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다알캐스구다] 어떤 불확신과 믿음
칼데아의 아르토리아 □□□
* 알트리아 캐스터 X 후지마루 리츠카(女)
* 날조와 추측 범벅인 글. 열람 시 주의해주세요.
해야 하는 일은 간단하다. 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하고 싶은 것.
오베론과 눈짓을 교환한 후지마루 리츠카는 눈앞의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렇기에 다른 누구도 아닌 제가 해야 하는 일을 생각하다가, 이내 마음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제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종을 울리러 가자, 아르토리아.”
후지마루 리츠카는 그 무엇보다 이 소녀가 후회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또한 한 번 지나치면 영원히 선택하지 못할 순간과 기회들이 아르토리아 캐스터의 발목을 붙잡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기에 꺼낼 수 있는 잔인한 말이었다.
하지만 내뱉는 말이 상처가 될까 두려워 등을 떠밀어줄 기회를 외면하기에 후지마루 리츠카는 이미 너무 많은 순간을 놓치고 후회했다. 적어도 이 아이는 저보다 조금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랐기에, 이때의 후지마루 리츠카는 이윽고 들려온 아르토리아 캐스터의 단단한 말들에 복잡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미소로 화답해줄 수 있었다.
*
전부 이미 일어나버린 언젠가의 일.
*
눈앞에서 재생되던 기억을 미동도 없이 바라보던 후지마루 리츠카는 모든 장면이 끝나자 이내 어두컴컴하게 변해버린 내면세계에서 반사적으로 눈을 깜박였다.
역시 꿈 안이겠지? 그렇다면 이제는 꿈의 주인을 찾아서 얼른 나가야 할 차례였다. 과거의 기록을 돌아보는 것은 썩 유쾌하지도, 비참하지도 않고 오히려 얼핏 그립기까지 한 기분이였지만 우선 나가야 했다. 그게 맞는 일이니까.
꿈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았으니 곤란한 감정은 없었다. 이름을 불러보면 나와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리츠카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꿈 주인의 이름을 불렀다.
“아르토리아, 거기 있어?”
암흑만이 가득한 공간에 후지마루 리츠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구슬이라도 굴러가는 것처럼 데굴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자신을 찾는 소리일 거라 짐작하며 소리가 크게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리츠카는 반사적으로 얼어붙고 말았다.
“리츠카.”
거기에 커다란 녹음을 품은 눈이 있었다. 눈동자 두 개가 후지마루 리츠카를 집요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캐스, 터.”
“네, 리츠카.”
속삭임 같은 대답에 막연한 공포와 불확신이 리츠카를 덮쳤다. 저것이 후지마루 리츠카가 알던 아르토리아 캐스터가 맞긴 할까. 형형하게 빛나는 녹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리츠카는 숨을 고르고, 다시 생각했다. 불확실하지만 아르토리아 캐스터는 아니다. 이건 막연한 믿음이다. 하지만 그 막연함으로부터 리츠카는 실마리를 얻었다.
“아르토리아, 아발론.”
지금 불러야 할 이름은 캐스터가 아니었다.
“네, 마스터.”
달라진 호칭과 함께 눈동자가 또렷해졌다. 존재의 다름은 이미 알고있었지만, 괜히 다시 확인받는 것에 미묘한 씁쓸함이 맴돌았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기에, 또한 기실 그런 진실들은 후지마루 리츠카에게는 이미 지나간 것들이었으므로 리츠카는 우선 모든 감정은 뒤로하기로 했다. 지금은 해야 할 것을 할 차례였다.
“이리로 와줘, 아발론.”
한 마디의 요청이 들리는 순간 거대하게 존재하던 눈동자가 황금색의 빛무리들로 흩어졌다. 곧 그 빛무리들은 뭉치고 뭉쳐서, 마침내는 인간의 형상을 띄며 리츠카에게로 다가왔다.
천천히 다가오던 빛무리는 리츠카에게 가까워질수록 점점 또렷해졌다. 코앞에 당도한 그것을 바라보던 리츠카가 언뜻 초록빛을 본 것 같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빛무리가 다시 흩어졌다. 완벽한 조형을 마친 그가 리츠카에게 말을 걸었다.
“주인, 제가 왔어요.”
익숙한 모습을 한 채로 아르토리아 아발론이 코앞에 있었다. 녹색 눈과 늘어뜨린 황금빛 머리카락과 얽혀있는 장식, 그리고 이마 정중앙의 무늬까지. 후지마루 리츠카가 알던 소녀와는 또 다른, 그리고 그렇기에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존재였다.
“응. 와줘서 고마워.”
그래서 후지마루 리츠카는 웃으며 대답할 수 있었다. 리츠카는 아발론을 믿고 있으니까. 설령 그 존재 자체에 제가 친밀히 여기던 그 소녀인지 한 때는 불확신하며 거리감을 느꼈던 적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 그녀는 그 모든 기록을 바탕으로 존재하는 제 친구이자 제 유일한 검을 믿고 있으니.
“이제 여기서는 나가자!”
아르토리아도 지금 이 생각을 알고 있을까? 그 여부는 불확실했지만, 리츠카는 적어도 제 마지막 말을 들은 아르토리아 아발론이 웃으며 손깍지를 껴오는 감각은 확실하게 느꼈다.
*
얼마만큼 변하더라도 결국 우리였던 때가 있었으니까 정말 괜찮아.
나의 소녀, 나의 아르토리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
문득 눈이 떠졌다. 시야가 환했다. 환하게 켜진 백열등이 리츠카를 반겨주었다. 실수로 불을 안 끄고 잤었던 것 같다. 고개를 돌려 전자시계를 확인하자 화면이 반짝거리며 새벽 네 시 경임을 알려주었다. 기상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똑똑.
조금 더 잠을 잘까 고민하던 와중에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굳이 나가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것 같기에 리츠카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외쳤다.
“들어와!”
그러자 개폐음과 함께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녹색 눈과 늘어뜨린 황금빛 머리카락, 그리고 이마 정중앙의 무늬. 칼데아의 누구라도 확연히 알아볼 아르토리아 아발론이 찾아왔다. 다만 특이한 점은 입고 있는 의복이 평소의 갑옷 섞인 옷이 아닌, 평범하고 귀여운 잠옷을 입고 있다는 점이였다. 얼마 전 리츠카가 아르토리아가 준 발렌타인 초코의 답례품으로 준 선물이기도 했다.
“마스터.”
“응. 아르토리아.”
“같이 자도, 될까요?”
당연하지! 아르토리아가 조심스럽게 내뱉은 말에 환하게 웃으며 대답한 리츠카는 서둘러 조금 옆으로 굴렀다. 그리고선 그렇게 만들어낸 침대의 빈자리를 탕탕 두드렸다. 불을 끄고, 침대 곁으로 다가와 머뭇거리며 누운 아르토리아 아발론을 바라보던 리츠카는 저를 마주 보고 있는 아발론의 한 손을 끌어와 깍지를 끼고 조용히 속삭였다.
“잘 자, 아르토리아.”
“네, 리츠카도 안녕히 주무세요.”
돌아온 대답에 리츠카는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어쩐지 정말 좋은 꿈을 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소중한 존재와 함께니까 당연히 좋은 꿈을 꾸겠지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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