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작업물

삼미군왕봉송지조문三眉君王奉送之弔文.

ㅎㄱ님 커미션 / 정조약용 / 공백 포함 17386자

 ***이 글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픽션적 상상력을 더한 허구의 작품입니다.*** 

각주는 기울임체로 표기되었습니다.


삼미군왕봉송지조문三眉君王奉送之弔文.

- 삼미(정약용)가 군왕(정조)을 받들어 떠나보내며 쓰다.

달이 밝을 적에 약용은 성상聖上을 그리었다.

툇마루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다가 웃었다. 누군가를 그리며 웃는 일이란 얼마나 소중한가. 달이라는 것이 유독 제 마음에 어려 있음이 약용을 즐겁게 하였다. 수백 번을 보아도 달은 반드시 웃음을 자아낸다. 해와 달이 함께 지나 만 스무 해가 넘도록 성상의 곁에 있었으니. 모든 시간과 계절이야 반드시 함께 보낸 시간을 일깨우기 마련이건만. 달을 보면 야밤의 대화들이 줄줄이 꼬리 지어 따라온다. 옥음이, 용안이. 수많은 마음과 나누었던 생각들이. 그러다가, 그러다가. 훙薨. 고약한 글자 하나가 뒷덜미를 잡아챈다. 약용은 그만 고개를 떨구고 방으로 들었다. 보내지 못할 죽음은 없을진저. 그러나 너무도 괴로워 보내기 어려운 죽음도 있을진저. 방 한켠 놓인 한서선漢書選 열 권은 풀리지 않은 채 곱게 싸여 있다. 그것을 보다 약용은 먹을 갈았다. 벼루 위에 자신의 마음을 눌러. 돌 위에 굳은 감정을 풀어내듯이. 오래오래.

야밤에 붓을 들었다 약용은 종이 위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붓 끝에 묻은 먹이 주인의 저어함을 알고서, 대신 검은 눈물을 떨군다. 뚝, 뚝, 뚝. 백지 위 묻은 검은 점 세 개. 약용은 붓대를 놓지 않았다. 검은 점 세 개. 끊어진 자신의 눈썹처럼. 그 남은 흔적에게 응답이라도 하듯, 이제 망설임도 없이 휘갈겨 쓴다. 삼미군왕봉송지조문三眉君王奉送之弔文.


지난날 내게 한서선漢書選 10권을 보내시어 5권은 집안에 전하는 것으로 남겨 두고, 5권은 제목을 적어 다시 들여보내라 하시며, 주자소의 별관 벽이 마르게 되면 다시 부르겠다 하셨거늘. 황포에 싸인 책을 풀어 먹 향기를 묻혀다 보내기도 전에 자리에 누워 앓다가 승하하심이 어찌 슬프지 않으랴.

관직에서 물러나 엎드려 고기잡이에나 맛을 들인 지 일 년여가 지났으나, 나를 기억하여 내리시었던 은혜를 안고 엎드려 울었다. 그 날에 흘린 눈물이 나의 군왕 보냄을 위한 애통의 마음이 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 군신君臣의 이별 증표가 다시 만날 기약이었던 것을 생각하니 목 놓아 통곡하지 않을 수 없음이라. 그 깊은 은혜를 기억하며 삼가 조문하기 위해 붓을 든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군왕을 보내는 일을 시작한다. 고약한 글자 하나를 생각한다. 훙薨. 죽음뿐만이 아니다. 그 한 자 안에 담긴 것이 무엇이던가. 무너지는 소리. 훙薨. 마음이 슬픔을 따라 폐허를 만든다. 그렇게 마땅히 따라 올 것들이 무리를 짓는다. 그러나 다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있어 그는 적어 내려간다. 붓 끝에 떨림은 없다. 그것은 신하를 웃음 짓게 하였으므로.


신臣 약용若鏞은 계묘癸卯년 임오일 증광감시 초시에 약관 스물두 살로 응시하여 합격하였으며, 후에 복시를 치러 생원에 올랐다. 그 때여 처음으로 주상을 뵈었음이라. 임금께서 걸음을 옮기시어 엎드린 내 앞에 멈추시고 “고개 들어 나를 보라.” 하시니, 이 어찌 기묘하게도 넘치는 복이 있었을까. 주상께서는 “몇 년생인가.” 물으시기에 “임오壬午년 모월 모일 생입니다.” 고하니, 옥안에 슬픔의 빛이 흐르다가 곧 자애로운 웃음으로 바뀌었던 기억을 한다. 나의 눈썹을 보시며 “그대는 눈썹이 세 갈래인가?” 하시기에 나는 “아호兒號를 삼미三眉라 하옵니다.” 라 답하였고, 곧 주상께서 용안에 슬픈 빛을 지울 만큼 호탕히 웃으시며 “용모가 고우니 그것마저 세 가지 아름다움三美이로다.”며 농을 하시었던 것이다. 내 평생 그 흉터에 대하여 부끄러운 적이 없었으나, 그 때를 생각하면 호기로운 젊을 적으로 돌아간 생각마저 드누나.


신하는 그 때를 생각하며 탄식한다. 만일 하늘에 손길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임오년 그 날 열흘 후에 태어난 이를, 열흘 전에 아비 잃은 사람의 앞에 나아가게 만들지 않았으리라. 만일 마주하지 않았더라면. 그리하여 주상이 죽음과 교차한 한 생生에 각별함의 마음을 지니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조정이 그를 끌어내리려 이빨을 드러내고서 덤벼들 일도, 그가 이제 없는 자신의 군주를 그리워하며 백지 위 묻어나는 먹을 따라 울고 있을 일도 없었으리.

달이 밝다. 약용은 잠시간 자리에서 일어섰다. 밤하늘 달은 참으로 독야청청獨也靑靑하고. 그 그림자 아래 선 신하는 옛날을 생각한다. 곧잘 밤에 자신을 불러내었던 이를. 임금은 본디 잠이 없었다. 죽음이 그를 위협할 세손 시절에 경전을 가까이 두었던 이는 이제 새벽녘 신하를 가까이 두기를 원했으리. 무척이나 따스했던 봄날의 새벽에.

 

마음에 먼저 즐거움이 들어선다. 각루에 올라앉은 성상의 얼굴이 떠오른다. 참으로 좋은 밤이었다. 공기가 그리 차갑지 않았던 때였으리라. 약용은 마루 위에 무릎 꿇은 채 앉아 눈을 감았다. 눈앞에 선한 그 붉은 빛 옷. 술잔 건네던 굳은살 박힌 손가락. 나이가 들었어도 그는 언제나 자신의 군왕 앞에서 삼미三眉가 되었다. 그 날도 그러했다. 노송老松 마룻바닥이 향기롭고, 봄바람에 실린 붉은 매화 꽃잎은 더더욱 향기로운 날. 주안상 위에 붉은 소 송편이 있음을 눈짓했을 때, 성상이 손짓으로 어서 들라 그를 재촉했다. 송편에 발린 참기름 내가 고소했다. 생과방에 명을 내려 특별히 가져온 것이라 하며. 그리고 덧붙여 명하였으리라. 경은 오늘 취하지 않으면 집에 갈 수 없다.

그 날 술상에는 옥필통도 오르지 않았건만, 약용은 취하였다. 유기 술잔이 고운 소리를 내며 상에 놓일 때마다 주상의 용안이 즐거웠다. 왜 그랬을까. 임금이야 취하는 일을 즐기는 이였으나 그 앞에 앉은 신하는 그렇지 않았다. 그날 달이 유독 밝아 그랬을까. 청주가 달게 들이켜졌다. 각루 위에 내리쬐는 달빛과 그 아래 그림자에 마주앉은 두 사람끼리 흥취라도 돋았던 것일까. 아니, 이제야 생각하니 그것은 의문이었으리라. 임금의 마음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에 대한 의문. 약용은 본디 학자의 마음을 지녔다. 사람 마음에 대하여 알고저 함은 그 본성에서 나왔으리라. 그는 취하였다. 어명의 힘을 빌리어. 생각하면 그 때 신하는 군왕에게 잠시간 기대었던 것이다. 약용으로서는 아주 드문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술잔을 내려놓고 그 앞에 머리를 숙였다.

 

“전하, 신 정약용. 물을 것이 있사옵니다.”

“오늘 과인은 참으로 즐거우니 거리낄 것이 없다. 물을 것이 있거든 기탄없이 질문하라.”

“계묘癸卯년 증광감시를 기억하시옵니까?”

 

그때여, 군주도 술잔을 내려놓는다. 쓸쓸함이 감도는 웃음을 보였다. 그 누가 그 웃음을 잊을까. 서른 둘의 젊은 왕, 그 앞에 고개 숙인 스물 두 살 어린 생원이었던 신하는 기억에 대한 답을 들을 필요가 없음을 알았으리라. 그리하여 질문이 이어져 나가고.

 

“그 날 전하께서 제게 보이셨던 옥안의 뜻을 생각하여 보니, 도저히 그 안에 담긴 것을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신 또한 그날을 마음에 품어 온지 오래 되었으니. 오늘 감히 묻고자 합니다.”

“진실로 알고자 하는가?”

 

신하가 고개를 들었다. 알고자 함에 심장이 박동질 친다. 찬찬한 옥음 아래 애통함이 있음을 듣고, 내려놓은 술잔과 곤룡포 소매 아래 숨어든 어수를 본다. 모든 것은 그 형체를 감추고자 하였으나, 여기 드러나고 있으니. 달그림자 아래, 이제 임금이 답한다.

 

“경의 생년을 듣고서 내 어버이를 떠올렸노라.”

 

그와 임금은 꼭 열 살 차이가 났다. 열 한 살적에 임금은 아비를 잃었다. 그로부터 열흘 뒤에 낙향한 진주목 정재원은 아들을 얻어 아명을 귀농歸農이라 지었다. 뒤주에 갇혀 목숨 잃은 세자와 살아남은 어린 세손을 보고서, 정치에 뜻을 두지 않으리라 결심한 아버지는 어릴 적 약용을 그렇게 불렀다. 그러나 여기, 그는 관복을 입고 이제는 용포를 두른 만인지상의 앞에 앉아 있지 않는가. 임금의 용안이 괴로움에 일그러진다. 신하 또한 그 마음을 알고 있다. 문득 바람이 불어 달빛이 흐려진다. 정자는 잠시간 휘날리는 매화 꽃잎의 정신사나움에 휩싸인다. 따스한 봄바람. 임금은 눈을 깜빡였다. 옥루가 떨구어진다. 소매 깃이 젖어들고, 주상의 성면은 온화한 미소를 담는다. 이산李祘은 꼭 그 때여처럼. 어쩌면 임오년 그 날처럼. 뒤주 앞에 서 아버지를 불렀던 그 때의 작은 세손 시절처럼 울었다. 그러나 여기 앉아 신하를 마주한 주상은 울며 웃었다. 약용은 작은 소리를 내어 임금을 불렀다.

 

“전하.”

“신경 쓰지 말라. 내 그분을 생각하면 언제나 이리하나 경 앞에 있으니 자제토록 하겠다.”

“하오나…….”

“그래, 내 경을 보니 그 때가 떠올랐지. 헌데. 어찌 감히 나라의 인재 될 이에게 울상을 지어 보일까.”

 

주상이 술을 들어 친히 신하의 잔을 채웠다. 유기 술잔에 청주가 찰랑인다. 붉은 옷깃이 바람처럼 휘둘러진다. 수심 묻어난 얼굴을 숨기고자 차라리 술을 가까이 두려 함이라. 자세를 고쳐 앉은 임금이 잔을 들어 술을 권하고, 한 잔이 들이켜지고. 임금이 주안상 위의 송편 하나를 집어 약용의 접시 위에 놓아둔다. 손끝에 묻어나는 미련 남은 어떠한 씁쓸함. 신하는 그것을 보았다.

 

“그래서 웃어 보였다.”

“그리하셨습니까.”

“그대를 임오년 그 때의 곡소리를 생각하며 맞아들 수가 없었다. 과거에 합격한 이에게 옛 슬픔을 보여야 되겠는가. 이제 막 나의 앞에 나아온 그 젊은 이에게…….”

 

주상이, 아니, 사도세자의 아들이 눈물을 닦아낸다. 애간장 끊어지는 비명과 갇힌 공간 속 죽어가는 이를 잊지 못하여. 그리하여 그날의 기억에 사로잡혀, 어린 생원 앞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린 것이 미안하기라도 하듯이. 임금은 차마 그를 울며 맞을 수 없다 하면서도 소맷부리를 적시며 우는데. 이제 한 나라의 왕이 되어 신하 앞에 있는지라. 그리 웃어 보이며 큰 숨을 내뱉듯 못 박는 것이다.

 

“나는 그 때에 경과 함께 할 앞으로의 시간들을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노라. 그리고 나는 내가 옳았다고 믿는다.”

 

흐린 달이 맑아지고, 그림자 아래 앉은 두 사람의 술잔 안에도 달빛이 그득하게 차오르고. 옥루 흐른 용안이 마르니. 그 앞에서 신하는 임금의 말이 다만 자신을 달래려 하는 허언이 아닌 것을 알았다. 기어이 곁에 그를 두려 함에는 임오년 그 때의 마음이 있으리라. 죽음과 교차한 삶에게. 무엇이 하나 끝이 나면 어디선가는 시작이 있으니. 잊지 못할 해 태어난 자신을 가까이 두고픔을 이해했다. 임오년 잃은 것을 임오년에 난 것으로 채울 수 있을까. 주상은 그리하려 신하에게 웃어 보였고, 이제 곁에 두어 자신이 옳았음을 자신하고 있지 않은가. 그 마음 앞에, 신하 정약용은 고개 숙여 예가 아닌 마음으로 고한다. 그리 할 수밖에 없었다.

 

“저의 신하 된 자리의 발 디딤부터가 은덕으로 가득 찼으니,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웃음, 봄바람. 매화 꽃잎 하나 불어와 상 위에 끼어들고. 슬픔과 의문은 새벽녘 마주앉은 사람들로 마른다. 그리고 다시, 봄바람을 타고 주상은 농조 가득한 투로 신하를 부른다.

 

“삼미三眉가 정녕 그리 망극하다면 이 술잔을 받으라.”

“명 받들겠나이다.”

 

철철 넘치게 부어 따른 청주를 기꺼이 받아 들이킬 만큼 고마운 밤. 생각하면 그토록 따스한 것을. 이제 홀로 툇마루에 앉은 약용은 눈을 뜬다. 바람이 차가웠다. 달빛도 어찌하여 이리 차가운 것 같을까. 그 날의 광경이 눈에 선하였다. 마음 에이는 듯한 생각보다도 먼저 떠올려진 것은 또 다른 밤이었으리. 달이 밝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는 자신의 임금을 아주 오래도록 생각할 수 있었다. 주상께서 자신을 불러낸 적이 어디 그 밤 한번 뿐이던가. 약용은 도로 붓을 잡으려 몸을 일으켰다. 아직 적어내려야 할 기억이 많았다. 잊어서는 아니 될 것들이 있으므로 그는 다시 써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군신수어君臣水魚라 하였던가. 물과 물고기는 본디 한 몸처럼 붙어 있음이라. 그러나 신하로 태어나 물을 만나는 일이 어디 쉽던가. 촉 한중왕 유비는 제갈량을 얻음에 있어 세 번의 방문을 하였고, 인의예지를 노래하던 옛 공맹성인들 또한 몸 의탁할 군주를 찾아 반평생을 떠돌았는데. 미천한 내가 그분을 만나 참으로 거대한 물을 얻었음을 나의 평생 복으로 여긴다. 부끄럽게도 물을 알아보지 못한 물고기인 내가 벼슬할 일을 여러 번 완강히 거절한 것을 아시면서도, 주상께서는 나를 끝끝내 바다로 이끌고저 하셨다.

성균관에 들어간 지 만 사 년이 지나, 정미丁未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여 적고자 한다. 나는 본디 문장에는 재주가 미연하게나마 있었으나 다른 것에는 모자람이 많은 이인지라. 조정에 나아가 벼슬 하는 일에는 큰 뜻이 없어 오로지 반제泮製에만 힘을 기울였었다. 헌데 그런 나를 어찌 아셨을까. 주상께서 나를 삼 월 춘풍 부는 누각으로 불러내시었다. 희정당 처마 아래 꿇어앉은 내게 다시 고개를 들라 하시고, 용포에 감싸여진 어수를 친히 내밀어 나를 곁으로 부르시는 것이 아닌가. 물으시기를, “삼미는 어찌 나를 날마다 볼 생각을 않는가?” 하시는데. 나를 어린 아이 대하듯 아호를 부르심이 참으로 장난스러움에도 분명한 언중유골言中有骨인지라. 성균관 지붕 아래 몸을 숨기지 말고 대전으로 나아와 매일같이 조정의 일을 볼 것을 권하는 말씀임이 분명하였다. 오로지 거듭 송구하다 여쭈며 “신은 문장에만 기예가 있어 나라의 일을 돌보기에는 하찮은 몸이옵니다.” 답하니, 옥체를 일으켜 궁중 개천가 버들을 가리키시었다. 곧 내게 “버들은 어디서 고개를 숙이는가?” 하셨으니, 나는 “물을 보고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아옵니다.”고 답하였다.

그때여 내게 가까이 다가오시며 다정히 말씀하심이 이와 같았다. “버들은 도道와 이치를 아는 초목이라, 꼭 제 몸에 필요한 것 가까이에 자라고 그것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이 옳은 것을 가져다 뭇 백성들은 잘라다 농사를 위한 거름으로, 달여다 병든 자를 고치는 약으로 쓰지 않겠는가. 그대도 꼭 필요한 것 가까이에 자라고, 필요한 곳에서 고개를 숙이며, 그런고로 만민에게 쓰이는 버들을 닮음이라. 나는 그대가 크게 자라 물가를 맑게 하는 버들의 재목이라 믿는다. 내가 그대의 물가이니 여기 머무름이 어떠한가.”

그 옥음이 나의 폐부 깊이 감격을 주었으니, 어찌 그 앞에서 생전에 돌아가겠다 말할 수 있을까. 주상께서 나를 긴히 쓰고자 하심을 말씀하셨으니 몸을 일으켜 그 앞에 절을 올리고 “신 정약용, 내어 주신 자리에 고개를 숙이겠나이다.”고 답하였다. 그 달 중순에 주상께서 친히 영화당으로 납시어 몸소 시험을 주관하시었고, 수석으로 뽑히니, 그 날이 마침 임오일이라. 크게 기뻐하시며 국조보감國朝寶鑑과 백면지白綿紙 1백 장을 내리셨다. 헌데 구태여 수레에 실어 가지 말고 내게 끌어안고 궁문까지 걸으라 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전 내게 보이시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웃는 일을 즐기시던 주상의 얼굴이 아직도 선연하다.


그의 임금은 신하 놀리기를 즐겨 하였다. 때로는 짓궂음에 식은땀 흘리며 고개 조아렸던 적이 몇 번이던가. 생각하면 약용은 차마 시원스레 웃을 수는 없었다. 다만 한숨처럼 소리 한번을 내어 보였을 뿐이다. 그러나, 또한 그의 임금은 참으로 신하의 능력 크게 쓰기를 즐겼다. 글쓰기를 즐겨 하는 이들이 그러하듯, 방 한켠에 가득 쌓인 책을 눈짓하니 그곳에는 수원 화성 지을 적에 모아둔 서책들이 가득하지 않은가. 약용은 잠시간 붓을 내려두었다. 어명 받아 설계를 시작하였을 때에 그는 아버지의 무덤 곁에 앉아 초막을 짓고 삼년상을 치르던 중이었다.

상복 입은 몸으로 그는 계산을 했다. 쓰고, 쓰며, 또한 생각했다. 이 죽음의 한 가운데서. 자신의 임금이 이루고자 하는 꿈을 좇고 있는 것은 또 무엇인가.

그 때에 약용은 자신의 마음이 지치기 시작했음을 알았다. 아버지라 함은 아이의 첫 세상인지라. 그 세상을 잃은 이의 슬픔이란 말로 못 다할 것임을 세상이 다 알았다. 약용은 아버지에게 경전을 배웠다. 일곱 살 적 처음으로 지은 시를 들어 준 이가 바로 아버지요, 관직에 나아간 아들들에게 늘 선비로서의 몸가짐을 당부하던 이도 부친이었다. 등 뒤의 든든하던 이가 떠났다. 그 빈 자리에 차오르는 것이란 오직 서느런 금속 같은 말들 뿐.

그래서 그는 삼년상을 핑계 삼아 조정을 떠났다. 언젠가는 이루어질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임금은 끝내 신하를 놓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음을. 교지가 내려 왔을 적에 몸가짐을 갖춰 맞으면서도 그는 의문하였다. 이것이 나에게 어떠한 의미가 되겠는가.

 

백성들은 수원을 버드나무 고을이라 부른다던가. 얄궂어라. 하필이면 이때에 그는 버들의 재목으로 쓰이게 되었는가. 그렇게 화성이 지어진다. 약용은 기계를 고안하고, 설계를 바꾸고. 또한 그렇게 아침마다 묫자리 앞에 나아가 곡을 하고, 하루 세 번 절을 올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책상 앞에 앉아 붓을 놀리며. 죽음에 대한 일과와 생에 대한 일과를 반복하여 살아갔다. 성이 지어질 적의 신하는 악에 받쳐 있었다. 한켠에는 임금에 대한 원망이 있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나를 벼슬자리로 끝내 이끈 나의 군주, 나를 조정의 한 가운데 세운 이 나라의 만인지상. 그리하여 저 승냥이 같은 자들의 혓바닥이 나를 향하게 만든. 그래, 그것은 그분의 잘못이 아닌 것을. 그러나 약용은 알았다. 주상에게 자신은 마음으로 아끼는 이이자 또한 가까이 둘 만한 사람이지만은. 결국 그 끝에는, 그 둘 사이에는 군君과 신臣이 있음을. 군주를 받들어 신하는 용用하며 충忠해야 하는 것을. 한없이 거리를 벌리자 하면 바다를 건너 얼어붙은 땅에 도달하련가. 약용은 그 때에 분명 얼어붙어 있었다. 임금에게서 멀어져 조정에 거리를 두고서도 그저 아버지의 자식으로 살지 못함이 한스러웠으므로.

 

지금 여기, 붓을 놓고 다시금 그 날의 기록들을 꺼내 든 신하는 한숨을 쉰다. 아버지와 아들, 군왕과 신하. 약용은 수원에 지어진 성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리라 생각하였다. 아들로 살지 못한 세월이, 화성의 굽어진 성곽마다, 저 팔달문 안 어귀에, 참으로 신하답고자 애쓴 흔적만이 가득한 그곳을 차마 보지 못하리라, 스스로 그렇게 믿었다. 약용은 그 때에 자신의 마음은 참으로 당연하고, 또 마땅한 일이었다 여전히 믿었다. 원망의 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기이하게도 이제 신하는 자신에게 와 닿았던 임금의 마음들에 대하여 써내려간다. 젊은 날의 자신이 가진 원망을 떠올리자 하니. 그 때에 자신의 신세와 지금에 대한 생각이 절로 쌍을 지어 주위를 맴돌고 있잖은가. 조정에서 멀어져 한가한 시골에 자리한 자신을, 아, 그러나, 지금은 멀어질 그의 임금이 계시지 아니한 것을. 어쩌면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붓대를 꽉 쥐어 잡은 손가락 마디에 힘이 들어간다. 이를 악물고, 약용은 한스러운 자신의 신세에 저항하는 마음들을 써내려간다. 그를 신하로 살게 하였던 마음들을.

 


구중궁궐 안에서 보냈던 세월이 무상한데, 개중 군왕께서 내게 내리신 마음들이 한가득이다. 나를 가까이 두고자 하신 마음이 깊어 때로 무거움을 헤아리기조차 버거웠음을 말하고자 한다. 눈 내리던 날 규장각에서 밤늦게 불 밝히고 글을 읽던 적에, 임금께서 음식을 하사하시어 나를 먹이셨던 때를 기억하여 보노라. 나를 귀양 보내시던 때의 노한 듯한 마음이 진정 사랑을 지니셨음을, 그 후 십 일여만에 도로 나를 찾으셨음을 기억하여 보노라.


하얗게 질려 손이 경련을 일으키고, 붓대가 떨구어지고. 종이 위 볼썽사납게 휘그어진 검은 먹 자국들은 아이의 분풀이처럼 보이는 것을. 약용은 자리에서 일어나 성마르게 새 종이를 찾았다. 두어 걸음 내딛기도 전에 숨이 가빠져 온다. 울대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는 감정들을 삼키어내며. 다시 자세 잡아 앉고서 약용은 숨을 쉬었다. 아버지를 잃고, 조정에서 쉴 새 없이 던져대는 혓바닥 화살들을 받아내며 원망하지 않으려 애썼던 그 때처럼. 임금에게 묻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왜 나를 고르셨습니까?

 

그리하여 다시 정월. 삼 년이 지나 성은 지어지고, 세월은 하릴없이 지나갔노라. 약용은 자리에 앉아 숨을 쉬었다. 숨길을 타고 기억이 따라 나온다. 그때에는 참으로 임금을 원망하였다. 기억하려 했으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도 있기에 마련인 것을. 그러나 그것들을 부정하여 지나갈 수 있는가? 그와 주상의 시간들을 되돌이킬 때에, 정녕 수원을, 그곳에 지어진 화성을 잊고서 지나갈 수 있는가?

 

그 누가 그리 할 수 있겠는가.

 

붓을 잡기에 용기가 없어, 신하는 잠시간 그 정월을 생각한다. 아버지를 배웅하여 마지막으로 작별하였던 때가 정월이었던가. 숨길이 끊긴다. 이것 또한 얄궂어라. 그래, 정월이었음을. 그리고 그는 삼 년이 지나 임금을 따라 어디로 갔던가. 수원에, 그곳으로 자리를 옮긴 또 다른 무덤에. 정월 한날. 한양을 떠나 임금의 행차를 따라 갔었지. 약용은 생각한다. 임금의 기쁜 얼굴 뒤로, 화성을 기어이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은 어떠했던가. 악에 받쳐 있었던가.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임금 곁에 섰을 것이다. 약용은 정월 바람 아래 떨리는 손끝을 소매 아래로 숨기고, 고개 숙여 임금 앞에서 경하드리옵니다, 외쳤다. 옥안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신하는 함께 웃었다. 그러나 자식은 함께 웃지 않았음을. 그 날 수원 밤하늘 아래, 행궁에 자리 잡은 모두가 소란함을 멈추었던 때 임금이 다시 그를 찾았다. 대화는 바투 끊겨나갔다. 군주는 말하였으며 신하는 답하였다. 득중정을 지나, 장락당 앞뜰을 거닐다 마침내 경륭관 아래 지붕에 다다랐을 때. 주상이 곁의 내관들을 물렸다.

 

주상이 그에게 무어라 했던가.

 

그날은 손끝이 시리도록 추웠다. 나루터에서 부는 바람이 볼을 긁어대고, 작별의 인사는 하염없이 길어지던 때, 정월. 묘 앞에 엎드려 절한 임금은 한참이나 발걸음을 돌릴 줄 몰랐다. 자신이 아버지와 이별할 적에 그랬던 것처럼. 약용은 그 마음을 알았다. 그러나 모른 체 하고만 싶었다. 임금이 이제 신하를 부른다.

 

“정 수찬.”

 

신하는 답한다.

 

“예, 전하.”

“참으로 아름답게 지어졌지 않은가.”

“예, 전하.”

 

임금이 몸을 돌린다. 신하는 고개를 숙이고, 그저 그대로. 눈을 들지도 않고서. 원망하는 마음을 안으로 안으로 삼키려 한다. 웅크린 짐승처럼. 만인지상의 앞에서 감히 눈물을 터뜨리지 않으려 애썼다.

 

“삼미.”

 

군주가 다정히 그를 부른다. 신하는 답하지 않고 고개를 거듭 숙인다. 소매 안의 와들거리는 떨림이 자신을 집어삼켜 어깨마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음을, 주상이 보았다. 붉은 옷자락이 정월 달빛 아래 얼어붙은 신하의 마음을 향해 뻗어진다.

 

“귀농아.”

 

약용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수가 제 어깨에 얹어져 있다. 어깨의 떨림이 멎었다. 눈을 드니 그곳에 군주가 있고, 행궁이 있다. 아직 피지 않은 버드나무와 개울이 있다. 자신이 셈하고 재고 산술하여 설계하였기에 지어진 곳이.

 

“진주목晉州牧 재원이, 네 부친이, 너는 수학과 과학에 특출나다 했었다.”

 

이제, 자식이 몸을 편다. 웅크려진 품 안에 고인 슬픔이 탄식처럼, 추위를 타고 하얗게 허공으로 흩어지고. 그만 소리가 되어 터져 나온다. 주상의 양 어수가 어깨 위에 얹어진다. 옥음이 내는 단어들은 땅을 다지듯, 굳게 눌러 박히고.

 

“그러니 여기를 네 아비를 위한 곳으로도 여겨라.”

 

자식이 자식의 어깨를 토닥인다. 약용은 다시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불경스럽게도 눈물이 터져 나오는 일을 숨기려. 악에 받쳤던 지난 나날들에 대한 소회가 가슴께를 타고 올라오는가. 이제 불혹 가까운 나이가 되었음에도 눈물로 수염을 적시며 우는 것이 참으로 우스워 한편으로 실소하면서도. 주상의 앞에서 험한 꼴을 보이는 것이 송구하면서도. 그러면서도 우는 일을 멈추지는 않았다. 떠난 이가 다시 돌아올 리는 없다. 그러나 무언가를 보며 떠난 이를 다시 생각할 수는 있음을. 신하는 자신의 군주가 왜 수원에 성을 짓고자 하는지, 능을 옮기고 궁을 지어 그곳에 발걸음 하고자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아비 잃은 자식의 마음이지 않은가. 한 때에는 차라리 모르기를 바랐다. 신하로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마음이 솟구쳐 왔던 밤에는 계산해두었던 종잇장들을 죄다 찢어버리고 싶었던 때도 있었잖은가. 길고 길게 얼어붙어 굳어졌던 슬픔이 이제 녹아나온다. 그런 약용에게, 산祘이. 귀농歸農에게 희喜가. 다시 말을 건넨다.

 

“네 아비를 위한 곳으로 여기고, 정월마다 함께 와 버드나무를 보고, 너는 시를 쓰고, 나는 활쏘기를 하면서. ……우리 어버이를 떠올리는 것이 어떠한가.”

 

약용은 답을 하지 못한다. 그저 고개를 깊이 숙이며, 소리 없이 눈물을 떨구며 행궁 마당을 적시고만 있다. 주상은 말없이 그 곁을 지키고 서 있는 것이다. 상실을 아는 자는 다른 이의 상실에 너그러워진다 했던가. 혹은 신하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군주의 마음이던가. 무엇인가는 알 수 없어도. 약용은 그 순간 자신의 어깨를 붙잡은 손아귀의 단단한 힘 아래, 같은 아픔을 짊어진 지 오래된 어떤 사람의 위로를 알았다. 약용이 울대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삼키며 대답했다. 명 받들겠나이다. 그 말에 주상이 다시 조용히 말한다. 이것은 명이 아니다.

 

“부탁이니라.”

“예, 전하. 그리 하겠습니다.”

 

정월 달빛 아래, 아버지를 잃은 두 자식이 함께 서 있었다. 그제서야, 자신의 군주를 떠올리던 신하가 붓을 다시 잡는다. 이제 나이가 들어 또 생각하여 보니. 그때 그 말 하나로 그간의 일들에 대한 거대한 대가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약용은 휘갈겨진 종이를 내려 두고, 새 종이를 편다. 붓대를 고쳐 잡고. 숨을 따라 수원에 발길할 적을 떠올린다. 도로 주상의 마음들을 옮겨 적고 나니 그제서야 떠오르는 것들이 있어서, 종이는 다시 빼곡히 채워진다.

 


기중가도설起重架圖說을 지어 올려 새로 성을 지었을 적에, 4만 냥을 절약하였다 말하시던 때에 주상의 옥안에 가득하던 마음을 깊이 기억하노라. 서학을 읽었다 하는 이유로 조정이 나를 헐뜯었을 때에, 주상께서 나를 조심스레 지방으로 보내실 적 수원을 지나는 나의 마음을 또 기억하여 보노라. 그때여 매해 정월마다 수원으로 거둥하시면 반드시 잔치를 베푸시었다. 성을 둘러보시며 거듭 흡족한 얼굴로 웃으셨음을 기억한다. 후에 수원 행차를 준비하라 명하셨을 때, 내가 행장을 몰라 나의 직분을 다하지 못하니 그저 시위侍衛 삼아 끝끝내 나를 데리고 가셨던 것을. 주상께서 살아계실 적에도 나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그리워하였다.


글자는 기억이 다다를 길을 깔아 놓는다. 그 위로 나아오는 것들을 약용은 굳이 멈추지 않았다. 야밤의 규장각, 십 일여간의 귀양, 정월 아버지와의 이별. 그리고, 또 다시 정월. 화성, 수원이 스쳐지나간다. 버드나무 가득한 길이. 아, 주욱 뻗은 고갯길 양 옆에 선 소나무들. 가마를 재촉하던 주상의 어명이. 아. 능 앞에 엎드려 절한 뒷모습과, 다시 득중정 앞에 서서 나누었던 대화들이. 해마다 정월이 오면 그는 임금의 곁에 있었다. 누군가의 아버지를 위한 곳을 설계하고, 지었으며. 또한 자신의 아버지가 알아봐 주었던 재능이, 주상에 의해 꽃을 피워 마침내 단단한 성으로 태어난 곳에. 그곳으로 걸음했다. 버드나무 고을로. 젊을 적 약조했던 것처럼 그는 물가에 머물렀다. 영영 머무를 참이었다.

 

붓 끝이 갈라져 약용은 새 붓을 꺼내야 했다. 이제 수북이 쌓인 기억을 따라, 아주 흐릿하지도, 선명하지도 않은 것들이 따라온다. 흐려지기에는 지나치게 가까운 날의 일이며, 선명하기에는 괴로운 일이기에. 그러나 쓰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머무르고자 했던 자신과 머물러 주었으면 바랐던 주상의 마음은 그대로였을진대. 어떻게 버드나무와 물가가 서로 갈라져 잠시간 지내게 되었는가에 대해 써야 하지 않겠는가. 약용은 그렇게 생각했다. 다만, 나를 참으로 아껴 주었던 이에 대한 기억이노라고. 후에 알리기 위하여 그렇게 시작하였다. 군주와 신하가 떨어지게 된 것은 서로의 마음이 아니었노라고.

 


나를 곁에 가까이 두시고, 나의 문장을 각별히 아끼시어. 마땅히 한 수로 끝나야 할 시를 더 지으라 명하시었다. 담배 한 대가 태워질 적에 훌훌 지어낸 시에는 세 곱절의 점수를 매겨 주시었고, 돌아오는 상으로써 옥필통 가득 찰랑이는 삼중소주를 하사하시었던 것이 나의 군왕이라. 그 날에는 참으로 죽는 줄 알고서 들이켰음을 기억해 보노라. 그러나 그 마음이 깊으니 그악스러운 이들의 혓바닥이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사학邪學을 믿는 자라 조정에 성화를 부리어 대는 것이 수년째 되었을 때에 내가 견디다 못해 파직을 청하는 상소문을 올리니. 그에 “선善의 싹이 봄바람에 만물이 싹트듯하고 종이에 가득 열거한 말은 듣는 사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사직하지 말라." 하시며 끝끝내 청을 내치시었다.

 

그 날 밤 야대夜對를 하고저 나를 불러, 주자소에서 새로 간행한 서책을 건네어 주시고. 이제 불혹이 되어가는 내게 또 장난스레 ”삼미는 어찌 날마다 나를 볼 생각을 않는가?” 하시었다. 고개 숙여 읽던 경전을 덮으니 촛불에 비춘 용안이 젊을 적 뵈었던 전하의 용안과는 판연히 다르구나, 하여. 그만 대답을 하지 못한 채로 침묵해 앉아 있으니 나를 재촉하시며 “경은 어서 대답을 하라.” 이르시니, 하릴없이 가벼이 나 자신을 놀리고야 말았다. “약관의 나이에 은덕을 입어 이제 불혹을 바라보는 때가 되었으니, 이제 전하께옵서도 제 눈썹이 지겨우시지 않을까 합니다.” 헌데 돌아오는 것이 나의 군왕께서 늘상 부리고는 하시던 농조 어린 말이 아니었더라. 내처 읽으시던 경전을 덮으시고, “내 경을 가까이 두고픈 마음이 지나치게 깊어 경의 심신이 고단하니, 날마다 나를 볼 생각을 않는대도 무에 어떻겠소.” 하시었다. 다만 고개를 깊이 숙이고 옥체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신 정약용, 여기 자리를 잡았사오니 부는 바람과 날씨의 심술을 능히 견뎌내어 물가를 맑게 하여야 하는 줄로 아옵니다.” 이제 군자와 신하 모두 나이 들어 마주 앉아 있으니. 어찌 신하된 도리로서 고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주상께오서 그 말을 듣고 한참 동안 침묵하시다, 기어이 “고개 들어 나를 보라.” 명하시니. 젊은 날의 일들이 생생하여 그만 나 또한 한참을 엎드린 채 침묵하고 있었다. 그때여 내게 하시었던 말씀이 이와 같았다.

 

“동부승지 정약용은 들으라. 내 경을 반드시 나의 곁으로 불러올 터이니. 내가 그대의 물가임을 잊지 말라.” 그 말씀 후에야, 나는 고개 들어 답하였다. “삼가 명 받들어 행하겠나이다.”


먹이 다 닳아 말랐다. 약용은 연적을 들어 벼루에 물을 채웠다. 다시 먹을 간다. 돌 위에, 찬찬히 마음을 눌러 갈아낸다. 새벽녘 바람이 이제는 숫제 문풍지를 뜯을 셈으로 불어온다. 그 사나운 소리마저 생각을 방해할 수는 없으리. 먹을 눌러 갈아내며 약용은 생각하였다. 그 이후에 식솔들을 데리고 낙향하여 잠시간 정쟁에서 멀어져 있으리라 다짐하였었다. 그것은 주상의 약속과도 같은 명이 있었으므로 망설임 없이 결정될 수 있었던 일이었으리. 일 년여를 고향에 앉아 보내면서 그는 조정을 잊은 적은 있었어도 자신의 임금을 잊은 적 없었다. 그 마음에 화답하듯 자신에게 책을 보내어 글자라도 써 보내라 전했던 명을. 그 명을 받아 다시 함께 달그림자 아래 앉아 이야기 나눌 나날을 생각해 보았던 자신의 마음을 눌러 갈아낸다. 붓을 들고, 이제 떨리는 붓끝을 다잡으려 아주 애를 쓰면서. 신하는 적어 내려간다.

 


이전에 옥음玉音 전하기 위해 내게 왔던 각리가 말하기를 “하교下敎를 받을 적에 상의 얼굴 표정과 말씨가 온화하고 간절하며 그리워하였다.”고 전하였으니. 아직도 어른거리누나. 영영 뵙지 못할 얼굴을 생각하니 하릴없이 얼굴 적시며 가슴을 쥐어뜯는다. 그 생각을 할 때마다 피눈물이 옷깃을 적시며 따라 죽어 지하地下에서 천안天顔을 뵙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노라. 주상께서 내려주신 하해와 같은 은덕 하래 창공의 새처럼 마음껏 구중궁궐을 날았다. 이제 날개 접은 채 엎드린 꼴이 되었어도 그 하늘을 잊지 못하리라. 무릇 붕조鵬鳥는 참새와 달라 작은 하늘 아래서는 날 수 없고, 오로지 그보다 거대한 바다가 뒤틀려 하늘 길을 열어 주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는데. 내게 구만 리 바다 넘어 다시 날개 펼 때가 올까. 이제 나의 군왕을 받들어 떠나보내니. 그 심정 참으로 애통하고 애통하다.


붓이 놓여진다. 벼루에 고인 먹이 다 되었다. 이제 붓은 눈물을 흘리지 않고, 검은 먹이 토로한 제 자신의 마음만이 백지 위에 철철 흘러내리고. 약용은 그것을 보다가 눈물이 떨어져 먹을 번지게 만들까 두려워 탁상을 밀어내었다. 불혹不惑이라 하는 경지에 오르면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다던가. 어쩌면 공자라는 성인은 마음으로 모신 군주가 없으니 몰랐던 것이 아닐까. 약용은 의심한다. 방 한켠 놓인 서책들은 아직도 고이 싸여 있었으니. 떨리는 손이 그 매듭을 풀어내었다. 자신의 임금이 훙薨한 이후로 손도 대지 않았던 것을. 그 깨끗한 책들을 보니 마침내 신하는 완전히 자신의 자리 되어 줄 이를 잃었음을 깨달았다. 주자소鑄字所의 벽은 다 말랐을 것이다. 이제 새 책이 하루가 멀다 하고 간행되어 나올 것이었다. 그러나 그 책들을 자신에게 선물하여 줄 이는 없음을. 한서선漢書選에는 제목이 쓰여지지 않았다. 그것을 채워 주기를 바랐던 이 또한 세상에 없음을. 그렇다면 이 빈 곳을 채워 누구에게 드려야 하나. 약용은 서책을 끌어안았다. 방바닥에 엎드린 채 고개를 조아린다. 누구에게 드려야 합니까. 묻는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약용은 그 책 앞에 엎드려 울었다.

 

이제 고개 숙일 자리도, 돌아갈 물가도 없다. 신하는 참으로 홀로 된 기분이었다. 나를 반드시 부르겠다 하시었으면서. 나를 쓸 곳을 마련하고 소란스러움이 잠잠해지면 돌아오라 하셨으면서. 정월이 되면 수원에 다시 행차하실 일을 기다리고 있었건만. 그렇게 작은 원망과 서러움과, 그리고 커다란 그리움이 담긴 생각을 하다가, 그만 가슴을 치며 울었다. 이제 나는 당신의 빈 곳을, 당신께서는 나의 빈 곳을 서로 채워 주지 못하게 되었다고, 군왕이 보낸 마지막 마음 앞에서 그렇게 울었다. 달밤 늙은 신하의 울음이 바람 되어 궁궐의 연못물이 물결 짓게 하고. 수원 행차하시던 길 가득한 소나무 가지를 떨게 만들고. 마침내 화성 주위를 둘러싼 버드나무가 몸을 흔들게 하니. 그 울음 따라 세상도 군왕을 보내고 있었음을 그는 몰랐을 것이다.


 각주. 

1) 18년의 귀양살이가 지나고 이 책은 유실되어 오로지 한 권만 남아 있게 되었다. 정약용은 이를 매우 애석해 하였다.

2) 다산시문집 제4권, 시詩 중 유월 십이일 한서를 하사받고 삼가 그 은덕에 관하여 쓰다[六月十二日蒙賜漢書恭述恩念] 참조.

3)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7권 중 - 정조 7년 2월 21일 2번째 기사.

4) 성균관생들이 주기적으로 보던 시험 중 하나.

5) 다산시문집 제1권, ‘삼월 삼일 희정당에서 임금을 뵙고 물러 나와서 짓다[三月三日熙政堂上謁 退而有作]’ 참조.

6)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23권 중 - 정조 11년 3월 14일 1번째 기사.

7) 다산시문집 제1권, 시詩 중 ‘눈 내리는 밤 내각에 음식을 내리시어 삼가 은례를 기술하다[雪夜閣中賜饌 恭述恩例]’ 참조.

8) 다산시문집 제1권, 시詩 중 ‘해미로 귀양 보낸다는 교지를 받들고 도성 문을 나서며 짓다[奉旨謫海美 出都門作]’ 발췌 및 참조.

9) 다산시문집 제2권, 시詩 중 ‘화성에 당도하여 지난봄에 임금의 행차를 모셨던 일을 회상하고 서글퍼서 짓다[行次華城 恭憶春日陪扈之事悵然有作]’ 참조

10) 다산시문집 제21권, 서書 중 ‘유아(游兒)에게 부침’ 참조.

11)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46권 중 - 정조 21년 6월 21일 2번째 기사.

12) 다산시문집 제14권, 제題 중 ‘한서선(漢書選)에 제함‘에서 발췌.

13) 장자, 소요유편에 등장하는 거대한 새, 좀처럼 날지 않았으나 한번 날개를 펴면 3천 리가 되었고, 그 날개를 치면 9만 리를 날아갔다고 전해진다.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 중 정조실록, 한국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 한국국사편찬위원회

다산시문집, 한국고전종합DB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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