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pe in the Abyss _ Part. Noctyx (1)
1. 세 개의 밤하늘, 이끄는 태양.
문이 열렸다. 연구자들의 배웅 아닌 배웅을 받으며 펄거 오비드는 건물을 나왔다. 그가 나온 건물은 일명 ‘보관함’ 이라 불리는 정부의 비밀 기관이다. 비밀 기관이라고 하니 거창한 느낌을 주지만 이곳은 말 그대로 ‘보관함’ 일 뿐이다. 버리기는 아깝지만 굳이 지금 당장 필요하지는 않은 것들을 ‘넣어두는’ 보관함. 그 보관함에서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은 상층부가 아직 펄거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뜻이지만, 펄거의 안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수수께끼의 ‘힘’ 은 이번에 주어진 임무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깊이 한숨을 쉬며 펄거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시야를 채운 밤하늘에는 별이 가득했고 특히 달이 밝았다. 아름답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펄거의 미소에 어디까지나 비웃음이 깔려 있었다. 나는 이 밤하늘을 앞으로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아니, 굳이 셀 것도 없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내가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는 날은 곧 쓸모를 다해 폐기당하는 날일 테고. 그러니 되도록 오랫동안 바깥에 머무르고 싶지만 이는 지금부터 그를 데리러 올 ‘관리자’ 의 역량에 달렸다.
그 때 펄거의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돌아보자 짙은 보라색의 로브를 머리부터 뒤집어쓰고 있는, 펄거보다 체구가 약간 더 작은 남자가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상대가 뒤집어쓴 로브는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 어디서 봤더라. 젠장, 연구자 놈들, 기억 데이터 정도는 제대로 남겨두란 말이야. 한창 기억을 뒤지는데 상대가 후드를 천천히 벗었다. 살짝 불어온 밤바람에 상대의 보랏빛 고수머리가 아름답게 흩날린다.
“……우키…….”
그래. 우키다. 우키 비올레타. ‘점술관’ 의 ‘점술가’. 그리고 펄거 오비드 자신과 깊은 인연이 있는 자.
머릿속에 떠오른 정의를 증명하듯 우키는 그저 펄거를 바라보고 있었다. 별로 가득한 밤하늘처럼 반짝이는, 미세하게 색이 다른 두 눈동자가 펄거의 모습을 가득 담았다. 펄거가 그의 눈에서 밤하늘을 본 이유는 간단했다. 별이 빛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바람의 흐름으로 빛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펄거를 마주한 우키의 두 눈동자도 그만큼 흔들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번져 떨어질 것 같은 눈을 마주하고 펄거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아아, 저 아이가 왜 나를 저런 눈으로 보는지 곧바로 떠올릴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후후쨩…….”
그랬지. 우키는 펄거를 그런 호칭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 호칭을 듣고 나자 기억이 떠올랐다. 저 이상한 호칭으로 불리게 된 경위가 아니라 우키의 입에서 그 호칭이 나왔을 때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그렇다면 내가 허락한 호칭은 아니로군.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는데 우키가 펄거를 향해 달려와 안겼다. 가슴에 우키의 눈물이 닿았다. 눈물은 옷을 적시는 일 없이 그대로 가슴을 따라 흘러내렸다. 그 감촉에서 애절함이 떠오른 건 왜였을까. 어쨌든 이 다음 해야 할 일은 알 수 있었다. 펄거는 가만히 우키의 어깨에 팔을 올려 그를 자상하게 감싸 안았다.
“오랜만이야, 우키.”
아마 이것이 가장 적절한 답변일 것이다. 실제로도 정답이었는지 펄거의 등을 껴안은 우키의 팔 힘은 더욱 강해졌다. 한참을 그렇게 펄거의 품을 탐닉하고 있던 우키는 저 멀리서 차가 달려오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펄거에게서 떨어지더니 다시 후드를 머리 위로 뒤집어썼다. 타인의 시선을 피하고 싶어 하는 듯한 움직임에 펄거는 우키를 가로막고 저 멀리서 다가오는 한 대의 밴을 응시했다.
규정 속도 따위는 완전히 무시한 채 전속력으로 그들을 향해 달려온 밴은 얼마 가지 않아 그들의 앞에 멈췄다. 멀리서 달려올 때부터 환하게 두 사람을 비추던 전조등은 차가 멈추고서도 꺼지지 않았다. 강한 빛을 받아도 눈이 상할 일 없는 펄거와 달리 우키는 눈이 부셨는지 후드를 더 깊게 눌러써서 눈을 완전히 가렸다. 덕분에 차에서 내리는 남자를 제대로 마주한 것은 펄거 뿐이었다.
전조등 탓도 있겠지만, 펄거에게 남자는 무척 빛나는 사람으로 보였다. 우키 비올레타가 별이라면 이 남자는 달일까.
‘……아니, 태양이라고 표현하는 게 낫겠군.’
인정받은 길에서 살아온 자 특유의 당당함과 여유로움이 빈틈없이 남자의 몸을 감싸고 있다. 펄거나 우키와는 서 있는 스테이지부터가 다른 것이다.
이 당당한 남자의 얼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뭐니뭐니해도 밤하늘 아래서도 빛을 잃지 않는 금발이다. 다부진 몸을 두르고 있는 제복과 철문 한둘 정도쯤은 걷어차는 것만으로 부술 수 있을 만큼 단단해 보이는 신발은 남자가 공적인 자리, 특히 경찰 조직에 속해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 추측을 증명하듯 남자가 입은 제복에 새겨진 문자는 VSF. 펄거도 익히 들어본 적이 있는 특수경찰부대의 이름이었다. 그럼 이 남자가 앞으로 펄거의 생사를 결정할 ‘관리자’ 일 테지만, 그런 지위에 있는 사람이 단순한 대원일 것 같지는 않다. 꽤 젊어 보이는데 VSF의 상층부에 소속되어 있는 거라면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겠지. 재미있어. 씩 웃는 펄거를 향해 남자가 말을 걸었다.
“펄거 오비드와 우키 비올레타. 맞나? 나는 써니 브리스코. VSF의 지휘관이다. 지금부터 미션을 완전히 성공할 때까지 너희의 신변은 내가 맡게 될 거다.”
어이쿠, 상층부 소속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지휘관이셨군. ‘관리자’ 가 그 정도의 권한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번에 펄거에게 주어진 임무의 난이도는 어마어마할 것이 틀림없었다. 최소한 부서지지는 않았으면 했지만 그만큼 어려운 미션이라면 멀쩡한 상태로 돌아오긴 힘들겠지. 연구자 놈들, 폐기 비용이 덜 들겠다고 좋아하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우키는 그저 펄거의 뒤에 서 있기만 했다. 재킷을 붙잡거나 펄거에게 매달리지도 않았다. 앞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오직 차의 전조등이 눈부시기 때문인 듯했다.
“작전의 자세한 설명은 VSF로 돌아가서 하겠어. 둘 다 차에 타.”
“예, 그럽죠. 가자, 우키.”
우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앞서 걸어가는 펄거를 따라 차에 올랐다. 앞으로 자신이 부릴 부하가 될 사람들이 있는데도 직접 운전대를 잡은 써니는 시동을 걸다가,
“아, 뒤 조심해.”
라고 영문 모를 경고를 날렸다. 뒤에 뭐가 있나?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뒷좌석과 연결된 트렁크 쪽에서 손이 두 개 불쑥 튀어나왔다. 각자 펄거와 우키의 얼굴 옆으로 뻗어온 손은 그 둘이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목을 조르듯 세게 끌어안았다. 그 손길에 적의가 없음이 느껴져서 망정이지, 혹시 거기 조금이라도 자신이나 우키를 해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반사적으로 상대를 공격했을 게 분명했다. 펄거의 옆에 앉아 있는 우키 역시 경계는 하지 않지만 깜짝 놀란 표정으로 갑자기 끼어든 상대를 확인했다.
“서프라~ 이즈! 안녕, 새 동료들! 나는 알반 녹스! 직업은 써니의 고양이구, 이번에 너희랑 팀으로 움직일 나머지 한 사람이야!”
트렁크에서 튀어나온 것은 갈색 머리의 소년이었다. 환하게 웃으며 펄거와 우키-우키의 경우에는 후드 위로-에게 볼키스를 날리는 걸 보니 어지간히 사교성이 좋은 상대임이 분명했다. 단 그 순간 펄거의 눈은 운전석에서 도드라지게 불쾌한 표정을 짓는 써니 브리스코를 포착했다. 이 녀석, 방금 자길 ‘써니의’ 고양이라고 했었지. 아무래도 이 둘은 단순한 상사와 부하 관계는 아닌 모양이다. 관리자의 기분을 거슬려 좋을 게 없으니 여기선 경계를 풀어줄까. 입을 다무는 우키를 대신해 펄거는 능청맞게 알반의 인사를 받았다.
“이게 VSF식 환영 인사인가? 놀랐잖아. 나한테 심장이 있었다면 멈췄을지도 모르겠어.”
“어? ……심장이 없어?”
“내가 어떤 존잰지 얘기 안 해줬나 보지, 대장? 우키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설명해주지 그래.”
“그것도 포함해서 VSF에 돌아간 뒤에 얘기하자고. 안전벨트 매. 이 불길한 건물 앞엔 더 이상 있고 싶지 않고, 지금부터 전속력으로 달릴 테니까.”
“잠깐, 잠깐! 출발하기 전에 나 조수석으로 옮길래. 트렁크에 있다 보니 여기 치이고 저기 치이고. 내 머리 봐, 이미 혹 투성이야! 나 옮겨가면 머리에 호 해줘!”
“나 참. 위험하다고 했는데도 재밌겠다며 트렁크 같은 데 타니까 그렇지. 얼른 와. 트렁크 꼭 닫는 거 잊지 말고.”
“캬아, 자상해~ 금방 갈게, 써니의 곁으로!”
방긋 웃은 알반은 곧장 트렁크에서 뛰쳐나갔다. 조수석에 타 안전벨트를 매는 순간에도 알반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고 써니 역시 펄거나 우키를 대할 때와 달리 알반이 말한 대로 ‘자상한’ 눈빛으로 알반을 보고 있었다. 마치 한 쌍의 사랑스런 연인…… 같지만, 학습된 프로그램으로만 인간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펄거조차도 사이좋게 담소를 나누는 두 사람에게서 미묘한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펄거는 그 위화감을 입 밖에 내어 지적했다가 써니 브리스코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 대신 펄거는 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창문을 살짝 열고 오랜만에 바깥의 바람을 느끼며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았다.
별하늘을 두 눈에 담은 남자가 그 옆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살포시 제 어깨에 기대는 그 순간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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