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렛스테

네게 빼앗긴 것들

마녀 셀레스테 X 용사 스칼렛

보관함 by 디유
3
0
0

마녀.

마녀가 나타났다.

수군.

수군.

다들 조잘거리지.

마녀가 나타났어.

우릴 잡아갈 거야.

불길은 손짓을 닮아 땅을 기어오르지.

수군수군.

속닥속닥.

깊은 숲에서 초록빛 연기를 보았대.

밤이면 족제비 비명 소리가 들린다지?

불길한 징조가 날마다 가득해.

곧 세상이 멸망할 거야.

마녀가 나타났어.

아이들을 단속해.

어른들도 도망쳐.

가까이 가는 이는 모두 그림자에 잠겼대.

쉿.

마녀는 떠드는 어린애를 좋아하지 않는단다.

쉿.

목소리를 낮춰. 어서 도망가야지.


쉿. 마녀다.

숨을 멈춰. 다들 숨어.

여길 보지 못하게…….






네게 빼앗긴 것들

“그래서, 진짜 마녀예요?” 스칼렛은 창틀에 손을 짚고 장난스레 웃는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호기심 가득한 끈질긴 시선으로 백발의 여인을 쫓아다녔다. 다 허물어져 가는 낡은 오두막 안에는 초라한 책상이며 의자 한둘뿐이었다. 구석에 자리한 침대는 매트리스는커녕 나무로 된 형태마저 불안정해 보였다. 그런 주제에 커다란 솥은 언제나 끓고 있으니, 정말 마녀가 맞는지 반쯤은 장난삼아, 반쯤은 그 목소리로 주는 답을 듣고 싶어 줄기차게 묻고 있는 터였다.

“음, 네 생각은 어떤데.” 백발의 여인은 눈을 내리깔고 스칼렛이 알지 못하는 허브 두어 개를 잘라 솥에 넣는다. 푸르스름하게 맴도는 액체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난다. 마녀 같은 건 태어나 한 번도 믿은 적 없는 스칼렛마저 설득할 향이었다. 이러니 소문이 이상하게 나지 않을 리가 있나요, 제법 툴툴거리며 창문에 걸쳤던 상체를 잽싸게 바깥으로 빼내었다. 그런 그를 보며 여인은 가벼운 잔소리를 한다. “다 큰 어른이 이 정도 쓴 향도 못 맡으면 어떡하나….” 세상 전부 아는 것처럼 기운차게 오더니 어린 구석이 있네, 하고 농을 던진다. 그럼 스칼렛은 괜히 흙을 툭툭 차며 성을 부린다. 당신의 그 솥이 문제라니까요?

만담 같은 짓을 이어온 지도 거진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이 되어서야 여인은 이름을 알려주었다. 셀레스테. 나는 하늘의 것이요, 하늘을 담아내리다. 셀레스테……. 마녀치고는 너무 경건하잖아. 입안에서 이름을 몇 번 굴려보던 그는 마치 처음 자신을 소개하던 때처럼 웃으며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스칼렛. 언제나 불타오를 붉음. 

그는 용사였다. 스스로 거창하게 붙인 칭호는 아니었다. 시골 마을에서 세상 구경 차 출발한 여행 걸음이 이어지는 길에, 구원받은 몇몇 마을이 그에게 붙여준 칭호일 뿐이다. 어쨌든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는 용사 스칼렛이었다. 마음먹은 곳의 반도 채 안 갔을 즈음부터 소문이 들렸다. 마녀가 나타났대. 숲이 모두 검어졌다나. 곧 마을이 사라질 거야. 이미 사라진 것 아니었대? 죽은 사람이 많다잖아. 아니래, 그 전에 모두 도망쳤대. 어린아이들을 잡아갔다던데. 숲의 동물들을 전부 잡아다 솥에 넣는대. 무엇 하나 일치하는 말이 없어도 그 공포가 가리키는 곳은 하나였다. 어라, 그렇다면 한 번 가보지 않을 이유도 없겠군. 그 길로 운명이 삽시간에 번져간다.

“너도 마녀가 궁금해 왔니?” 

숲길에서 마주친 백발의 여인이 그를 향해 대뜸 물었을 때는 당황했다. 이곳에 사는 사람이 없다지 않았나?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나니 한숨을 쉬며 손짓하는 자를 멍하니 따라가고 있었다. 오두막 앞에 다다라서야 정신 차리고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양팔을 벌리고, 짜잔- 하면서 다감하나 동시에 지루한 낯을 띤 자를. “안녕, 날더러 마녀라 부르는 이들 중 하나야. 나를 본 소감이 어떠니?”

사실대로 말하면 당신은 전혀 마녀 같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수천을 압도한다기엔 초라하고 작은 이곳에서? 이름도 알려주지 않고 대답도 듣지 않은 마녀는 그대로 덩그러니 스칼렛을 남겨둔 채로, 휙. 사라진다.

매일 아침이면 문을 두드렸다. 귀찮아하다가도 곧잘 웃는 낯이 좋았다. 이름을 알려주어도 자꾸 얘, 너, 그도 아니면 호칭을 자꾸 생략해 부르던 목소리가 점차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일주일을 채울 때엔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그마저도 좋았다. 셀레스테는 이따금 정말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그가 도착할 시간을 맞히기도, 알려주지 않은 좋아하는 것들을 내밀기도 했다. 그러니 이제는 당신이 정말 마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빠르게, 아무런 전조 없이 당신이 내 삶에 겹쳐지게 만드는 것도 마법 때문일 것이다. 좋아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당신은 분명 이미 알고 있었다.

화살을 쏘아라. 검을 겨눠라. 감히 인간의 세계에 부정한 사술을 논하는 자에게, 이 땅에는 설 곳이 없음을 보여주어라. 피를 흘려라. 대지를 물들여라. 잡아라. 잡아라. 죽여라.

“토벌령이 내려졌대요.”

보기 드물게 낯을 굳히고 선 청년의 온 몸짓에서 답답함이 뚝뚝 떨어진다. 입을 꾹 다물고 쳐다보아도 셀레스테는 응답이 없다. 하던 대로 텃밭에 물을 주고, 잎을 몇 장 따고, 가루를 내고. 

“죽였어요?” 누군가를 해한 적 있나요, 누군가를 죽인 적 있나요. 어린애들을 데려간 적 있어요? 고개 저을 거면서, 왜 아무 말이 없어요? 숲 밖에는 쇠 부딪히는 소리가 성큼 다가서는데. 당신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소리 높여 이리로 향하는데.

작은 오두막으로 들어간다. 따라 들어가려 들면 문을 걸어 잠근다. 똑똑. 똑똑똑. 쿵쿵. 쿵. 쿵. 

“내일부터는 오지 마.” 떠날 거예요? 돌아오는 답이 없다. 

자정

달이 휘영청

보름이 내리쬐는 곳

지친 기색으로 잠든 스칼렛

품에는 어디선가 가져온 무기를 안고

지키고 싶은지 함께하고 싶은지 나조차도 모르는

일어나.

붉은 눈동자가 몇 번 껌뻑이더니 올려다본다. 나는 너를 내려다본다. 자세를 낮추어 네 위로 그림자를 드리운다. 달빛을 가리고서. 네 심장에 손을 얹고. 맥동하는 심장을 느끼며.

“심장을 줄래?” 나는 마녀라니까. 내게 네 심장마저 내어주겠니? 세차게 박동하는 붉은 마음. 너는 나로 인해 자유를 빼앗기고, 일상을 빼앗기고, 기어코 내게 심장마저 내어주게 될 거야. 내게 언약을 해, 숨이 다하도록, 다한 후에도. 네 심장을 온전히 주겠다고.

도망가자. 여행일지도 몰라. 너만 좋다면.

일행을 만들어볼게.

마녀가 사라졌어.

왕은 여전히 분노 속에 잠들지.

마법을 손에 넣지 못해서?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해서?

마녀는 어디로 갔지?

붉은 망토를 보았대.

붉은 용사님도 보았다던데.

또 무얼 가져간 걸까?

마주침 끝엔 모든 걸 내주게 된대.

거짓말이야.

마녀가 정말로 훔친 건

어느 소년의 심장뿐인걸.

마녀가 사라졌어.

여전히 세상은 위험하지.

마녀가 맞았을까?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