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혼혈 영애의 49번째 회귀

5화. 학교 (5)

리엔세라 : 5-5화

“......”

“...”

붉은 머리칼이 눈앞에서 눈부시게 흩어졌다. 아름다운 색이었다. 세라엘은 학교 복도를 앞서 걸어가고 있는 베레니체를 따라가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 사람은 누구지? 리엔시에의 친구인가? 하지만 리엔시에는 나 말고는 친구가 없을 텐데.

이상했다. 세라엘은 리엔시에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친구일 터였다. 그녀에게 친구는 자신 이외에는 있을 이유도, 필요성도 없었다.

“저기.”

“네?”

그래서 결국 말을 걸었다.

“너는 리엔시에의 친구야?”

“...”

이젠 존댓말조차 안중에도 없었다. 의식하지 못한 채였긴 하지만, 세라엘은 자연스럽게 하대하며 베레니체를 대했다. 베레니체는 그런 그녀의 태도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연스레 맞받아쳤다.

“네.”

“왜?”

“...?”

“리엔시에는 외톨이야. 친구가 있을 리가 없잖아.”

그 말을 들은 베레니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리엔시에와 안면이 있는 것 같아서 안내해 주려고 왔는데, 묘하게 아까부터 거슬리는 말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리엔시에를 대하는 모습 또한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였다.도대체 그녀가 누군지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베레니체는 세라엘에게 인심 쓰듯 상냥한 어조를 내려 노력하며 대답했다. 억지로 입꼬리를 올린 표정이었지만 눈동자는 차게 식어있었다.

“저는 리엔시에의 친구예요. 뭐, 리엔시에는 저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상관없어요. 저는 그녀를 친구로 여기고 있어요.”

“...괴물한테 친구가 있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데.”

세라엘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흘린 말이었다. 세라엘이 생각하는 리엔시에는 자신만이 소유할 수 있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진 괴물-특이점-이었다. 그런 연유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듣는 이의 감상은 또 다를 수 있었으니. 베레니체의 인내심이 세라엘의 한 마디로 툭, 끊어졌다.

“당신. 대체 누구신데 리엔시에에 대해서 함부로 얘기하는 거죠?”

“...?”

세라엘은 당황했다. 상대 쪽에서 이렇게 격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리엔시에 영애는 괴물이 아니예요. 사람이에요. 저희와 같은.”

“? 알아. 내 말은─”

“이 나라는 아직도 종족 차별이 심하군요. 라흐벤시아는 레냐토르에 비해 인식이 많이 뒤떨어진 것 같네요.”

“......”

베레니체의 가문의 기원은 저 멀리 떨어진 레냐토르 제국에 있었다. 이제는 어엿한 라흐벤시아의 귀족 가문이지만, 레냐토르 제국에 뿌리를 뒀다는 것을 가문의 모두가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레냐토르의 인구 비율은 이종족과 혼혈, 인간이 거의 비슷할 정도였다. 그로 인해 종족 간에 대한 시각도 많이 열려 있는 편이기도 했다.

“...미안. 나는 그런 의도로 말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나, 나도 리엔시에의 친구야.”

“...그래요?”

베레니체가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세라엘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둘은 한 교실 앞에 멈춰 서 있었다. 고전마법학부의 학관 1층이었다. 베레니체는 묘하게 아까보다 가라앉은 표정을 한 세라엘을 흘끗 쳐다보다 교실의 문을 힘차게 열었다.

“─리엔시에!”

“아...!”

“헉, 깜짝이야! 벨, 놀랐잖아요! 노크 좀 하고 들어오면 안 돼요?”

들려오는 목소리가 둘이었다. 하나는 놀란 리엔시에의 탄성, 또 하나는 코니엘의 잔소리였다.

“코니엘님도 같이 계셨군요. 이야기 중이셨나요?”

“으응. 근데 리엔시에가 곧 어디 갈 곳이 있다고 해서... 어라, 그런데 뒤에 있는 그 아이는?”

코니엘이 고개를 갸웃하며 고갯짓으로 세라엘을 가리켰다. 세라엘은 쭈뼛거리며 베레니체의 뒤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리엔시에 쪽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땅으로 숙인 채였다. 그런 세라엘의 모습을 본 리엔시에의 눈이 크게 확장되었다.

 

“─리엔시에의 친구, 라네요.”

“그런데 그 교복은... 중등부?”

“...아, 아니 이건. 그러니까...”

세라엘이 우물쭈물하며 말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리엔시에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찌나 갑작스레 일어났는지 앉아있던 의자가 뒤로 넘어갈 정도였다.

쿠당탕─

“어머, 리엔시에?”

그리고 터벅터벅 세라엘에게로 걸어가더니.

“...?!”

저보다 조금 작은 키의 희멀건 소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리엔시에에게 안긴 세라엘의 눈동자가 크게 확장됐다. 그녀의 품에서는 라일락 향기가 났다.

“세라엘… 세라엘님… 저를 보러 와주신 거군요. 고마워요.”

“...음.”

“일주일 후 입학하신다고 들었어요. 정말 기뻐요.”

“으응, 그래...”

코니엘이 놀란 얼굴로 양손으로 입을 가린 채 그런 둘을 바라보았고, 베레니체는 멍한 얼굴을 하다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도리질 쳤다.

“그, 리엔시에의 친구라던데. 정말인가요?”

“네, 맞아요. 제 친구예요.”

“...흣.”

바로 대답하는 리엔시에의 모습에 세라엘의 뺨이 붉어졌다. 그러나 아직도 품에 안겨있어서인지 리엔시에는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아아, 그렇구나… 그럼 당신이 세라엘 성녀님?”

“…? 넌 누구야?”

겨우 리엔시에의 품에서 어색하게 빠져나온 세라엘이 머리를 비비 꼬며 코니엘을 뚱하게 쳐다보았다. 풍성한 적금발 머리에 적갈색 눈동자를 한 소녀. 느낌상 뭔가 평범해 보이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세라엘의 예상은 적중했다.

“아, 저는 라흐벤시아의 지엄하신 황제 폐하의 손녀예요. 코니엘이라고 한답니다. 잘 부탁드려요.”

“황족…?!”

세라엘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 나라에서 가장 귀한 사람─자신을 제외한다면 말이다─을 눈앞에서 목격한 사람의 정직한 반응이었다. 어떻게 대해야 하지. 그래도 나는 성녀인데, 내가 먼저 말을 놔도 되려나…?

이런저런 생각으로 분주한 세라엘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교실 쪽으로 부리나케 달려오는 무리가 있었다.

“──성녀님! 세라엘 성녀님! 이제 돌아가셔야 합니다!!”

“─헉. 아니, 언제 여기까지 찾아왔대? 미친 거 아냐...”

저도 모르게 거친 말을 내뱉는 세라엘이었다. 무리의 정체는 로나지에의 수녀들. 그중에는 일등 수행원인 소냐도 있었다.

“성녀님, 소냐예요! 헉, 헉… 찾느라 힘들었어요. 아무리 곧 입학하신다 해도, 아직은 신전에 귀속되신 몸이시니 좀 더 당신을 소중히 여기시는 게──”

“─성녀님. 아무리 ‘비천한 태생’이라지만, 이렇게 막무가내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입학식 때까지 앞으로 외출은 금지입니다.”

힐렌다 수녀였다. 그 한마디에 교실에 있던 모두의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았다. 베레니체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고, 코니엘은 저도 모르게 입을 떡 벌렸으며, 리엔시에는 특유의 날카로운 눈동자를 어둡게 빛내며 그 말을 내뱉은 이를 노려보았다.

“지금 뭐라고...”

“─미안.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빨리 가자. 리엔시에, 만나서 즐거웠어. 다들 안녕.”

세라엘이 황급히 자리를 뜨려는 듯 인사를 하고는 수녀들 쪽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비천한 태생. 그 단어가 너무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으니,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세라엘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교실을 나섰다. 그리고 그 뒤를 빠른 걸음의 수녀들이 뒤따랐다. 세 사람만이 남은 교실 내부에는 무거운 적막만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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