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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새온

대학 AU

복지사업 by 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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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술 몇 잔 마셨어, 진짜 얼마 안돼. 응? 아. 그냥... 좀 지쳐서. 알잖아, 얼마 전에 헤어진 거. 뭐, 군대로? 아직 휴학하기엔... 아, 그렇지. 같은 강의가 있긴 한데... 그래도. 일단은 고민 좀 해볼게. 어, 응... 응, 그래. 끊어. 

빨간 머리카락이 눈 앞으로 흐트러진다. 이제 굳이 꾸미고 다닐 이유가 없어져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 옆에 있던 사람의 부재에 한없이 녹아내릴 시기 아니던가, 한참 그 나름의 뜨거운 사랑을 했더란다. 대학 CC 같은 망상은 다들 한 번 정도는 해보는 것 아니던가? 자신 또한 그걸 해봤을 뿐이었다. 그저, 충실치 못한 자신에게 지친 사람이 떠나는 것은 매한가지였을 뿐. 뭐, 스물이 되었다고 뭐라도 바뀐 기분이 들던 것은 그저 기대감 뿐이었는지도 모르지. 긴장감 하나 없이 만난 사이에 무슨 깊은 연유가 있겠는가. 그냥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서, 그래서 그냥 놓았다. 

대낮부터 술을 몇 잔 기울이다가 멀쩡한 척, 카페에 얼굴을 들이밀고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만 떡하니 시킨 채 벌써 2시간 째 죽치는 중이었다. 카페 알바생이 흘끗흘끗 시선을 주는 것도 애써 무시하고, 멍하니 시간을 낭비하는 중. 여름의 팍팍한 날씨도 지겨웠고, 헤어진 지 고작 7시간 만에 대차게 뛰어다닐 힘도 없었다. 안그래도 아직 신입생인 제게는 이것 말고도 신경 쓸 고통이 많았단 말이다. 

이대로 그냥 군대로 튀어? 방금 전화로 줄곧 이야기를 설명해주던 친구가 했던 말을 무의식적으로 그린다. 아니, 말이 되는 소리를... 당장 휴학을 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적어도 학기가 좀 더 지나고 나서... 아무튼 고작 이딴 것 때문에 휴학 기회를 당겨 쓰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웠다. 뭐, 좀 괜찮은 방법 없을까. 지나가는 고등학생들의 교복만 멍하니 창 밖으로 보다가 결국 숨 한번 크게 토해내고 지긋지긋하게 쏟아지는 알바생의 눈총을 피해 카페 밖으로 도망쳤다. 

아까 카페를 스쳐 지나던 보라머리의 고등학생이 다시 발걸음을 되돌려 카페로 들어가고 있었다. 붙잡고 싼 음료 하나 시키고 오래 앉아있으면 눈치준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영업방해로 신고라도 받을까봐 그냥 흘끗쳐다보다 지나쳐야했다. 문 앞에서 계속 서 있는 것도 눈치보였고. 진짜 두 번 다시 안 와야지. 

*** 

사실 알고 있었다. 결국 자신이 선택할 길은 하루 빨리 군휴학을 하고 저 사람과 교양과목 하나도 안 겹치기를 기다리는 것. CC 따위는 절대 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아는 사람이 많이 없어 망정이지. 한참 속으로 쌍욕을 퍼부었다. 젠장, 내가 헤어지자고 한 것도 아닌데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내가 쓰레기인 쪽이 됐다. 도대체 전 여친은 어떻게 사람을 구슬렸길래. 아무튼 아직은 견딜 수 있었다. 그 전여친과 겹치는 강의는 많지 않았다. 

그리고 정확히 헤어지고 일주일 후, 나는 교수님께 찾아가서 휴학 사실을 전해야했다. 이런 젠장. 염병, 썩을, 망할. 욕을 짓씹으며 강의가 끝나자마자 대차게 자리를 박차고 친구를 하나 잡아 옆구리에 끼고 도망쳐나왔다. 

CC는 절대 하는 게 아니구나. CC를 할거면 그 사람과 결혼할 각오 정도는 해야겠다는 마음을 단단히 먹게 해주다니, 정말 인생의 교훈이 되었다. 절대, 두 번 다시 내 인생에 CC 같은 멍청한 짓을 할 일은 없을거다. 전여친은 내게 정말 커다란 엿을 먹였다. 덕분에 나는 빨간머리 걔, 쓰레기남, 개차반, 에타 빨간머리 등으로 불려야했고, 아무리 내가 주변에 무던하고, 무관심이 없다 해도 내 사정으로 인해 내 과제 점수, 내 팀플레이까지 지장이 미치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때문에 나는 그 길로 머리를 박박 깎고 군대에 들어갔다. 2년을 그렇게 속세에서 벗어나 산 기분을 느끼고 돌아온 대학교는 정말 편안했다. 어떻게든 군휴학의 기간을 잘 누렸다. 전여친은 취준에 바빠 2년 전 쓰레기 남친 같은 건 기억도 못하는 눈치였고, 그 사이에 대학교엔 빨간머리가 늘었다. 뭐, 그쪽 친구들이나 그 주변을 기억하고 있던 사람들은 다 기억하겠지만, 그 사이에 제 친구들이 좀 주변에 이야기라도 뿌렸는지 소문을 굳이 입 밖에 내는 사람도 없었고, 내 점수와 관련된 것들에 문제가 생기는 일도 없었다. 다행이다. 적어도 1년 정도만 더 버티면 전 여친은 영영 캠퍼스에서 볼 일이 없다! 그 사실이 적어도 나를 행복하게 했고, 실제로 교양과목 따위에서도 전여친과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1년이 흐르고, 내 인생이 평탄해지나 싶었는데. 

*** 

CC 같은 건 발도 안 들이민다며. 

어, 나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뭐가 문제냐?

아니, 뭐 나쁘지 않아서 그냥. 생각하는거지. 

야, 시끄러워. 평판 안 좋아지는 것도 한 번이지 그거 계속되면 너한테 자꾸

아, 알아서 할게. 끊어. 

신경질적으로 휴대폰 화면을 탁탁 두드렸다. 불과 반나절 전에 제 앞으로 얼굴을 드민 사람은 어딘가 낯익고, 작고, 귀엽고, 뭐 그런... 아무튼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좇게 만드는 사람이었는데, 정말 우연찮게도 같은 조별과제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꼬실 수도 없고. 군대도 안 다녀온 1학년 신입생이었다. 그 사이에 제 나이는 이십대의 중반에 들어섰고,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기에는 너무나 무던한 성격이었다. 그 이후로 CC는 아니었어도 옆 대학교, 같은 아르바이트생... 뭐 종종 짧게 누군가를 만나는 경우는 있었지만 끝은 썩 좋지는 않았다. 군대를 다녀왔어도 태생 성질은 죽일 수가 없나. 괜히 애꿎은 제 성격에 대해 불만만 늘어갔다. 

자료 조사, 다 끝나셨어요?

아, 네. 제가 맡은 부분은요. 

아... 저는 아직이라... 잠시만요. 

네네, 천천히 하세요. 저도 보충할 부분 있는지 좀 더 볼게요. 

머리카락이 에어컨 바람에 흩날리는 걸 보고 있자면, 제법 그 머리에 손을 뻗어 다정스럽게 어루만지고 괜한 손장난을 치고 싶어지는 법이다. 처음으로 조별과제 사람들의 부재를 약간 감사히 여겼다.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을 곁눈질로 흘끗댈 수 있는 것도 다 그 덕분이었다. 자료 조사 보충은 무슨, 옛날에 친구들이 했던 자료를 그대로 받아 대충 비슷한 내용을 휘갈겼을 뿐이다. 나중에 검토만 다시 해야지. 마우스만 대충 딸깍이며 웹툰 사이트를 넘나들면서도 시선을 자꾸만 앞의 사람을 향했다. 정확하게는 그 사람의 둥근 눈이나, 오똑한 코나, 발갛게 투명한 색을 띠는 입술이나, 맑은 피부나... 그리고 깊게 쳐다보다 시선을 음료로 돌리기를 한참을 반복했다. 다시 말하지만, 나쁜 거 아니니까. 슬슬 다시 연애 철이 돌아오는 거 아닐까. 최대한 무덤하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저... 이제 마무리 됐는데, 슬슬 오늘은 이만 할까요?

잡생각이 길었는지 시간이 빨랐다. 네, 그럴까요. 어색스럽게 고개만 끄덕였다. 다음에 또 카톡으로 시간 정해요. 느슨한 표정을 짓고 대충 고갯짓으로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시간 한 번 겁나게 빠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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