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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함정

글 합작 '덕질의 민족' 여름호 참여작

A씨는 논리적이고 진솔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감정도 곧잘 털어놓았고, 상담이 끝나면 긍정적인 감상을 하나 이상 이야기하며 마무리했다. 나는 처음 몇 회기 동안 그것을 상담 작업이 잘 되어간다는 신호라고 생각했다. 첫 회기에 길게 존재했던 침묵이 사라졌으니 이제 나를 신뢰하고 상담을 받아들였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A씨의 이야기가 지나치게 매끄럽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사를 완벽하게 읊는 배우처럼.

일련의 이야기 속에서 A씨는 상담사인 나마저 대신해서 약속된 회기 내에 깔끔하게 마무리될 서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가 꽤 괜찮은 상담을 했고 치른 돈이 아깝지 않은 통찰을 얻었다고 이야기하며 헤어질 수 있도록 말이다. 이 방식이 그대로 이어져서는 진정한 변화가 만들어질 수 없으리라는 직감이 들었다. A씨가 말을 하는 그 자리에 실존하지 않는 이상 그 자신도 스스로에게 닿지 못 할 테니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때부터 A씨의 행복을 바라면서도 동시에 그의 스텝이 꼬이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A씨는 수렁에 빠져야만 멈춰서서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래야만 내가 내미는 손에 의미가 생기지 않겠는가.

수렁에 빠져야만 멈출 수 있고 그때 구원의 손에 의미가 생긴다, 라.

…….

아뇨, 괜찮아요. 불쾌하지 않아요. 맞는 말이죠. 전혀 문제가 될 만한 구절은 아닙니다. 선생님의 진솔한 성찰은 저도 반가운걸요. 게다가 이 내용은 한 챕터를 차지하는 비중 있는 주제가 아닙니까. 다만, 그저, ……. 이해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은 말입니다. 다만 제게 ‘수렁’이라는 표현이 어떤 의미로 와닿을 수 있는지는 선생님도 이제는 이해해주실 수 있겠죠? 그래서 잠시 주저했을 뿐입니다.

…… 구체적으로요? 하하. 정말, 이제는 저를 아주 능수능란하게 ‘수렁’으로 몰고 가시는군요, 세나씨.

그래요, 글로리는 제게 우연히 굴러떨어져서 어떻게 기어 올라갈 엄두도 못 내는 깊은 구렁텅이와 같았습니다. 선생님이 파놓는 구덩이들처럼 안전하고 유쾌한 함정 같은 게 아니죠. 우선 빠지면 어떤 탈주 시도도 허락하지 않을듯한 미끈한 벽에 사방이 가로막히고, 그 밑바닥에는 사람들이 우글거려요. 가장 끔찍한 부분은, 누군가는 그 밑바닥에서도 바닥을 받쳐야 하고, 누군가는 그 어깨를 밟고 위에 서 있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위에 선 이의 발목을 자진해서 붙잡는 사람도 있고, 조금이라도 제 공간을 만들려 애쓰는 사람들, 희망을 못 버리고 벽을 긁는 사람들이 있고, …… 게다가 그곳에서 태어나 한 번도 바깥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있는 겁니다.

지난번에도 이야기했던가요. 랩키드란 잘 다듬은 조각상 같은 게 아닙니다. 주형에 플라스틱을 붓고 굳힌 공산품 같은 거죠. 규격에 맞는 제품은 출하되고, 불량품은 폐기되고. 컨베이어벨트를 따라가면 공정의 마지막에는 사포질까지 꼼꼼하게 마치더라고요.

네?

아뇨, 칼은 화내지 않을 거예요. 아마…… 제가 한 이야기라는 점에 은근히 열받아하긴 하겠지만, 칼은 자신의 무결점에 대한 가치판단조차 거부하니까……. 알랭이요? …… 글쎄요. 반대일 것 같네요. 묘사에는 열받아하긴 하지만, 제가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화내지 못 하겠죠, 알랭이라면. 아니죠, 저를 사랑해서 양해해주는 게 아니라…….

선생님, 애초에 말입니다.

칼은 냉정하고 차가운 사람은 아니에요. 선생님이 제 얘기를 듣고 그리는 모습보다 훨씬 ‘멀쩡하게’, 흠, 어떻게 보자면 다정하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이해하기 어려우시겠죠. 저도 몇 번이고 그에 대한 평가를 바꿨어요. 그게, 곧바로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사람은 아닌데, 또 어떻게 보면 그렇게 명료한 사람도 없기도 하고.

네, 물론 처음 봤을 땐 그저 공포의 대상이었죠. 훈련 교관이었으니까 말입니다. 기억나요. 그때는 칼도 어렸는데…… 그 검은 눈동자가 얼마나 공허해 보였는지. 제 입소 동기들은 대개 저보다 나이가 꽤 많거나 아주 어린 이들이었는데, 그 와중에도 또래로 보이는 칼과 그다지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냥 생김새나 인상만 그런 게 아니라, 교관으로서도 잘 벼른 칼처럼 단호하고 엄격했거든요. 흙바닥을 구르고 얻어맞은 데를 끌어안은 채 기어 다니는 모습을 보아도 칼이 하는 건 패배 선언 정도예요. 염려도 격려도 없었죠.

이렇게 이야기하면 칼을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시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선생님, 아까 말씀하신 ‘수렁’의 비유에 빗대자면 제게 가장 손을 많이 내밀어준 사람은 칼일 겁니다. 그야, 일어나야만 제가 일을 할 수 있을 거거든요.

아, 여전히 냉정해 보인다고요……. 하지만…… 그래요, 예를 들자면 그의 손은 목숨이 걸린 전장에서 넘어진 동료를 잡아 일으키는 손인 겁니다. 물론 그 선택은 아름다운 동료애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단 살아남은 아군이 많아야만 임무를 성공시키고 더 많은 아군을, 부품을 살려낼 수 있다는 목적의식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아뇨, 악감정은 없다니까요. 그래도 그 손을 잊어버릴 순 없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나를 살려낸 손인데. 당장 지금 구르고 있는 밑바닥보다도 더 깊은 심연, 죽음 앞에서 나를 붙잡고 끌어 올렸단 말입니다.

게다가, 그래, 이런 이야기는 아마 질리시겠지만요, 피도 눈물도 없으면 차라리 남을 미워할 이유도 없어지지 않겠어요? 경멸은 할지언정 분노할 이유가 사라지거든요. 결과에 따라, 쓸모에 따라, 목적과 필요에 따라. 이 부품을 계속 사용할지를 결정할 뿐이죠. 그 공정을 수없이 반복하면, 그러니까 살기 위해서든, 그저 보고 자란 것이 그런 것뿐이든, 내가 살아가는 사회의 가치를 체득하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닙니다.

…….

그게 연민인지 편안함인지는 아무래도 좋지 않나요. 그에 대한 연민이 자기연민이기도 하며 나도 글로리의 규격에 맞춰졌다거나 하는 구질구질한 얘기는 우리 상담에서 충분히 나눴잖아요. 중요한 건, 선생님, 내밀어지는 손을 신뢰하기에는 너무 깊은 수렁 속에 있었다는 거죠. 그도, 나도.

그러니까 차라리, 규격 외를 논한다면 알랭 베르나르의 이야기를 해야 할 거예요.

알랭…… 루소는, 말하자면 대체 불가능한 존재예요. 저에게도 그렇지만,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알랭을 사랑하니까요. 그 글로리마저도 루소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봐요, 저는. 그건 알랭이 살아온 인생과 처한 상황과 가진 힘과 주어진 자리, 그 모든 걸 통틀어서 탄생한 기적 같은 거죠. …… 큼, 이건 남편 자랑이 아니고.

이전에도 말했듯이 저는, 솔직히 그다지 쓸모가 있는 부품은 아니었어요. 있으면 좋고 없어도 괜찮은, 그렇다고 남에게 줘버리기는 아까운, 조금 흠이 있지만 버릴 것까지는 없는…… 뭐 그런 게 집에 하나쯤은 있지 않나요. 결국 대청소를 할 때도 버리지 않고 남겨놓게 되는 잡동사니 말이에요. 그에 비해서 루소는, 없으면 안 되는 거대한 가전 정도의 존재감이 있었어요. 천리안이라는 능력의 유용성보다는, 글쎄, 성격 탓이 컸을 텐데…… 어쩔 수 없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통솔력이며, 그에 비해 한없이 정에 약하고 무른 성정이며, 정의로운 가치관과 다혈질적인 성격은 시선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글로리가 가장 높은 곳에 앉혀두고 지켜봐야만 했던 겁니다.

아니, 정말, 편애가 아니에요. 이건 제가 알랭을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한 거니까요. 18살의 신입 요원이 범세계적 특수부대의 국장을 마주했을 때부터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그 국장이란 사람이 신입 요원에게 직접 능력을 쓰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나섰다는 사실이죠. 걸음마를 가르치는 것처럼, 전부 하나하나. 알랭 베르나르는 그런 사람이에요. 자기 손이 닿는 곳은 어디든 끌어안아요. 그런 사람이니까 더욱 가혹했겠죠, 인간의 탑을 밟고 꼭대기에 서서 지휘하라는 명령이.

이건 저도 오랜 세월 몰랐던…… 보지 않으려 했던 사실인데, 사실 알랭 베르나르는 정말이지 소박한 사람이거든요. 누구 위에 올라서고 누구 밑에 밟히고, 이런 건 조금도 모르는 채로 살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는 편이 훨씬 행복했겠죠.

그렇지만…… 정말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알랭이어서 다행이었어요.

선생님, 가장 꼭대기에 있도록 끌어 올려진 후에 가장 아래로 스스로 내려가길 자처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런데 알랭은 바보라서 말입니다, 어떻게든 자기 밑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 올리는 것밖에는 모르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그렇게 한 명 한 명 끌어올리다 보면 자기가 점점 어깨 위에 많은 걸 올려놓게 되는 걸 모르지 않지만, 굳이 계산하지도 않는다는 게.

그리고 저는 말하자면, 그 어깨를 딛고 가장 먼저 구덩이를 벗어난 사람 중 하나가 됩니다. 그러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 이야기가 먼 길을 돌아왔네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그 수렁 밖에서 손을 내미는 것밖에는 없었어요, 선생님. 그건 얼마나 초라한 일인지 모릅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손의 온도 따위는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붙잡고 올라서서 얻은 생존이란 말이죠. 손을 뻗어서 끌어올리는 것 따위는 구덩이 속에서 어깨를 내어주는 데 비할 바가 못 되고, 아니, 그 안에서 하는 어떤 발버둥에 비해서도 한참 초라한 행동이었어요.

그러니까 선생님, 발이 빠진 사람에게 손을 내밀기 위해 굳이 함정을 파진 않으셔도 됐을 겁니다. 위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줄기의 잔인함에 비해 당장 손에 잡히고 발을 디딜 수 있는 무언가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아는 사람한테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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