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
에녹이진
Q. 뭔가요 이게
A. 그냥 제가 쓰고 싶어서 쓰는 에녹이진 글.
어찌 되었든 그 이후, 다사다난했던 그날의 다음 날, 그다음 날, 또 그다음 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진은 핸드폰 바라보는 시간이 늘었다. 하다못해 학생 시절에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그 이유이자 원인 제공자에 대한 것은 말로 꺼내지 않아도 알 테니 구태여 적진 않겠다. 이진은 요새 그 사람 때문에 머리가 복잡하다. 복잡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나. 신경 쓰인다는 표현이 조금 더 적절할 듯하다. 여기에 '불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가 또 사라질까 봐 불안한 것이라고, 그걸 자신이 오랜 시간 동안 알아차리지 못할까 봐 불안한 것이라고, 그리 결론지었다.
보낸 연락에 곧바로 답장이 오지 않는 것은 익숙하다. 대부분의 경우 그랬으니까. 그야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 아닌가. 사람이 항상 한가하고 언제든 답장을 보낼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상태는 아닌 것이 일반적이다. 그의 경우 높은 확률로 궁금하지 않은 사생활이 그 이유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특별한 일이 없다면 머지않아 답장은 올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말이다.
'평소대로면 지금쯤 답이 올 텐데.' 예정, 예상과 다른 현실에 이진은 다시금 불안해진다. 잡고 있던 공부는 손에서 놓은 지 오래다. 한참을 초조하게 굴던 이진은 결국 얇은 겉옷을 챙겨 집을 나선다. 길을 따라 걷는 이진의 걸음은 지나가던 누군가가 보아도 급해 보였을 것이다.
알고 있는 호수가 적힌 문, 이진은 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초인종을 누른다. 돌아오는 반응이 없거든 머리가 내릴 결론이야 뻔하다. '집에 없네.' 이진은 현관문 앞에 서서 휴대폰이나 만지작거린다. 혹시 그 사이 올지도 모르는 답장을 기다리며,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집주인을 기다린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귀가를 목적으로 하던 그를 만나면 이진은 그제야 안심한다. 별일 없었구나, 여전히 이곳에 있구나. 평범한 스물여섯 살의 여성이 할 법한 생각과는 거리가 먼 것들을 떠올린다. 결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불안감에 잠식되었을 이진은 어리광을 부리기로 한다. 말이 좋아 어리광이지, 실상은 고집이나 다름없다고 스스로는 생각한다. 예상치 못한 방문객에 당황했을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이마를 묻는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걸 들은 것도 같지만 무시하고 대답은 않는다.
"...연락 좀 빨리 봐주면 안 돼?"
이 무슨 어린애 같은 요구인가. 하지만 대답을 듣지 않고서는 그를 놓아줄 의향이 없었다. 진심이든, 마지못해 자신을 위해 해준 대답이든, 무언의 답을 듣고 나면 이진은 그제야 물러난다. 그리 믿음직스럽진 못하지만 이만 돌아가기로 마음먹는다. 언제까지고 죽치고 있을 수는 없으니. 이진이 떠나기 위해 멀어지면 그의 눈엔 이진이 신은 신발이 들어올 것이다. 늘 신고 다니던 부츠가 아닌, 편한 운동화가. 아마도 급히 채비하고 나오느라 신었을 것이 분명한 운동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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