 뭐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일개 트레이너 한 명을 심볼리 가의 아가씨가 굳이 무슨 이상한 방송? 에 참가해서... 아니 근데, 솔직히 그런 취향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사실 자료 뒤지면서 중간중간 ‘심볼리 깜짝 카메라’ ‘심볼리 트레이너’ ‘심볼리 트레센’ ‘트레센 깜짝 카메라’ 같은 거 검색해 봤는데 딱히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고 나는 그냥 트레센 학원 홍보 영상과 학생회장 얼굴만 많이 본 사람이 되었다.

 

내가 뭘 할 수 있지.

할 수 있는 건 없다......

책을 몇 권이나 우겨넣어 평소보다 무거워진 가방밖에는, 다른 것도 없었다.

 

 

정말로 약속한 시간에 시리우스 심볼리는 나타나 주었다.

게다가 딱히 “생각해 봤지만, 역시 안 되겠어. 계약은 무르기로 하지.” 라든가 “가문의 어르신들이 너처럼 근본없는 트레이너는 담당으로 삼는 게 아니라던데.” 라든가 “지금까지 오늘부터 신! 개설된 트레센 학원 채널 깜짝 카메라였습니다~!” 라든가 뭐 그런 소리도 하지 않았다.

“왔군. 그럼 들어라.” 하고 고개를 까딱인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대단히 완벽하고 빈틈없는 트레이닝 계획으로......

 

“——이상이, 향후의 방침이다. 데뷔까지 지금의 계획으로 진행한다.”

 

부족한 내가 허겁지겁 계획해 온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정갈하고, 그 어조와 눈빛에서는 망설임 따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옳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한 얼굴.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그 선명한 눈동자가,

나는......

 

“—......굉장해......”

“......흐음?”

 

기쁘다......

자신의 강점이나 보완해야 할 부분을 전부 제대로 알고 있고, 그걸 뭔가 자료도 보지 않고 말할 정도로, 스스로의 내면에서 리스트업 하고 있다. 분명 계속 생각해왔을 테니까, 굉장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선발 레이스의 전부터 계속해서 계획하고 있었던 걸까?

이런 훌륭한 계획을, 그녀 자신의 입으로 직접 들을 수 있다. 왜, 왜냐면 내가......

내가......

 

시리우스의 트레이너니까.

 

희망을 품는다, 바보처럼, 잘 되어 버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기쁨이 극의에 달해. 어딘가 냉정하게 된다. 분명 이것은 머리의 무언가의 작용인 걸까? 뺨이 달아올라 있는 것을 느끼면서, 그 온도와 내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너무나도 기뻐서 분명 나쁜 일이 일어나야 한다고 느낀다.

 

움직이지 않으면 괜찮다.

움직이지 않으면 괜찮은데.

지금을 버리면 나쁜 일 따위 일어나지 않을 텐데, 그러면 목이 아플 일 따위도 없을 텐데, 하지만 내 손에 있다. 내 손에 있어서, 그래, 언제나 그런 동화를 떠올린다. 사탕을 훔치려고 유리병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사탕을 쥔 손이 빠지지 않게 되어 가게 주인에게 들키게 되어 버린 어린아이의 이야기.

욕심을 버리면 병 안에서 손을 뺄 수 있는데, 나는 그것을 전부 알고 있는데도, 이 행복감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손을 놓는 것을 잊어버린다.

기쁨을 견딜 수가 없어서, 나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훗.”

“힛잇엣, ... ... ......”

 

고개를 들자마자 눈이 마주쳤기 때문에 바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딸꾹질 같은 소리를 낸 입 위를 주춤주춤 손가락으로 가린다. 아, 뭐랄까, 완전히, 이상한 여자다...... 역시 또 나쁜 일이 일어나 버렸다, 또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해 버려서.

살금살금 눈치를 살피며 시리우스를 조금 올려다보았다. 목과 입 근처, 코와 눈 사이, 눈을 마주치지 않고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는 폭의 시야에서, 살짝씩 눈동자를 훔쳐 바라본다.

 

시리우스는 웃고 있었다.

 

“완전히 강아지로군......”

 

엣. 왜?

 

......솔직히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다는 것 정도는 알겠다.

깔보듯이 나를 내려다보는 눈동자도 윤이 나는 도톰한 입술도, 꽤 즐거운 듯한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가...... 강아지.”

 

좋아하나......

강아지......

뭔가 귀여워 해 주는 것 같은 호칭이라 기분이 이상하다.

귀여움받는 건 기쁘지만, 나는 귀엽지 않으니까......

못생겼고 초라하고, 별로 어리지도 않고 키가 작거나 손발이 앙증맞은 것도 아니고.

내 자신이 별로 납득할 수 없으니까, 기쁘긴 해도 솔직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기분이 있다.

정말로 귀여운 여자아이였다면 좋았을 텐데,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알고 있으니까...... 아니, 딱히 귀엽다는 의미로 강아지라고 말한 게 아닐 수도 있잖아. 또 자의식과잉 했다.

 

“그래서, 제대로 이해는 했나? 퍼피.”

“엣? 헷, 아니...... 그. 아, 아니, 드, 들었는데......”

 

허겁지겁 품에서 노트를 꺼내 편다. 분명히 들었지만, 자세히 다시 설명하라고 하면 할 수 없다. 트레이너라면 담당 우마무스메의 향후 방침 정도는 망설임 없이 설명할 수 있는 정도여야 하는 게 당연한데, 한 번 듣는 것으로 외울 정도의 머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 주장하는 것에 서툴어서 한참이나 곱씹어야만 더듬더듬 이어 말할 수 있는 내가 이 정도의 습득으로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 리 없다. 급하게 기억나는 부분부터를 갈겨 적다가, 머리가 새하얗게 되어 멈춘다...... ......

어떡하지......

 

멍하게 펜을 누르고 있는 나의 앞에서, 낮고 즐거운 듯한 웃음소리가 울렸다.

 

“크크...... 당황하고 있어. 그렇게 굴면 놀리고 싶어지잖아?”

“으? 응?!”

“파일로 보내줄 테니까 천천히 확인해 둬. 문제 없지? 메일 주소, 거기 적어서 줘.”

“응? 응? 응......”

 

응? 응...? 응......

여우에 홀린 듯한 기분으로 빈 페이지에 메일 주소를 적은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뻗은 손 위에 펼친 노트를 건넸다...... 개발새발 갈겨적은 글씨와 그려 둔 낙서 몇 개를 페이지 위에 그대로 방치한 채로.

 

건넨 직후 노트를 잡아끌었지만 시리우스가 더 빨랐고 나는 다소 죽고 싶었다. 순식간에 머리끝까지 열이 오른다.

글씨가 더러운 거야 그렇다 치고 페이지 위쪽에 그려진 반짝반짝한 낙서들은 남한테 보여줄 게 못 된다. 심지어 뒷페이지에는 허접하기 짝이 없는 순정만화 풍의 캐릭터 일러스트가 있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상기하고 말았다. 나는 시리우스가 페이지를 찢어가거나 낱장을 넘기기라도 할까 봐 필사적으로 노트의 모서리를 누르고 있었다......

 

“Sweetwhite1127...... 헤에, 아마이甘い 시로白인가.”

“......보, 본명이야...... 아마시로......”

 

아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사람은 원래 이름이 본명이다. 나는 실언을 그만 하고 싶었다.

 

“라, 라인 아이디도 그거인데...... 아, 거, 검색 기능을 안 켜 놔서......”

 

아니 실언을 그만 하고 싶다고.

뭔 소리를 하는 거지? 뭔 소리를 하고 싶은 거지? 뭘 하고 싶은 거냐고. 나는 없어지고 싶었고 시리우스는 “흐응, 그래.” 라고 하더니 핸드폰을 꺼내서 라인 앱을 열어서 큐알 코드를......

 

“아, 해, 핸드폰 문자로 보내 주...... 아, 아니, 잠시만......”

“번호도 줘, 그럼.”

“으, 응? 응, 0, 080......”

 

......

 

“자, 됐다.”

“......고, 고마워......”

 

뭐가 일어났는지 잘 모르겠고, 나는 노트를 돌려받았다.

핸드폰 연락처에 저장된 ‘시리우스 심볼리’ 라는 새 이름을 멍하니 쳐다보며 노트를 끌어안는다. 뭐가 뭔지 여전히 잘 모르겠고, 정신이 혼란한 나의 앞에 여유로이 선 시리우스는, 내 뺨을 톡톡 두드리고는 한 쪽 입꼬리를 씩 끌어올렸다.

 

“잘 따라오라고? 퍼피 쨩.”

“퍼, 퍼피 쨩......”

 

나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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