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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의 붉은 실 (1)

신분차 사랑을 하는 루카슈

Writing Note by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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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썰 링크↑↑↑

썸네일 출처:

가상의 세계관 속 일본의 한 마을.

대대로 운영하는 재봉소의 5대째 주인 슈 야미노. 당대 돌던 전염병으로 부모님을 잃고 젊은 나이에 가게를 물려받았지만 어려서부터 익혀온 장사 수완과 어떤 손님도 싹싹하게 대할 줄 아는 태도, 도시에서 제일가는 재봉소의 이름값에 더해 유능한 직원들의 조력으로 큰 문제 없이 가게를 이끌어가는 올해 스물셋의 청년.

야미노 재봉소는 대대로 성주의 가문에 옷을 납품해 왔고 그를 시작으로 마을의 권력자인 3대 가문의 특별한 날에도 맞춤복을 제작하는 등 마을 유지들과도 돈독한 관계를 맺으면서 일반 주민들에게도 싼값에 좋은 옷을 제공하는 등 마을의 경제 흐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옷가게. 특히 선대 여주인인 슈의 어머니는 섬세한 자수를 장기로 하여 많은 손님들이 찾았던 뛰어난 재봉사였고, 그 실력은 그녀의 수제자였으며 현재 야미노 재봉소의 수석 재봉사인 우키 비올레타에게 이어져 내려와 야미노 재봉소는 손님과 가격을 불문하고 아름다운 옷을 만들기로 정평이 난 가게로 마을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음.

그리고 슈가 야미노 재봉소의 주인 자리를 물려받은 지 반 년차에 야미노 재봉소에 아주 중요한 의뢰가 찾아드는데, 바로 3대 가문 중 하나이자 마을의 최고 지주인 카네시로 가문에서 후계자 책봉식을 하게 되어 가문의 일원 전원이 그날 입을 새 의상을 맞추고 싶다는 의뢰였음. 카네시로 가문은 야미노 재봉소의 단골 중 하나였고 이번 후계자 책봉식에서 후계자로 선정되는 카네시로 가문의 일원은 대대로 성주의 여식과 결혼해 권력을 이어 왔기 때문에 이번 책봉식 의상을 잘못 지으면 카네시로 가문은 물론 성주 가문에도 누를 끼치게 되어 밥줄이 끊어질 것이 분명했음.

때문에 이번 의뢰에는 주인이 직접 나서서 고객의 요구 사항을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이 필수였고 슈는 9할의 긴장과 1할의 설렘을 품은 채 카네시로 가문의 저택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한편 이번에 야미노 재봉소에서 짓게 될 의상의 주인이 될 남자, 카네시로 조직의 후계자로 선정되어 책봉식을 앞두고 있는 가주의 ‘외동아들’ 루카 카네시로는 세상 누구보다도 긴장하고 있었음. 열다섯 살의 나이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아 왔고 후계자가 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자랐으며 수많은 경쟁자를 쳐내면서 이 자리에 올랐으나 아직 완전히 ‘후계자’ 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보니 이번 책봉식을 무사히 마치는 게 루카의 가장 중요한 임무였음. 재봉소 주인을 만나 치수를 재는 건 그 가장 중요한 임무의 첫 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님.

아시겠습니까, 도련님? 저는 주인어른의 심부름을 가야 하니 자리에는 동석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번엔 도련님이 원하시는 대로, 단 카네시로 가문의 후계자의 위엄에 걸맞으면서도 지나치게 튀지는 않는 옷을 주문하세요. 이에 드는 비용 또한 계산하시면서요.

그렇게 말하며 온화하게 웃었던 최측근의 얼굴을 떠올리면 그 역시 부담이었음. 그냥 옷 한 벌 지을 뿐인데 뭐가 그리 제약이 많아, 싶으면서도 루카를 카네시로 가문의 후계자로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스스로도 그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사람에게 최대한 열심히 해보겠다는 말 외에 뭘 더 할 수 있단 말임? 책봉식 하기도 전에 내가 말라 죽으면 어떡하지. 생각하면서 루카는 재봉소에서 온다는 사람을 응접실에서 기다렸음.

이윽고 문이 열리고 천이 사락사락하는 소리와 함께 젊은 남자가 들어섰음. 진한 보랏빛 기모노에 섬세하게 수놓은 불꽃 모양 자수의 하오리를 걸치고 검은 머리를 곱게 틀어올려 묶은, 그러니까, 아주 아름다운 사내였음. 야미노 재봉소에서 왔습니다. 5대째 주인인 슈 야미노입니다. 오늘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도련님. 예의 바르게 절을 하고 고개를 들면서 생긋 웃는 재봉소 주인은, 그러니까, 정말로 예뻤음. 예쁜 사람이 예쁜 옷을 입고 와서 예쁜 목소리로 예쁘게 말을 해. 잠시 넋이 나간 루카는 슈가 들고 온 재봉 가방에서 치수를 재는 데 쓰는 도구를 꺼내는 걸 멍하니 바라보았음.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도련님. 생긋 웃는 목소리에야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는데 그만 발을 내딛을 뻔했음. 내가 왜 이러지?

반면 슈는 긴장한 티가 역력한 루카를 보고 오히려 긴장이 풀렸음. 저렇게 당당하고 멋있게 생긴 사람인데 뚝딱거리는 걸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기 때문임. 그렇다고 주요 고객 앞에서 폭소할 순 없으니 가게 돌아가면 우키랑 복스한테 얘기해주면서 실컷 웃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프로의 가면을 쓴 채 루카의 치수를 재러 다가갔음. 방에 들어왔을 때도 풍채 좋은 도련님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치수를 재보니 와, 가슴둘레 봐. 이 단단한 몸에 카미시모를 입히려면 균형을 어지간히 잘 맞추지 않으면 힘들 것 같았음. 우키가 유능해서 다행이다, 정말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치수를 종이에 일일이 기록하고 자리에 앉아서는 도련님은 키도 크시고 몸집도 좋으셔서 옷태가 잘 살 것 같다는 장사치 특유의 아부를 늘어놓았음. 물론 그 아부의 5할… 아니, 7할? 그 정도는 진심이었지만.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후후 우아하게 웃는 슈를 앞에 두고 루카도 뻘쭘하게 웃었음. 사실 치수를 재러 다가왔을 때 옷깃에서 살짝 풍긴 은은하고 좋은 향기에 벌써부터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임. 게다가 슈가 다른 가방에서 옷감 여러 개랑 자수를 꺼내기 시작하자 머리가 어지러워졌음. 그러니까 내가 지금 여기서 적당한 옷감과 적당한 자수를 골라서 맞춤 주문을 해야 한다 이거지? 나… 나 괜찮을까?! 아버지께서도 이걸 하셨다는 거지?! 루카가 혼란스러워하는 동안에도 슈는 하나하나 설명을 해었음. 이쪽 옷감은 약간 빳빳하기는 하지만 어떤 색을 입혀도 고급스러워 보일 테고, 이쪽 옷감은 광택이 뛰어나 감색이나 흑색을 사용하면 격식 있어 보이고, 이쪽은 옷감이 좀 두텁기는 한데 그만큼 각을 잡기 편해서 움직임에 제한이 없을 거라는 등의 설명이었음.

그런 설명을 들으며 루카는 딴 생각을 하고 있었음. 이 젊고 예쁜 사람이 그 유명한 재봉소의 주인이라면 이 사람한테 다 맡기면 되지 않을까? 알아서 잘 해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에 잠긴 루카의 모습이 슈에게는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으로 보였음. 역시 그 카네시로의 후계자가 될 사람 답다. 단순한 의복에도 이렇게 공을 들여 생각하는구나. 서로 초점이 어긋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상대에 대한 호감도가 올라가는 생각을 품으며 오랫동안 토론한 끝에 전체적으로 검은 색의 카미시모에 금실을 사용해서 수를 놓기로 타협을 봄. 그럼 추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공손하게 절하고 떠나는 슈를 보면서 루카는 긴장이 풀리는 한숨을 내쉬다가 문득 깨달았음. 아차, 가격 묻는 거 깜박했다.

그것이 루카에게는 좋은 구실이 되어주었음. 무슨 구실? 주문한 옷의 가격을 묻고 협상을 한다는 핑계로 야미노 재봉소에 찾아갈 구실. 치수를 재고 돌아온 다음날 바로 가게에 찾아와서 그날 못한 이야기가 있어서 그러는데 잠시 대화할 수 있겠냐며 머쓱하게 웃는 루카를 보고 슈도 나름 당황했음. 보통 그런 건 하인을 시켜서 물어봐도 되지 않나……. 그래도 그 날은 중요한 날이니 신경을 쓰는 것이겠거니 했지만 그 뒤로도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 간격으로 가게에 찾아와서는 옷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고 싶다고 말하는 루카의 모습은 결코 일반적이지 않았음.

슈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루카는 자기 스스로도 헷갈리기 시작함. 내가 옷을 보러 오는 걸까, 아니면 주인을 보러 오는 걸까? 매번 찾아갈 때마다 웃으면서 맞이해 주는 슈는 처음 봤을 때처럼 여전히 예뻤고 그 모습을 보면 마음이 막 따뜻해지고 기분이 좋아졌고, 두 번째 방문에서 슈가 재봉을 직접 하지는 않는다는 말에 내심 실망하기도 하고, 수석 재봉사가 자수를 뭘로 할지 고민중이라는 이야기에 견본을 보고 고르는 과정은 은근히 재미있었음. 난 대체 뭐 하고 있는 걸까 생각하면서도 일이 있어 밖에 나올 때면 꼭 야미노 재봉소를 찾게 됨. 그 즈음에는 옷과는 관계없는 이야기도 슈와 나누게 되었음. 오늘은 무슨 일로 외출했는지 슈가 물으면 어딜 다녀왔는지 말해주는 등의 정말 사소한 일상 공유였지만, 루카에게는 그 사소한 분위기가 무엇보다도 편안했음. 스무 살이 다가오면서 카네시로 가문의 후계자로 거의 확실시될 때까지의 몇 년 동안 루카와 이런 사소한 대화를 나눠 주는 상대는 없어졌기 때문임. 게다가 슈는 넉살이 좋은 건지 사교성이 뛰어난 건지 아니면 진심으로 루카의 이야기를 재미있어 하는 건지, 루카가 외출해서 있었던 일을 과장되게 설명하면 꼭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들려주었음. 처음 루카를 찾아왔을 때의 그 예의 바른 미소보다 훨씬 크고 밝게 웃는 모습이 참 예뻐서 꿈에서도 가끔씩 볼 정도였던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음.

루카가 이렇게 멋모르고 슈에 대한 호감도를 조금씩 올려갈 동안 슈는 어땠냐 하면, 일단 이 젊은 도련님이랑 대화하는 건 재미있었음. 뭐든 크고 과장되게 말하는데 가게 운영에 바빠 밖에 거의 못 나가는 슈에게는 마치 일인극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해주었고 그러면서도 결코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은 하지 않는 루카의 적정선이 슈에게도 참 편안하기는 했지만, 후계 책봉식을 앞두고 있어 안 그래도 바쁠 도련님이 왜 가게에 와서 몇 시진씩 수다를 떨고 가는지는 의문이었음. 게다가 얼마 전에는 집안 어르신 선물로 드릴 자기를 보러 갔다가 슈 생각이 나서 사왔다며 옥으로 만든 문진을 하나 주고 갔는데, 왜 그 때 얼굴이 유독 붉게 물들어 있었던 건지. 그날 가게 문을 닫고 함께 사는 직원 둘에게 문진을 보여주며 카네시로의 도련님이 이런 걸 줬는데 무슨 뜻일 거 같아? 라고 물었을 때 그들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음.

“잘 됐지, 뭐. 그 카네시로의 도련님이 네가 어지간히 마음에 드나 본. 아니, 뭐 며칠에 한 번씩 가게에 들락날락할 때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어쨌든 마을 대지주 가문의 차기 가주의 눈에 들었으니 이 가게도 탄탄대로를 걸을 거 아냐? 네가 싫지 않으면 잘 사귀어 보라고.”

그렇게 말한 이는 가게의 경리를 맡고 있는 복스 아쿠마였고,

“무슨 소리. 받아낼 것만 받아내고 철저하게 거리를 둬. 그런 도련님 눈에 들어서 팔자 고칠 생각은 우리들 고용인이나 하는 거지. 그마저도 깊이 빠져들면 손해야. 단물 다 빠지면 버려질 게 뻔한걸. 그래도 우리는 잃을 거라도 없지, 넌 아니잖아. 하루가 머다하고 손님이 오가는 가게에서 이상한 소문이라도 돌면 어떡하게? 넌 이 가게의 주인이라구, 슈.”

그렇게 말한 이는 수석 재봉사인 우키 비올레타였음.

그날 밤 문진을 손 위에 올려놓고 쥐었다 폈다 하면서 슈는 복잡한 밤을 보냈음. 복스의 말도 우키의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음. 일단 슈 야미노는 루카 카네시로가 이렇게 찾아오는 게 결코 싫지 않았고, 같이 있으면 즐거웠고, 루카가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한다면 혹여나 가게 운영이 어려워졌을 때 대지주 가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음. 하지만 그게 정말 한순간의 감정이고 또 책봉식 이후 카네시로 가문의 후계자로서 지금보다 더 바빠질 루카와 앞으로도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나? 하면 그건 아닌 것 같았음. 야미노 재봉소의 5대째 주인은 카네시로 가문의 도련님과 친하게 지내는가 싶더니 어느새 소원해졌네. 뭔가 있었던 게 아닌가? 가엾게도 젊은 도련님의 불장난에 놀아났구만? 그런 얘기가 돌 게 뻔했음. 선대 주인이었던 슈의 부모님, 정확히는 아름다운 자수를 놓을 줄 알아 지체 높은 손님들에게 자주 주문을 받았던 슈의 어머니는 남편이 버젓이 있음에도 한동안 마을 아낙네들의 소문에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했음. 젊은 나이에 아내도 없고 고운 외모로 마을에 널리 알려진 슈 야미노 역시 그 전철을 밟을 가능성은 높았음.

역시 에둘러서 거절해야 하나. 하지만 루카는 매번 ‘손님’ 의 입장을 내세워 가게에 드나들었고 방문할 때마다 꼭 사소한 물건들을 하나씩 사 갔음. 옷에 달고 다니는 주머니부터 시작해 배다른 동생에게 준다고 게다를 사간 적도, 어머니에게 드리겠다며 우키가 수놓은 것 중 가장 아름다운 무늬의 손수건을 사간 적도 있었고, 하다못해 가게에 오는 어린아이들에게 파는 천 인형을 사가기도 했음. 게다가 루카는 이 근방에서 성주님을 제외하면 누구 하나 거스를 자 없다는 그 카네시로 가문의 후계자가 될 사람임. 자주 찾아오시면 부담스러우니 더는 가게에 오지 말아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음.

그렇게 슈가 끙끙 앓기를 이틀째, 또다시 루카가 가게에 찾아왔음. 이번에는 친척 여성을 한 명 데려와서는 기모노를 맞춰 주려 한단 구실을 대더니, 그래놓고 또 슈를 자기 앞에 앉혀 놨음. 하는 수 없이 우키에게 접객을 맡기고 슈가 어색하게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음.

“슈, 혹시 쉬는 날이 언제야?”

“가게는 매일 열어 둡니다만…….”

“뭐? 그럼 안 쉬어?! 피곤하지 않아?”

“후후, 다른 직원들도 쉬지 않고 일하는걸요. 주인인 제가 쉴 수는 없지요.”

“끄응……. 그럼 몇 시간만이라도 좋아. 하루만 시간 내줄 수 있어?”

“무슨 일이신지…….”

조심스레 묻는 슈에게 루카는 카네시로 가문이 오랫동안 이용해왔던 화과자 가게가 새로 단장한다고 한다, 인사차 한 번 들러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아직 정식 후계자가 아니라 하인들을 데리고 방문하기엔 시선이 신경 쓰인다, 그래서 평범한 손님으로 갈 예정인데 혼자 가기는 민망하니까 누가 같이 가 줬으면 좋겠다, 라며 자기 딴에는 논리정연하지만 남이 듣기에는 어설픈 구실을 늘어놓았음. 누가 봐도 속셈은 그게 아닌 것 같은데. 그러나 슈가 단칼에 거절하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었음. 갑자기 시간이 있느냐고 물어보기에 그래, 지금이 딱 잘라 거절할 때다, 라고 마음먹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마지막에 와서 꼬리 내린 강아지처럼 우물쭈물대며 거기 화과자 진짜 맛있는데… 슈도 한 번쯤 먹어보면 좋겠는데에……. 이러고 있으면 민망해서 어떻게 거절하란 말인가.

그렇게 망설이고 있자니 또 다른 자아가 고개를 들었음. 한 번쯤은 같이 나가 줘도 되지 않나?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화과자집이잖아. 그냥 맛있는 걸 먹으러 가는 것뿐이잖아. 평범한 손님으로 방문할 예정이라니 굳이 격식 차리지 않아도 될 거고. 게다가 말만 둘이 가는 거지 설마 그 카네시로의 차기 후계자가 경호원 하나 안 데려올까. 단둘이 외출하는 게 아니면 뒷말이 돌 만한 소지는 없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예, 좋아요.”

슈는 그렇게 대답하고 있었음.

말을 뱉어버리고 뒤늦게야 내가 무슨 소릴 한 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루카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음. 기모노에 다는 보석 장식보다도 빛나는 눈이었음. 정말이지? 같이 간다고 약속한 거야? 이렇게까지 좋아하면 이제 돌이킬 수 없음. 슈는 결국 고개를 재차 끄덕였고 루카는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 표정을 지으며 마침 우키와 상담을 마치고 나온 친척 여성과 함께 돌아갔음. 그날 이 일화를 이야기했을 때 복스는 배를 잡고 웃었고 그 옆에서 우키는 내가. 너. 조심하라고. 했지. 하면서 기꺼이 가게 주인의 등짝을 후려 갈겼으며 등의 아픔을 울상으로 견디면서도 슈는 문득,

기대된다,

고 생각하고 말았음.

루카와 함께 외출하기로 약속한 날 슈는 미리 약속장소에 나와 루카를 기다리고 있었음.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됐지, 하고 한숨 쉬는 것과 달리 슈의 오늘 복장은 카네시로 가문을 처음 찾았을 때 최대한 격식을 갖춰 입었던 것만큼 정갈하게 아름다웠음. 외출 약속을 잡았다고 보고하자마자 등짝을 후려갈겼던 우키가 그래도 이번엔 약속을 했다니 어쩔 수 없지만 다음부터는 제대로 거절하기야! 그것과는 별개로 명색이 재봉소 주인인데 후줄근하게 나가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라며 아침부터 옷 예쁜거 골라주고 머리도 올려주고 비녀도 가장 좋은 걸로 꽂아줬기 때문임. 분도 발라주려는 걸 아니 그것까진 진짜 됐어! 라며 뿌리치고 나온 기억을 상기하며 슈가 통상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쉬었을 때 멀리서 슈!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옴.

슈는 저 멀리서 굉장히 익숙한,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신이 모든 치수를 다 알고 있는 몸집을 지닌 남자가 평소랑 전혀 다른 복장으로 나타난 걸 보고 놀라고 말았음. 안녕, 슈! 와줬구나! 하고 웃는 모습이나 새삼스럽지만 정말 잘생겼다 싶은 얼굴은 분명 루카인데 복장은 평소랑 달리 격식없이 정말 편하게 입은 차림임. 심지어 혼자 왔음. 경호원은? 수행원은? 정말로 단둘이 가는 거였어?! 당황함에 슈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사이 루카가 웃는 얼굴로 슈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고 갑자기 머리 위로 그늘이 지면서,

“오늘 꽂은 비녀, 처음 보는 거네. 예쁘다.”

하고 떨어져 나가서 머리위로 물음표가 늘어나는 슈. 며칠 전 내가 본 꼬리내린 강아지는 어디로 사라졌담?

반대로 루카는 즐거움이 머리를 잠식한 상황임. 수행원이나 경호원을 한 명도 데리고 오지 않은 것에서부터 알 수 있지만 루카는 오랜만에 쉬는 날이 생겨서 슈와 멀리까지 나가 맛있는 걸 먹어야지! 란 생각으로 복장을 가볍게 하고 나온 건데 뜻밖에 슈가 평소보다 예쁘게, 아니, 평소에도 예쁘지만, 어쨌든 무지 예쁘게 차려입고 나와서 잔뜩 들뜬 상태임. 모든 게 다 만족스러운데 단 하나 걱정되는 건 자신의 최측근한테 오늘 친구랑 놀러갈거라고 자랑했더니 나온 반응이 “그럼 수행원은 몇이나 붙일까요?” 여서 어이쿠 그건 안 될 말이지, 슈랑 처음으로 멀리까지 가는 건데 누가 따라오는 건 곤란해, 란 생각으로 몰래 빠져나왔다는 것뿐이었음.

어쨌든 둘은 루카가 말한 화과자집으로 향했음. 그래도 카네시로 가문에서 자주 이용하는 가게라는 건 사실인지 루카는 익숙하게 화과자를 골라 슈에게 추천해줬음. 오늘 입은 기모노 색이랑 잘 맞는다며 연분홍으로 물들인 복숭아 화과자를 추천했을 땐 역시나 얼굴을 붉힐 수밖엔 없었지만… 그래도 하나같이 예쁜 모양에 맛난 것들이었고 아름다운 정원에 자리잡고 먹고 있으니 복잡했던 기분도 어느 정도 가라앉았음. 그래, 이번 한 번뿐인걸. 그냥 즐기자. 이런 자포자기 심정이 발휘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부정할 순 없겠지만.

그러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눔. 루카가 이렇게 말한 게 시작이었음.

“슈하고 처음 만난 날 있잖아. 사실 중압감에 터질 것 같았다? 책봉식에서 입을 옷을 맞추면 내가 진짜 카네시로의 후계자가 되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너무 무섭더라고. 그런데 치수 재러 왔다는 재봉소 주인이 엄청 예쁘게 생겨서 그 긴장이 어디론가 날아가버렸어.”

‘예쁘다’ 는 표현에 마침 화과자를 반 베어물었던 슈는 혀를 깨물 뻔했지만 루카는 전혀 눈치를 못 채고 말을 이었음.

“내가 일이 있어서 밖에 나갈 때마다 슈네 가게에 들르는 것도 사실 그래서일지도 몰라. 슈하고 같이 있으면 그 부담이 조금은 사라지는 것 같거든……. 나는 열다섯 살 때부터 후계자 교육을 받기 시작했는데, 내 교육 담당을 맡은 사람이 늘 그렇게 말했어. 도련님은 카네시로 가문을 이어야 하는 몸이니까 항상 그 책임을 생각하면서 지내라고. 어릴 때는 멋모르고 그 말에 따랐지. 별 일 아닐 줄 알았어. 그렇지만 생각보다 부담이 컸나 봐.”

“그래서 오늘 외출하자고 말씀하신 건가요?”

“응, 나 진짜 오랜만에 일 걱정 없이 쉬는 날이거든. 이럴 때는 같이 있을 때 가장 숨통이 트이는 상대랑 같이 보내고 싶었어.”

내가 어느새 이 사람에게는 ‘같이 있을 때 가장 숨통이 트이는 상대’ 가 된 건가? 어느새 루카의 안에서 훌쩍 올라가 버린 제 입지에 당황하면서도 크게 싫지는 않은 간질간질한 기분에 슈가 괜히 옷깃을 만지작거리는데 루카가 평상에 냉큼 드러눕더니 하오리 자락 너머 나와 있는 슈의 새하얀 손을 잡았음. 그 순간 몸에 뭔가가 찌릿 하고 흘렀지만 그 감각을 다시 느낄 틈도 없이 슈의 신경은 온통 루카가 붙잡은 손, 두껍고 단단한 엄지손가락으로 제 손등을 어루만지는 감각에 쏠려버렸음.

“그리고 나, 슈를 존경해. 난 아직 후계자… 그것도 ‘정식 후계자’ 는 아닌 입장인데도 이렇게 부담스러운데, 나랑 달리 슈는 이미 한 가게의 주인이잖아? 그야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건 들었지만 결국 비슷한 나이인데, 그래도 능숙하게 가게를 꾸려나가는 것 같다고 내내 생각했어. 엄청 부럽고, 또 멋있어.”

희미하게, 또 아련하게 웃으면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루카의 얼굴을 보자 말문이 막혔음.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며 이 손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뿌리치는 게 정답일 텐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음. 항상 웃는 낯이어서 제대로 본 적 없던 루카 카네시로의 진지한 일면을 마주하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살짝 입을 다물고 입술에 힘을 줬다가, 슈도 솔직하게 입을 열었음.

“칭찬해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아요. 저도 엄청나게 부담스럽거든요. 가게의 주인이란 자리가.”

“……그래?”

“예. 부모님 대에서는 아버지가 운영을, 어머니가 재봉을 맡으셔서 두 분이 함께 꾸려가셨어요. 저도 도련님처럼, 물론 규모는 작지만, 어려서부터 가게 운영에 대해 아버지께 배워 왔죠. 성인이 되고, 제가 가게를 물려받게 될 때까지 부모님 밑에서 일하며 더 많은 걸 배울 예정이었어요. 하지만… 작년에 돌림병으로 두 분을 잃고 나서, 유능한 직원들이 남아 있지 않았더라면 제 대에서 가게가 문을 닫았을지도 몰라요. 도련님도 알고 계시듯 우키가 재봉을 맡고 경리는 복스가 맡아 주기 때문에 그나마 가게 주인입네 하고 앉아 있을 수 있는 거랍니다. 그러니… 도련님께서 높이 평가하실 재목은 아니지요.”

조금 민망하긴 해요, 덧붙이며 슈가 웃는 사이 루카는 굉장히 진지한 눈으로 슈를 바라보고 있었음.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높았던 호감이 이 말로 조금 내려갔나 하고 생각했을 즈음 루카가, 그건 아니지, 라고 말했음.

“네 일이 직접 옷을 만드는 거라면 당연히 그만한 기술을 갖춰야 하고 네 일이 가게 돈을 만지는 거라면 계산 능력을 필요로 하겠지만, 슈 너는 그 가게의 ‘주인’ 이잖아. 가게의 주인에게는 주인에 어울리는 능력이 있는 거야.”

“주인에… 어울리는 능력이요?”

“내가 어릴 적부터 내 교육 담당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얘기가 있어. 특출난 능력은 갖추지 않아도 좋다, 지식도 바보라고 손가락질당하지 않을 정도만 있어도 된다, 한 가문을 이끌어갈 사람이라는 각오와 어떤 역경에도 무릎 꿇지 않는 꿋꿋함, 집안의 모든 이들을 지킬 수 있는 강함, 약한 이들에게 베푸는 관용 등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그러고 있으면 자연스레 내 밑으로 재능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나와 가문을 위해 힘써 주게 될 거랬어. 너도 마찬가지야, 슈. 내가 지켜봐온 넌 어떤 싫은 손님도 싹싹하게 웃으면서 대했고, 가게 주인으로서의 체통을 항상 지키고 있었고, 늘 가게를 생각하며 행동했잖아. 그건 ‘가게의 주인’ 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자질이 아닐까?”

“그런… 걸까요?”

“그런 거야. 아니면, 네 유능한 직원들이 너한테 가게 주인은 맞지 않는다며 뭐라고 하기라도 했어?”

“아니요…….”

“그럼 넌 잘 하고 있는 거야. 앞으로도 잘 할 거구.”

“…….”

“아, 나도 슈처럼 되고 싶다. 될 수 있을까?”

당고 꼬챙이를 입에 물고 씩 웃는 루카는, 뭐랄까, 그 나이대 청년에 맞게 순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척 듬직해 보였음. 슈의 시선 끝 루카는 마을의 대지주이자 최고 권력자인 카네시로 집안의 차기 가주로서 봐온 루카와 오늘 본 허물없고 친근하면서 자기 미래에 고민하고 있는 평범한 루카가 뒤섞여서 굉장히 새로운 인상을 가져다 주었음. 이런 사람이었구나. 루카 카네시로는. 이런 말로 고민하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아, 참 좋은 사람이야.

계속 같이 있고 싶어.

그렇게 생각하며 슈가 손에 힘을 주어 루카의 손을 마주 잡으려는 순간이었음.

“그럼요. 되실 수 있고, 되셔야 하고말고요.”

제삼자의 목소리가 끼어들었음.

“하지만 오늘은 그 전에 몰래 빠져나간 데 대해 혼부터 나셔야겠어요, 도련님.”

동시에 뒤를 돌아본 두 사람의 등 뒤에는 무척 앳된 얼굴을 한, 귀여운 생김새의 청년이 서 있었음. 상대를 처음 보는 슈는 눈을 깜박이면서도 참 예쁘고 귀여운 사람이네, 라고 생각했지만 루카의 얼굴은 새파래졌음.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이. 루카를 향해 ‘도련님’ 이라고 불렀으니 카네시로 가문 사람일까, 슈가 생각하는 가운데 청년, 아이크 이브랜드의 입에선 놀라울 만큼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음.

“수행원도 없이 놀러 나오셔서 즐거우셨나요, 도련님?”

“아, 아니, 아이크. 그게 말이지… 오랜만에 쉬는 날이라서, 좀 마음 편하게 있고 싶었달까…….”

“네, 네. 그럼요. 도련님의 마음이야 백 번 이해하지요. 그렇지만 도련님이 수행원도 없이 몰래 집을 나오신 걸 주인 어른께서 아신다면 제가 어떤 경을 치게 될지는 아셔야 하지 않겠어요?”

어느새 루카는 슈의 손을 놓고 마치 혼이 나는 어린애처럼 정좌하고 있었음. 그 모습을 보고서야 아, 이 사람이 아까 도련님이 말했던 그 ‘교육 담당’ 이구나. 이렇게 젊은 사람일 줄은 몰랐어. 훨씬 나이 지긋한 어른일 줄 알았는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한참 루카에게 잔소리를 퍼붓던 아이크가 슈를 향해 홱 고개를 돌렸음. 그 순간 엄했던 표정에 갑자기 미소가 떠올랐고 그 미소를 본 순간 슈는 슬쩍 어깨를 떨 수밖에 없었음.

“야미노 재봉소의 5대시지요. 말씀은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도련님의 수행을 맡고 있는 아이크라고 합니다. 오늘은 저희 도련님이 대단한 폐를 끼쳤습니다. 바쁘실 텐데 이 멀리까지 오시게 만들어서 면목이 없습니다. 도련님은 제가 잘 타이를 테니 너무 걱정 마시고, 앞으로도 카네시로 가문을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굉장히 예의바른 인사였지만, 왜였을까, 슈에게는 ‘뒤는 나한테 맡기고 너는 이만 집에 가라’ 는 뜻으로밖에 들리지 않았음. 루카를 윽박지를 때의 무시무시한 표정이 지금 아이크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보다는 더욱 인간미가 있었을 것임. 이런 소리를 면전에서 들었으니 벌써 들어가긴 싫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슈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음. 루카가 아쉬움을 전혀 숨기지 못하는 표정으로 슈를 바라보았지만 슈의 시선은 루카의 그 표정을 포착하고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아이크의 미소에 가 있었음. 일단 여기서는 물러나자, 내가 더 이상 말을 얹으면 오히려 도련님의 입장이 곤란해지겠어. 결국 슈는 예의바르게 인사하고 다음에 또 보자는 루카의 말을 웃음으로 흘려보낸 뒤 먼저 가게를 나와 집으로 돌아왔음.

어라, 생각보다 일찍 돌아왔네, 하고 놀리는 복스와 슈의 표정을 보고 무슨 일 있었느냐고 물어보는 우키에게도 미소로만 애매하게 대답한 슈는 자기 방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었음. 오직 오늘 외출하기 위해 입었던 옷을 벗고 평소 가게 주인의 복장으로 돌아온 뒤 마지막으로 비녀를 빼는데, 그 순간 루카가 해줬던 말이 떠올랐음. 오늘 꽂은 비녀, 처음 보는 거네. 예쁘다. 이어서 아이크의 무감정한 미소도 생각났음. 오늘은 저희 도련님이 대단한 폐를 끼쳤습니다. 외출할 때는 걱정되면서도 설렜고, 화과자를 나눠먹으며 함께 보낸 시간은 참 즐겁고 행복했는데, 지금은 굉장히 우울함. 비녀를 장식함에 돌려놓고 다시 가게 주인의 얼굴을 한 채 밖으로 나서는 슈의 마음은 점점 복잡하게 구겨지고 있었음.

한편 루카도 슈를 보낸 직후 아이크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음. 다행히 루카가 수행원 없이 몰래 나간 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지만 그만큼 아이크의 잔소리가 이어졌음. 아무리 쉬는 날이라지만 후계자 책봉식이 코앞인데 거래처 사람이랑 놀러갈 틈이 있냐, 하다못해 하인이라도 한 명 데려갔어야 한다, 복장도 좀 더 잘 차려입고 나갔어야 한다, 아무리 허술하게 입어봐야 카네시로 조직의 후계자라는 건 티가 다 날 텐데,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 아십니까, 도련님? 처음 루카의 교육 담당을 맡았을 때와 전혀 다름없이 조목조목 따지는 아이크에게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던 루카는 알아들으셨다면 다행이라며 한숨을 쉬는 아이크에게 새삼 정색을 했음.

“그런데, 아이크. 아까 슈한테 왜 그렇게 무례하게 굴었어?”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너를 한두 해 보는 줄 알아. 네 눈은 전혀 안 웃고 있었단 말이야. 솔직히 말해 봐. 아까 슈한테 선 그은 거지? 야미노 재봉소는 대대로 카네시로 가문의 중요한 행사에 옷을 만들어주는 중요한 거래처잖아. 그런 가게 주인에게 그렇게 행동해도 되는 거야? 내 최측근인 네가 그렇게 행동하면 내 평판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마치 복수라도 하듯 따지고 드는 루카를 아이크가 가만히 바라보았음. 본능적으로 아이크가 무척 화가 났다는 걸 그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지만 슈에게 무례하게 군 데 한마디 해줘야겠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음. 잠시 두 사람 사이에 눈싸움이 오갔고, 먼저 시선을 뗀 것은 아이크 쪽이었음. 후, 하고 짧게 한숨을 쉰 아이크는 입을 떼었음.

“말씀대로, 도련님의 친구분이자 후계자 책봉식에 필요한 옷을 만들어줄 이에게 취할 행동은 아니었지요.”

“그러면 대체 왜 그랬어?”

“하지만 도련님은 오늘 친구분을 만나신 것도, 재봉소 주인을 만나신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

“솔직히 말하라고 하셨으니 말씀드리겠습니다. 도련님께서 저를 꾸짖으시는 이유는 달리 있지 않나요? 친구도, 재봉소 주인도 아닌, 도련님이 마음에 둔 이에게 무례하게 군 것에 화가 나신 거지요.”

“무, 무슨 소리야. 나랑 슈는 딱히 그런 게…….”

“아니라고 하실 수 있나요? 안타깝게도 제게 도련님의 거짓말은 통하지 않습니다.”

“…….”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린 루카를 보고 아이크는 다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음.

“도련님께서 누군가를 마음에 품으신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는 사실은 저도 압니다. 그러나 저는 도련님이 카네시로 가문의 가주가 될 때까지 옆에서 보필하라는 주인 어른의 명을 받았습니다. 제가 그 명령에 충실해야 하는 입장이며 주인 어른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충실할 작정이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아시지요?”

“…….”

“도련님. 지금은 중요한 시기입니다. 도련님께서는 후계자 책봉을 앞두고 계시기는 하나 아직 그 후보를 모두 제거한 것은 아닙니다. 부디 도련님의 입장을, 도련님을 따르는 자들을 먼저 생각해 주십시오.”

잔소리가 길었습니다.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아이크는 루카의 거처에서 떠났음. 방안은 텅 비었지만 루카의 귀에는 아직 아이크가 남긴 말이 빙빙 돌고 있었음. 아, 젠장. 볼멘소리와 함께 루카는 이마를 짚었음. 정말 뒤늦게, 사실은 알고 있었음에도 외면했던 것일지 모르지만, 아이크의 말은 모두 옳은 말이었음.

그래.

나는 슈를 좋아하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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