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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쫑 (재업로드)

종수가 만약 비를 싫어했다면?



1. 아마도 이 썰에선 종수도 상호도 생각하던 것과 많이 다를 수가 있어. 그러니 그게 싫다면 이 글을 읽지 않는 걸 추천할게.

2. 참고로 이 썰 내용도 이런 말투로 시작해서 끝이 나거든? 그것도 미리 알고는 있으라고.



따듯한 봄날처럼 두사람의 행복도 함께할 거라고 두사람은 믿고 있었지. 몇 년의 기다림 끝에 이루게 된 오랜 소원이었으니까. 잘 지냈다가도 어떨 땐 투덕거리고 하면서 승부욕에 사로잡혀 경쟁하면서도 그저 함께라는 기쁨이 있었으니까. 그러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기쁨에 대한 의문을 품고 서로가 원했던 게 이런 거였나? 싶었을 때쯤 그 의문을 의심으로 바뀌게 된 건 종수였지. 다투다 화해하고. 싸우다 서로 안아주고를 반복했으니 그날도 어쩌면 굴레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같았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생각보다 비중이 높았던 종수의 잘못으로 시작된 말싸움에 상호가 사과하고 넘어가려 했지만 상호 역시 연속된 상황에 지쳐버렸던 것일지도 몰라. 평소와 다른 말이 나온 건. 그런 반응에 종수는 어째서인지 더 화가나 전이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말을 했고 그 말을 들은 상호 역시 전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대답을 한 거야.




그 굴레가 끝이 난건 점점 더워지기 시작한 봄의 끝자락. 두사람은 서로에게 할 말만 하면서 며칠을 지냈고 결국 상호의 한마디와 함께 종수의 집에 있던 상호의 물건은 이삿짐센터 직원들로 인해 빠르게 빠져나가. 상호는 꽉 차 있다 어느 정도 비워진 방을 한번, 이어서 돌아 서 있는 종수를 한번 보고는 신발을 신으면서 방에 남아있는 것 중에 필요한게 있으면 쓰고 아님 버려요. 그 한 문장을 끝으로 인사도 하지 않고 그대로 제 가방만 챙기고 나갔어.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고 어쩌면 종수도 잘 지냈던 것 같아. 굴레 벗어난 해방감에 그동안 함께 있어서 하지 못한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지냈거든 .

앞으로 다가올 무언가에 전혀 대비하지 못하고 있었던 건 그 ‘어쩌면’ 때문은 아니었을까. 안 그래도 더운 날씨를 한층 더 덥게 만들기 위해 하늘이 준비한 것은 장마.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 종수는 비가 오는걸 좋아하지 않았어. 정확히는 싫어했지. 보는 것도 싫었고 맞는 건 더더욱 싫어했어. 눅눅해지는 것과 비가 오면 평소엔 아파도 넘겼던 곳이 찌를 듯이 아픈 것도 그렇고. 비가 오면 쓸데없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중 하나 였다고 생각해. 이번 장마는 조금 더 그렇지 않을까? 그전에야 상호가 함께였으니 괜찮았다 쳐도 지금은 아니니까. 오히려 그 생각을 떠올리니 더 싫어지는 것 같은 종수는 상호가 사용했던 방으로 들어갔어. 짐이 빠진 후로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던 그 방을. 종수는 스스로 들어간 거야. 내리는 빗소리가 듣기 싫어 두고 간 가구나 필요 없다 싶을 짐을 넣은 상자를 전부 뒤지기 시작했어. 입으로는 상호를 욕하면서 손은 급히 무언가를 찾고 있었어. 과연 그건 무엇일까?


종수는 상자 속에 있던 물건 중 왜 여기에 있는 건가 싶은 상호가 자주 사용하던 물건을 보고 나서야 행동을 멈췄어. 그 물건을 집어 들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몸을 일으켜 다시 밖으로 나와서는 가만히 밖을 보더라. 그러던 중에 제 뒤쪽에 있던 현관 쪽에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안으로 들어온 거야. 보통 그러면 누군가 싶어 돌아보잖아? 그런데 종수는 그러지 않았어. 분명 저 혼자 사는 집에 누가 들어온 건데도 그저 밖에 창문을 부딪치며 내리는 비를 보고 있었어. 얼마 안 있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종수는 손에 쥐고 있던 물건만 더 꽉 쥐더라.


비가 싫다면서 커튼을 사용해 가리고 우중충하고 눅눅한 게 싫다며 등도 에어컨도 켜놓고선 아픈 제 몸 마디를 만지는 종수를 떠올리던 상호는 물건 찾으러 왔다고 한마디만 뱉은 체 바로 방 안으로 들어갔어. 안 쓴다는 이유로 두고 갔지만 종수가 언제든지 버릴 수 있게 정리를 해놓고 갔었던 터라 혹여 다 버렸으면 어떡하지 하면서 들어왔는데 어째서인지 자기가 나갔을 때보다 더 방 상태가 엉망인 거야. 이런 짓을 한 사람은 종수밖에 없는데 종수라면 굳이 이렇게까진 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으로 짐을 대충 정리하면서 물건을 찾기 시작했어. 그 물건은 상호 자신이 자주 쓰던 건데 여기로 오기 전에 주문했지만, 배송 문제로 며칠 더 걸린다기에 어쩔 수 없이 여기로 찾아온 거였거든. 당장 필요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상호는 기분이 이상하더라고. 그런 기분을 안고 정리를 마쳤지만 아무리 봐도 찾는 게 없는 거야. 그러던 중에 갑자기 머릿속에서 종수가 손에 쥐고 있던 물건이 혹시 자신이 찾는 걸까 싶어 바로 밖으로 나와 종수에게로 갔어. 가까워질수록 손에 들고 있는 걸 보니 상호가 찾던 물건이 맞더라고. 상호가 종수를 불렀어. 대답하지 않더라? 불렀는데 쳐다도 안 보고. 다시 한번 종수를 부르면서 이번엔 어깨를 잡아 돌렸어. 아무리 좋지 않게 헤어졌다 해도 사람이 물으면 얼굴을 보면서라도, 아니 안 봐도 상관없으니 대답 정도는 해줘야지 않겠어?


그런데 제 앞에 있는 종수는 울고 있었던 거야. 저를 보지 않은 게 울어서였다고 생각하니 상호는 그동안 있었던 일과 그때의 상황을 2차로 떠올렸어. 헤어지게 된 것도 사과도 하지 않으면서 헤어지자는 말을 먼저 꺼낸 것도 종수였거든. 마지막 순간에도 지금처럼 쳐다도 안 보더니… 상호는 그 울음마저 괘씸해서 왜 우냐고 화를 냈어. 분명 마음 정리를 했는데 저도 모르게 마음 한편 남아있던 게 있었나 봐. 그런데 이어서 드는 생각과 감정은 내뱉는 말과 달라지는 거야. 자긴 분명 마음 정리를 다 하고 진짜 물건만 찾으러 온 건데 우는 종수를 보니 모든 게 자기 잘못 같은 거야. 지금 이대로 물건만 받고 나가면 안 될 것만 같았어. 상호는 그런 종수를 혼자 둘 수가 없었어. 속에서부터 울컥하더라. 결국 상호는 본인도 울고 있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제 물건을 쥐고 있는 종수의 손을 잡아 그대로 당겼어. 종수가 쉽게 끌려오더니 그대로 자기 품 안에 들어오더라. 그렇게. 그렇게… 두사람은 점점 어두워지는 방안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서 있었어. 무언가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두사람은 미동도 없더라.


…………


어느 정도 흘렀을까. 정적을 깨는 건 종수였어. 계속 말을 하지 않았던 탓인지 잠긴 목소리로 말했어. 다시 들어오라고. 상호가 생각해 볼게요. 라고 답했거든? 갑자기 상호의 옷이 강하게 당겨져 왔어. 그러더니 이번엔 물먹은 목소리가 이어졌어. 기상호 나랑 같이 있어 줘. 라고. 상호는 숨을 짧게 내뱉고 창문을 부딪치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장마인데 어떻게 짐을 옮기냐고 하더라.



속으로는 장마인데 짐 옮겨주는 이삿짐센터가 있으려나 하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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