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다알캐스구다] 너울을 벗고
* 알트리아 캐스터 X 후지마루 리츠카(女)를 상정한 CP 글이지만, 논컾으로 보셔도 상관없습니다.
* 날조와 추측 범벅인 글. 열람 시 주의해주세요.
* LB6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클리어 이전이신 분들은 뒤로가기를 추천합니다.
“나랑 데이트 갈래?”
마스터의 마이룸, 둘만 있던 공간에서 후지마루 리츠카가 내뱉은 말은 아르토리아 캐스터를 깜짝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침, 침착하자. 허둥지둥 들고 있던 컵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속으로 애써 스스로를 다독여봤자 소용은 없었는지 리츠카는 맑은 웃음을 터뜨리며 아르토리아를 놀리고 들었다.
“아하하, 왜 그렇게 놀라는거야! 입에 벌레 들어가도 모르겠어, 아르토리아.”
이익. 부끄러운 마음에 장갑으로 얼굴을 가리고 들며 아르토리아가 애써 되받아쳤다.
“안 들어가요! 그보다 갑작스럽게 데이트... 요?”
그리고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띄운 채로 리츠카가 상큼하게 대답했다.
“내 생일 선물로 약속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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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벌써 한 달 전의 이야기였다. 노움 칼데아의 복도에 홀로 서 깜깜한 방황해를 바라보며, 아르토리아 아발론은 흘러내리는 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그때의 데이트 약속은 순식간에 이뤄졌었다. 물론, 주도권자는 데이트라는 것조차도 잘 모를 그 애 대신 그런 평범한 일상에는 익숙했던 후지마루 리츠카였었다.
피크닉을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샌드위치랑 이것저것 들고, 돗자리랑- 피크닉 박스! 나 그거 로망이었어. 항상 영화에서만 봤었거든. 그러면 피크닉 박스에 샌드위치랑 카나페랑... 아르토리아는 먹고 싶은 거 없어? 후식? 맞아, 후식은 필수지! 포도도 챙기고 초콜릿도 챙기자. 아르토리아, 초코 좋아한다고 했잖아.
그 말을 하고 환히 웃으며 저를 바라보던 리츠카에게 그때의 아르토리아는 똑같이 환히 웃는 얼굴로 맞받아쳤었다. 맞아요, 정말 좋아해요. 그러면 초코도 챙겨요.... 라고 했었나. 기록을 되감던 아르토리아는 선히 그려지는 두 소녀들의 들뜬 감정에 살풋 웃음을 띄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초코보다는 그냥 단 것을 다 좋아했다고는 생각되지만, 그래도 그 애든버러의 감정은 강렬한 편이니 그 애도 초코를 제일 좋아할 것이다. 처음 웨일즈의 숲에서는 밤을 제일 먼저 찾아 먹기는 했지만.
이렇게 아르토리아 아발론이 마구잡이로 기록을 되짚으며 자신의 행동을 점검하는 이유도 다 하나뿐이었다. 후지마루 리츠카가 브리튼 섬으로 이동한지도 벌써 23시간이 지났기 때문이다.
다음 작전에 갔다가 돌아오면 꼭 같이 피크닉 가자! 약속이야, 알았지?
“이제 조금만 있으면.....”
피크닉, 정말 같이 가주면 좋을텐데.
나름 간절한 소망을 중얼거리며, 아발론은 복도 창문에 손을 가져갔다. 전해져오는 냉기만큼 오른손 너머의 풍경은 너무나 깜깜하기 그지없어서, 아발론은 은근한 막막함이 그녀를 채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뱃속이 부글부글 끓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지금 그녀의 머릿 속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물론 아발론이 현재의 후지마루 리츠카를 걱정하는 것은 아니였다. 서번트로서 마스터를 걱정하지 않느냐고 누군가가 질책할 수도 있지만, 지금 그녀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자체가 후지마루 리츠카의 생존을 뜻한다. 관련된 확인은 이미 끝마쳤다. 이 세계선의 리츠카는 브리튼 섬에서의 임무를 훌륭히 완수할 것이고, 아르토리아 “아발론”의 탄생 또한 지켜볼 것이다. 확정된 과거이자 미래다. 두터운 신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애초에 그녀는 자신을 구성한 기록 속 후지마루 리츠카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자신이 변신해 칼데아에서 지낸 것 자체가 너무나 선명한 그 기록 속 소녀들의 모습을 되찾아주고 싶었으니까 이뤄낸 것이다.
그러니 문제는 역설적이게도 아르토리아 아발론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있는, 현재 눈 앞에 없는 브리튼 섬에서의 후지마루 리츠카가 아니다. 복귀를 하고 나서의 그녀가 문제지. 기실 아발론은 기록 외의 후지마루 리츠카는 잘 모른다. 물론 노움 칼데아에서의 소환이 꽤 시일이 지났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리츠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여러 면을 알기는 했지만, 그건 전부 “그 애”를 만나기 전의 리츠카다. 짧디 짧은 봄 이후의 리츠카는 어떨까. 추측과 함께 난잡하게 여러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오고간다. 혼자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번뇌들이다.
따라서 이 모든 사유로 인해 마스터와 함께 피크닉을 가는 것을 아르토리아 아발론은 그 누구보다, 어쩌면 약속을 잡았던 한 달 전의 자신보다도 더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르토리아의 리츠카가 나를 멀리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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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마스터가 없는 칼데아에서 대체로 영체화 상태로 기록을 되짚으며 스스로를 점검하던 아르토리아 아발론이 복귀 소식을 조금 늦게 접할만큼, 빠르게.
아무래도 조금의 시간을 두고 찾아가는 게 좋을 것이다. 아발론은 홀로 결론을 내렸다. 처음 영기재림으로 캐스터가 아닌 아발론의 모습을 조금 드러냈을 때도 변한 그녀의 모습에 어색함을 느끼던 리츠카였다.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하기에 최대한 자제하며 열심히 먼저 다가섰었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과연 자신이 다가가도 될까. 아발론은 이런저런 고민을 이어갔다. 기록 이후의 그녀를 대하는 제 자신의 태도는 그대로겠지만.... 아니, 역시 무거워지겠지.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역시 리츠카를 기다리는 것이 옳은 선택일 것 같았다.
그러고서 다시 이주가 지났다. 그 사이의 마스터는 아주 바빴기에, 정 이해하지 못할 기간은 아니였다고 생각하며 아발론은 차를 홀짝였다. 윽, 써라. 순간 들어온 텁텁한 찻물에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는 제 앞의 이에게 핀잔을 주었다.
“오베론, 차 하나도 제대로 못 끓이면 어떡해요?”
“싫으면 나가지 그래?”
치사하게 굴기는. 베, 하고 혀를 한 번 내밀어주니 오베론의 표정이 거의 악귀처럼 변해갔다. 이 이상 놀리는 건 뒷맛이 안 좋을 것이다. 아발론은 얌전히 맛없는 차를 한 입에 다 털어놓고 자진해서 식기를 정리했다. 심성이 저 모양이니 차도 제대로 못 태우는 게 틀림없다는 생각을 얼핏 했다가 엄청난 눈총을 돌려받은 것은 소소한 해프닝이였다.
오베론이 소환된 것도 벌써 일주일 전의 일이다. 오베론뿐만이 아니라 모르간과 바반시, 바게스트와 하베트롯까지 소환되었다. 듣기로는 오늘내일 멜루진의 소환을 시도할 것이라고 했었나. 헤이안쿄에 다녀온 이후의 마스터도 그렇게 대거 소환을 시도했던 것을 기억하므로, 아발론은 특별히 놀라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은 그 수혜를 받는 이였으니까. 아무리 리츠카가 있다 하더라도 꽤 무료하던 칼데아 생활에서 우수수 쏟아지는 옛 존재들은 반길만한 인물들이였다. 그렇지만 우습게도 티타임을 가질만한 존재는 또 오베론밖에 없었기에, 아발론이 지금 부득불 그의 방에 앉아 있는 것이다. 무언가 대화를 나눠 시간을 빠르게 흘릴 존재가 필요했다. 다행히도 오베론은 아발론의 말은 어느정도 들어주는 편이였다.
그렇게 일주일 더 시간을 보냈다.
3주째. 아르토리아 아발론은 3주째 어떤 편성에도 속하지 않았다. 뜻하지 않게 주어진 완전한 자유에 아발론은 오히려 어색함까지 느꼈다. 자랑은 아니였지만 소환 후, 완전한 재림을 거치고 나서부터는 거의 매번 편성에 속하였으니까. 하지만 이것도 짚이는 이유가 있었다. 칼데아가 제 6 이문대를 통과했다는 것은, “아르토리아 캐스터”에 대한 기록이 업데이트 됐다는 뜻이다. 스킬의 진명도 개방됐겠고.
실제로 저런 부분까지 포함해 칼데아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자신의 영기에 대한 기록이 몇몇 군데 변해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대로 마스터에게 개방을 하기도 전에 전산실의 분석에 의거해서 진명개방이 된 기분은 조금 찝찝하기도 했지만, 연결된 패스의 마력이 온전한 후지마루 리츠카의 것이 아니니 일개 서번트에게 생긴 변화를 마스터보다 24시간 데이터베이스를 예민하게 관리하는 칼데아의 스태프들이 기민하게 알아차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그녀가 항변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였다.
하기사 제대로 된 마술사가 아닌 일반인의 한계는 이런 곳에서부터 그럭저럭 찾아오는 법이다. 그때의 아이는 이것까지 알진 못했겠지만, 처음 이 구조를 접했을 때 모든 것을 다 아는 아르토리아 아발론의 입장에서는 여러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이었다.
그런저런 이유로 오늘의 아르토리아 아발론은 칼데아의 서재에 와 있었다. 마스터는 이미 몇 시간 전에 자원 수집을 하러 소규모 레이시프트를 하러갔다고 들었으므로, 긴급상황이 없는 한 완벽한 자유의 몸일 터인 그녀가 책을 읽으러 오는 것은 할 수 있는 몇몇 선택지 중 가장 매력적인 것이었다. 방대한 서가를 둘러보며 무엇을 읽을지 고민하는 순간은 기실 아발론을 행복하게 만드는 몇 안 되는 귀한 순간이었다.
그 애가 책을 좋아했어서 그런거겠지. 잘 접해보지 못해도 호불호만큼은 분명했었다. 어려운 물리 이론에 관한 서가로부터는 멀리 떨어진, 천체에 관한 책들이 쌓여있는 곳으로 이동한 아발론은 신중히 책을 골랐다. 역시 <코스모스>가 좋을까? 아르토리아가 잦은 레이시프트 편성으로 은근 바빠서 미뤄두기만 한 책이였다. 낭만적인 책이라는 추천사 하나만을 믿고 보고싶다고 쟁여둔 것이기는 하지만 현세의 유명 소설에는 이유가 있는 법 아니겠는가. 그리 생각하며 서가에서 책을 뽑아들고, 대출을 하러 이동한 아발론은 순간 들린 쾅 소리에 깜짝 놀라 책을 바닥에 떨굴 뻔 했다. 도서관에서 대체 무슨 소란이 일어난 것인지 확인하러 소리가 난 문쪽 방향으로 고개를 튼 그녀는 예상 외의 존재에 다시금 얼어붙었다.
“아르토리아!”
후지마루 리츠카가 거기 서 있었다.
“.... 네에, 마스터.”
대답은 했지만 자신의 호명에 놀란 아르토리아는 이번 책은 사수하지 못했다. 책을 바닥에서 주울 생각은 하지도 못한채로, 아르토리아는 문에서부터 제가 서 있는 곳까지 뛰다 싶이 황급하게 걸어오는 후지마루 리츠카만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다홍빛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묶인 슈슈는 거친 움직임에 거의 풀려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눈에 띄는 것은 이리저리 뒹군 흔적이 남아있는 예장이였다.
그리고 마침내 아르토리아 앞에 도달한 후지마루 리츠카는 오른손을 내밀며 말했다.
“나랑 악수하자, 아르토리아.”
“악수... 요?”
“응. 손을 잡아줘.”
그리 말하며 배시시 웃는 마스터를 바라보며, 아르토리아 아발론은 또 한 번 이 순간의 기록이 제게 영원히 남을 것임을 직감했다. 아르토리아가 얼떨떨하게 내민 손을 덥썩 잡은 후지마루 리츠카는 맞잡은 손을 몇 번 흔들더니 도로 떼며, 다시 비장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그리고 나랑 피크닉 가는 건 어때?“
-
그렇게 여차저차해서 정신 차려보니 아르토리아는 레이시프트를 했다. 너무 축약된 감상이지만, 정말 정신을 차리니 어, 네? 네! 하는 대답이 오고갔고 어느새 단 둘이 어느 초원으로 레이시프트한 후였다. 그것도 한 쪽 옆구리에 피크닉용 돗자리를 껴안은 채로.
“우와~ 부탁은 했지만, 캣쨩 정말 이것저것 잘 챙겨줬다.”
여전히 벙쪄있는 아르토리아의 옆에서 레이시프트 전 황급히 부엌에 들려 받아온 캣 스페셜 피크닉박스를 열어보던 리츠카는 내심 하던 긴장도 풀고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피크닉하면 으레 떠올리는 갖가지 음식들은 물론이고, 아침에 따로 부탁했던 포도를 포함한 여러 과일과 달콤한 초콜릿들이 종류 별로 들어있었다. 이렇게 가득 든 피크닉 박스가 무겁지 않았던 건 역시 캐스터 서번트들 중 한 명이 기꺼이 마스터의 나들이를 위해 마술을 부려준 덕분이겠지. 음식도 분명 캣쨩이 주도는 했어도, 부엌에 있던 서번트들이 전부 손을 보태줬을 것이다. 이런 곳에서 소소하게 전해져오는 진심에 가슴에 무언가가 살짝 얹힌 느낌이 든 후지마루 리츠카는 돌아가면 꼭 감사 인사를 하러 부엌에 들려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제 옆에 서 있는 아르토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러고선 가만히 생각했다. 하지만 가슴에 무언가가 꽉 막혀있던 기분의 근원을 찾자면 역시 지금 제 눈 앞의 저 소녀가 아니겠는가.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하려던 후지마루 리츠카는 도로 입을 다물었다. 역시 일단 뭔가를 좀 먹고 다시 말을 가다듬고 난 후에 꺼내자. 고개를 휘휘 저어 지나치게 무거운 마음들은 대충 날려보낸 후에, 리츠카는 피크닉 박스를 내려두고 아르토리아의 옆구리에 껴온 돗자리를 쏙 빼와 둘둘 말려있던 것을 한 번에 펼쳤다. 순간 가벼워진 팔에 놀라 뒤를 돌아본 아르토리아는 길게 펼쳐진 돗자리를 들고 히히 웃고 있는 리츠카를 보고 김 빠지게 미소지었다. 그러고서 아르토리아는 땅에 끌리는 돗자리의 끝자락을 주워서 힘을 주었다. 두 사람이 양쪽에서 당기자 순식간에 팽팽하게 펼쳐짐 돗자리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리츠카와 아르토리아는 잠깐 시선을 교환한 후 누가 뭐라할 것 없이 돗자리로 뛰어들어 누웠다. 기껏 열심히 펼쳐두고 다시 구겨놨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터져나오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한 아르토리아를 눈을 데굴 굴려서 바라본 리츠카가 문득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아르토리아, 갑주는 안 불편해?”
“이 정도는 괜찮아요.”
“그래도... 벗어두는 건 어때? 저번에 한 번 드레스만 입고 있던 적도 있잖아.”
“그럼 그러도록 할까요? 잠시 눈을 감아주세요, 마스터.”
알았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은 리츠카를 보고, 살풋 웃은 아르토리아는 몸을 일으켜 세워 갑주를 분리해 돗자리 옆에 고이 놔두었다. 애초에 마법으로 유지하던 연결이라 중세의 여러 기사들과 다르게 갑주를 입고 벗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녀가 드레스 위에 갑주를 덧댄 것이지, 다른 이였으면 쉽게 엄두도 내지 못할 차림일 것이다. 뭐, 굳이 드레스를 고른 이유에는 사심이 듬뿍 담겨있지만... 그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도 있는 법이라 믿었다. 여전히 눈을 꼭 감고 있는 리츠카를 바라본 아발론은 제 마스터의 앞머릴 살살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갑주는 다 벗었어요, 리츠카.”
“정말? 그러면 이제 피크닉 박스 오픈하자!”
아르토리아의 말을 들은 리츠카는 벌떡 상반신을 일으켜 앉은 채로 아까 옆에 놔두었던 피크닉 박스를 끌어왔다. 그러고선 제법 들뜬 손길로 박스 안의 음식을 펼쳐두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까지 준비해왔을 줄은 생각하지 못하던 아르토리아라, 리츠카가 펼쳐놓는 음식들에 기뻐하면서도 내심 당황했다. 언제부터 계획하고 있었던거지? 그런 아르토리아의 속내를 읽기라도 한 마냥, 얼추 음식을 다 꺼내어서 피크닉 박스를 도로 치우며 리츠카가 입을 열었다.
“피크닉 자체는 일주일 전부터 마음먹고 있었는데, 이래저래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단둘이 있을 시간을 못 냈던 거 있지.”
“... 마스터, 혹시 요정안이라도 생기셨나요?”
“응?”
무슨 말을 하냐는 듯 꿈벅꿈벅 이쪽을 쳐다보는 리츠카의 시선을 슬금슬금 파하며, 아르토리아는 머쓱히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아니예요. 계속해주세요...
“하하, 아무튼 말이야. 그래서 좀 늦어졌어, 미안해.”
“사과하시지 않아도 돼요. 애초에 소소한 약속이었을 뿐인 걸요.”
“... 으응. 그럼 일단 먹을까?”
“네! 오늘 하루 바쁘게 움직이느라 배고팠죠, 리츠카? 일단 먹어요, 저희!”
일단 먹고 말해주세요. 순간적으로 튀어나올 뻔한 뒷말을 참치 카나페와 함께 목구멍 뒤로 넘겨버리면서, 아르토리아는 마음이 복잡해 보이는 주인에게 맑게 웃어보였다. 사실 무슨 말을 꺼내려하기에 저런 마음인지도 이미 봤으니 알아버린 아르토리아지만, 정말 괜찮았다. 그런 와중에 샌드위치를 기계적으로 씹고 있는 리츠카가 괜히 우스워져 무작정 피클 하나를 입에 넣어줬다. 피클의 신맛에 정신이 돌아온 건지, 찡그리며 뭐냐고 웃는 표정으로 돌아온 그녀를 보며 아르토리아는 마주 웃기만을 했다.
애초에 아르토리아에게는 그녀가 이리 자리를 마련해온 용기만으로도 귀히 여기고 싶은 마음이다. 내뱉는 말은 당연히 존재에 대한 거절이 아닐 걸 알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이유만은 아니였다. 물론 그 또한 아르토리아의 기분을 붕붕 뜨게 만든 요소기는 해도, 가장 큰 것은 지금 후지마루 리츠카가 아르토리아 아발론이라는 존재 또한 오롯이 봐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니 아르토리아, 그동안은 뭐하면서 시간을 보냈어?”
그 질문을 필두로, 두 소녀 사이로는 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둘 다 소소하게 여기던 일들만을 꺼냈는데도 제법 할 말이 많이 되었다. 리츠카는 꼭 긴 방학이 끝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이 들자, 후지마루 리츠카는 하려던 말을 꺼내기로 결심했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말을 꺼내야 할 순간이 넘어 가버릴 것 같았기에 그랬다. 이제 막 도서관에서 무슨 종류의 책을 읽었는지에 대한 얘기를 끝마친 아르토리아의 손을 조심히 붙잡고, 그 손을 바라보며 리츠카가 드디어 입을 뗐다.
“있잖아, 아르토리아.”
갑자기 붙잡힌 손에 언뜻 당황한 것처럼 보이던 아르토리아는 제 이름이 리츠카에게 흘러나오자 곧바로 얼굴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네, 나의 마스터.”
“브리튼에 다녀오고 나서 그동안 계속... 널 피해서 미안해.”
말을 덧붙이는 대신, 아르토리아는 살풋 미소를 지으며 리츠카의 손을 더 꽉 잡아주었다. 전해져오는 조심스러운 악력에 리츠카는 고개를 들어 지금 자기 앞에 있는 소녀의 맑은 녹색 눈을 바라보며 숨을 한 번 가다듬고 말을 이어갔다.
“난,... 나는 어쩌면 너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걸지도 몰라. 내가 알던 아이와, 내가 새롭게 알게 된 아이 사이에서 길을 잃었던 것이겠지.”
하지만 말이야, 아르토리아. 후지마루 리츠카가 더욱 힘차게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같이 한 순간들은 네 안에서도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거지?”
“.... 네, 당연하죠.”
“그러면 괜찮다고 생각해. 너와 그 아이는 다르지만, 함께 한 기억이 너에게도 소중히 남아 있는 이상 우리는 계속 친구잖아. 아니, 그 기억이 없더라도 우리가 또 함께 보낸 시간이 있다는 그 값진 사실만은 변하지 않잖아. 그렇지?”
그리 말하며 손가락을 얽어 깍지를 껴오는 리츠카의 단단한 손의 온기를 느끼며, 그때까지도 쭉 미소를 짓고 있던 아르토리아는 마주 깍지를 끼며 입을 열어 대답했다.
“네, 마스터. 리츠카, 언제까지나 리츠카는 저의 소중한 존재일거에요.”
“응, 아르토리아. 나에게도 그래.”
아르토리아의 대답을 들은 리츠카가 쑥스럽게 웃으며 조그마한 목소리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기다려줘서 고마워, 아르토리아. 속삭이는 것처럼 작게 더한 한마디를 들은 아르토리아는 다시 대답하는 대신, 마침 앞에 놓여있던 몽블랑과 그 위에 장식되어있던 밤 한 톨을 한 번에 숟가락으로 크게 떠서 리츠카 앞으로 가져갔다.
“리츠카, 그럼 이 몽블랑 좀 먹어보세요. 이 위의 밤이 정말 맛있더라고요!”
“... 응. 고마워, 잘 먹을게!”
입을 벌려 밤을 받아먹은 리츠카가 입 안에 가득 퍼지는 고소함과 달콤함에 놀라며 외쳤다.
“진짜 맛있다!”
그 말에 아르토리아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그쵸! 제가 괜히 맛있다고 한 게 아니라니까요?”
“그러네, 너무 맛있어.”
그렇게 사이좋게 남은 몽블랑을 마저 나눠 먹은 두 사람은 다시 처음처럼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었다.
넓은 초원에 땅거미가 내려앉아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다빈치쨩이 내일을 위해서 돌아오라고 호출할 때까지 계속,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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