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데부
비마+신준
알준(만) 없는 칼데아에 소환된 비마
“서번트, 랜서, 비마다. 판다바 다섯 왕자 중 하나이자 풍신의 아이로서, 그대의 힘이 되고자 찾아왔다……고는 하는데, 자, 우선 뭐라도 먹을까?”
비마! 비마다! 정말로 와줬어! 마슈, 나는 이제 죽어도 좋아! 진정하세요, 선배! 노움 칼데아에 새로이 소환된 서번트, 비마가 처음으로 마주한 것은 기쁨에 울부짖는 미스터ㅡ후지마루 리츠카와 그 옆에서 애써 마스터를 진정시키고 있는 그녀의 파트너, 마슈 키리에라이트의 모습이었다. 인류 최후의 마스터라기에 예상했던 바와는 좀 다르긴 하지만, 저만한 대영웅을 소환했으면 그럴 수도 있으려나. 비마는 당혹감을 뒤로 하고 은근한 즐거움에 소리 내어 웃었다. 이런 환대라니, 고마운걸, 마스터. 비마의 말에 한참을 마슈의 품에 안겨 있던 리츠카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반가워, 비마! 당신으로서는 기억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우리는 구면이야. 페이퍼 문이라는 곳에서 만났다고나 할까. 그래서 더더욱 반갑게 느껴지네.”
“으음, 그랬던가? 말마따나 내게는 기억이 남아있지 않아서 뭐라 말을 덧붙이기도 민망하구만.”
비마는 기억을 되새겨보았지만 역시 이번 영기에는 지난 성배전쟁의 기억이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자 리츠카가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아냐, 아냐! 충분히 그럴 수 있지. 그래도 그 인연으로 인해 당신을 다시금 만나게 되어서 기뻐. 이번에는 새로이 만나게 되었으니, 지금 당장을 소중히 여기고 싶어.”
조금 전 소환의 기쁨에 쓰러지기 직전이었던 마스터와 같은 인물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의연한 모습에 비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 이내 미소를 짓고는, 이런 사람이기에 수많은 영웅들이 믿고 따르는 것이겠지,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자, 그건 그렇고. 칼데아에 소환된 건 처음이니 이것저것 알려줘야겠지. 따라 와. 우선 동향 서번트들을 소개해줄게.”
“동향?”
“응. 인도 출신의 서번트들이 꽤 있거든. 우선 가장 먼저 소환되었던 대영웅 라마와ㅡ”
“라마! 설마 그 라마찬드라를 말하는 건가? 라마도 칼데아에 소환되어 있어?”
쩌렁쩌렁한 비마의 목소리에 두 소녀는 잠시 놀란 티를 내더니 마주보며 웃곤 비마를 복도 쪽으로 이끌었다. 복도를 지나다니는 몇 명의 서번트들이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안녕, 마스터. 옆은 새로 소환한 서번트인가? 응, 응. 리츠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주 인사했다. 비마는 여즉 아연한 티를 벗지 못하고는 그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며 다시금 물었다.
“정말인가? 그 라마가?”
“아아, 그립네, 이 반응. 응, 응. 바로 그 라마가 맞아. 이외에도 카마나 파르바티 같은 신격도 있어.”
“신들인가……. 대단하구만. 칼데아라는 곳은. 상상 이상이야.”
“그리고 당신과 같은 시대를 살아갔던 이들도 있는데…… 으음, 역시 이들은 나중에 소개해주는 편이 좋겠지.”
그러더니 리츠카와 마슈는 서로 눈치를 보며 소근대는 것이었다. 비마는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응? 왜? 누구길래? 크리슈나라도 있나? 라마가 있으면 그 녀석이 있어도 이상할 게 없으니. 아, 그러고 보니 내 형제들은? 동시대의 영웅이라면 아르주나가 없을 리가 없지! 분명 아르주나도 여기 칼데아에 소환되어 있겠지? 어서 그 애를 소개시켜줘!”
점차 흥분한 비마의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기적 같은 상봉을 앞두고 빛나는 두 눈을 리츠카와 마슈가 차마 무시하지 못하고 이를 어쩐다,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비마!”
복도 너머에서 마찬가지로 흥분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연 제 이름이 불린 비마가 고개를 들어 상대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얼굴의 표정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두료다나!”
“마, 마스터! 이게 무슨 짓이야! 이몸 님을 소환해두고 저 녀석을 소환하다니! 이건 불륜이나 다름없는 일이야! 그것보다, 소환하지 않는다고 했으면서! 이 거짓말쟁이!”
“아니, 소환하지 않는다고 한 적은 없으니까?!”
“지, 진정하십시오! 두 분 다! 여긴 칼데아입니다!”
예상치 못한 두 숙적의 만남에 두 소녀가 진땀을 흘렸다. 부, 분명 전승 상으로는 카르나 씨와 아르주나 씨만큼 앙숙이었죠. 말도 마. 지난 번에 보니까 그 둘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사이가 안 좋던데. 소근대는 사이에 멀리서 두 인영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불렀나? 나리!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도 듣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였다. 후지마루 리츠카는 곧 눈을 질끈 감았다.
“카르나, 아슈바타만…….”
“오, 오오! 내 맹우들이여! 그래! 이리 가까이 와라!”
“음, 비마인가. 언젠가는 소환되리라고 생각했다만.”
“네놈들…….”
뿌득,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비마의 얼굴에는 몹시 분노하기라도 한 듯 힘줄이 돋아 있었다. 아아, 이를 어쩌면 좋아. 소환 첫 날부터 노움 칼데아의 건물을 망가뜨리기라도 한다면 시온이 엄청 화낼 텐데. 잔뜩 화가 난 비마에, 당황이 앞서긴 했지만 마주 화난 두료다나, 언제나처럼 알 수 없는 표정의 카르나, 낭패라는 듯한 얼굴의 아슈바타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치는 얼굴에 마스터는 그저 울고 싶어질 따름이었다.
“비마……세나. 바유의 아들…….”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가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비마는 고개를 들었다. 시선을 둔 곳에 자리한 것은 마찬가지로 몹시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백발의 긴 머리칼에, 파랗게 물들인 눈, 시체마냥 생기 없는 낯빛은 분명 처음 보는 것일진대, 어째서 이렇게나 익숙하게 느껴지는가. 비마는 그 인영과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물었다.
“누구냐, 넌?”
그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심지어는 한참을 씩씩대고 있던 두료다나조차도 그 순간만큼은 말을 잇지 읺았다. 한순간 조용해진 복도에 저조한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려퍼졌다.
“아르주나…….”
“그게 말이지, 아르주나는 1차 인리수복 때 소환되었는데, 인리수복 직후 퇴거하고는 다시 소환되지 않고 있어. 따로 이유가 있는 걸까도 생각해봤지만 역시 잘 모르겠고. 그때는 정말 활약이 대단했는데…….”
리츠카가 조잘거렸지만 비마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멍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와 마찬가지로 옆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마슈를 흘낏 쳐다보고는 입을 다물자 한참을 가만히 생각하던 비마가 말했다.
“마스터.”
“응?”
“아르주나가 지금 이 칼데아에 없다면, 아까 그 녀석은 정체가 뭐냐? 그, 하얗고, 검고, 아르주나라고 하던.”
마슈가 무어라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지만, 곧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마스터. 속삭이는 소리에 리츠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어, 그러니까, 비마.
“그 애도 아르주나가 맞아. 다만 당신이 아는 아르주나가 아니라, 다른 세계의 아르주나일 뿐.”
“좀 더 설명해줘.”
“으음, 그래. 언젠가는 설명해야 할 일이겠지. 길어질 텐데 괜찮겠어?”
“상관없어. 형제의 일인걸.”
어쩐지 가라앉은 듯한 목소리에 리츠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먼저, 범인류사라는 게 무엇인지부터 간단히 짚고 넘어가는 게 좋겠지. 그렇게 서두를 뗀 리츠카의 이야기는 한참 동안이나 이어졌다. 범인류사, 이문대, 인리에 대한 개념부터 인도 이문대에 대한 이야기까지. 모든 것을 알려줄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아르주나가 어째서 그런 모습으로 변했는지, 어쩌다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담백하게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비마는 마스터의 말이 끝나고도 다시 한참을 말없이 생각하더니 깊은 한숨을 토해내듯 내뱉었다. 그런가.
“그럼 그 애는, 그 끔찍했던 전쟁의 모든 것을 홀로 짊어진 아르주나인 거로군.”
“그렇……다고……할 수 있겠지.”
리츠카가 확신 없는 투로 말을 받았다. 그 말은 분명 틀리지 않았지만, 그 참혹한 사실을 비마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짐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비마는 한껏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대답을 원했던 것은 아닌 양, 리츠카가 말을 받기도 전에 비마가 말을 이었다.
“그 애가 그렇게 될 동안 나는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지?”
“비마.”
“삼천 년의 세월 동안 홀로 세계를 만 번이나 돌릴 정도의 집념을, 고독을, 괴로움을,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어. 이문대의 아르주나가 그런 선택을 했다는 건, 내가 아는 범인류사의 아르주나라도 그리 될 가능성이 존재했다는 거겠지. 그럼에도 나는ㅡ”
“비마!”
리츠카가 외쳤다. 그제야 비마는 고개를 들고는 마스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리츠카는 그 순간 이 남자에게 이런 표정을 짓게 만드는 존재는 오로지 그의 가족들밖에 없으리라고 확신했다.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은 얼굴. 어쩌면 저 또한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가슴께가 괴롭게 조여드는 것만 같았다.
“이문대의 당신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아무도 몰라. 심지어는 얼터조차도 그 무렵의 일은 기억하지 못해. 어쩌면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은 평생 전장을 떠난 아르주나를 찾아다녔는지도 모르지. 그것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을 물을 수 없고, 그럴 자격도 없어. 그건 아무리 당신이라도 마찬가지야.”
비마는 말없이 마스터의 말을 들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해. 리츠카가 떨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고는 말을 이었다.
“나는……나는, 정말이지 걱정했어. 혹여나 당신이 얼터를 보고 당신의 동생이 아니라고나 하지 않을까 하고.”
“그럴 리가 없잖냐.”
비마가 리츠카의 말을 잘랐다. 조금 전까지 흔들리던 눈빛은 온데간데 없고, 단호한 눈길이 리츠카를 꿰뚫었다.
“녀석은, 어떻든 내 동생이야. 영웅으로서 이름을 날리기도 전에 숲에서 떠돌아다닐 때도 그랬고, 영웅이 되어서도 그랬고, 신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야.”
그러더니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 어떤 모습이 되든, 녀석은 내 동생이야. 그것만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 설령 몇 번이고 세상이 다시 태어나고, 녀석이 나를 잊는다고 해도 말이야. 그렇다면 형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할 터야. 그런데 이렇게 한참은 어린 마스터에게 걱정을 끼치는 꼴이라니.”
비마가 작게 웃고는 마스터의 머리칼을 간질였다. 윽, 절로 입에서 앓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비마의 얼굴을 조심스레 살피니 그는 쉬이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전히 그늘이 져 있었지만 혼란은 한결 가신 듯했다.
“정신 차리게 해줘서 고맙다. 마스터. 솔직히 아직도 정신이 없긴 한데, 이대로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겠지. 그래, 소환된 겸 해서, 이쪽의 동생도 만족할 수 있는 요리를 해주는 건 어떨까?”
“그거 좋은 생각이야. 얼터는 미각이 둔감하긴 하지만, 발라바 정도의 요리사라면 해낼 수 있겠지?”
“음, 이것 참 쉽지 않은 도전인걸. 좋았어. 특제 소스를 듬뿍 넣은 인도 요리 정식으로 신고식을 치르도록 하지. 자, 자. 걱정 말고 두 여성분은 나가봐도 좋아. 나도 곧 나갈테니, 주방에서 만나자고.”
“으응, 알겠어. 첫날부터 정신이 없었을 텐데 무리하진 말고.”
비마는 이내 환하게 웃으며 마스터와 마슈의 어깨를 두드렸다. 리츠카와 마슈는 미소를 지으며 비마의 개인실을 빠져나왔다. 괜찮을까요? 괜찮을 거야. 속삭이는 소녀들의 대화는 뺨을 간질이는 바람을 타고 흘러갔다.
“자! 발라바 특제 음식 대령이오!”
“으음, 과연. 이게 인도 본토의 요리인가. 역시 향신료의 본고장다운 훌륭한 맛이다.”
“하하하! 고마워. 댁의 요리도 어지간히 대단하던걸! 이게 21세기, 라는 거겠지!”
리츠카는 비마와 에미야의 대화를 들으며 열심히 요리를 퍼먹었다. 으음. 맛있어라. 이게 쉐프 토크라는 건가? 묘한 신경전이 느껴집니다, 선배. 이런 신경전이라면 나는 환영이야. 소녀들이 꺄르르 웃으며 요리를 만끽하는 사이 멀리서 서번트 무리가 주방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곧 주방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새로운 요리사 서번트가 들어왔다는 소문이 그새 퍼진 모양인지 주방에 자주 얼굴을 비치지 않는 서번트들마저 군데군데 보였다.
“으음! 이 맛! 바로 이 맛이다! 그리운 고향의 맛이 나는구나. 짐은 이런 요리를 기다려 왔다!”
청명한 소년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라마가 산더미처럼 음식을 쌓아두고는 하나하나 입에 넣어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만족스러워 보이는지 머리칼이 삐죽 선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오오! 당신이 대영웅 라마인가? 이런 소년의 모습일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동생들이 생각나는구만!”
“으음, 어린애 취급 하지 마라! 그러는 그쪽은 비마라고 했던가. 하누만의 형제라고 들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기쁘군.”
“나도 마찬가지다. 자, 자. 모처럼 준비했으니 양껏 먹어! 고향의 음식이다!”
“음! 음! 이 호방함, 마음에 드는군! 거절하지 않겠다.”
라마는 밝게 웃으며 다시금 음식을 해치우기 시작했다. 비마는 그 등을 두어번 두드리고는 목표로 해두었던 곳으로 직행했다.
“켁, 뭐야! 이몸 님이 식사하는 자리에 네가 있을 곳은 없어!”
“요리한 건 내 쪽이다만.”
“요리사가 어디 버릇 없게 왕족이 있는 자리에 얼굴을 디밀어! 그렇지, 카르나? 아슈바타만?”
“어, 어어.”
“음, 나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만. 그건 그렇고 아주 맛있군. 네게 이런 재능이 있는지 몰랐다.”
“딱히 네놈에게 칭찬받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도 난 너희한테 볼 일이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는 아슈바타만의 뒤에서 가만히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인영에게 말을 걸었다.
“아르주나, 맞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네는 비마의 모습에 세 명이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카르나를 제외한 두 명은 제법 거북해보이는 기색이었지만 누구 하나 그들의 안색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것은……과거의 이름일 뿐. 내게는……의미가, 없다…….”
“그런가. 그래도 너는 아르주나고, 내 동생이야.”
“……동생?”
신은 고개를 돌려 과거 제 종복을 바라보았다. 아슈바타만은 불편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그래. 너는 저 녀석의 동생이야. 네게 있어서는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이겠지만. 옆에서 카르나가 끼어들었다. 참고로 나도 네 형이다, 아르주나여. 너는 잠깐 닥쳐 봐, 카르나. 아슈바타만이 카르나의 입을 틀어막았다.
“비마……형?”
그 말에 비마가 잠시 말을 잊고는 눈앞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신의 얼굴에서는 여전히 어떠한 감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인간은 그 얼굴에서 제게 익숙한 어떤 것을 찾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형이다. 아르주나. 음식은 왜 먹지 않고.”
“마력은……충분. 미각은, 희미. 섭취에 의미는 없으니…….”
“의미가 없기는 뭘. 먹는다는 건 즐거운 일이야.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즐거워 보이지 않으냐? 자아, 너도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향신료와 핫소스를 잔뜩 뿌려주마.”
“앗! 이 자식! 이몸 님의 음식에 뭐 하는 짓이야! 젠장, 옷에 튀잖아!”
두료다나의 싫은 소리를 뒤로 하고 비마는 옆의 요리를 한 스푼 크게 떠서 제 동생의 입에 가져다 댔다. 신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작게 입을 벌리고 음식을 받아먹었다. 몇 번 입을 우물거리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비마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어떠냐?”
“……통각, 과……희미한, 짠맛. 시큼하고……단맛도 느껴진다.”
“그래, 재밌지?”
“하지만, 그것보다도.”
응? 신은 꿀꺽, 음식을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당신으로부터, 느껴지는 호의가, 무엇보다……기껍다. 일말의 적의도 없는, 순전한 호의. 신은……그것을, 선이라고 판단한다.”
그리곤 희미하게 미소짓는 얼굴에 비마는 순간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이어 신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고는 뒤돌아 주방을 빠져나갔다. 야, 아르주나! 어디 가! 이어 아슈바타만이 뒤돌아 떠나갔다. 아, 아슈바타만! 이몸 님을 두고 가는 게 어딨어! 카르나, 너는 여기 남아있어야 해! 음, 걱정 마라. 음식이 아주 맛있군. 아수라장이 된 주방에서 비마는 더 이상 뒷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주방의 문을 바라보다가, 이를 드러내며 소리 내어 웃는 것이었다.
“서번트, 아처. 아르주나라고 합니다. 마스터, 저를 마음껏 사용해……어, 어라, 형아? 이미 소환되어 계셨, 어엇, 잠깐만요! 그렇게 끌어안으시면, 숨이, 앗, 또 다른 나? 이게 어떻게 된, 와악, 쓰러져요! 쓰러진다구요!”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