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라이 멀어지는

[화산귀환] 이제 좀 쉬나 했더니!

*트위터 썰 백업

정마대전이 끝나고 뒷 수습마저도 마무리 되어가던 어느날이었다. 다음 장문인과 장로를 각각 누구로 정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한참이었다. 장문인은 당연지사 백천으로 내정 되었고, 문제가 되는 것은 장로였다. 재경각주는 백상으로 정해진 것 같으나 무경각주가 문제였다. 무엇이 문제인고 하니…

무경각주라 함은 무예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설이 앉느냐 아니면 청명이 앉느냐로 의견이 나뉘었다. 백자배 중에서는 백천에 버금가는, 또는 백천보다 더 강할지도 모를 이설이나 화산제일검하면 청명이었다. 1대 제자에서 장로가 있는건 이상한 일은 아니긴 했다. 현종이 장문인으로 있을적, 운검, 운암 역시 장로였으니까. 근데 그때는 현자배가 현종, 현상, 현영 뿐이었을 뿐더러 백매관을 관리할 이가 필요했기에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은 백자배나 청자배나 많기에 예외 상황이기는 했다.

그렇다면 백자배가 반대하나? 그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이설 아니면 청명이일 것으로 예상하고 아쉽지만 입맛만 다시던 차였다. 청명이가 이설에 비해 부족하나? 그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물어봤으면 백자배들이 오히려 말은 바로 하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쳤을 것이다. 저 녀석이 망둥이 같은건 사실이지만 우리가 이렇게 세진게 저녀석 덕분인걸 알기에 그런 반응들인 것이다. 한가지 반응이라 할 것이 있다면 각자 예측했던 이들이 바로 결정 안 된것에 의아해 하다가도 진상을 알고 그럼 그렇지… 하고 넘어가고 있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 진상이라는 것 같이 알아보자.


“아니 내가 왜 장로가 되냐고!!!”

여기, 다른 이들은 다 인정하는데 저만 인정 못하고 부정하는 인간이 있다. 그렇다. 청명이 본인이 거부하면서 쫓고 쫓기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이것도 벌써 5일째였다. 것참 포기할 법도 하건만 지독히도 피해다니는 중이었다.

이제 천마도 물리쳤겠다 이제 저가 매화검존인거 밝히고-밝히지 못 했다.- 화산을 떠나서 유유자적 떠돌아 다니면서 도(?)나 닦으면서 놀고 먹으려 했는데 장로 자리를 준다는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전생에 그 힘든 일을-아니다. 진짜 힘든건 청문이 거의 다 했다.-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특히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또 장로이니 체통을 지켜야 한다면서 꾸며지고 행동거지 하나하나 딴지 걸어올 것이고, 도관 쓰느라 끌어올려 묶은 머리는 당겨 아플 터이니 여하간 이만 저만 싫은 것이 아니었다.

“어쩌겠느냐, 이 망둥이 녀석아. 이미 다른 사숙들은 다 동의 했다. 사매도.” 

어딜 갔다 온 것인지 청명이 올라간 나무 밑으로 다가온 백천이 은은히 웃으며 욕을 하는 눈으로 바라보다 이내 방긋 웃더니만 저 한마디만 하고 걸음을 빨리한다. 가만히 듣고 있던 청명은 1초 뒤 뒤늦게 백천이 놀렸다는걸 깨닫고는 고함을 내질렀다.

   “내가 동의 못 한다니까?! 사숙! 야!! 동룡이!!! 진동료오옹!!!!!!!!!”

청명의 고함소리를 노래 삼아 허허롭게 웃으며 백천은 승계 작업 준비로 쌓인 산더미 같은 일을 하고 계시는 장문인과 장로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장문인 처소로 향했다. 고로, 그날 청명이는 백천을 굴리지 못 했다는 말이었다.

다음날 배로 굴렀다는건 모두가 아는 비밀이었다고.


결국 청명이 장로가 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이미 새 장문인 임명식이라는 명목 하에 사람들을 불러모은데다 하나 둘 도착했기에 더는 미룰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임명식 당일, 혹시라도 술을 잔뜩 마신다거나 성질 건드린다고, 특히 종남의 제자들을 팰까봐사숙들과 사고, 사형제들, 사매가 한 걱정과 잔소리가 무안해지게도 아침까지만 해도 투덜대던 놈은 어디가고 꼴에 장로라고 잔뜩 위엄 넘치고 폼이란 폼은 다 잡은채였다. 임명식에 참여한 몇몇은 매화검존이 살아계셨다면 저런 모습이지 않으셨을까 할 정도로 평소 모습과 영 딴 판이어서 다른 화산 제자들 역시 수군 거렸다.

“저 놈 뭐 잘못 먹었답니까?”

“조용히 하거라, 걸아. 사고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냐.”

“그건 그렇지요. 헌데 죽을때가 되면 사람이 바뀐다지 않습니까.”

“그 입!!! 그 입 좀 제발!!!”

“꺄울!”

…잠시 소란이 있긴 했지만 여튼 임명식 역시 별 탈 없이 잘 넘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조걸의 걱정 담긴(?) 말과 달리 청명은 임명식이 끝나고 손님들이 하나 둘 돌아가자 다시 예의 그 청명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걸 장부라고 해 왔어?! 다시 해 와!!!”

무경각주가 된 청명의 고함과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리더니 줄행랑 치듯 도망 나온 제자가 제 소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쯧쯔… 내가 그렇게 몇번을 말했는데도 못 알아 들어서는 지금이 대체 몇번째야?”

아이고 장문사형, 내가 저런 아해들이랑 무얼 한단 말이오. 백천 동룡이 이 놈을 진짜. 제대로 안 가르치고 뭐 한거야?! 내가 기초부터 다 알려줄거였음 내가 배분 갈고 대사형 했지! 그리고 난 무경각 소속인데 왜 다른 소속 놈들 것까지 봐줘야 해! 무경각이 한가한 줄 아나, 할 것도 많구만!

‘양심.’

아니 이럴때만 나오지 말라고요! 물론 사숙이랑 사형들이 하고 있지만 예? 틀린 부분 고쳐주느라 얼마나 바쁜지 뻔히 알면서! 거봐, 맞는 말이니까 아무 말도 못 하지!

이게 몇일째 반복되고 있다고 한다… 아니, 백천이 장문인 자리를 내려놓는 그 순간에도 청명은 실수라도 할세라 옆에서 감시하며 잔소리를 해댔다. 청명이 아래 사람들, 그러니까 무경각주 뿐만 아니라 어쩌다 재경각과 백매관, 심지어 장문인(?)까지 화 나지만 청명 말대로 하면 또 밖에서 이렇게까지 완벽할 순 없다며 인정 받아 울며 겨자먹기로 버티다 보니 빠른속도로 짬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더이상 청명이 관여 하지 않아도 될 즈음, 장로가 된 이후 한번도 입에 대지 않던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가끔 책상에 뻗어 흠냐흠냐 하고 있는 청명을 발견하면 너나 할 것 없이 지나가는 이들이라면 한숨을 쉬며 제 장포를 덮어주고 떠났다. 가장 힘 쓴 사람임을 알기에, 미워 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녀석이었으니까.


시간이 지나고 또 흘러 이제 백천이 장문인 자리에서 물러날 거라는 소문이 암암리에 퍼졌다. 후계는 아직도 논쟁중이라 공식발표가 없었을 뿐, 알 사람은 다 알았다. 다음 장문인은 1대 제자의 대사형이 되는 것이 당연지사(當然之事)였으나 윤종은 조심스러운 반응이었다. 청명이란 거물 때문에. 윤종이 형식상 후계자지만 내부적으론 청명이가 되는 것도 괜찮지 않나 하는 의견도 있었다. 성격이 문제라서 그렇지. 크흠.

여튼 그 문제로 인하여 백천은 윤종과 청명을 불러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다. 청명이 당연히 어이 없어하며 튀어나오려던 욕을 삼키고 말을 고르던 그때, 윤종이 먼저 입을 뗐다.

“저도 그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다음 대 장문인은 아무래도… 청명이 낫지 않겠습니까?”

“뭔 🐕소리야 사형. 대사형이 장문인 되는거 전통인거 몰라???”

“나보다 너가 더 뛰어나질 않느…”

“그런걸로 장문인 될 거였으면 내가 배분 갈고서라도 동룡이 장문인 되는거 막았겠지! 안해! 죽어도 안 해!!! 장문인까지 시키면 진짜 다 죽을 줄 알아!”

   청명이 필사적으로 외친 덕에… 평화적(?)으로 다음 대 장문인이 정해졌다고 한다. 내심 내분이라도 일어나면 어쩌나 누구 편을 들어줘야 하나 고민하던 조걸을 비롯한 몇몇 청자배들도 안심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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