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작업물

아르망 솔레이스 반 헬싱.

ㅍㅂ님 커미션 / 공백 포함 6075자

Miserere mei, 

Deus.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신앙이란 죽음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의 피 위에. 수많은 마녀와 이단자들의 피 위에. 성벽 바깥, 사원 바깥에서 악다구니치며 죽은 사람들의 피눈물 위에. 공고한 토대는 핏물에 젖어 있다. 그 비린내 풍기는 액체는 죄를 지은 인간이 스스로 토해내는 속죄다. 사람들은 어째서 사원을 생명의 장소로 착각하는가? 그 곳은 기실 죽음으로 지어진 곳일진대. 이 문장에 그 어떤 냉소와 비판도 담지 말자. 진실은 오롯하게 그 자체로 진실이다. 성당을 바라보라. 그곳에 무엇이 있는가? 바닥, 지붕, 성물, 십자가, 줄지어 선 의자. 그것들은 모두 죽음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그 바닥은 무엇인가? 그것은 태곳적 어머니의 뼈다. 세상을 태어나게 한 존재, 어머니. 데우칼리온과 퓌라가 어깨 너머로 던졌던 돌들이 인류가 되었고, 인류는 차마 생명을 얻지 못하고 흙에 묻혀 휴식 중인 어머니의 일부를 꺼내어 다듬어내린 것이다. 거대한 몸체의 거인으로 태어났을지도 모르는, 그러나 오로지 침묵과 부동不動으로만 일관하고 있는 바위들. 우리보다 훨씬 강인하고 수동적인 존재들. 인간은 손으로 어머니의 뼈들에 생명을 부여하려 했다. 그러나 바위들은 형상만을 흉내 낼 뿐, 죽어 있는 것이다.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않고서. 오로지 그 자리에 서서 차가움을 품고 있다. 그 바닥은 어머니의 뼈다. 그 바닥은 잘 짜인 아름다운 죽음들이다. 하늘과 땅을 갈라놓았던 거인-세상의 어머니-들은 죽어 바위를 남겼다. 인간은 손으로 그 죽음을 다듬어 거인이 아닌 신을 찬양하기 위한 건물을 세웠다. 어머니는 말이 없고, 그의 뼈는 다시 건물의 뼈대 되어 인간의 신앙을 지탱한다. 지붕이 덮어지는 순간 볕과 그늘을 동시에 감내해야 하는 돌의 운명에 슬퍼할 새도 없이 우리는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지붕, 그 지붕들, 건축물에 쓰인 온갖 비계들, 잘 짜인 틀, 문, 그리고 고해실들, 연단과 오르간. 그것들은 형제의 뼈다. 형태 다른 생명. 그것들의 잘 말려진 미라이다. 바람과 볕에 버티기 위해 그늘 밑에 머물렀던, 뒤틀어지지 않은 정갈한 나무들의 시체. 그것들이 어머니의 뼈와 함께 사원을 지탱한다. 우리는 그 위에 앉는다. 그 위에서 고개 숙여 기도한다. 신앙의 상징은 간혹 형제의 시체로 만들어진다. 저 곱고 엄숙한 십자가를 보라. 눈을 올려 숭고한 죽음의 형상을 떠받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라. 그것은 향기로운 형제의 시체 위에 올려진 신앙의 상징이다. 형제들은 이제 볕과 물을 축복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미라가 되어, 그것들을 그저 견뎌내어야만 한다.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랴. 이리저리 휘어지고, 감내하며, 삐걱거리는 작은 마찰음들을 고통의 신호로서 내보내는 그 나무들. 지붕 밑 말라붙은 형제의 미라와 그가 지탱하고 있는 신성한 죽음을 보라. 이 건물은 감히 말하건대 가장 매력적인 모순이라.

그렇다면 사원에 생명은 존재하지 않는가? 아니, 이제 빛을 보자. 그것은 신의 손길이다. 시선이며 은총이다. 생명이라고 감히 일컫는다. 우리가 태양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는 이유는 그 안에 신이 계시기 때문이리라. 그는 빛이고, 또 열기라. 그래서 인간은 오랜 어머니의 뼈와 나무의 시체로 높은 탑을 올렸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오색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지어 은총이 감히 인간의 색을 담아 내리쬐게 했다. 빛을 눈으로 보기 위해, 온 몸으로 받아내어 죄 많은 몸뚱이를 씻기 위해. 그래서 인간은 색유리를 끼워 넣은 창을 지었다. 광휘의 빛은 오색이다. 인간이 그렇게 정했기 때문에 그리 되었다. 그 오만이 태고부터 내려온 어머니의 다듬어진 뼈 위를 비춘다. 형제의 시체는 빛을 받아 조금 더 단단히 말라간다. 순수해 보이는 그 빛들은 기실 인간의 왜곡이 가장 명확히 담긴 창조물이다. 사원은 뼈와 시체와 빛으로 인간의 눈 위에 베일을 씌운다. 그 베일의 이름은 신앙이다. 우리는 눈이 먼 채로 그 곳에 발을 들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날은 수요일. 재의 수요일. 이마에 연기와 다 타 버린 나무 시체의 가루를 발라 십자가를 그은 이들이 성당을 나서는 날. 사순절四旬節의 시작. 부활이 마흔 날 뒤로 멀다. 다른 말인 즉슨, 죽음이 가깝다. 고난은 그것보다 훨씬 가깝다. 신앙 가진 자들은 그 고난의 길을 따라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 부활과 가까워지기 위해. 다시 말하자면, 죽음과 가까워지기 위해. 매캐한 시신의 향을 이마에 바른 채 성당을 나선다. 모두가 죽음의 향기를 풍기는 날. 이 기이한 날. 

한 생명이 걸어간다. 이 모든 죽음의 위를 걷는 이가 있다. 아르망 반 헬싱, 솔레이스. 그는 단단히 걷는다. 한 발을 내디딜 때, 그는 약속의 인장印章을 내리찍듯이 힘을 준다. 그의 걸음걸이는 구원자의 걸음걸이라. 그렇게 어머니의 뼈를 밟으며 나아간다. 그가 그것을 알고 있는가? 물론이다. 심판자의 발그레한 손등과 뺨이 그늘 아래로 들어간다. 화염마저도 그 피부에 흥미를 느껴 혓바닥을 내밀어 핥아보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일그러진 피부 아래의 근육이 대신 그를 지탱하며, 형제의 시체로 지어진 그늘의 문을 열어젖힌다. 그가 그것에 닿고 있는가? 물론이다. 청년 사제의 눈은 신앙으로 멀었다. 그 스스로 자신의 눈을 멀게 했다. 그는 인간의 오만을 등에 지고 나아간다. 오색 광휘가 그의 등 위에 얹어진다. 그가 짊어졌는지도 모른다. 그가 그것을 감각하고 있는가? 온 몸으로. 감히 말하건대. 온 몸으로. 

그는 보지 않는다. 듣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다. 그는 감각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는 고난 받는다. 그는 살아간다. 나무의 죽음에서 비롯된 향기는 절멸하는 생명을 위한 찬가가 되었으니, 그는 그 뿌연 연기 같은 은총 안에서 감히 감각한다. 무릇 사제란 신체를 다루는 정신을 신에게 의탁해야 하는 법이라. 눈을 뜨고, 코를 벌름대고,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쥐고서 팔과 온 몸을 휘둘러 삿된 것들의 존재를 뭉그러뜨릴 때마다 그는 감각한다. 그것은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전능한 신의 사랑 아래 온전히 신체를 정신에 내맡기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청년은 일종의 -환각과도 같은- 묵상에 빠진다. 실현을 손에 쥔 채 선 저 자신의 존재가 오롯한 신의 은총을 감내할 때. 사랑으로 전쟁을 치르는 사제는 그것을 감각한다. 살아낸다. 

보라, 이제 그가 무릎을 꿇는다. 그것은 강제에 의한 경의도, 두려움으로 인한 굴복도 아니다. 묵상하는 청년의 손에서는 피비린내가 난다. 그것은 그 자신의 오롯한 의지다. 그는 자기 손에 묻힌 피와 똑같은 무게의 의지로 무릎을 꿇어 어머니의 단단한 뼈 위에 기댄다. 고개를 숙여 차디찬 돌바닥에 이마를 대고서, 회색빛의 바위도 놀랄 만큼 환한 금발을 흐트러뜨린다. 보라. 그 고개 숙임에는 자신이 담겨 있다. 육체가 어머니의 뼈에, 죽음에 직접적으로 닿는 순간 그는 잠시간 눈을 감으려 했으나 감히 그럴 수 없음을 안다. 그는 다시 자신이 그늘과 죽음 위에 엎드린 생명임을 자각한다. 이 구원의 사제가 성당에 무릎 꿇고 엎드린 일은 비단 겸손을 위해서만은 아니리라. 청년은 아름답게 시린 눈동자를 뜨고서, 숨을 크게 들이쉬어 신경체계 한 가운데 꿰뚫어 들어오는 재의 향을 느낀다. 

들으라, 그가 기도한다. 몸을 일으켜 지붕 아래 그늘을 뚫고 나아간다. 높이 올려진 형제의 시체가 햇볕을 감내할 때 그는 자신의 생명을 감내한다. 그는 살아남은 자의 기도를, 화염과도 같은 은총에 찬양을 바친다. 양손을 벌린 예수의 자세를 하고서, 저 멀리 들려오는 노래에 맞춰 입술을 벌린다. 훤한 눈과 올곧은 걸음걸이가 그를 죽음의 상징 아래로 인도하는 것은 순전한 그의 정신이 하는 일이니. 청년은 다만 기도한다. 무엇을 기도하는가? 들으라. 그것은 속죄의 찬양이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것은 다윗의 노래이라.- 그는 당당히 서서 속죄한다. 어째서 몸을 숙이지 않느냐 묻는다면, 그가 속죄와 함께 자신의 강인함을 바라고 있는 기도를 들으라 하겠다. 사제는 나무 십자가 아래 선다. 향기로운 죽음의 재가 종려나무 가지 같은 손가락 끝에 묻혀진다. 이마 위에 옅은 회색의 십자가가 그려질 때, 그는 몸을 떤다. 재는 곧 고난과 죽음, 부활보다 훨씬 가까운 것들. 청년은 그것을 지나치게 잘 알고 있었다. 

말하라, 그가 무엇을 연주하는가. 그가 돌아선다. 견고한 입매 위에 담긴 신실함 위로 오색의 빛이 쏟아진다. 어머니의 뼈 위에, 형제들의 시체 사이에 그가 서 있다. 죽음의 토대 위에 선 생명이 저기 있다. 말하라. 그가 인간의 오만 아래 선 광경이 어떠한가. 강대講臺 위를 비추는 빛 아래 세 마리 원숭이가 앉은 오르골이 있다. 눈을 가리고, 귀를 가리고, 입을 가린 채, 그 원숭이들은 감히 심판자이자 속죄자인 사제와 눈을 마주할 기회를 얻는다. 악한 것은 보지 말고, 듣지 말고, 말하지 말라. 아르망은 되뇌인다. 그는 그제야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것은 신에게 바치는 말이 아니라 그 자신에게 주는 말이니. 인간의 오만을 등에 진 이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 깨닫는다. 매시간, 매 순간마다 그는 깨닫는다. 오로지 믿음, 그리고 신을 향한 길을 향한 숙명적인, 어쩌면 비극적인. 계획 아래 가장 훌륭한 창조물. 자기 의심을 위한 고난을 걷는 이. 오르골은 청년의 손을 따라 연주된다.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소리로, 합창단의 찬양을 꾸역꾸역 내뱉는다.

Tibi soli peccavi et malum coram te feci,

당신의 눈앞에서 죄를 지었사오니,

ut justificeris in sermonibus tuis et vincas cum judicaris.

심판을 내리시더라도 당신께서는 결백하시리이다.

그제서야 아르망은 눈을 감는다. 스테인드글라스가 걸러내는 신의 은총을 그제야 마주한다. 말하라. 그의 얼굴 위로 흐르는 빛이 어떠한가. 동맥혈의 색을 담은 저 신성한 입술을 보라, 그것은 생명의 색이다. 그 위로 노란 빛이 내리앉는다. 깨어진 보석의 파편이 석류의 피에 젖은 듯한 그 눈, 눈꺼풀로 덮인 눈 위로 보랏빛이 내리앉는다. 온 몸은 푸른 빛에 잠긴다. 아르망의 머리 위로, 예수상 위로 초록 빛이 자리한다. 아니, 아니. 그것은 숫제 뒤섞인 찬란함이라 해야 할 것이다. 사제는 손을 맞잡는다. 그 자신이 멈출 수 없이 뛰는 심장 위에, 감히 신이 움직이게 하는 심장 위에 묵주와 자신의 손을 얹는다.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불쌍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아르망이 고개를 숙인다. 청년은 그렇게 오만의 무거움을 받아낸다. 

인간은 왜 죽음의 장소인 사원을 생명의 장소라 믿는가? 그것은 그들을 압도하는 사랑이 그 곳에 있기 때문이라고, 청년은 그리 생각한다. 그것은 그의 믿음이다. 죽음과 사랑이 어찌하여 별개가 될 수 있겠는가? 죽음을 겸하는 신념은 불처럼 두렵다. 죄지은 자를 비추는 횃불만큼, 그들을 둘러싸 죽음의 재로 돌려보내는 화염만큼. 그래서 그 청년 사제는 감히 빛 한 가운데 머무를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을 이해하는 자만이 그 안으로 자신의 몸을 던질 수 있으니. 그는 은총 안에서 두려움을 안다. 그는 자신에게서 풍기는 재의 향조차 기꺼이 알고자 한다. 마주할 수 없는 광휘에 몸을 떨며 기도문을 외는 일. 그것이 마치 자신의 본디 타고난 업인 것처럼 지고 나가는 일을 감당한다. 청년은 웃는다. 우는 대신에 그는 화염을 삼키리라 마음먹었기에. 그는 은총이 목구멍에 걸린 자다.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그 영광된 빛을 감히 품고 있어 그는 점점 사그라진다. 그렇기에 감히 눈물을 떨굴 수 없는 일이다. 보라,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들으라,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말하라,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는 속죄한다. 죽음으로 지어진 사원 위의 한 생명은 감히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그 청년 사제, 아름다운 모순은 은총 안에서 감각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는 고난받는다. 그는 살아낸다. 오색의 광휘로 왜곡된 인간의 오만을 등에 지고 있으나 눈은 태양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는 언젠가 추락할 것이다. 높은 곳을 향해 날아오르는 이카루스의 운명처럼. 땅 위에 지어진 그 건물과 함께 죽음으로 토대를 쌓을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그 위에서 기도할 것이니. 감각하라. 그의 속죄와 모순을 감각하라. 청년이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려 한다는 것을. 사제가 매일 자신의 장례식을 치르는 심정으로 검은 옷을 두른다는 사실을. 보지 말고, 듣지 말고, 말하지 말고. 오로지 감각하라. 그것이 그대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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