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바라거든 얼마든지.

루시이브

언제나 by 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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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밝다는 말은 네가 참 예쁘단 거였어

별이 많다는 말은 네가 그만큼 좋다는 거였고

밤공기가 시원한 건 함께 있는 시간이 따스해진 탓이었지

그만큼 세상이 온통 너였고 네가 세상이었어

나는 거기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 했던 거야

-김준, 숨은의미

" 글쎄. 그럼 루시엘은-... 바라보기만 할 건가. 내가 무얼 하던 보고만 있을 거야? "

나는 물이 아닌걸. 가만히 있어도 이어져 들려오는 말들. 나긋하다기보다는 그저 내뱉은 것에 불과한 대답이었다. 정말 미워해도 괜찮아?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은 이렇게 하여도 이제는 미워하는 것조차 너무도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것을, 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설령 네가 보고만 있겠노라 하더라도 내가 무얼 하겠어. 아마 자신이라면 그 또한 받아들이고 가만히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옅은 미소나 한 번 짓는가 싶었다.

...내가 사랑하지 않는다면 너는 누가 사랑해주나. 스스로도 못났다 말하는 너를, 스스로 상처받는 너를. 나라도 곱게 말해주면 조금 나을까. 특별하게 노력을 해야 하는 일도 아닐뿐더러 본성과도 곧잘 맞는 탓에 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닐 터였다. 나는 이렇게나 예쁘게 너를 보고 있는데, 너는 스스로에게 박한 것일까. 네가 거짓을 말한다면 기꺼이 속아 넘어가 줄 의향 또한 있었다. 네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남들이 모두 맞다고 하더라도 널 따라 아니라고 말해줄게. 설마 내가 그 정도도 못 해주겠어.

"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시엘이니까. "

싱긋,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이 루시엘인 이상, 하염없이 루시엘만을 사랑할 것이었다. 남에게 나누어줄 정도로 줄 수 있는 사랑이 많지도, 크지도 않았으니까. 네가 불안해하면 어떠하고, 슬픈 생각을 하면 또 어때. 그마저도 자신이 사랑하는 루시엘인 것을.

옅게 웃음을 흘렸다. 모르는 일이지. 그런데도 네가 해준 말 한마디가 안심을 도운 것은 사실이었다. 분명 자신도 그럴 테지. 이리도 좋아하는데, 어느 날 훌쩍 네가 떠나기라도 한다면 꽤나 많이, 또 오랫동안 슬플 것만 같았다. 몇 날 며칠을 그저 울기만 하면서 보낼지도 모르겠어.

" 내 옆자리는 그리 무겁지 않은데. 생각보다 부족하지 않은 사람일지도 모르지? 어쩌면 내가 부족할 수도 있고 말이야. "

아, 어쩌지...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네가 너무도 사랑스러워 보였다. 자신이 무어라고 이렇게까지 하나, 싶은 생각이 듦과 동시에 자신을 소중히 아껴주는 네가 좋아서. 네가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옆자리는 오롯이 너만의 것이리라고 말할 수 있었다. 좋아해, 사랑해, 사랑해. 입 밖으로는 나오지 않은 말. 그럼에도 갈망하는 것이 분명한 눈빛으로 선명하게 드러난 말. 옆에만 있어 주면 그걸로 족했다. 다른 것은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으니 그저 옆에만 있어 달라고, 그리 말하는 것도 가능했다. 눈앞에 보이는 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것처럼 굴었다. 여유로이 대답을 망설이는 척하는 것도 어려웠다. 당장에라도 손아귀로 붙잡아 얻어내고 싶은, 그런 생각마저 들고 말았다.

자신의 이름을 부른 뒤 입을 꾹, 닫은 너를 바라보았다. 저도 널 따라 입을 닫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로 있었다. 먼저 말문을 열려고 하였던 네 입이 다시금 열리기를 기다렸다. 시선이 향하고 있던 네 보랏빛 눈동자가 흐려지는가 싶은 생각이 들자 눈을 두어 번 끔뻑거렸다. 열린 입 사이로 나오는 네 말들이 잘게 떨리는 것 같았다. 좋은 사람이 아니라 말하는 네게 반문을 하고 싶었고, 한심한 생각이 아니라는 말도 하고 싶었다. 부족하다면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었다. 네가 나를 원해주는 것이, 좋았으니까. 네가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이, 그렇다고 말해주는 것 또한 좋아했다. 소유든 뭐든 내 곁에 네가 있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가까워져 속해줄 수 있었다. 그것이면 될 터였다.

" 전혀 보잘 것 없지 않아. 네가 주는 건데 왜 보잘 것 없겠어. "

자신이 주는 건 밝으면 얼마나 밝다고 네 사랑은 그리 어둡다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색이 조금 어둡다고 싫어할 것 같았나. 눈을 슴벅였다. 도륵, 눈동자를 굴려 너를 마주 보았고 이어 짧은 한마디를 뱉었다.

" 사랑해. "

곱게 눈매가 휘며 웃음을 보였다. 다른 길고 긴말들보다 이 말 하나면 괜찮지 않을까. 짧디짧은, 고작해야 세 글자에 불과한 말이지만 다른 어떤 것보다도 진심을 가득 담아낸 말이었다. 너를 사랑하기에 그런 것쯤은 아무래도 좋다고 그리 말하는 것인데 너라면 알아들어 주지 않을까 싶은, 그런 마음도 있었다.

" 그럼, 당연히 괜찮았지. "

화사하게, 어여쁘게도 웃었다. 자그마한 웃음소리도 함께 내었다. 평생이래, 평생. 기쁨, 설렘, 무슨 단어로 형용해야 할지 모르겠는걸. 프러포즈야, 그거? 괜히 장난스레 한번 더 물었다. 몇 번이고 다시 듣고 싶은 말. 곁에서 함께, 그리고 평생. 너무도 마음에 드는 말이었다. 금방 긍정을 표하는 말이 나오지 않은 것은 '평생'이라는 말이 생각보다 어려웠기에. 허나 잠시간의 고민으로 대답을 미룰 수도, 너를 놓을 수도 없었다. 나는 네가 좋고, 사랑하고, 옆에 있었으면 하니까. 그 기간이 평생이 될 뿐인데, 싫어할 이유가 없지 않아? ...어쩐지 눈물마저 나올 것 같아, 우는 대신에 활짝 웃어 보였다. 약속한 거야? 분명 루시엘이 먼저 말했으니까.

" 이런 말을 듣는 데 자격까지 필요한가. "

이리도 나를 사랑해주는데, 내가 어떻게 이런 너를 사랑하지 않겠어. 과분하지 않아. 다른 누구도 아닌 루시엘이니까 해줄 수 있는 말들인걸. 시선 한 번 굴리고는 말을 이었다. 진실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의견이 더 많았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하는 말들이 늘 사실이고 정답인 건 아니잖아? 그저, 단순한 생각이나 추측에 불과한 말도 있었을 테니까.

" 그런 것까지 사랑하지 말라고 늘 말하는데. "

그래도 뭐, 말릴 수는 없지 않을까.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아껴주는 너 또한 좋아하기에. 미운 부분까지 사랑해주겠다는 너의 말이 생각보다도 탐스러워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손을 뻗고야 말 것이 분명했다.

제 이름을 불러주었다. 더 없이 사랑하는 목소리로 울리는 제 이름이 곧게 자신만을 칭하고 있어 자신 또한 너를 마주 보았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아니면 안된다 말해주었다. 어느샌가 느껴지기 시작한 심장의 고동에, 어쩌면 잡아먹히지 않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마저 떠올랐다.

아, 운다. 네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제 앞에서만 울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 어떻게 저걸 보고만 있겠어. 손을 가져다 네 양 뺨을 감싸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었다. 울지마, 라고 말하고 싶어도 그렇게 말한다면 네가 다시는 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것 같아 꺼려졌다. 억지로라도 참으며 울지 않을 것 같아서. 눈매가 쳐졌다. 한 발짝 걸음을 옮겨 네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 나도 사랑해. 네가, 같이 있어 줬으면 좋겠어. 평생이어도 좋으니 계속 곁에 있었으면 하는데.

부드러우면서도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법한 무게는 담긴 투로. 필요한 단어들은 강하게, 잘못 들은 것이 아님을 명확하게 해줄 수 있게끔. 어쩌면 부끄러워서 두 번은 말 못 할지도 모르지. 아무리 장난스럽고 가볍게 대하려고 해도, 심장에 위치해 있을 나침반은 한결 같이도 너만을 향해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러니 더욱더 네게로 다가가고자 할 수밖에.

거창한 맹세는 필요로 하지 않아. 그게 아니더라도 믿을 수 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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