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비 내리는 저택

3화. 이변 (2)

1차 HL 자캐 CP 주현여루

*

여루는 아까 복도에서 본 옆반의 전학생을 생각했다. 앞에 마주 앉아 급식을 먹던 소연이 그런 여루를 툭 치며 불렀다.

“뭔 생각해?”

“어? 어 아니.”

“밥이나 먹어. 우리 밥 먹고 운동장 돌기로 했잖아.”

“그래...”

“얘가 오늘 왜 이래? 멍하니 있고.”

“...”

주현은 자신과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제가 시선이 쏠리는 걸 싫어해서 최대한 떨어져 앉으라고 지시한 탓이다. 본인은 불만있어 보였지만 뭐 어쩌겠는가. 싫으면 연습생 관두던가.

아무튼, 여루는 아까 본 남학생에게 온통 정신이 쏠려 있었다. 권지윤이랬지. 여루는 무엇보다도 그가 키가 큰 게 마음에 들었다. 제 친구나 연인이 될 것도 아니면서 괜히 그런 생각을 했다.

암, 남자는 자고로 키가 커야지. 여루는 지금은 저와 앉은키가 거의 차이 나지 않는 주현을 생각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걔는 얼굴 반반한 거 말고는 왜 그렇게 인기가 많은지 모르겠네.

성장기라 앉은키는 아직 조금 더 높은 수준이지만 다리가 훨씬 길어서 저보다 키가 크다는 사실을 간과한 여루였다. 딴 생각을 하며 급식판의 국을 대충 휘적이던 그녀가 소연에게 말을 걸었다.

“소연아, 너 혹시 하늘이한테─엑?!”

“─! 아, 미안. 괜찮아?”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툭 쳐서 하마터면 급식판 위로 엎어질 뻔했다. 여루는 사과를 받았어도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대며 뒤를 돌았다. 뭐야?

...아. 옆반 전학생이었다. 제가 방금까지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그 남학생. 권지윤. 그가 급식판을 든 채 어쩔 줄 모르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쟤 급식도 혼자 먹나? 친구도 없나. ...아, 없을 만도 하지. 오늘 막 전학왔는데. 그래도 같이 먹어줄 애도 없나? 저 반도 쌀쌀맞구만. 이런 여러가지 생각을 순식간에 해내고 여루는 애써 웃어보였다.

“아... 아니. 아니, 아닌 게 아니라.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진짜 미안해. 여기 의자 사이로 지나가려는 데 틈이 너무 좁아서 부딪혔나봐.”

“괜찮아, 괜찮아. 그보다 너, 밥 혼자 먹니?”

“...어?”

“우리랑 같이 먹을래?”

여루가 방긋방긋 웃으며 그리 묻자 남학생이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귀여워라. 얘 부끄러워 하는 건가? 순박하네. 저 멀리서 채주현이 이쪽을 엄청난 기세로 쏘아보고 있는 게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그가 머뭇대는 기색이 느껴져셔 여루는 얼른 식판을 끌어다 제 옆자리에 놓았다. 그러자 권지윤이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제 옆에 앉았다. 그런 여루를 소연이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안녕.”

“안녕. 여루야. 갑자기 얘는 왜? 아는 애야?”

“옆반 전학생.”

“? 옆반 전학생을 네가 어떻게 아는데? 원래 알던 사이야?”

“아니, 그건 아닌데 아는 사이는 맞아. 우리 구면이야. 그치?”

“...으응.”

권지윤이 애매하게 대답했다. 여루는 그의 팔뚝을 툭툭 치며 눈치를 줬다. 우리 아는 사이잖아, 복도. 기억 안 나? 아니, 아는데...

그렇게 작게 투닥이기 시작하는 둘을 소연이 새삼스런 눈으로 지켜보다 한 줄 평을 내렸다.

“천생연분같네. 보니까 이제 막 알게 된 사이 같은데 어쩜 이리 친해 보이냐?”

“그러게. 우리 벌써 친구야. 그치, 지윤아?”

“으, 응. 근데 너 이름이 뭐─”

“나는 여루야. 권여루. 쟤는 유소연. 우리는 8반이야. 네 옆 반.”

“아, 그래.”

“─여루야.”

그 때 지윤이 앉은 제 오른쪽이 아닌 왼쪽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루가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려 곁에 바짝 선 상대를 올려다봤다. 채주현이었다. 소녀는 김빠지는 소리를 내며 손을 휘적였다.

“저리 가. 밥 먹을 때는 서로 안 건드리기로 했잖아. 이따가 놀아줄게.”

“쟤는 누군데 같이 밥을 먹어? 그럼 나는.”

“이따가, 이따가. 일단 가 있어. 애들이 쳐다보잖아.”

“...알겠어.”

마지못해 주현이 자리를 떠나자 여루가 다시 웃는 얼굴로 지윤에게 고개를 돌렸다.

“지윤아, 너는 어디 학교에서 전학왔어?”

“권여루. 너 아무리 얘 얼굴이 네 취향이어도 그렇지 너무 들이댄다?”

“뭔 소리야. 나는 키만 멀대같이 큰 남자 안 좋아하거든?”

“뭐래는 거야. 얘가 못생긴 얼굴은 아니잖아.”

“...”

저를 옆에 두고 이래라 저래라 말을 놓는 두 사람 사이에서 지윤이 붉어진 얼굴로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싫진 않았다. 왠지 이 두 사람과는 오래 보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화를 나눌수록 소연과 웃으며 장난을 치는 여루를 보자 마음이 밝아졌다. 참 밝고 선한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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