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디/설정
+사족
펜슬은 이미지캡쳐쓰기가 안되네…
작년 8월 초쯤에 짰던 캐디들… 지금은 안 쓴다. 영조는 초상화 베이스라 크게 달라진점이 없는듯
밀풍군이랑 연령군 캐디
나중에 제대로 그려보고 싶은데…
조문명ㆍ조현명 형제: 영조 초기 척신들
그 유명한 풍양조씨지만 후에 세도정치의 풍양조씨와 깊은 연관이 있는진 몰겠음 풍양조씨 자체가 엄청 큰 가문이라함…
영조 때의 척신하면 보통 홍봉한… 김귀주… 이런 후기 인물들 떠올리게 되던데 조문명은 효장세자의 장인이면서 훈련대장(병권)/이조판서(인사권)/대제학(명예)을 한꺼번에 겸임하기도 했었음 (홍봉한은 어느정도였는지 모르겠다…) 영조가 척신을 주요 관직으로 끌어들이는 건 초기때부터 해왔던건데 그 부작용이 드러나는건 영조가 나이먹으면서 인듯… 조현명은 조카가 죽은 세자의 세자빈이라는 것 뿐이라 완전 척신으로 구분하긴 애매하다고 생각했는데 본인은 스스로를 그렇게부름.
김재로
사실 아는 건 잘 없음. 홍치중과 함께 영조 초~중반 대표 노론 탕평파면서 노론의 영수. 조현명이랑 송인명같은 완소/탕평파소론이랑은 잘 지내면서도 이광좌는 아버지와 이광좌 사이의 불화를 이유로 끝까지 거부하다가 나중엔 토역까지 청하게 됨. 사실 개인적 원수는 걍 핑계였던듯… 영의정이 30여번이나 갈아치워졌던 영조대에서 무려 9년이나 영의정을 역임했다. 살기도 오래 살아서 영조의 신임을 오래 받고 아들(김치인)도 나중에 영의정을 하게 되고 김치인의 오촌 조카(인지 그냥 조카인지 헷갈림)인 김종수도 노론 청명당 영수가 되면서 정조 시대에 영의정을 함.
승정원일기 읽다보면 뭔가 강직하다! 그런 느낌은 없는데 개끈질김… 이광좌랑 같이 일 안하려고 정사를 백번 넘게 하고 영조 능행가는거 막겠다고 밤늦게까지 필리버스터함. 탕평파라서 그런지 노론들 사이에선 평판이 높은편은 아니었는듯 (노론은 준론이 대세라…).
이종성
이태좌의 아들, 이광좌의 9촌조카이자 제자, 박문수와 원경하의 이종사촌, 후에 영의정까지 되고 사도세자가 추숭되면서 종묘에 공신배향됨. 박문수가 소노론 상관없이 자기랑 의견이 다르면 개처럼 싸웠다면(ㅋㅋㅋㅋ) 이종성은 소론의 영수로 당의 입장을 고수한 느낌. 다른사람들은 (친하고 말고 상관없이) 박문수를 제멋대로 행동한다 같은 말로 표현한다면 이종성은 ‘그는 몹시 권위적이라’라는 표현을 써서 찐형제처럼 자랐구나라고 생각하게됨 한살 형인 박문수한테 엄청 잡혀 산 유년기를 보냈을까 생각됨(ㅋㅋㅋㅋㅋ
자잘한 주변사람들
표철주는 사실 공식기록에는 나온 적이 없고 김광택은 승정원일기에 나옴
패영(갓끈)을 이렇게 짧게 묶어 귀 옆으로 넘기는 패션을 조현명이 먼저 시작하고 박문수가 따라하면서 유행탔다고 함 (임하필기엿나 청성잡기였나)
숙종의 왕자들
경종은 그래도 왕이었어서 어릴때부터 비만이었다 같은 외형 기록이라도 남아있는데 연령군은 아무것도 안 남은게 아쉬움… 셋다 그냥 존나 음침하게 생겼으면 좋겠다
조태만
완소 대표 중 하나였던 조태억의 형. 영조 세제시절에 익위사(계방; 세제호위기관)에서 관직을 지냈는데 소를 타고 과거장에 가는 등의 야사가 남을 정도로 기묘한 행동을 많이 했다 함. 동생은 소론이지만 본인은 노론에 가까웠는듯 (권상하의 문하). 김일경이 세제시강원(세제교육기관)에 무슨 일로 잠깐 들르니까 시강원 서리가 방석을 내주었는데 김일경이 간 후 방석을 태우고 그 서리를 매질한 걸로 자꾸 회자됨ㅋㅋㅋ 김일경의 겸종을 매질했다는 버전도 있음. 아무튼 그것때문인진 몰라도 갑진년에 익위사 자리에서 체직되는데 그 해에 죽었는지 조태억이 형의 장례때문에 자리를 비웠다는 기록이 있음. (형제끼리 사이가 나쁘진 않았던듯…) 영조도 조태만이랑 잠깐 사가의 일로 대화했던 걸 회상한 거 보면 자주 마주치는 얼굴이었는듯.
승정원 일기 읽다보면 나오는 의금부는 대강 이런느낌임…
민진원 (내 캐디는 아니고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캐디… 갓캐디죠)
영조 초기 노론의 영수인데, 경종 때부터 노론 대표로 활동했지만 노론4대신 때문인지 영수라는 이미지는 좀 희박한 듯. 사실 4대신도 뭔가 하려면 민진원과의 상의 정도는 반드시 거쳤을 것 같은 이미지인데… 삼수의 옥 터지고 4대신 귀양가기 전에 경종한테 막말한 죄로(ㅋㅋㅋㅋ) 먼저 귀양갔었는데 (아닐수도 있음 자세히 안 알아봐서…) 삼수의 옥 터진 다음 해에 경종이 풀어주라는 명을 내렸었음. 당시 권력 장악중이던 소론이 반발해서 풀려나진 못했지만 영조가 이걸 핑계로 을사환국 때 민진원을 풀어준 걸 보면 어느정도 포석은 깔아뒀다는 느낌… 경종도 영조가 을사환국 때 했던 것처럼 민진원을 이용해서 어느정도는 탕평을 해보려고 했을가…싶으면서도 경종은 일하는 날보다 일 안하는 날이 더 많았던듯…(아팟댑니다…) 경종한테 막 대한걸로 유명하지만 효장세자 죽고 딸만 셋넷을 내리 낳은 영조에게 이제 슬슬 전하도 늙어가니까 혹시 모르니 중전에게 살짝 귀띔해서 종친 중 괜찮은 놈 하나 후계자로 골라놓고 나중에 왕자 태어나면 그 지문을 없애시죠 <<같은 제안을 한 사람임… 기록에 ‘상이 한참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라고 나와있는데 내가 다 숨막힘.
근데 조카인 민우수가 쓴 기록을 보면 다정한 성격에 민우수 본인이 자기 아이들이 조금만 잘못해도 꾸중하니까 ‘애들을 왜 그렇게 엄하게 다스리나’라고 타이를 정도로 자상했다 함. 또 다른 사람이 남긴 기록엔 ‘나를 보면 늘 웃는 낯이셔서 부드러우시구나 했는데 (조정에서) 그렇게 강직한 주장을 펼치실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라고 나와있는 걸로 봐서 사적인 자리에선 꽤 다정다감했는듯… 원래 행정가여서 지방 수령으로 갔을 때 일도 잘 하고 무슨 궁궐 보수? 에서도 일 존나 잘했는데 기록이 다 남아서 일 잘한걸 알수있다<<란 기록이 남음… 여러모로 엄청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생각됐는데 숙종대에는 아버지인 민유중이랑 형인 민진후가 더 부각되고 경종대에는 노론 4대신이 부각된데다가 영조 초기에 을사환국-정미환국 사이 2년 반 동안 잠깐 정계로 돌아왔다가 그 후로 판/영중추부사가 되어 실질적으로는 은퇴하는 바람에 (물론 영조가 의심했듯이 배후에서 노론 준론의 의견을 강화하는 역할은 수행했을것임…) 관련 연구도 만이 없는듯함… 아니 애초에 영조 초기는 연구가 많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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