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금소금소금 팥팥팥팥

원찬

윤석철트리오 - 도사님 펑크

 후. 전원우가 크게 날숨을 뱉으며 지도에 고정해두었던 눈을 들었다. 고개 돌려 왔던 길을 돌아본다. 줄줄이 늘어진 형형색색의 연꽃 등과 뾰족한 깃발, 만(卍)자가 쓰인 간판들. 살면서 한 번이라도 보리라 상상도 해본 적 없는 것들이다. 장관이네. 전원우는 핸디캠으로 풍경을 가볍게 쓸어 담고 걸음을 재개했다.

 목적지, 세봉산로17길 13은 골목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했다. 약간 녹슨 쇠문과 벽돌로 쌓아 올린 담벼락은 언뜻 보기에 일반 가정집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들어서기 전에 아까와 마찬가지로 핸디캠으로 외관을 훑어 올렸다. 쭈욱 올라가던 렌즈가 파란 지붕에 이르렀다. 아, 이게 다르네.

 [세봉산 장군보살]

 렌즈를 드르륵 돌리자 파란 하늘을 푹 찌르며 뻗은 하얗고 붉은 깃발과 그 아래에 덤덤히 매달린 간판이 뷰 파인더 가득 들어찼다. 아무래도 저런 건 일반 가정집엔 없지. 전원우는 음성으로 설명이라도 깔아 보려다 그냥 입술만 몇 번 오물거리고 관두었다. 한 마디라도 꺼내기에는 다소 적막한 동네였다. 나중에 따로 녹음해서 깔 작정으로 핸디캠을 내리고 맨눈으로 간판을 올려 보았다. 장군보살이라. 아까도 같은 말이 쓰인 간판들이 왕왕 보였던 것 같다. 세봉산에 장군님들이 이렇게나 많이 사셨나. 낯설 법도 한 게, 전원우에게 세봉산이란 초중고 교가에 매번 들어가는 동네 뒷산 정도의 평화로운 인상이었다. 한때 지겹도록 들여다보았던 공무원 한국사 교재에도 나오지 않는 듣보잡 산 말이다. 뭐, 워낙 전쟁이 많았던 땅이니 그러려니 하기로 한다.

 끼이익-.

 "계세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열린 낡은 대문 너머 좁다란 마당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살기는 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인기척 하나 없었다. 원래 안내해주는 사람도 없나. 무당집 방문이 처음인 전원우로서는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었다. 침을 꼴깍 삼키며 조심스레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툭.

 오방색 천으로 엮인 지푸라기 뭉태기가 전원우의 발에 채여 반 바퀴 굴러갔다. 미간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이런 곳에 내 발로 들어왔다니, 세상이 뒤집힐 일이다. 못마땅하게 허공에 발을 두어 번 털었다.

 어찌할 바 모르고 마당 한가운데에 오도카니 서 있던 전원우는 방과 방 사이에 자리한 짧은 마루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그러고 보니 이런 옛날식 주택도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꼭 어릴 때 명절마다 들렀던 할머니 댁의 축소판 같기도 했다. 이런 곳에 살아야지만 정기를 받을 수 있는 건가. 하긴, 삐까뻔쩍한 아파트에 앉아 있는 무당은 잘 상상이 안 되긴 한다. 하염없이 멍이나 때리던 전원우는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올라섰다. 그리고 다시 멍때리기 시작. 양쪽에 달린 문 중에서 어느 쪽이 방으로 향하는 문인지 알 수 없었다. 고심 끝에 왼쪽 문을 벌컥 열자 예스러운 파란 타일이 전원우를 맞았다. 여긴 화장실이네. 50% 확률 뽑기에 깔끔히 실패한 전원우는 문을 잘 닫아두고 빙그르르 몸 돌려 반대편 문고리를 잡았다. 이젠 100%다. 과감히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전원우는 기묘한 체험을 하게 된다. 문을 엶과 동시에 무언가가 눈앞으로 쏟아져 왔는데, 그게 슬로우모션으로 보였다. 빠알간 알이 마치 비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 볼 때의 빗방울의 모양새처럼 눈앞에서 크기를 키우며 가까워 왔다. 전원우는 시야에 잡히는 정체불명의 붉은 물체를 파악하려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팥.

 팥이다.

 촥-!

 "억,"

 팥알이 안경 알과 뺨에 부딪혀 후두둑 튕겨져 나갔다.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와라라락. 바닥에 떨어진 새빨간 팥알이 낭랑한 소리와 함께 이리저리 튀어 올랐다. 전원우는 불규칙한 곡선을 그리며 굴러 가는 팥알들을 내려다 보았다. 얼떨떨했다. 환대는커녕 팥으로 싸맞은 셈이니 당연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전원우가 얼얼한 정신머리를 고쳐 잡지 못하는 사이 앞에서 불호령이 들이닥쳤다.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오냐니. 2주 전부터 예약까지 해서 찾아온 보람이 싹 사라지는 소리다. 조금 화가 난 전원우가 안경을 고쳐 쓰며 고개를 정방향으로 틀었다. 그리고, 마주했다.

 "썩 꺼지지 못..."

 "..."

 "어?"

 한쪽 벽을 가득 채운 화려한 불화 속 선녀들의 공허한 눈동자. 금빛으로 번쩍거리는 각종 보살상과 존재 이유를 알 수 없는 조잡한 소품들. 다 타들어간 향이 삐죽삐죽 꽂힌 향로. 이 기괴한 풍경 앞에 당당히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이찬을.

 뜻밖의 낯익은 얼굴에 놀란 전원우의 눈썹이 들썩 들렸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인지 어느새 왕방울만하게 커진 눈이 수차례 여닫혔다.

 "... 원우 형?"

 "..."

 "형이 왜..."

 제 이름을 부르는 앳된 목소리가 확신을 더했다. 맞구나. 이게 몇 년만이지.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못 봤으니 7년 좀 넘었나.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는데.

 전원우가 다시금 안경을 고쳐 썼다. 수 년만에 본 이찬의 얼굴은 둥글었던 선이 날렵히 깎여 있었으나 오목조목한 이목구비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특히 길쭉이 뻗은 눈매가 똑같았다. 7년 전 전원우는 저 눈을 참 좋아했었다.

 "음..."

 "..."

 "안녕."

 지독하게 어색한 인사였다. 이찬과 제 사이 몇 걸음 되잖는 거리가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전원우가 겸연쩍게 고개를 숙였다. 그때, 머리칼에 걸려 있던 팥 한 알이 바닥으로 수직낙하했다.

 통, 토동. 떼구르르륵...

 눈치 없는 팥알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러가 이찬의 발끝에 톡 부딪혔다. 멀리서 보면 우습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으나 막상 당사자들은 헛웃음조차 지을 수 없다는 듯 멀거니 서로의 낯만 바라보았다. 그 순간 꼭 다물려 있던 이찬의 주먹이 스르륵 풀어졌다. 작은 손에 가두어져 있던 팥알들이 방울방울 떨어지며 방을 팽팽히 메웠던 정적을 와르르 깨뜨렸다. 전원우는 이찬의 발등 위로 쏟아져 제 쪽으로 데굴데굴 굴러오는 붉은 낱알들을 허망히 쳐다보았다. 저걸 다 던질 셈이었나. 그러나 팥알 세례를 맞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보다도 아찔한 게 있었으니. 아, 찬아...

 설마 너 버선 신은 거니.

 자.

 지금부터 펼쳐질 이야기는 7년만에 다시 만난 첫사랑이자 전애인이 장군보살이 된 한 남자의 이야기다.

 등장인물은 전원우. 그리고 이찬.

 소금소금소금 팥팥팥팥

 (*약간의 공포 요소 및 화재에 대한 묘사가 있습니다.)

 귀신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귀신 덕분에 먹고 산다. 공포 유튜버 전원우의 인생을 두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 네가? 전원우가 전업 유튜버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면 주변인들의 반응은 대략 이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원우와 유튜버는 정말이지 안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팀플을 할 때면 발표 빼고 다 시켜달라 하는 내향인이자, 트렌드에 민감하지 못해 옛날 옛적 개그나 쳐대는 느림보가 전업 유튜버가 될 거라고 누가 기대나 했겠는가. 그건 전원우 쪽도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채널에 영상을 올릴 때마다 이게 맞나, 하면서 머리나 긁적이고 마는 것이다.

 그런 전원우가 유튜브를 시작한 건 말하자면 사고 같은 거였다. 매해 장래희망 란에 '공무원'을 써내던 중학생 전원우는 무럭무럭 자라 어엿한 공시생이 되었다. 진로를 택할 때 다른 목표는 없었다. 오직 안정성. 그거 하나면 충분했다. 누군가는 지나치게 현실적인 거 아니냐는 감상을 내놓았지만, 글쎄. 적절한 휴식 시간이 확보된 균형적 삶을 추구하는 게 반드시 회색빛 현실에 굴복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까. 전원우는 제가 택한 진로에 한 번도 아쉬움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누가 뭐래도 워라밸은 전원우의 꿈이었기에.

 남들이 보기엔 낭만 한 톨 없는 삶을 살아가는 전원우에게도 낭만적인 취미가 하나 있었는데, 영상이었다. 전원우는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걸 좋아했다. 취미의 시작은 중3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좋아했던 애가 댄스 동아리였고, 그 애의 춤을 기록하고자 카메라를 잡았고, 이왕이면 예쁘게 남기고 싶어 야매로 편집을 배웠다. 이 얘기는 나중에 더 하는 걸로 하고. 영상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일과 취미의 경계가 명확한 전원우는 영상을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었다. 그를 증명하듯 성인이 되고 영상을 만진 일이라고는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며 찍은 동영상들을 간략히 편집하는 정도뿐이었다. 맨날 책만 들여다보는 공시 생활을 시작하면서는 영상과 더더욱 멀어졌고. 슬슬 그런 취미가 있었는지도 까먹어갈 무렵, 고등학교 동창 이지훈에게 연락이 왔다. 유튜브를 해보려 하는데 혹시 네가 편집자를 맡아줄 수 있냐는 것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너만큼 믿음직한 사람이 없다는 핑계를 댔지만 가성비 좋은 일꾼을 찾는 게 틀림없었다. 전원우는 한 5분 정도 고민하다 냉큼 수락했다. 이지훈이 제안한 페이는 전문 편집자들보단 덜했으나 최저시급을 훨씬 웃도는 금액이었고, 돈 나갈 일뿐인 공시 생활에 일주일에 몇 시간 써서 용돈 벌이하는 거면 괜찮지 않나? 하는 안일한 마음가짐이었다. 전원우가 천성이 느긋하여 공시생치고는 사력을 다해 공부하는 편이 아닌 탓도 있었다.

 그런데 가볍게 시작한 이지훈의 채널이 생각보다 커졌다. 원래 채널의 정체성은 음악 유튜브였다. 케이팝 노래 커버, 뮤비 리뷰 등을 주 컨텐츠로 하는 소소한 채널이었으나 이지훈이 워낙 입담이 좋았던 게 화근이었다. 즉석에서 케이팝 노래를 편곡해보겠다고 라이브를 켰다가 별안간 애니메이션 월드컵 128강을 했는데, 화려한 언변으로 화제가 되어 끝내 실버버튼까지 받게 것이다. 덕분에 컨텐츠는 배로 늘어나 졸지에 브이로그에 라이브 편집까지 도맡게 된 전원우는 아주 죽을 맛이었다. 공부는 뒷전이고 편집에만 매달리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내 뜻대로 안 되는 하루하루가... 이러다 슬슬 인생 조지겠다 싶어 그만두려던 찰나, 사건이 터졌다.

 "편집자 친구가 고등학교 동창인데, 전 살면서 걔처럼 무서운 얘기를 안 무섭게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때는 여름 맞이 납량 특집 라이브였다. 이지훈은 시청자들에게 무서운 얘기를 제보받아 읽어주던 중이었다. 말 나온 김에 들어보자며 전화를 걸었고, 전원우는 브이로그를 편집하다 말고 짜증스럽게 전화를 받아 들었다.

 "뭐야, 씨..."

 "야나지금라이브중이니까욕박지마라."

 "... 어. 뭔데."

 "너 예전에 나한테 해줬던 얘기 기억나냐?"

 뭔 얘기. 퉁명스레 되묻자 이지훈은 무려 고등학교 수학여행 시절을 끌올해왔다. 둘째날 밤에 네가 푼 무서운 얘기 있잖아. 전원우는 이제 10년 가까이 지나 흐릿해진 기억을 더듬었다. 내가 뭔 말을 했더라.

 "아. 나 자다가 누가 귓가에 대고 계속 웃어서 깼던, 그거 얘긴가?"

 "어어. 그때 집에 너 말고 아무도 없었다며."

 "어. 그 이후로 한... 일주일? 동안 가위도 눌렸었지. 근데 그게 왜?"

 "..."

 "..."

 "이렇다니까. 이 정도면 재능이야."

 전원우는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소릴 듣고도 그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생각해 보니 수학여행 때도 자기 빼고 다 뒤집어졌던 것도 같다. 그때도 어리둥절했었다. 실제로 경험한 사람도 무덤덤한데 뭐 그리 무섭다고 난리인지. 물론 스스스스스, 하고 울리는 웃음소리가 썩 유쾌하지 않긴 했다만... 그냥 꿈이 현실과 살짝 겹친 거겠지, 생각하며 묻어 두었었다. 그래서 기억도 못 하고 있었는데 괴담을 늘어놓는 타이밍이길래 슬쩍 꺼내놨더니만 다들 저보다도 더 무서워하더란 것이다.

 그렇다. 전원우는 겁대가리가 없었다. 그러나 경험에 근거한 무서운 썰의 개수는 겁대가리와 반비례했다. 전원우에게는 괴담으로 이름 붙여질 만한 일화가 수도 없이 많았다, 본인이 무섭다고 인지하지를 않아 기억에 남은 건 몇 없었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면 기가 약한 거 아니냐는 걱정이 돌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당사자는 기가 약해서 뭐, 귀신이라도 붙었다는 거야 뭐야, 하면서 코웃음이나 치고 마는 것이었다.

 이렇게나 공포영화 주인공 같은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원우는 귀신을 믿지 않았다. 아니, 초자연적 현상 전체를 믿지 않았다. 전원우 딴에는 본인의 경험들은 충분히 반박되고도 남는 것들이었다. 우연이겠지, 바람 소리겠지, 하고 넘길 수 있는 것들 말이다. 전원우는 더 나아가 괴담들을 부러 찾아보며 괴담 특유의 억지스러운 개연성을 비웃기도 했다. 이건 좀 변태적 습성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어쨌건 전원우는 이지훈의 부추김에 못 이겨 제가 기억하는, 혹은 아는 괴담을 몇 개 더 이야기해주었다. 말끝에는 꼭 별로 안 무섭지 않나요? 되물었다. 실시간으로 [개무서운데요ㅠㅠㅠㅠ] 울부짖는 채팅들이 쭉쭉 올라왔다. 이지훈이 봐봐 무섭다니까, 해도 여전히 머리나 긁적일 뿐이었다.

 전화를 끊고서 편집을 이어가려던 전원우는 간만에 핸디캠을 꺼냈다. 앵글을 조정하고, 숨을 한 번 삼켰다가, 중얼거렸다.

 "제가 열다섯 살 때였을 거예요."

 공포 유튜브 '귀없다'의 시작이었다.

 '귀신은 없다'의 준말을 채널명으로 하는 아이러니의 끝판왕을 보여주었음에도, '귀없다'는 그럭저럭 잘 되었다. 우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포인트를 잘 짚어내는 이지훈의 적극적인 홍보-이지훈은 '귀없다'를 세상에서 제일 킹받는 공포 유튜브라고 소개했다-가 한 몫 했으며, 공포 유튜브답지 않은 독특한 컨셉 덕도 봤다. '귀없다'의 컨텐츠를 묘사하자면 이러했다. (1) 무서운 이야기를 낮게 읊조린다. (2)  '그런데요'를 서두로 하여 다른 현실적인 가능성을 제시한다. (3) '음... 오늘도 별로 안 무섭네요'로 마무리. 아무래도 후반부가 포인트였다. 온갖 과장과 왜곡을 통해 서늘함을 더하는 공포 유튜브 문법의 반대로 런어웨이 하는 셈이었으니. 나름의 가명도 생겼다. 소금. 귀신이 오려다가도 이 새끼 뭐야, 하고 도망가겠다며 인간 소금이라고 부르는 댓글에서 착안했다. 구독자들은 그마저도 킹받는다고 혀를 내두르더라.

 예상보다 구독자가 붙었어도 인생을 바칠 만큼 잘 된 건 아니었다. 반짝 화제가 된 적이 있긴 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집안 어딘가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장롱 안에 예전에 쓰던 핸드폰이 들어 있었다는 구독자의 제보에,

 "공동 주택 사시죠? 이웃집 핸드폰 진동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울려요. 윗집 사시는 분이 되게 J형이신가 봐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시고."

 이런 소리를 해서 공포 해결사라고 언급되기는 했으나 잠깐뿐이었다. 그렇게 취미생활처럼 굴러가던 작은 채널에 공시 때려치고 전념하게 된 사연 또한 사고나 다름없었다. 구독자들의 추천으로 폐교 체험을 갔던 영상이 뜻밖의 대박을 친 것이다. 폐교 체험까지는 쌔고 쌘 컨텐츠라 반응이 크진 않았다. 갑자기 코앞에 천장이 떨어지자 괜히 폐건물이 아니네요, 안 다쳐서 다행이죠ㅋㅋ하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이 황당함을 자아내긴 했지만 구독자들 사이에서나 이슈가 됐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소금의 뒤로 희미한 인영이 비쳤다. 폐교 체험 영상에 심령 비스무레한 게 잡혔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입소문을 탈만 했으나, 이어진 소금의 행보가 결정타를 날렸다. 이 겁대가리 상실한 유튜버가 팩트체크를 해보겠답시고 폐교를 재방문한 것이다. 소금은 한밤중에 손전등 하나 들고 건물 내부를 샅샅이 뒤지더니 건너편 과학실의 인체 모형 실루엣이 반사된 것 같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이 인간(=의문의 인영) 뭐지?'하는 마음으로 영상을 튼 사람들은 다 보고 나서 '이 인간(=전원우) 뭐지?'하며 홀린 듯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해버렸더란다.

 세봉산로17길 13길을 방문한 것도 '귀없다' 컨텐츠의 일환이었다. 폐교 체험으로 떠서인지 사람들은 소금에게 온갖 공포 체험을 시켰다. 폐병원 체험, 공포 게임 플레이, 공포 영화 리뷰, 혼숨 등을 무난히 클리어한 전원우는 구독자의 요청 중 하나였던 신점 보기를 실행하러 떠났다. 전원우는 의외로 타로나 사주 같은 운세 보기에 큰 거부감이 없었다. 진지하게 믿는 건 절대 아니고, 심심풀이쯤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재미 삼아 온 것이었는데.

 "죄송해요. 제가 너무 놀라가지고."

 "아냐. 괜찮아."

 이찬이 송구스럽게 고개를 떨궜다. 손에는 김이 폴폴 나는 팥차가 들려 있었다. 하필 또 팥이야? 얘가 이렇게까지 팥을 좋아했나 의문이 들었으나 구태여 묻진 않았다. 다만 팥차의 향이 풍겨올 때마다 봉실봉실 피어나는 학창시절의 추억을 무시하고자 애썼다. 찬아, 기억나니. 우리 겨울에 하교하면서 맨날 정문 앞에서 붕어빵 사먹었었는데. 너도 나도 팥붕파라 운명이라며 떠들었었지. 난 사실 가끔 슈붕도 먹고 싶었는데... 이렇게 조우하게 된 것도 팥으로 이어진 운명인 걸까.

 따위의 낭만적이랄까, 우습달까,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상념들을 금세 지워냈다. 이게 정녕 운명이 점지한 결과라면 너무 얄궂다. 제 몸보다 조금 큰 교복을 입고 있던 첫사랑 소년이 한복에 버선까지 갖춰 입은 장군보살로 나타나다니. 그나마 뻣뻣한 색동 한복이 아닌 하늘거리는 재질의 생활 한복인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전원우는 혼란스러웠다.

 "예약할 때는 다른 분이 받았던 것 같은데."

 "아. 장군님이셨을 거예요."

 "장군님?"

 "제가 모시는 분이세요. 세봉산 장군님."

 신이시여. 신이라곤 단 1초도 믿어본 적 없음에도 신을 찾는 전원우였다. 장군님이 들어오시면 목소리 톤도 확 바뀌고 그래서 아마 못 알아봤을 거예요. 이찬의 초연한 설명이 이어질수록 어금니가 꽉 깨물렸다. 그러니까, 간판에 써 계시던 세봉산 장군님께서 내 예약 전화를 받아주셨다고. 너한테 장군님 영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신다고. 네 이 작은 몸에, 세봉산 장군님이... 곧장 처리되지 않는 정보들이 편두 근처를 빙글빙글 맴돌았다.

 수많은 보살님들 중에 장군보살을 택한 건 미용실 사장님의 강력 추천 덕분이었다. 머리를 자르던 전원우는 사장님께 넌지시 여쭈었다. 혹시 괜찮은 무당집 아세요? 무작정 물은 건 아니었다. 그 미용실은 학생 때부터 자주 가던 곳이었고, 그래서 전원우는 사장님이 연초마다 사주에 신점에 온갖 신년운세를 보러 다니시는 걸 알고 있었다. 사장님은 기다렸단 듯 본인이 아는 무당들의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세봉산 장군보살은 그중 하나였다. 여긴 나도 아직 안 가봤는데, 신내림 받은 지 얼마 안 됐다 하더라고. 새삥 무당들이 신빨이 좋대요. 전원우는 찰칵찰칵 가위 소리 사이로 들어오는 사장님의 설명을 들으며 그 새삥 무당에게 가기로 결심했다. 이왕 돈 들이는 거 잘하는 사람이 낫겠다 판단했던 것이다. 신빨이 뭔지는 도통 모르겠다만.

 머리를 다 자르고 집에 돌아온 전원우는 전화할 때 보고 읽을 대본을 썼다. 그래도 온라인상에 공개되는 거니까 촬영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아무런 준비 없이 말하기란 내향인에겐 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만반의 준비가 무색하게도 장군보살님, 아니지. 장군님은 아주 쿨하셨다. 전원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어 와! 하고 냉큼 수락하시더란 것이다. 그래서 수월히 예약을 마치고서도 찝찝함이 남았으나 원래 이런 식인가 보다, 넘겼었다. 장군님 성격이 시원시원하셔서인 줄은 전혀 몰랐다.

 어쨌건 미용실 사장님 덕분인지, 장군님 덕분인지, 전원우는 무려 7년만에 첫사랑과 재회했다. 무릇 첫사랑과의 재회라 하면 달콤하게 들리기 마련이거늘 전원우는 당황스럽기만 했다. 전원우가 알기로 이찬은 이런 데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무당 될 사람이 어딨겠냐만은, 적어도 이찬은 아니었다. 왜냐면 이찬은 다른 꿈이 있었으니까. 전원우는 그 꿈을 위해 이찬과 헤어졌으니까.

 "너 연습생 됐다지 않았니."

 "됐었는데... 그렇게 됐어요."

 이찬이 팥차를 호록 들이켰다. '그렇게' 세 글자 안에 생략된 서사를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전원우도 무심히 세워뒀던 찻잔을 들어 입술을 붙였다. 덜컥 가슴이 무거워졌다.

 이찬은 전원우의 계기였다. 전원우는 이찬으로 인해 정과 사랑을 구분하는 법을 배웠으며, 예쁜 사람을 예쁘게 담아내는 법도 익혔다. 이찬을 처음 본 건 중3 가을 축제. 예나 지금이나 사람 많은 곳이라면 질색하던 전원우는 댄스 동아리를 하는 친구의 성화에 공연을 보러 강당을 찾았다. 그래도 의리는 충만하여 득시글한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앉아 핸드폰 카메라를 들었다. 드디어 무대 위에 친구가 올라왔고, 녹화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그날 갤러리에는 친구 대신 이름 모를 남자애의 직캠이 남았다. 처음 10초간은 당연스럽게 친구를 좇던 카메라가 어느 새부턴가 옆에 있던 아이를 따라가고 있었다. 이마에 파란색 헤어밴드를 두른 그 아이는 입꼬리를 끌어 당겨 웃으며 관객을 훑어보다가 전주가 나오자마자 재빨리 자세를 바꿔 섰다.

 ... 어? 전원우는 저도 모르게 육성으로 의문사를 내뱉었다. 무대를 향해 돌아선 그 아이의 눈빛이 매섭게 돌변해 있었다. 아까 귀엽게 웃던 얼굴은 어디 갔냐는 듯 입꼬리도 서늘히 내려간 채였다. 본격적으로 음악이 시작되자 그 애는 박자에 맞추어 쉼 없이 움직였다. 하늘로 팔을 쭉 뻗으면 짧은 머리카락이 미미하게 물결쳤고, 단단히 몸을 받친 허벅지에는 힘이 바짝 들어갔다. 무엇보다 시선을 사로잡은 건 역시나 표정이었다. 그 애는 노랫말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표정을 휙휙 바꾸어댔다. 잠깐 가사가 빌 때면 다음 동작을 떠올리는 듯한 기색이 얼핏 떠올랐는데, 그 말인즉슨 그 애의 춤과 표정은 모두 철저한 계산 하에 만들어졌다는 거다. 하지만 모든 동작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타고 이어져 꼼꼼히 뜯어보지 않는 한 티나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연습량이 상당했던 모양이었다. 물론 위 분석들은 영상을 골백번 돌려보다 나중에서야 깨우친 것으로, 당시의 전원우는 입을 떡 벌리고선. 와, 진짜 예쁘다. 그런 생각이나 하고 말았다.

 그 무대는 전원우에게 충격적인 잔상을 남겼다. 전원우는 도서실-전원우는 도서부였고, 도서부도 나름대로 축제에 참여하고 있어 부스를 지킬 인력이 필요했다-로 돌아가는 내내 핸드폰 화면에 얼굴을 콕 박고 영상을 돌려봤다. 희한했다. 이미 열 번은 봤을 텐데도 계속 보고 싶었다. 당시의 전원우는 자신의 기행을 이해하지 못했다. 첫눈에 반해서, 라는 이유를 곧장 떠올리기엔 열여섯은 어린 나이였으니. 그런데 도서실 앞 식수대에 익숙한 파란색이 보였다. 그 아이였다. 아까 무대에서 춤추던 그 아이가 식수대에 입을 대고 꼴깍꼴깍 물을 마시고 있었다.

 헉. 전원우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그새 환복했는지 아까 입고 있던 민소매 티와 반바지 대신 흰 반팔 티와 교복 바지 차림이었지만, 이마에 두른 파란 밴드만은 벗지 않은 채였다. 마치 방금 보던 영상에서 뿅하고 튀어나온 것만 같았다(당연하다. 동일인물이니까). 거의 온 얼굴로 물을 마신 아이는 푸르르 머리를 흔들어 얼굴에 묻은 물기를 털었다. 전원우는 제자리에 우뚝 서서 정신 놓고 그 풍경을 쳐다보았다. 가까이서 보니까,

 이름이 뭐야?

 더 예뻐서. 그래서 무심코 말을 걸어버렸다. 깜짝야. 눈에 띄게 흠칫 놀란 아이가 중얼거렸다. 스르륵 흘러온 시선이 모나게 일그러졌다. 아마 경계했던 거겠지만, 이미 홀딱 반해버린 전원우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뵈는 건 있었지만 사리분별이 안 됐다고 할까. 아이는 한참 의아하게 쳐다보다가 손등으로 제 입술을 쓱 훔쳤다. 그리고 물었다.

 누구세요?

 바야흐로 첫사랑의 시작이었다.

 "형은 어떻게 지냈어요?"

 "나 유튜브해."

 "형이요?"

 이찬이 의문스럽게 되물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반응이었다. 하기사, 지금은 생존형 사회성이라도 끌어다 쓸 줄 알게 되었다만은 이찬과 사귈 때의 전원우는 어수룩하기 짝이 없었다. 어찌저찌 사귄 게 기적일 만큼.

 열여섯 전원우는 소심한 천성을 거스르고 냅다 직진했다. 물론 전원우 딴에나 직진이었고 남들이 보기에는, 글쎄. 전원우의 애정 표현은 다소 미온수 같은 구석이 있었다. 한 번 신경쓰기 시작하면 선연하기 그지 없지만, 존재감이 크지 않아 애초에 알아채기부터 힘들다고 할까.

 그래서 이찬은 알아챘냐. 알쏭달쏭했다. 전원우가 웃으면 따라서 활짝 웃긴 했는데, 애정의 근거라 들기는 좀 미약했다. 친한 듯 어색한 듯 이상한 선후배 관계가 이어지던 어느 날, 이찬이 제 동네 놀이터로 전원우를 불러냈다. 둘의 애정전선만치 미적지근한 날이었다. 가벼운 춘추복 차림의 이찬과 달리 추위를 타는 편인 전원우는 집업까지 꼭꼭 챙겨입고 쫄랑쫄랑 나왔다. 전원우는 벤치에 앉은 이찬을 보자마자 히히 웃으며 옆에 앉았다.

 형.

 응, 찬아.

 저 좋아하죠.

 어, 어떻게 알았어?

 진심으로 놀란 전원우가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그 자체로 고백해버린 셈이었다. 이찬이 어이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몰라요. 언제든 뒤돌면 형이 있는데.

 형 맨날 제 주변 빙글빙글 돌잖아요, 인공위성처럼. 인공위성 같았니. 네, 글구 저만 보면 웃고. 그게, 너만 보면 웃음이 나서. 참나... 그럼 저희 사귀어요. 응 그래. ... 뭐? 전원우는 이어지는 근거들에 추임새인지 변명인지 모를 걸 넣다 말고 한 번 더 펄쩍 뛰었다.

 사귀자고요. 저도 형 좋아하니까.

 용케도 이찬은 눈치챘던 것이다. 전원우식의 은은한 애정을. 그리고 더 용케도, 이찬도 전원우를 좋아했다. 상상도 못 한 상황에 벙쪄버린 전원우를 멀찍이 보던 이찬이 벤치에 떨어진 손을 덥썩 잡았다. 전원우는 이번엔 펄쩍 뛰지 않았다. 심장이 대신 펄쩍펄쩍 잘도 뛰어주고 있었으므로.

 얼렁뚱땅 시작되었으나 알콩달콩한 연애였다. 여름이면 쌍쌍바 나눠 먹고 겨울이면 붕어빵 나눠 먹었다. 쉬는 시간마다 몰래 뒤뜰에서 만나 손잡았다. 연애가 순탄히 이어질수록 전원우의 하드엔 이찬 직캠이 쌓여갔다. 열성적인 댄스 동아리원 이찬은 근방 학교 축제들을 부지런히 순회했고, 이찬의 남자친구이기 이전에 팬인 전원우는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이찬을 찍었다. 영상을 찍을 때나 편집할 때나 복습할 때나 전원우의 감상은 같았다. 와, 진짜 예쁘다.

 이찬이 거짓말을 할 때면 한쪽 눈살을 찡긋거리는 귀여운 습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쯤일 거다. 잔잔하고 길게 이어지던 둘의 관계에 변곡점이 찍혔다. 이찬은 무대에서 춤추는 걸 너무 좋아한 나머지 더 큰 무대에 올라가고 싶어 했다. 그래서 크고 작은 연예 기획사들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걸 바라보는 전원우는 신기하기만 했다. 우리 찬이가 진짜 연예인이 되는 건가? 지극히 평범한 삶을 추구하는 전원우로서는 많은 사람 앞에 서겠다는 이찬의 목표가 이해가 안 갔지만, 어쨌건 형이 찍어준 영상 덕분에 1차 붙었다고 방방 뛰는 이찬은 사랑스러웠다. 일단은 좋아하는 애의 꿈에 조금이나마 일조했음에 뿌듯해하기로 했다.

 이찬은 끝내 작은 기획사의 오디션에 합격했다. 처음에는 그저 기뻤다. 합격 소식을 전하는 이찬은 언제보다도 행복해 보였으니까. 그런데 이찬이 고등학교에 올라가며 균열이 생겼다. 이찬은 방송고에 진학했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스케줄로 인한 결석을 인정해주지 않아서 곤란하다나. 무릇 세봉2동 주민이라면 세봉초-세봉중-세봉고 코스를 밟는 게 정석이다. 애진작 세봉고에 들어가 이찬의 입학을 기다리고 있던 전원우로서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그치만 이해했다. 이찬을 위한 일이라면 이해 못 할 이유가 없었다.

 몸이 멀어지고, 연락이 뜸해졌지만 이별을 결심할 사유까지는 되지 않았다. 둘의 연애는 워낙 슴슴했으니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현실과 몽상의 경계에 걸친 열아홉 전원우의 마음. 전원우는 어렸지만, 제 사랑이 이찬의 미래에 불필요한 걸 넘어 방해까지도 될 수 있음을 이해하기 충분한 나이였다. 남자친구가 있는 남자 아이돌 같은 건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때도 전원우는 겁이 없었으나 이찬과의 관계에서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택했다. 몽상이 아닌, 지긋지긋한 현실을.

 오랜만에 데이트를 하고 이찬을 집에 데려다주던 길이었다. 소속사 사장이 가정의 달이라고 연습생들에게 휴가를 줬댔다. 휴가에 데이트에 겹경사로 신난 이찬은 내내 들떠 있었다. 반면 전원우는 마음이 복잡해 웃기조차 힘겨웠다. 이찬을 볼 때마다 굳게 다잡은 결심이 산들산들 흔들렸다. 하루종일 타이밍을 재다가, 데이트를 마치기 직전에야 용기를 냈다.

 찬아.

 응?

 나지막한 부름에 이찬이 뒤돌았다. 맑게 웃는 얼굴이 찬란했다. 너무도 찬란해서, 전원우는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 우리 헤어지자.

 직설적이고 간결한 통보였다. 고개를 숙인 건 마지막 비겁. 푹 떨어진 눈앞에 성큼성큼 그림자가 드리웠다. 다가온 이찬이 전원우의 손을 잡았다. 힘주어 잡은 손끝이 바들바들 떨렸다.

 왜요?

 전원우가 고개를 더 깊이 수그렸다. 이번엔 비겁이 아닌, 제 어린 연인에 대한 사죄를 담아.

 이찬은 우리가 왜 헤어져야 되는지 침착하게 물었다. 전원우는 침묵했다. 이유라도 알려달라며 가슴팍을 퍽퍽 때려도, 같은 물음만 반복하는 목소리에 점차 울분이 실려도, 멱살을 쥐고 제발 무슨 말이라도 해달라 애원해도. 그럼에도 전원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이유를 말했다가 이 아이가 자책하거나 꿈을 포기할까 겁이 났다. 둘 중 하나가 포기해야 한다면 잃을 게 이찬뿐인 자기가 나았다. 

 형 후회하게 해줄게요.

 이찬은 기껏 뱉어낸 독기 찬 말이 무색하게 전원우의 품에 폭삭 쓰러져 안겼다. 그리곤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버릇처럼 이찬을 쓰다듬으려 올라간 손이 허공에 머물다 툭 스러졌다. 응, 꼭 그래줘. 내가 감히 다가갈 수도 없을 만큼 멋진 사람이 되어서 널 놓은 걸 죽을 때까지 후회하게 해줘. 이것도 말할 수 없었다. 벌써 후회하고 있다고도 말해버릴 것 같아서.

 전원우는 품 안에서 들썩이는 어깨를 안아주지도, 늘 내려보았던 정수리도 눈에 담지 못했다. 그저 텅 빈 정면만을 바라보며 가슴팍을 적시는 눈물의 무게를 가늠했다. 그때 알았다. 여기 거기구나. 우리가 처음으로 손잡았던 놀이터.

 집에 돌아온 전원우도 베개에 얼굴을 묻고 소리 죽여 울었다.

 첫사랑의 종말은 남달리 절절했어도 이젠 다 지난 일이다. 한때는 세간의 이별 노래에 일일이 이찬을 대입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었다. 남몰래 청승 떨던 시기를 지나 어느덧 어떤 사랑 노래도 남 이야기마냥 흘려넘기는 스물일곱 청년으로 자라났다. 그건 성장이라기보다 변신에 가까웠다. 결과적으로 아주 뜬금없는 어른이 되었다는 점에서.

 "많이들 알던데."

 "아, 제가 내림 받고 사람들이랑 연락이 많이 끊겨서요."

 더 무거워질 줄 몰랐던 가슴에 추가 하나 더 얹혔다. 막상 이찬의 목소리는 아주 담담했다만.

 구질구질하지만 전원우는 이별 후에도 이찬을 찾았다. 기다렸다는 말이 더 적확할까. 오히려 너무 좋아했기에 떠난 전원우는 이찬이 자주 그리웠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TV에 이찬이 나오지 않았다. 검색창에 이름을 넣어봐도 깜깜무소식이었다. 심지어 중학교 동창 중 누구도 이찬의 소식을 몰랐다. 모든 게 그날 놀이터에서 끊겨 있었다. 거짓말처럼.

 스물두 살, 2월 11일. 술을 걸치고 집에 들어가던 전원우는 주머니를 더듬어 핸드폰을 꺼냈다. 흐릿한 이성이 말릴 새도 없이 주소록을 내리던 엄지가 '찬이'를 찾아냈다. 뚜르르- 뚜르르-. 신호음은 몇 번 가지 않고 끊겼다. 대신 없는 번호라는 안내가 돌아왔다. 한 번 더 걸어 봤자 같은 상황만 반복될 뿐이었다. 수신자 없는 발신 기록만 남은 통화 목록을 보던 전원우는 그 자리에 털썩 쭈그려 앉았다. 지난 추억까지 증발해버린 듯한 공허감이 몰려왔다. 찬아, 대체 어디 간 거니. 그때 전원우는 3개월 정도 담배를 피웠다.

 그런데 그게 다 장군님 때문이었다니. 라고만 말하면 조금 우습게 들리지만, 전원우는 속상했다. 이찬은 저에게만 사랑스럽지 않았다. 어딜 가나 호탕하게 웃으며 분위기를 이끄는 분위기 메이커를 역임하면서도 다른 이를 섬세히 배려할 줄 알아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성정이었다. 그런 네가 무대 위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길 꿈꿨었는데. 너의 꿈은 곧 나의 꿈이기도 했으니까. 근데 네가 무대랑도, 사람이랑도 멀어졌다니. 혼자가 되었다니. 심란한 기분에 얹힐 리 없는 찻물이 목구멍에 턱 걸렸다. 그늘진 안색을 눈치챘는지 이찬이 선선히 웃어 보였다.

 "형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요. 근데..."

 "..."

 "그러지 마요."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던 상념이 뚝 잘려나갔다. 이건 신의 힘에 기대지 않은 한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추측이다. 함부로 넘겨짚어 동정하지 말라는 경고를 포함한.

 그렇다. 어린 기억을 대입하여 무작정 안쓰러워하기에는 전원우는 이찬이 지나온 7년을 모른다. 지금의 이찬은 그때의 이찬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그때와 지금의 전원우가 다르듯. 멋대로 이찬의 생을 불행하게 단정해봐야 사랑하는 이의 꿈을 위해 '희생'한 스스로를 억울해하는 꼴밖엔 되지 않는다. 무례를 범했다는 민망함에 목이 탄 전원우가 그새 식은 팥차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이찬은 한쪽 무릎을 세우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동시에 눈초리가 날카롭게 올라갔다. 왠지 움찔, 어깨가 솟았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요. 요새 어깨가 쑤시고, 머리가 지끈거리고 그러지 않아요?"

 "... 그건 현대인이면 다 그렇지 않나."

 "아니, 요새 더 그렇지 않냐구요. 몸이 안 아플 리가 없는데?"

 그런가. 잘 모르겠다. 공시 생활과 영상 편집으로 다져진 쇠약한 신체는 통증에 무감했다. 어깨 쑤시고 머리 지끈거린 지 몇 년은 된 것 같은데... 물론 전원우가 비과학적 진단을 믿지 않는 탓도 있었다. 첫사랑 말이라고 덜컥 믿어버리기엔 불신이 깊었던 것이다.

 이찬은 미간을 잔뜩 좁히고 전원우의 등 뒤를 연신 기웃거렸다. 분명 텅 비어 있을 텐데도 뭔가를 바라보는 듯 시선이 또렷했다.

 "최근에 학교 같은 곳 가셨어요?"

 "학교?"

 "형 등에 뭐가 붙어 있어요. 교복 같은데, 우리 학교 건 아니고."

 댕-. 얼척 없는 상황에 쓰이는 효과음 같은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이게... 뭔 소리야?

 "팥도 그래서 던진 거거든요. 형한테 붙은 거가요, 꽤 커요. 어쩌다 이런 게 붙었는지 모르겠네."

 차분한 설명이 이어졌다. 시선은 여전히 붕 떠 있었다. 전원우는 멍청히 입을 벌리고 앉아 제 발목이나 매만졌다. 지나치게 황당무계한 소릴 들으니 웃음조차 나지 않았다. 그럼 아까 팥 던진 게 나한테 남은 앙심 때문은 아니었구나. 상황을 이해하기를 포기한 나머지 이딴 생각이나 하며 안도하기에 이르렀다.

 "뭐, 귀신... 이 붙었다는 거야?"

 "쉽게 말하면 그렇죠."

 "난 귀신 같은 건 안 믿어서."

 딱 잘라 말하자 이찬의 입매가 찌그러졌다. 꼭 위쪽 변이 비스듬한 사다리꼴 같은 모양새였다. 드디어 전원우의 얼굴로 돌아온 두 눈에 그럼 여긴 왜 왔어, 가 써 있다.

 "귀신이 없으면 제가 왜 이러고 살겠어요."

 진심으로 황당하다는 투였다. 전원우가 양 입술을 합, 감쳐 물었다가 파, 터뜨렸다. 어디선가 세봉산 장군님의 꾸짖음이 들리는 듯했다. 이 어리석은 녀석아. 무례했다고 반성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같은 실수를 거듭하느냐. 아니 근데 장군님, 이걸 어떻게 바로 받아들인단 말입니까. 말이 되냐고요. 장군님께 간택 받은 제 첫사랑께서 저한테 귀신이 업혀 있다시는데. 게다가 저는 한평생 귀신은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고 살아왔는데요. 전원우가 상상 속에서나마 장군님께 거칠게 항변하는 동안 이찬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구석에 위치한 나무 서랍을 뒤적이다 자리로 돌아온 이찬의 손에 노란 종이 뭉치가 들려 있었다. 저거 어디서 많이 본 디자인인데. 설마?

 "부적 쓰셔야 돼요. 제가 웬만하면 강요 안 하는데, 형은 무조건 쓰셔야 돼요."

 "부, 부적?"

 "네. 잘 때도 지니고 계셔야 되구요. 이것도 사실 임시방편이에요. 영이 더 힘이 세지지 않게 억누르는 거라고 보시면 돼요."

 이찬은 전원우의 대답도 듣지 않고 고무줄로 묶인 종이 뭉치에서 한 장을 뽑아 펼쳤다. 탁자에 굴러다니던 붓펜을 이로 물곤, 뽕-! 뚜껑 따이는 소리가 경쾌했다. 전원우는 바쁘게 움직이는 이찬을 물끄러미 보다 넌지시 물었다.

 "얼만데?"

 "..."

 "..."

 이찬의 손이 덜커덕 멈췄다. 잠시간의 침묵.

 "지인 할인 해드릴게요."

 하. 어쩔 수 없이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 돈은 받는구나. 우리 찬이 야무지네... 따위의 생각보다 앞선 감상이 있었다.

 "지인..."

 전원우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지인이라. 우릴 지인이라 할 수 있나.

 이별 후 둘은 우연으로도 마주치지 못했다. 학교가 멀어진 탓이었다. 헤어진 사이에 연락을 해볼 수도 없는 일이라 그저 잘 지내겠거니, 어렴풋한 희망을 던질 뿐이었다.

 둘이 정말 마지막으로 만난 건 전원우의 고등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정신없이 친구들과 사진을 남기던 전원우는 등이 콕 찔리는 감각에 고개를 돌렸다. 작은 꽃다발이 불쑥 시야를 채웠다. 꽃다발 너머로 눈시울이 벌겋게 물든 이찬이 입술을 꼭 깨물며 서 있었다.

 전원우는 멍하니 꽃다발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받아 들었다. 꽃다발을 잡은 작은 손을 부드럽게 그러쥐면서.

 고마워. 잘 지냈어?

 이찬이 고개를 푹 떨궜다. 울음을 삼키는 것 같았다. 아이고, 울리려고 물은 건 아니었는데. 또 울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같이 사진 찍을래?

 ... 아니요.

 울먹이는 목소리가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빠른 열넷과 열여섯에 만나 빠른 열일곱과 열아홉에 헤어진 둘은 이별하는 법을 잘 몰랐다. 미처 끝맺어지지 않은 감정의 잔해가 양쪽 모두에게 남아 있었다. 그건 각자의 몫으로 넘기기엔 다소 묵직했다.

 찬아. 저녁에 잠깐 볼 수 있어?

 그래서 제안했다. 서로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자고. 이찬이 얕게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은은한 꽃향기가 올라왔다.

 친구들과 식사를 마친 전원우는 이찬을 만나러 갔다. 장소를 약속하지 않았으나 발이 자연스레 놀이터로 향했다. 늘 함께 앉던 벤치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털썩 주저앉은 지 오래 지나지 않아 이찬이 왔다. 이찬 또한 자연스레 전원우의 옆에 앉았다. 오랫동안 나란히 앉아 흰 입김만 뱉어낸 끝에, 이찬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형이 맞았어요. 우린 헤어져야 했던 것 같아요.

 ...

 그래도 난 형 좋아해요.

 이찬은 언제나 솔직했다. 둘이 손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그 솔직함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손을 놓자고 솔직히 말한다. 아니. 손을 놓더라도 자의가 아님을 서로 알아주자고 말한다. 결국 전원우도 솔직해지고 말았다.

 나도 좋아해. 미안해.

 이찬이 고개를 돌려 전원우를 바라보았다. 전원우도 이찬을 보았다. 서로를 응시하는 눈이 검게 일렁였다. 전원우가 조심스럽게 이찬의 뺨을 감싸 쥐었다. 이 뺨을 적신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던 게 못내 후회로 남았었다. 뺨에 닿는 미지근한 체온을 느낀 이찬이 눈을 감았다. 전원우도 눈꺼풀을 내렸다. 천천히 고개를 기울이며 이찬에게 다가갔다.

 과거를 적신 눈물도, 미래의 기약도 없는 입맞춤은 소금처럼 짭조름하지도, 팥처럼 달콤하지도 않았다. 우습게도 그 담백한 입맞춤이 전원우와 이찬의 첫키스였다. 또한 마지막 키스이기도 했다.

 찬아. 네가 내 모든 처음이었잖아. 나는 너의 모든 처음이었고. 그런 우리를 단순 지인이라고 퉁칠 수 있어? 따져 묻고 싶었다. 그치만 일단 모른 체했다. 이찬도 철저히 모른 체하고 있었으므로.

 열심히 부적을 적는 이찬 앞의 전원우가 다시 찻잔을 들었다. 이미 깨끗이 빈 잔은 찻물 몇 방울만을 흘려주었다. 왜일까, 입에 감도는 팥향이 씁쓸한 것도 같았다.

 이찬은 부적을 건네며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니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리고 뭔갈 요구하는 눈빛으로 전원우를 빤히 보았다. 나 현금 없는데. 고백하기 무섭게 웬 코팅지가 탁자 위로 스윽 밀려왔다. [xx은행 2xx-11x0-x526 / 예금주: 이찬]. 여기로 3만원만 보내주세영. 시세를 조금도 알지 못함에도 선심 쓰듯 말하는 목소리 톤에서 제법 싸게 해준 편이란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전원우는 얌전히 3만원을 부쳤다, 토스로다가.

 집에 돌아온 전원우는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순식간에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졌다. 거기다 겨우 잊었던 옛날 일들까지 몰아쳐 왔고. 기껏 장군님께 받은 승낙이 무용하게도 영상도 따지 못했다. 잃은 건 3만원, 얻은 건 두통과 뒤숭숭한 마음. 그래도 첫사랑의 근황을 알았으니 소득이 아예 없진 않으려나. 전원우는 팔을 높이 들어 아까 받은 부적을 휙휙 돌려보았다. 형광등 빛이 투과되며 반투명해진 종이 위로 붉은 한자-로 추정되는 글자-만 또렷하다. 나참, 이런 종이 쪼가리가 무슨 쓸모가 있다는 건지. 코웃음을 칠라치면 자꾸만 이찬 특유의 단단한 눈망울이 이리저리, 둥둥. 결국 전원우는 베갯잇에 부적을 쑤셔 넣었다. 아무래도 아직 이찬에게 잡혀 사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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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금

 3분 전

 개인 사정으로 이번주는 쉬어갑니다. 다음주에 뵈어요.

 '귀없다' 채널 개설 이래 최초로 펑크를 냈다. 이번주 업로드 예정이었던 컨텐츠가 공중분해되어 방도가 없었다. 썰로나마 후기를 남겨볼까 시도해보았지만 실패했다. 이 말도 안 되는 사연을 어디서부터 걸러내야 할지 모르겠는 거다. 소금이 좀 더 몰염치한 유튜버였다면 '신점 보러 갔다가 첫키스 상대 만난 썰 푼다' 같은 어그로성 제목으로 조회수나 쪽쪽 빨아먹었겠으나, 그러지 않았다. 전원우는 돈에 미쳐 첫사랑을 팔아먹을 정도로 가오 없는 인간이 아니었다.

 한 주 휴방해서 남는 시간 동안 조사를 했다. 갑자기 뭔 조사를 했냐면, 이찬 뒷조사는 아니고. 무속 신앙을 조사했다. 앞서 말했지만 전원우는 신점을 오락거리 정도로 여겼기에 무속 문화에 무지했다. 이건 전원우만의 문제는 아니겠다. 무당들이 어떻게 사는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전원우는 서치창에 '무당', '신점', '굿', '신내림', '샤머니즘' 등 떠오르는 관련 단어는 다 갖다 넣었다. 검색 결과창에 줄줄이 뜨는 용어들부터 생경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가리지 않고 읽어댔다. 심지어 대졸 이후 쳐다보지도 않았던 Dbpia에 들어가 돈 주고 논문도 다운 받았다. 일주일간 섭취한 텍스트가 공시 생활 동안 읽은 글자 수에 버금가는 듯했다.

 왜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알아봤냐. 이찬이 그랬으니까. 그러지 마요. 그 다섯 글자의 함의를 유추해보자면 이렇겠다. 불쌍한 사람 취급 마요. 형이 뭘 안다고 그래요. 형은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살고 있는지 하나도 모르잖아요.

 근데 찬아, 네가 안 알려줬잖아. 봐도봐도 이해가 안 가는 소리들을 억지로 읽다 보면 억울한 마음이 불쑥 솟긴 했다. 근데 어쩌겠는가. 전원우가 이찬을 모르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알고 싶다. 그렇다고 직접 물어볼 순 없다. 그럼 뭐 어떡해, 간접적으로나마 배워볼 수밖에.

 그런데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말이 좋아 종교인이지, 이거 그냥 사기꾼 아닌가 싶다(장군님 들으시면 무엄하다 호통치시려나). 원인 모를 병증을 앓다가 신내림을 받고 씻은 듯이 나았다는 증언들은 신기하긴 했다. 그래도 여전히 께름칙했다. 왜 그게 신을 받은 덕분이라고 철썩같이 믿지? 물론 용하다는 병원 다 찾아가도 이상 없다는 소견만 들어왔다면 그나마 의심되는 쪽으로 기울 순 있겠다. 따뜻한 심장, 차가운 이성을 가진 전원우는 수많은 무당들이 신 덕분이라 믿어야만 했던 심정을 가슴으론 이해했다. 근데 차가운 머리가 자꾸 딴지를 걸었다. 희귀병일 확률은? 너무너무 희귀해서 세상에 밝혀지지도 않은 병일 가능성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존재가 자길 받아들일 때까지 후드려 팼다는 주장보단 그쪽이 덜 허무맹랑하지 않나? 의아해하던 전원우는 퍼뜩, 이찬을 떠올린다.

 너도 아팠니.

 전원우가 접한 정보들 중에 맘 편히 믿을 수 있는 얘긴 단 하나였다. 모든 무당들이 기구하게 살지는 않는단 것.

 그런데 며칠 뒤. 과학적 근거가 부재한 주장이라면 일단 불신하고 보는 우리의 황소고집 전원우가 바로 그 원인 불명의 병증을 앓게 됐다. 어깨가 쑤시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찬의 말과 정확히 맞물리는 증상에 혹시? 하는 마음이 안 들었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꿋꿋하게 요새 컴퓨터를 많이 봐서 그런가보다 넘겼다. 타이레놀 먹으면 낫겠지. 화면을 멀리하면 낫겠지. 밥을 잘 먹으면 낫겠지. 잠을 잘 자면 낫겠지. 활자를 덜 보면 낫겠지...

 어림 없는 소리. 암만 타이레놀 쏟아붓고 누워있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병증은 완화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되기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꿈자리도 뒤숭숭했다. 밤에는 통증에 시달리느라 거의 자지 못했고 낮에 잠깐씩 까무룩 눈 붙였는데, 그때마다 항상 같은 꿈을 꿨다.

 ... 빛 하나 들지 않는 암실에 홀로 덩그러니 서 있는 자신이 제3자의 시선으로 보인다. 꿈속의 전원우는 여기가 어딘가 두리번거린다. 당장 어제도 봤던 곳임에도, 매번.

 멀리서 어스름한 빛이 비친다. 홀린 듯 빛을 따라간다. 빛의 끝에 작은 인영이 서 있다. 팥죽색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의 뒷모습.

 누구세요?

 어제도 물었던 질문을 또다시 던진다. 아이는 언제나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운다. 흑흑흑 서럽게도 흐느낀다. 엉엉 울면서도 무어라 계속 중얼거린다. 흑흑흑. 중얼중얼중얼. 흑흑흑. 중얼중얼중얼. 전원우가 눈살을 찌푸린다.

 전원우는 꿈에서 아이를 열 번 넘게 마주쳤다. 그럼에도 그 아이의 말을 딱 두 마디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조심스레 아이에게 다가간다. 발을 떼자마자 아무것도 없던 땅에서 붉은 불꽃이 확 치솟는다. 불길은 순식간에 번져 꿈속 세계를 뒤덮는다. 화마가 아이를 집어삼킨다. 안면에 덮쳐오는 열감이 생생하여 팔로 낯을 가린다. 흑흑흑,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아이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진다. 비명처럼, 경적처럼, 폭죽처럼. 끝도 없이 커져 끝내 굉음이 된다. 전원우는 귀를 막으며 주저앉는다. 고막이 찢어질 것 같다.

 그때 고개를 들면, 이쪽으로 돌진해오는 불길. 붉게 물드는 시야에 전원우가 숨을 삼킨다. 도망칠 새도 없다. 온몸이 뜨거워진다. 발끝부터 뜨겁게, 뜨겁게 타오른다. 그렇게 전원우는...

 "헉."

 잠에서 깬다. 눈을 뜸과 동시에 입에서 가쁜 숨이 쏟아진다. 침대 시트는 전원우의 몸 선을 따라 축축하게 젖어 있다. 가슴은 돌덩이라도 얹힌 양 무겁다. 다급하게 핸드폰을 보면 잠든 지 몇 분 지나지도 않은 시각. 후-. 눈을 감고 숨을 고른다. 펄쩍 뛰었던 심박이 차츰 가라앉는다. 온몸을 흠뻑 적신 땀이 식는다. 좀 진정된 듯싶어 몸을 일으키면.

 "윽."

 다시금 찾아드는 두통.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다. 둥 둥 둥 둥. 북처럼 골이 울린다. 누가 위에서 머리를 쥐어짜는 것 같다. 몸을 둥글게 말고 머리통을 부여잡는다. 호흡이 다시 밭아진다. 몇 시간을 내리 앓다 지쳐 잠들면 또 꿈을 꾸고, 그 아이를 만나고. 반복.

 이러니까 뭘 할 수가 없는 거다. 전원우의 일상은 완전히 중지되었다. 앉아 있기조차 곤란해 밥도 거의 먹지 못했다. 한 번은 오밤중에 너무 아파서 침대 시트를 쥐어뜯다가 파들거리는 손으로 119를 불렀다.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 실려 가 두 시간 동안 팔에 바늘 꽂고 있었다(그 와중에 검사는 안 받았다. 전원우의 잔고로는 응급 검사비가 감당이 안 됐다). 수액 덕분인지 간만에 꿈도 안 꾸고 숙면을 취했다. 응급실을 나서는데, 웬일로 머리가 개운한 거다. 이제 다 나았는가 보다, 현대의학 만만세다... 싶었거늘. 기대를 비웃듯 현관에 발을 디디자마자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파왔다. 아니, 더 심해졌다. 무슨 복수라도 하는 것처럼.

 "아파... 너무 아파..."

 아파서 정신이 나가버린다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전원우는 듣는 귀 없는 허공에다 자꾸 말을 걸었다. 남들이 보면 딱 미친 놈 꼴일 거 알면서도 그랬다. 이 아픔을 어떻게든 밖으로 뱉어야만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흑흑흑...

 "하..."

 듣는 귀가 아예 없진 않은 것 같아서. 전원우는 머리를 받친 베개를 구부려 귀를 틀어막았다. 이상하다. 여긴 꿈에서 매일 가던 그 캄캄한 공간이 아닌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건 내 방 천장이 맞는데, 자꾸 어디선가 꿈에서 듣던 것과 흡사한 흐느낌이 들려 온다. 전원우가 눈만 뙤륵 굴려 방 내부를 살폈다. 역시 아무도 없다. 한숨이 나온다. 하도 못 잤더니 이제 꿈과 현실이 분간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나 보다. 전원우는 조금이라도 자볼 셈으로 억지로 눈꺼풀을 내리 닫았다. 물론 곧바로 두통이 밀려오는 바람에 실패했다.

 "안녕하세요. 소금입니다."

 통증이 최악으로 치닫은 날이었다. 평일 초저녁이라 몇 명 안 들어올 줄 알았더니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채팅창이 물음표로 가득 찼다. [웬일???]처럼 의문스러워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럴 만했다. 이게 소금의 첫 라이브 방송이었으니. 전원우는 전업 유튜버답지 않게도 말주변이 없었다. '귀없다'의 깔끔한 영상들은 어절과 어절 사이 여백을 무참히 잘라내는 기적의 편집으로 살려낸 결과물이었다. 전원우도 자신의 한계를 잘 알아서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라이브를 할 생각은 없었는데.

 '귀없다'의 휴방이 2주를 넘어가고 있었다. 앉아 있기조차 버거운데 영상을 찍고 편집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뒤늦게라도 공지를 남겨두기엔 이 병증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기약이 없었다. 대강 텍스트로만 무기한 휴방 공지를 때리기는 또 영상을 기다리는 구독자-설령 몇 안 되더라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도 같았고. 그래서 라이브를 해보기로 한 것이다, 얼굴 까고 말하면 그나마 진정성이라도 느껴질까 싶어서. 그렇다. 소금은 새끼 유튜버치고는 직업 정신이 투철한 편이었다.

 그러나 아픔은 의지와 무관했다. 감히 중력을 거스른 걸 징벌하듯 침대를 벗어나자마자 온몸에서 식은땀이 솟았다. 거의 바닥을 기어서 의자에 도달한 전원우는 안경을 썼음에도 자꾸만 흐려지는 시야를 힘겹게 붙잡고 라이브를 켰다.

 "말씀드릴 게 있어서 잠시 켰어요."

 ─... 도와주세요...

 머릿속에 사이렌을 튼 것처럼 골이 웅웅 울렸다. 물 한 방울 못 마셔 말라 비틀어진 목구멍이 쩍쩍 갈라진 소리를 토해냈다. 추운 건지 더운 건지 몸이 벌벌 떨려왔다. 시야가 번쩍번쩍 점멸했다.

 그리고 불쑥 귀에 꽂히는 목소리. 꿈속 그 아이다. 전원우는 어느 때보다 선명히 울리는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자꾸만 흔들리는 고개를 고정할 필요를 느꼈다. 그러나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이마는 미끌거렸고, 지탱하는 손마저 위태롭게 떨렸다. 일단 정신을 다잡고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에 신점을 보고 왔습니다. 거기서 저한테 교복 입은 영혼이 붙어 있다고 그랬는데, 그 후로 몸이 좀 안 좋았어요. 그래서 요새 업로드를 못 했습니다."

 ─뭐야? 얘들아, 어딨어? 다 집에 갔나? 에이, 좀 깨워주지. 어? 문이 안 열려. 잠겼나? 지금 몇 시지? 어라? 수위 아저씨 계신가? 안 계시면? 그럼 나 어떡해? 핸드폰... 꺼졌어. 어떡해.

 어떡해어떡해어떡해어떡해어떡해어떡해어떡해

 잠깐만.

 이게 무슨 냄새야?

 어디선가 솟은 탄내가 몸을 덮쳐온다. 짙어진 공기가 어깨를 짓누른다. 화면 속 얼굴이 기괴하게 울렁거린다. 귀가 먹먹하고, 팔다리가 뽑힐 듯이 아프다.

 아이는 운다. 흐느낀다. 엉엉 운다. 울부짖는다.

 ─살려줘도와줘나살고싶어무서워어두워요깜깜해요여기가어디야모르겠어아무것도안보여엄마아빠살려줘선생님도와주세요연기가올라와요숨이안쉬어져어지러워목아파앞이안보여발밑이뜨거워눈따가워더워내목소리아무도안들려요밖에아무도없어요저좀구해주세요저여기있어요꺼내주세요꺼내줘꺼내줘꺼내줘꺼내줘꺼내줘꺼내줘구해줘구해줘구해줘구해줘구해줘구해줘구해줘구해줘구해줘구해줘구해줘구해줘구해줘

 "모르겠네요. 왜 이렇게 아픈지."

 ─... 어?

 너 누구야?

 훅 다가온 목소리. 귓가에 미약한 바람이 색색 불어온다. 마치 숨결 같은 얕은 바람이 귓바퀴를 여러 차례 스치고 지나간다.

 반대로 전원우의 호흡은 짧고 무거워진다. 방안을 메운 탄내, 어두워진 시야. 그 속에서 헤매는 전원우. 마지막 힘을 짜내 마우스를 붙들었다.

 ─너,

 "아무래도..."

 ─내가 들려?

 "귀신이 있나 봐요."

 황급히 라이브를 종료하고 풀썩 책상에 쓰러졌다. 헉헉 불규칙하게 쏟아지는 숨을 마구잡이로 뱉어냈다. 너무 많은 숨을 토해낸 까닭에 머리가 핑글핑글 돌았다.

 이제, 아이는 웃는다. 깔깔 웃는다. 숨넘어가게, 자지러지게 웃는다.

 ─뭐야.

 "살려줘..."

 ─들리나 보네?

 목소리가 전원우의 머리통을 기준으로 빙빙 돈다. 웃음소리가 왼쪽 오른쪽을 왔다갔다거리며 점점 커진다. 끝내 녹슨 경첩이 끼익거릴 때와 유사한 소음이 된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 도와줘."

 깜빡. 그대로 시야가 닫혔다. 천장을 찢을 듯이 울려 퍼지던 웃음소리가 뚝 끊겼다. 소란이 들끓던 방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불타오르던 세상이 차곡차곡 제자리를 찾는다. 주광색 형광등이 전원우의 등 위로 안온한 빛을 쏟아낸다. 차츰 정돈되는 호흡.

 전원우는 기절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더니 과연 맞는 말이었다. 기막힌 서사였다. 귀신이 어딨냐고 온갖 괴담 다 조롱하던 사람이 말없이 잠수 타다 별안간 나타나 귀신은 있다 인정하고 뚝 라이브를 꺼버렸다는 건. 웬만한 괴담보다 으스스한 사연에 어디서 입소문이라도 났는지 자동으로 업로드된 라이브 영상의 조회수가 쭉쭉 올라갔다. 댓글 창엔 주작이다, 찐이다 토론하는 댓글이 수천 개 쌓였다. 그날 하루 '귀없다'에 붙은 구독자만 해도 지금까지 모인 구독자 수를 훌쩍 넘어섰다. 심지어 실시간 인기 급상승 동영상에도 올랐다. 몸져누운 소금은 이 모든 일들을 전혀 알지 못했지만.

 눈을 뜨니 날짜가 바뀌어 있었다. 불을 끌 틈도 없이 기절해버린 탓에 눈꺼풀에 모래가 낀 듯 뻐근했다. 전원우는 시린 눈을 깜빡이며 책상 위를 마구 더듬었다. 방황하던 손이 기어이 구석에 걸친 핸드폰을 찾아내 얼굴 앞으로 끌어왔다. 엄지로 화면을 슥 밀자 부재중 전화와 카톡 알림이 잔뜩 쌓인 상단바가 보였다. 무시하고 주소록을 뒤져 통화 버튼을 눌렀다. 뚜르르- 뚜르르-. 신호음은 몇 번 가지 않고 끊겼다.

 "여보세요."

 대신 산뜻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다행히 장군님은 아닌가 봐. 이 와중에도 이런 얄궂은 생각이 든다.

 "찬아."

 "원우 형?"

 "나... 아파."

 울컥 눈앞이 흐려졌다. 안도감이 솟구쳤다. 이번엔 허공에 대고 중얼거리는 게 아니다.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존재한다. 혼자가 아니다.

 "아파서 죽을 것 같아..."

 뱉고 나니 삼류 로맨스 영화에 나올 법한 대사였으나 말 그대로였다. 진짜로 아파서 죽을 것 같았다. 순간, 푹 꺼진 뺨을 타고 눈물 한 방울이 데구르르 굴러떨어졌다. 이찬과 헤어진 날 이후로 처음 우는 거였다. 근 10년간 딱 두 번 운 게 전부 이찬 때문이라니, 이런 순애보가 또 어딨나 싶다. 이건 이찬 탓하긴 좀 애매한 구석이 있지만서도.

 그런데 한 번 눈물보가 터지니 주체가 안 됐다. 전원우는 그간 혼자 끙끙 앓았던 시간을 씻어내듯 주룩주룩 눈물을 뽑아냈다. 어느새 흥건하게 젖은 핸드폰 액정이 자꾸만 손에서, 뺨에서 미끄러졌다. 목구멍 위로 히끅대는 소리가 올라올 때마다 꼴딱꼴딱 침을 삼켜 눌렀다. 마지막 체면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한 번 코를 들이킨 시점에서 이미 뽀록난 것 같긴 했다만.

 그런데 막상 전원우를 울린 당사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원우가 진정되길 기다리듯 침묵을 지켰다. 이제 나올 수분도 없을 즈음, 차분한 목소리가 건너왔다.

 "그럴 것 같았어요. 안 그래도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싶더라고요."

 "..."

 "일단 함 와보실래요? 여기까지 올 수 있겠어요?"

 다시금 차오르려는 눈물을 힘껏 삼켰다. 이찬이 제 앞에 있는 것마냥 세차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책상에 납작히 눌러붙은 상체를 일으켰다. 후들거리는 허벅지를 붙들어 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게. 지금 갈게."

 전화를 끊고 바로 어플로 택시를 잡았다. 목적지는 세봉산로17길 13. 택시가 잡힌 걸 확인한 전원우는 휘청휘청 집을 나서다 현관 벽에 걸린 거울을 마주했다. 머리는 산발에, 뺨엔 눈물 자국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잠깐 고민하던 전원우는 방에 들어가 찬물로 세수하고 모자를 눌러 썼다. 아파서 정신없는 와중에도 이런 흉측한 몰골로 이찬을 볼 순 없다는 판단이 섰다. 참... 사랑의 힘이란 대단한 거다.

 뭐 이런 데까지 택시를 타고 들어가신대. 기사님은 산길을 올라가며 너스레를 떨었다. 전원우는 의외로 어른을 사근사근 대하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기사님께 대꾸할 수 없었다. 그저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진록색으로 물든 풍경을 눈에 담으며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택시에서 내리자 이찬이 버선발로 뛰쳐나왔다. 말 그대로 버선발이었다. 이찬은 택시에서 튕겨져 나온 전원우를 끌어안듯 부축해서 대문 안으로 질질 끌고 갔다. 어찌저찌 마루에 주저앉혀 놓고는 팔짱을 끼고 전원우를 내려다 보았다. 정수리로 내리쬐던 시선이 슬그머니 위로 올라간다.

 "이를 어째..."

 이찬은 한 마디 탄식을 남겨두곤 전원우 앞에 쭈그려 앉았다. 힘없이 덜렁거리는 손을 잡아 들어 제 손바닥 위에 얹었다. 다른 손으로는 손등을 살살 문지르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자그마히 속삭이는 통에 불분명했지만,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타이르는 듯 애석한 목소리였다. 전원우는 이찬에게 얌전히 손을 맡긴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7년만에 첫사랑과 닿았다는 설렘에 취하기엔 머리가 너무 지끈거렸다.

 이찬이 한숨을 내쉬며 일어났다. 잡고 있던 손은 전원우의 허벅다리 위에 잘 올려 주었다. 하이고... 탄식하며 내려다보는 표정이 개운치 않았다. 아무래도 협상이 결렬된 모양이었다.

 "형."

 "응."

 "굿하셔야 될 것 같은데."

 전원우가 느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더는 개길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뭐든 좋았다.

 "근데 제가 퇴마 쪽은 전문이 아니거든요. 경험이 적기도 하고요. 다른 분 연결시켜드..."

 "아냐."

 "..."

 "네가 해줘."

 곧장 돌아온 단호한 대답에 이찬이 살짝 입을 벌린 채 멈췄다. 조금 망설이는가 싶더니.

 "... 알겠어요."

 그렇게 천하의 귀신 불신론자 전원우가 굿을 하게 됐다. 원래 굿은 준비할 게 많아 시간이 필요하지만, 한시가 급한 상황이니만큼 사흘 뒤로 날을 잡았다. 거하게 판을 벌리기엔 준비 기간도 짧고 전원우의 지갑 사정도 궁핍하여 이찬네 마당에서 간소하게 진행하기로 했다. 이찬은 수척해진 전원우가 우려됐는지 집에 가기 힘들면 사흘간 여기 머물러도 괜찮다 일러주었다. 누군가의 보살핌이 그리웠던지라 솔깃했으나 거절했다. 생활 공간을 겸한다고는 해도 어쨌건 일터인데 폐 끼치기 미안했고, 이찬에게 더 추한 꼴을 보이고 싶지 않은 자존심도 있었다. 이찬은 마지못해 전원우를 집에 보내면서도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떠나기 직전에 부적 한 장을 손에 쥐여주었다. 이건 서비스니까 걱정 말고 받으셔요. 지인 할인이란 겁나 아름다운 거구나... 전원우는 이찬에게 꾸벅 목례하고(말할 힘이 없어서 그랬다) 택시에 몸을 실었다.

 부적 덕분인지 사흘이 무탈히 흘러갔다. 가끔 머리가 쑤시고 여전히 그 꿈을 꾸었지만, 일상이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이렇게 효과가 즉각적일 줄은. 이쯤 되니 먼젓번엔 할인해준 만큼 신빨도 뺀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 생각난 김에 베갯잇 안을 휘적여 전에 받은 부적을 꺼내 보았다. 지난 며칠 베개 안에서 시달린 부적은 이리저리 구겨지고 찢겨 거의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이래서 효과가 없었나. 결국엔 내 관리 소홀 탓이었다니, 예나 지금이나 찬이 말 들어서 나쁠 거 하나 없구나 싶다. 단순히 관리가 미흡했다기엔 불에 탄 듯 까맣게 그을린 귀퉁이가 거슬리긴 했다.

 대망의 굿 데이(not good, but 굿)가 다가왔다. 아직 경사로를 너끈히 오를 정도로 몸이 회복된 건 아니라 또 택시를 탔다. 웬만한 거리는 걷던 전원우로서는 속 쓰린 지출이었으나 그간 못 쓴 밥값 여기다 쓰는 거라고 합리화했다.

 택시에서 내린 전원우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저도 모르게 턱을 툭 떨어뜨렸다. 지붕 기와를 한땀한땀 이은 줄에 연등이 주렁주렁 걸려 있고, 마당에 깔린 짚단 돗자리 위 제단-이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으나, 편의상 제단이라 하자-에는 여러 음식이며 조화가 예쁘게 놓여 있다. 제단 뒤로 걸린 빨갛고 하얀 천이 바람에 펄럭펄럭 휘날렸다. 덜컥 부담이 지워진다. 아니, 분명 간소하게 한다 했던 것 같은데... 이게 간소한 거면...

 "왔어요?"

 인기척을 들었는지 이찬이 방에서 나왔다. 이찬을 본 전원우의 턱이 더 아래로 떨어졌다. 이찬이, 우리 찬이가... 엄청난 옷을 입고 있었다. 종아리까지 치렁치렁 내려오는 붉은 한복에다가, 철 조각이 비늘처럼 촘촘히 달린 갑옷에다가, 오방색 허리끈에다가, 머리엔 투구까지. 옷이라기보단 차라리 코스튬이란 말이 더 적절해 보이는 행색이었다.

 "안 더워...?"

 "아직 악사 선생님이 안 오셔서요. 쫌만 이따가 시작할게요."

 얼빠진 전원우의 질문을 깔끔히 먹금한 이찬이 꼬다리 잘린 배를 세 개 가져와 빈 제기 위에 쌓아두었다. 이찬은 마당과 집을 종횡무진하며 이미 충분히 복작복작한 것 같은 제단에다 뭘 자꾸 추가했다. 마지막으로 가져온 건 칼이었다. 이찬은 암시롱 않은 얼굴로 단도 두 개를 빙빙 돌려가며 살피더니 제단 위에 정갈히 올려놓았다. 이찬이 칼을 돌릴 때마다 햇빛이 반사되며 빔처럼 전원우의 눈을 공격해왔다. 윽 소리를 내며 눈을 감은 전원우는 잠시 눈을 뜨지 말까도 고민했다. ... 악몽 같았다. 요 며칠간 꿨던 진짜 악몽과 현 상황을 비교하면 전자가 선녀로 여겨질 만큼. 꿈이라면 누가 좀 깨워주세요, 제발...

 머지않아 흰 한복을 입은 한 어르신이 대문을 밀고 입장했다. 이찬은 밝게 웃으며 어르신을 맞이했다. 아마 저분이 아까 말한 악사 선생님인 듯했다. 장군 갑옷 갖춰 입은 이찬과 백의의 어르신이 문 앞에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눴다. 그걸 보고 있자니 유일하게 현대복을 입은 저가 되려 어색해졌다. 티피오 못 맞춘 기분이라고 할까. 대화가 끝났는지 두 사람이 갈라졌다. 어르신은 돗자리 위에 착석해 소매에서 무언가를 쭈욱 뽑아냈다. 피리였다. 어르신, 그런 곳에 힘을 숨기고 계셨군요... 무술과 전혀 연관은 없지만 좀 무림 고수 같고 그랬다. 이찬은 최종 점검하듯 마당을 휘이 둘러 보았다. 그리고 어정쩡한 자세로 선 전원우에게로 다가와 눈을 맞췄다.

 "곧 시작하려고 하는데, 준비됐어요?"

 준비는 네가 다 했지 내가 뭘 했니... 혹시 마음의 준비를 말하는 거라면 자신 없었다. 자신 없어졌다. 어딜 봐도 경악스러운 것들투성이라 눈을 둘 곳조차 없었으니. 그치만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어 그냥 고개나 끄덕였다. 이찬은 전원우의 응답을 확인하자마자 쿨하게 돌아섰다. 전원우가 멀어지는 한복 끄트머리를 다급하게 붙잡았다.

 "나... 뭐 해야 돼?"

 이찬은 어쩐지 절박한 눈을 매단 전원우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입술을 뻐끔대며 선뜻 답하지 못하더니, 말했다.

 "형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돼요. 그냥 가만히 계셔도 되고요."

 "..."

 "보기 좀 그러면 눈 감고 있어도 괜찮아요."

 전원우는 그게 차라리 보지 말라는 뜻임을 이해했다. 생각해 보면 이찬 입장에서도 영 내키는 일은 아닐 것이다. 학창시절을 함께한 첫사랑 앞에서 칼춤 추기가 쉽나. 전원우가 스르륵 옷자락을 놓자 이찬이 저벅저벅 앞으로 걸어갔다. 제단 앞에 우뚝 선 어깨가 한 번 비장하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아무리 겁 없고 호기심 많은 전원우라도 압도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전원우는 신발을 벗어 두고 돗자리 위에 올라갔다.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보다가 결국 무릎을 꿇고 정좌했다. 이찬이 어르신께 눈짓을 보냈다. 어르신이 입에 피리를 물었다.

 삐이익-.

 전원우는 눈을 감았다.

 챙-! 칼과 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린다. 찰찰찰찰찰... 갑옷에 붙은 철조각이 흔들리며 부닥치는 마찰음이 선명하다. 돗자리 위로 쿵, 쿵, 진동이 울린다. 이찬은 끝없이 중얼거린다. 귀를 기울이면 피리의 노래가 틈을 가르고 들어온다. 높게 찢어지는, 비명 같은 소리가-.

 전원우는 이 모든 걸 오직 소리로만 판단하고 있었다. 앞에서 난리법석이 벌어지는 동안 홀로 눈을 꾹 감고 있기란 예상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첫번째 고비는 장군님이 불쑥 끼어들었을 때. 피리를 필두로 하여 굿이 시작되자 이찬은 노래를 불렀다. 아니,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애매하게 음조 붙은 소리로 무어라 떠들어댔다.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이찬의 목소리가 별안간 바닥에 훅 깔렸다.

 "어허이- 아이야, 가거라. 떠나야 하느니라."

 일전에 핸드폰 너머로 들었던 그 엄중한 목소리였다. 절로 목이 경직되었다. 어디 가서 목소리 낮은 걸로 뒤지지 않는 전원우도 꼬리말 정도로 묵직한 저음이 지축을 울렸다.

 장군님은 아이를 어르고 달랬다. 워낙 목소리 톤에서부터 호랑이 기백이 느껴져서 그렇지 꽤나 다정한 말씨였다. 그렇게 안 봤는데 따뜻한 분이신 모양이다. 아니 근데 찬이 평소 목소리랑 너무 다른데. 이게 가능한가. 찬이가 성대모사 개인기가 있었나, 따위의 생각이 들던 무렵.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두 번째 고비가 찾아왔다. 음성이 한 번 더 뒤바뀌었는데, 또한 익숙했다. 최근 가장 자주 들은 목소리. 울음기를 가득 머금은 가련한 목소리. 까만 시야로 팥죽색 교복이 아른거렸다.

 오도독 소름이 돋았다. 장군님까지는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근데 이건 경우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 목소리는 전원우만 안다. 반복되는 구조 요청도 전원우는 수없이 들었지만, 이찬은 모른다.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이찬이 그 아이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울부짖고 있다.

 그때. 어깨에 무게가 실렸다. 세 번째 고비였다. 이번엔 넘기지 못하고 번쩍 눈을 떴다. 코끝이 스칠 거리에 이찬의 얼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안다. 다, 안다."

 이번에도, 아는 목소리. 나의 첫사랑이자 지난 사랑. 언제든 떠올리기만 하면 어김없이 애틋해지고 마는 사람. 아마 영원히 내 생에서 흘려보내지 못할 사람. 이찬. 이찬의 목소리다.

 이찬은 전원우의 양어깨를 붙잡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앙다문 입꼬리를 축 늘어뜨리며 서럽게도 울었다. 전원우가 이별을 선고했던 때보다 더 많이 우는 것 같기도 했다. 이찬은 양 손바닥으로 전원우의 어깨를 닦아내듯 연신 쓸어내렸다. 작지만 뜨끈한 온기가 어깨를 여러 번 스치고 지나갔다. 전원우는 눈꼬리 아래로 눈물을 퐁퐁 떨구는 기다란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렇게 빗방울을 떨어뜨리면서도 흐려질 줄 모르는 눈동자에 제 얼굴이 또렷이 비쳤다.

 무섭나?

 그렇지는 않고.

 이찬은 울면서 다 안다고, 다 괜찮다고 말했다. 누구에게 건네는 위로인지는 불확실했다. 아마 아이에게 하는 말일까.

 그러나 오늘은 시선이 허공에 떠 있지 않아서. 전원우가 이찬만을 보듯, 이찬의 눈도 전원우로만 차 있어서. 전원우는 깜빡 착각을 해버렸다.

 "이제 더 아프지 않아도 돼..."

 꼭 나한테 하는 말 같다고. 나를 위해 울어주는 것 같다고. 나의 아픔을 대신 앓아주는 것 같다고.

 분명히 그러하다고, 믿어버렸다.

 그렇게 생각하니 전혀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기껍기도 했다. 전원우가 손을 들었다. 옆턱께를 감싸 잡고 엄지로 조심스레 뺨을 쓸어냈다. 손가락 위로 따뜻한 물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이찬이 전원우의 어깨를 잡아당겨 와락 안았다. 전원우도 이찬을 끌어안았다. 야트막히 떨리는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그 후론 눈을 뜨고 있었다. 이찬은 금세 품에서 떨어져 나가 앞으로 달음박질쳤다. 제단 앞에 도달하여 하늘로 팔을 쭉 뻗자, 삐이이이-. 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찬은 춤을 췄다. 간드러지는 곡조에 맞추어 부드럽게 몸을 움직였다. 유려하게 이어지는 춤사위가 물처럼 온 마당을 흘러 다녔다. 지켜보던 전원우는 작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무당이 이렇게 춤선이 예뻐도 돼? 전처럼 절도 있게 끊어지는 동작은 없어 아쉽기도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춤추는 장군보살 위로 열여섯에 강당에서 보았던 이름 모를 소년이 스륵 겹쳐진다. 한순간에 마음을 앗아가더니, 아직도 돌려주지 않은. 이마에 파란 밴드를 두른 소년.

 불현듯 머릿속에 영상 하나가 재생된다. 열여덟에서 열아홉으로 넘어가던 겨울, 용돈을 모아 장만한 캠코더를 첫 개시한 날이었다.

 떠오르는 신예 아이돌 이찬씨! 어떻게 춤을 추게 되셨나요?

 아이, 왜 이래.

 한 번 해봐. 연습한다 치고.

 프레임 안의 이찬은 쑥스럽게 웃는다. 프레임 너머의 전원우는 웃음기 낀 소리로 제 연인을 부추긴다. 이찬씨, 한 말씀만 해주시죠. 머뭇거리는 이찬의 자그마한 귀끝이 선홍빛으로 물든다. 렌즈를 한 번 흘끗 보곤, 장단을 맞춰준다.

 어릴 때요. 길을 가다가 우연히 어떤 분이 춤추는 걸 봤어요. 땀을 막 흘리고, 아, 그때가 한여름이었거든요. 쨌든 그 분이 열심히 춤추시는데... 되게 힘드실 것 같았거든요? 근데 그분은 웃고 계셨어요. 엄청 행복하게요.

 ...

 보는 제가 다 행복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추게 됐어요. 누군가는 제 춤을 보고 그랬으면 좋겠어서. 

 화면에 이찬의 옆얼굴이 담긴다. 파란 하늘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을 낸다. 프레임이 점점 아래로 떨어진다. 와륵, 무너진 화면이 두 사람의 허벅지께를 비스듬히 비춘다.

 전원우는 캠코더를 던지듯 내려놓고 이찬을 끌어안았다. 뭐야아-. 품 안의 이찬이 장난스럽게 어깨를 치며 버둥거렸다. 전원우가 속살댔다.

 너 덕분에 행복해. 널 사랑해서 다행이야.

 가슴이 벅찼다. 벅차도록 행복했다. 그래서 너를 안을 수밖에 없었다. 기억하건대 사랑이란 말을 입에 올린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다른 영상은 다 지워도 그 영상만은 오랫동안 남겨두었다. 이찬의 번호가 사라졌단 걸 확인했던 밤, 전원우는 하드를 뒤집어엎어 이찬이 들어간 모든 영상을 찾아냈다. 괴로운 마음에 남은 흔적들을 전부 지워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 영상만은 지우지 못했다. 밤이 새도록 삭제 버튼 대신 재생 버튼만 눌러댔다.

 그로부터 3년 뒨가, 백업도 하지 않고 노트북을 바꿨으니 영상은 영영 사라졌을 거다. 처음으로 샀던 낡은 캠코더도 지금은 어딨는지 알 수 없다. 아쉬우나 아깝지는 않다. 바로 방금부터 아깝지 않아졌다. 봐버렸거든.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춤추는 빠른 스물다섯의 이찬을.

 아무렴 어떤가 싶다. 내 머릿속에 이렇게나 생생하게 남아 있는데. 네 눈 안에 여전히 그날의 빛이 살아 있는데. 기록이 다 무슨 소용이겠니. 하염없이 이찬을 감상하던 스물일곱의 전원우는 오랜만에 감탄한다. 와, 진짜 예쁘다.

 자연스레 양손이 포개어진다. 눈꺼풀도 서서히 내리닫힌다. 공손히 손을 모으고 꿇어앉아 서툰 염원을 띄워 본다.

 언제나 다른 이의 복을 대신 비는 네게도 복이 있기를.

 네가 행복하기를.

 영원히 찬란하기를.

 수신자는 불분명하다. 세봉산 장군님이든 누구든 상관없다. 닿기만 한다면.

 전원우는 긴 기도를 올렸다. 신기하게도, 점차 머리가 가벼워졌다.

-

 이 길이 이렇게나 가팔랐던가? 잠시 숨 돌릴 겸 왔던 길을 돌아본다. 줄줄이 늘어진 형형색색의 연꽃 등과 뾰족한 깃발, 만(卍)자가 쓰인 간판들.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볼 때마다 참 장관이지 싶다. 짧은 휴식을 갈무리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한 손에 들린 쇼핑백이 걸음마다 앞뒤로 흔들렸다.

 바로 어제, 편의점을 다녀오던 전원우는 집 근처에 세워진 과일 트럭을 마주쳤다. 트럭상은 간만에 보는 거라 괜히 반가웠다. 한참간 트럭을 기웃거리다 집에 들어온 전원우의 손에는 수박 한 통이 들려 있었다. 충동의 힘을 빌어 사버릴 땐 신났는데, 막상 방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인 수박을 보자니 근심이 쌓였다. 도무지 혼자 먹어치울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방바닥 위로 수박을 굴리며 고민하던 전원우는 일단 수박을 썰었다. 대강대강 잘라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수박 조각을 락앤락통에 옮겨 담았다. 수박으로만 꽉 찬 락앤락통 세 개를 뿌듯하게 보던 전원우는 이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찬아. 수박 먹을래?"

 "수박이요?"

 "응. 어디서 얻었는데 양이 좀 많아서."

 "음, 근데 제가 수박을 별로 안 좋아해서요. 다른 분이랑 드세요."

 "어? 어... 포도도 있어!"

 "우와, 포도요? 맛있겠다! 좋아요."

 전원우는 귀에 전화기를 붙인 채 밖으로 나갔다. 아까 트럭에서 포도도 팔던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세봉산로17길 13을 재방문하게 된 것이다. 자발적인 과일 배달 서비스라고나 할까. 더위도 한풀 꺾인 날에 아이스팩 두 개 사이에 끼워 나르는 건 다소 극성맞다고도 하겠다. 그래도 이왕이면 가장 맛있는 상태로 갖다 주고 싶었다. 실상 과일은 구실에 불과함에도 말이다.

 끼이익-.

 "왔어요?"

 "헉."

 힘주어 대문을 밀려는 순간 벌컥 문이 열렸다. 이미 무게가 쏠린 상체가 앞으로 기우뚱 쏟아졌다. 이찬이 황급히 양손으로 어깨를 붙들어 지탱했다.

 "에구, 조심하세요."

 이찬은 전원우를 제자리에 잘 세워놓고 어깨까지 털어주었다. 그리곤 손에서 쇼핑백을 쏙 뺏어 총총총 달려갔다. 우와아- 맛있겠다-! 마루 위에 락앤락통을 하나하나 꺼내 놓으며 감탄하는 목소리가 제법 천연덕스러웠다. 그나저나 내가 도착한 건 어떻게 알았대? 혹시 장군님이 알려 주셨나. 그냥 발소리를 들어서일 거라는 평범한 이유보다 장군님을 먼저 떠올리게 된 스스로가 조금 희한하기도 했다.

 "이제 몸은 괜찮죠?"

 "응. 하나도 안 아파."

 전원우와 이찬은 락앤락통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마루에 앉아 과일을 나눠 먹었다. 이찬은 쉼 없이 포도를 오물거리면서 조잘조잘 잘도 떠들었다. 오랜만에 제 이야기를 듣는 '사람'을 만나 들뜬 모양이었다. 전원우는 부지런히 수박을 먹으면서도 한순간도 이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첫사랑과 다시 만나 이렇게 대화하고 있다는 게, 기억 속이 아닌 현실에서 살아 움직이는 이찬을 보고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어제는 목사님이 오셨어요. 해외 선교를 가려 하는데 길일을 잡아달라고 하시더라고요."

 "목사님이 여길 오셨다고?"

 "네. 원래 종교 있는 분들도 자주 오세요."

 예전과 대화 소재는 크게 달라졌지만 말이야. 이찬이 늘어놓는 일상 얘기들은 대체로 좀 황당하고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새삼 우리가 아주 다른 삶을 지내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뭐, 퇴마까지 해준 마당에 그게 중요한가 싶으면서도.

 마루 아래로 이찬의 다리가 달랑달랑 흔들렸다. 몰래 구경하던 전원우는 이찬이 청바지를 입고 있단 걸 알아챘다. 그러고 보니 윗옷도 평범한 흰색 반팔 티였다.

 "오늘은 한복 안 입었네?"

 "에?"

 "버선도 안 신었고."

 이찬의 눈매가 크게 둥글려졌다. 괜히 제 옷차림을 살피는 몸짓이 급했다.

 "아니, 꼭 한복을 입어야 하는 건 아니거든요? 근데 제가 이쪽에선 어린 편이란 말이에요. 사복 입고 있으면 손님들이 쫌 안 믿는 눈치라서요."

 "그런 고충도 있구나."

 우다다 말하는 게 꼭 변명하는 투였다. 뭐라 하는 건 아니었는데... 꽤나 당황했는지 목까지 붉어진 이찬이 줄기에서 포도알 하나를 똑 뗐다.

 "근데 오늘은 형만 오니깐. 괜찮을 것 같더라고요."

 말하곤 포도알을 입에 쏙 넣었다. 전원우도 수박을 물었다. 아삭. 수박이 상쾌한 소리를 남기고 으스러졌다. 입안에 분홍빛 단물이 퍼졌다.

 어느덧 장군보살과의 다섯 번째 만남이었다. 네 번째 만남은 굿을 마치고 며칠 뒤에 성사됐다. '귀없다' 복귀 영상을 촬영하던 중, 벨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신점]. 이찬이었다. 전원우는 카메라 돌아가는 것도 잊고 냉큼 받아 들었다.

 "어, 찬아."

 "형. 이번 주에 시간 되는 날 있어요?"

 그 순간 전원우는... 겁나 설렜다. 이거 혹시 데이트 신청? 돌이켜 보면 데이트하자는 사람치고는 조금 사무적인 말투였지만, 이미 흥분해버린 전원우는 캘린더조차 살피지 않고 헐레벌떡 답했다.

 "딱히 안 되는 날은 없는데. 왜?"

 "그, 있잖아요. 형이 갔다던 폐교요. 우리 같이 가보는 게 어때요?"

 "... 거기를? 왜?"

 "원래 망자의 넋을 기릴 때는 생전에 마지막으로 들른 장소에 가는 게 좋기는 하거든요. 저도 영이 완전히 떠난 걸 확인해야 맘이 놓일 것 같구요."

 기대로 부풀었던 전원우의 가슴이 구멍 뚫린 풍선마냥 푸시시 꺼졌다. 또 그놈의 귀신 얘기다. 그래도 이찬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고 병도 낫는다는 걸 경험적으로 학습해버린 전원우는 그래 그러자, 답할 수밖엔 없었다. 그래도 서운하기는 해서 은근한 투정을 부려보았다.

 "근데 나도 꼭 가야 하는 건가?"

 "형도 그 애랑 구면이잖아요."

 "아니, 구면이라긴 좀..."

 "가기 싫으면 저 혼자 가고요."

 "아냐 아냐! 같이 가자."

 역시나 이찬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정신 차리고 보니 주도권이 넘어가버려 오히려 전원우가 매달리는 꼴이 됐다. 이찬은 신속하게 구체적인 일정을 잡더니 그럼 모레 봐영,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원우는 까맣게 물든 핸드폰 화면을 공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 아직 얘한테 잡혀 사는 거 같지.

 

 그렇게 전원우와 이찬은 폐교에서 다시 만났다. 이찬은 인사도 생략하고 영상에서 인영이 잡혔던 곳이 어디냐 물었다. 3층쯤이었던 것 같다고 말하니 성큼성큼 앞서 걸어갔다. 전원우는 핸디캠을 들고 이찬의 뒤를 쫓아갔다. 컨텐츠 얻겠다고 제안에 응했던 건 아니지만, 남들은 살면서 한 번도 안 가는 폐교를 두 번 간 것도 모자라서 한 번 더 왔다는 건 확실히 컨텐츠감이긴 했다.

 "여기야."

 전원우의 말을 신호로 이찬이 멈춰 섰다. 허공을 길게 둘러 보며 내뱉는 한숨에 안도감이 서려 있었다. 이찬은 메고 있던 가방에서 이것저것 장비를 꺼냈다. 유난히 바닥이 까만 자리에 새끼줄을 두르고 촥촥 꽃을 뿌렸다. 갈라진 바닥 틈에 살포시 끼워 넣은 향에서 가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찬은 그 앞에 서서 엄숙히 손을 모았다. 중얼중얼, 입술 새로 주문 같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전원우는 멀찍이서 이 모든 절차를 찍고 있었다. 그때, 이찬이 기도를 멈추고 나지막히 읊조렸다.

 "형."

 "응?"

 "이거는 무서운 게 아니라... 슬픈 일이잖아요."

 ... 아. 어렵지 않게 말뜻이 이해됐다. 전원우가 천천히 핸디캠을 내렸다. 아예 핸디캠을 접어두고 이찬의 곁에 섰다. 조심히 두 손을 모아 가슴께에 올렸다.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흐느끼던 목소리를 떠올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 조심히 가. 아이에게 뒤늦은 배웅을 건넸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택시를 타야 했다. 그런데 워낙 후미진 곳에 위치해서인지, 폐교를 둘러싼 소문 때문인지 도통 택시가 잡히질 않았다. 결국 버스를 타기로 하고 정류장까지 함께 걸었다. 날이 그리 무덥지 않아 다행이었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동안 전원우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많은 생각들이 뒤엉켜 머릿속이 복작거렸다. 뭐랄까. 좀 거북했다. 지금까지 괴담으로 소비했던 이야기들이 누군가의 죽음을 바탕으로 한다는 게 불쑥 와닿았다. 이찬도 아까의 의식이 남긴 여운 탓인지 별말을 하지 않았다. 슬슬 버스 정류장 팻말이 시야에 잡힐 즈음, 전원우가 입을 열었다.

 "관둬야 하나."

 "뭘요?"

 "유튜브."

 "엥? 왜요?"

 이찬은 전혀 이해 못 할 소리를 들은 사람마냥 높은 톤으로 되물었다. 전원우가 겸연쩍게 웃었다. 이찬은 전원우가 생각의 시작점을 되짚어 볼 시간도 주지 않고 따박따박 물음표를 던졌다.

 "관둘 건 뭐예요? 형 그거 재밌어서 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도 좀 그래서."

 "조심하면 되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명쾌한 말이었다. 가벼운 격려였지만, 퍽 위안이 됐다. 그래. 조심하면 괜찮겠지. 내가 조금 더 신중하면 괜찮겠지.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그렇게 말하는 너는.

 "너는."

 "..."

 "너는 어때. 이 일."

 이찬이 덜컥 멈춰 섰다. 전원우도 함께 멈췄다. 이찬이 천천히 턱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생각에 잠긴 맑은 눈동자 위로 구름 몇 조각이 둥실둥실 흘러갔다.

 "처음엔 억울했는데요. 지금은 괜찮아요. 보람도 있구요."

 "..."

 "뭣보다, 재밌어요."

 간결한 답변을 남긴 이찬이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전원우는 조금씩 작아지는 뒤통수를 물끄러미 보다가, 열심히 발을 놀려 따라붙었다.

 "재밌으면 됐지."

 전원우도 나름의 격려를 전했다. 이찬의 말간 낯 위로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순식간에 락앤락 두 통 어치의 과일을 비웠다. 한 통 더 가져오려는 전원우를 이찬이 만류했다. 그러면 이따 저녁 못 먹어요. 저녁도 같이 먹자는 얘긴가. 전원우는 이찬의 말을 해석할 때에만 조금 자의적으로 굴곤 했다. 부른 배를 통통 두드리던 이찬이 돌연 제안했다.

 "온 김에 운세나 봐드려요? 할인해드릴게요."

 '할인' 앞에 '지인'이 쏙 빠져나가 있었다. 다시금 자의적 해석을 더하니 제법 흐뭇하게 들렸다. 네가 생각해도 우리가 단순 지인은 아닌 거지.

 "그럴까."

 곧장 일어난 이찬이 방에서 노트와 펜을 꺼내왔다. 자리로 돌아와선 한쪽 허벅다리 위에 노트를 올려놓고 앉았다. 그리곤 볼펜 뚜껑을 앙 물었다. 뽕-! 뚜껑 따이는 소리가 저번과는 다르지만 역시나 명랑했다. 이찬은 종이 위에 무어라 끼적이며 웅얼거렸다. 형 생일이...

 "96년 7월 17일. 맞죠?"

 "오, 기억하네?"

 "형 생일이니까. 아무래도요."

 그 순간 전원우는 심쿵이라는 말의 존재 가치를 깨달았다. 정말로 누가 위에서 심장을 떨어뜨린마냥 심장이 쿵- 울렸다. 지금까지 우리가 사귀었던 것조차 까먹은 양 굴더니, 갑자기 아는 척을 하신다고요? 이건 자의적으로 생각할 것도 없다. 금세 기분이 좋아져버린 전원우의 입매가 슬금슬금 올라갔다. 그렇다고 너무 좋아하는 티를 낼 순 없어 고개를 푹 수그렸다. 맘 놓고 웃기 위함이었다.

 "형. 생시 아세요?"

 "새, 생시?"

 "태어난 시간이요."

 돌아보자마자 이찬과 눈이 딱 마주쳤다. 앗. 몰래 웃던 거 들켰다. 뻘쭘함에 말이 투둑 끊겨 나왔다. 못 알아들어선 줄 알았는지 쉬운 말로 풀어 해설해주는 우리의 장군보살, 참으로 친절하다. 이찬은 노트에 코를 박고 전원우가 읊어주는 생시를 받아 적었다. 노트 한쪽이 빠르게 메워졌다.

 에헤이-. 이찬이 별안간 탄복하며 볼펜을 마루에 내려놓았다. 이거 보란 듯 노트 위에 톡톡 딱밤을 놓는 손가락.

 

 "보니까요. 형이 향후 9년간은 운이 안 좋거든요? 저번 같은 일이 또 일어날 수도 있구, 그래요."

 "그래?"

 "네. 아휴, 원체 기도 약하시네. 완전 고위험군이에요. 꾸준히 관리해줘야 쓰겄는디?"

 너스레를 떠는 이찬의 한쪽 눈살이 찡긋 솟았다. 저 습관도 그대로구나. 운을 들먹이는 건 좀 치사하지 않나 싶다. 전원우가 잽싸게 머리를 굴렸다. 아마... 이런 말을 원하는 거겠지.

 "그럼 여기 자주 와야겠네?"

 이찬의 얼굴에 화색이 퍼진다. 딩동댕동, 정답입니다.

 "그러면 좋구요. 내가 정기검진 해줄게요."

 새침하게 말해봤자 슬쩍 치켜 올라간 입꼬리가 움푹 패여 있었다. 결국 전원우도 참지 못하고 웃어버리고 만다. 정기검진이라니, 무슨 주치의도 아니고. 이걸 뭐라고 해야 해. 주치무당? 아무튼, 이토록 투명한 수작은 또 처음 본다. 찬이한테 유튜브나 같이 해보자 할까. 채널명은 팥과 소금, 뭐 그런 걸로. 들뜬 전원우의 머릿속에 시덥잖은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우리의 앞날은 어쩌려나. 너는 알려나. 아니면 장군님께서는 아시려나. 어쩌면 우리가 돌고 돌아 다시 만나게 된 것도 이미 정해진 순리일지도 모르겠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우리는 벼락같은 운명 앞에 무력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의 의지가 일궈냈다 믿고 싶다. 그편이 운명으로 맺어진 사이보다 훨씬 로맨틱하지 않은가. 내가 널 만나고 싶었듯, 너도 날 만나고 싶었길. 그래서 지금의 우리가 빚어진 것이길.

 "하하."

 "왜 웃어요?"

 "아냐. 그냥."

 바라는 것도 많다 싶어서. 이래서 점집에 사람이 끊이지 않는가 보다. 모두들 바라는 게 많아서. 누구라도 들어주었으면 해서.

 휘잉,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전원우는 눈을 감고 뺨을 간질이는 바람을 만끽했다. 바람으로 가득 찬 세상. 그 위에 한 겹의 바람을 더해 본다.

 정해진 길을 걸어가는 것이든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든, 너의 앞날에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의 앞날에도 네가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더-.

 전원우가 마루 위로 은근슬쩍 손을 밀었다. 손끝이 꼼지락꼼지락 전진한다. 분명한 목적지를 향하여.

 통, 토동. 떼구르르륵...

 소금이 팥에게로 굴러가 톡 닿았다. 팥은 가만히 제자리를 지켰다. 팥의 따끈한 온기가 차가운 소금에게로 스며들었다. 미적지근한 날이었다.


웹진 링크: http://717x211.com/xe/fic/182

후기(웹진에 올라온 것과 상이합니다): https://www.evernote.com/shard/s688/sh/352279f4-e49c-8263-f626-054ff31b8751/f942c14c1823a5363737ecdf558b9f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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