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아내, 장바구니

 일이 고되어 퇴근 후에 주차장에서 담배 한 대나 태우고 있는 참이었다. 잿빛으로 새어나왔다가 곧 흩어지는 희미한 숨을 바라보며 잠시 상념에 빠졌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는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나 힘들게 살아야 하는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다 때려 치우고 아내와 단 둘이서 나긋하게 살고 싶다. 종일 품 가득히 끌어안고 잠이나 잘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은데, 현실은 그럴 수가 없어 퍽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늘은 슬슬 노을이 져 동쪽 하늘부터 어스름한 밤이 떠오르고 있었다. 담배는 반 정도 태운 채였다. 이제 곧 집에 들어가면 사랑스러운 아내가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따스한 온기가 날 맞이할 것이 분명한 시간이었다. 나는 이런 일상에 꽤나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다. 집이 이렇게나 마음이 편한 장소이던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이 처음인 것만 같았다.  

 담배는 직장에서 울화가 치미는 일이 워낙 많아 차마 끊지 못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담배 대신에 막대사탕도 있고 농으로는 자신도 있지 않느냐 말했지만 담배 대신 사탕을 먹으면 내가 당뇨에 걸릴 지경이라 웃어넘기는 것 말곤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잠시 생각을 하다 말고는, 다시 한모금 들이마시고 손을 아래로 늘어트렸다. 

 그러던 중에 뒤에서 하얗고 작은 손이 나타나 손에 든 연초를 낚아채었다.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자 그녀가 장난스레 웃으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곱게 휜 눈과 입꼬리를 가만히 바라본다. 의기양양한 모습이 마치 사냥에 성공한 고양이를 보는 것만 같았다. 당당한 태도에 어이가 없어, 굳은 채로 눈을 마주치고만 있었다. 아직 불 꺼지지 않은 연초를 입에 물려고 하기에 그제야 손을 내뻗어 손목을 꾹 붙잡았을 뿐이었다. 

 "몸에도 안 좋은데 왜 펴요?" 

 "젠장, 돌려줘." 

 "싫은데-." 

 당돌하게 구는 모습에 말문이 막혔다. 어이가 없어 잠시 입을 달싹이다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았다. 여전히 생글거리는 눈과 의기양양한 태도 하며, 손목을 놓아주면 버리고 오겠지 싶어 손에 힘을 풀자 그대로 제 입에 담배를 물고선 한 모금 뻐끔, 피운 것이다. 담배를 필 줄도 몰라 그대로 기침을 두세 번 뱉어내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녀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해야 내 성격을 긁을 수 있는지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고, 나는 그럴 때마다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고 만다. 담배야 민감한 문제고, 몸에도 안 좋으니 그녀가 매번 끊어라, 말하는 것이 이해가 되긴 했다만 그럼에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노릇이라. 몇 번 기침하는 모습을 바라보다 손목을 잡고 품으로 끌어당겨 입술을 겹쳤다. 찰나 보인 당혹스러워하는 반응이 귀여워 더욱이 짙게 숨을 섞는다. 고개를 꾹 찍어누른채로 숨을 삼켰다.  

 아까 한 모금 삼킨 담배 때문일까, 찰나 쓴맛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나와 입맞춤을 할 때마다 늘 이런 쓴 맛을 느끼고 있는 것인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펴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허나 곧 그 쓴 향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숨을 섞을 때마다 혀뿌리에서부터 단맛이 올라온다. 달큰한 숨은 마치 솜사탕 같아. 포근한 체온과 부서지듯 흐려지는 숨결의 끝이 맛있었다. 사람의 숨에 이렇게나 욕심을 부린 적이 있었던가. 평소처럼 달큰하고 상냥한 입맞춤이 아닌, 마치 그녀의 숨을 억지로 삼켜내기라도 하듯 거칠게 입맞춤을 이었다. 품 가득히 숨을 삼키고 이 순간을 길게 이어가고 싶다. 그녀에게 내 숨은 쓸 것이 분명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따금 거친 숨이 엷게 새어나옴에도, 몸을 조금씩 움찔거리면서도, 품으로 폭 기대어선 얌전히 응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허리를 감싸 몸을 빈틈없이 꾹 붙이고 뒤통수를 손으로 감싸 입술을 꾹 찍어눌렀다. 말랑하고 보드라운 입술을 슬쩍 깨물어보기도 하며, 그녀가 당황하여 주차장 바닥으로 떨군 꽁초를 구둣발로 짓밟아 꺼버리고서 이 순간을 즐겼다. 선선한 초저녁의 바람이 이따금 스쳐 지나가 뜨겁게 달아오른 체온을 식힌다. 숨이 끊어질 것 같은 때마다 조금씩 숨을 불어넣어 주었다.  

 한모금 삼킨 연기 덕에 찰나 옅게 느껴지던 쓴 맛도 이제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완전히 달달한 향만이 남을 무렵이었다. 이 숨을 더욱이 느끼고 싶다. 사랑스럽다거나 놀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조금은 있었다만, 지금 이성을 지배하고 있는 충동은 달달하고 맛있어서, 더욱이 느끼고 싶다는 것에서 기인하고 있는 것들이라, 마침내 숨이 차 가슴팍을 툭툭 건드리고 이따금 거친 숨이 샐 무렵이 되어서야 그녀를 품에서 놓아주었다.  

 발갛게 상기된 뺨에,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모습. 슬쩍 손을 뻗어 마치 달래주기라도 하듯 머리며 뺨을 조심스레 쓰다듬어 주었다.  

 "…주질 않으니 이렇게라도 먹어야지." 

 "그치만 몸에 안 좋은걸요." 

 여전히 얼굴은 발갛게 달아 시선을 피한다. 그러나 손길을 피하지는 않는 모양새에, 한 마디씩 끊어 더듬더듬 말을 뱉는 모습이 퍽 사랑스러웠다. 입맞춤만으로 그녀가 이렇게 당황한 적이 있었던가, 하면 역시 아닌 편이라 더욱이 귀여워 보인 모양이다. 피식 웃으며 그녀를 품으로 꼭 끌어당겼다.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 얼굴을 비적이는 모습이 마치 작은 털짐승 같다. 품 안 가득히 빠르게 뛰어대는 고동소리 하며 고양된 숨소리가 잔뜩 느껴진다. 얼굴은 폭 파묻어 보이지 않았지만 귀는 새빨갛게 달아 있는 노릇이라 그녀가 얼마나 놀랐을지는 알만한 노릇이었다.  

 아직 얼굴을 들지 못하는 그녀를 달래어 주기라도 하듯 등을 토닥여주고 머리며 머리카락을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도 걱정이 많을까." 

 "…당연하죠." 

 "그래도 삶의 낙 하나쯤은 남겨 줘. 앞으로는 조금씩 줄일 테니까…." 

 그러자, 그제야 올려다보는 낯. 딱히 걱정할 일 없다는 것을 강력히 피력하기라도 하듯, 슬며시 머리며 뺨을 쓰다듬어주고 생글거리며 웃어보였다. 그녀의 표정이 풀리기까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당연한 일이었다. 걱정이 꽤 많은 것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제 연인- 남편이 담배를 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는가. 이해는 한다만, 끊는 것은 꽤 힘든 일이라. 

 그와 별개로 고민에 빠진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그 낯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치 그림을 감상하기라도 하듯이  찬찬히 감상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을 기다리는 동안, 무언가 말을 뱉으려 달싹이는 보드랍고 도톰한 입술을 바라본다.  

 "그렇담 조금만 펴요." 

 "고집을 들어주어서 고마워."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놓아주었다. 의식할 새도 없이 찰나 튀어나온 행동이라, 나 또한 당황하며 품에서 놓은 것이다.  

 "오늘은 다 피웠으니 이만 집에 들어가구요." 

 "그래." 

 아까 짓밟아 끈 꽁초를 근처에 있던 재떨이에 버리고 오자, 그녀가 장바구니를 들고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척 봐도 무거워보이는 장바구니를 어렵사리 들고 있는 모습에, 손에서 장바구니를 뺏어 들었다. 예상대로 퍽 무거웠다. 찬거리가 가득히 차 있던 탓일까. 자신이 들겠다며 장바구니로 손을 뻗는 그녀를 극구 말렸다. 무거운 것을 아내가 들게 내버려 두는 남편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빙긋 미소지으며 한 손에는 장바구니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작고 보드라운 손이 수줍음에 가득 차 꼼지락거리는 것이 느껴지자 살풋 미소가 새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나 사랑스러울 수가 있을까. 아직도 얼굴에 열감이 다 가시지 않아 귓가가 조금 발갛게 달아오른 것을 보니 당장에라도 입술을 얹으려는 충동을 참아야만 했다.  

 "내가 들어도 되는데." 

 "이러라고 남편이 있는거지, 별로 무겁지도 않은데 무얼." 

 "…그래도." 

 손을 꾹 붙잡자 가슴 한켠이 간질간질해지는 것만 같아 되려 손에 힘이 들어간다. 평생이 지나도 이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어떻게 놓겠는가. 약지에 끼워진 반지는 영원이라는 약속에 대한 방증이었고, 서로가 서로만을 바라보겠다는 이 마음의 상징이었으니. 

 매 순간 나를 바라보고 사랑해주는 눈빛을 볼 때마다 마음이 동하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녀가 부담스러워 할까 애써 밖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다만 늘 그랬었다.  

 "… 내겐 참 과분한 사랑이야." 

 고개를 살풋 숙여 이마에 입술을 얹어주고는 다시 떨어졌다.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툭 뱉었다만, 완전히 진심이었다. 순식간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 휘둥그레진 눈이 마치 소동물 같아 보여 희미한 웃음이 새었다.  

 "그럴 리가, 지금 아부 떠는 거에요?" 

 "진심이었는걸." 

 열쇠로 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열쇠가 문고리에서 돌아가며 금속의 마찰음이 작게 울렸다 희미하게 사라져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스름하던 하늘도 이제는 완전히 어둑어둑해져 있었고 내일부터는 주말이니 평화로운 주말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진심이란 말에 엷은 웃음소리가 귓가를 잠시 간지럽혔다. 품안에 그녀를 가득히 끌어안고 한참을 누워나 있고 싶다. 품 가득히 담고선 사랑을 속삭여주고 싶다. 으레 매일 저녁이면 드는 생각이었고, 매일의 일상이었지만 그럼에도 질리지 않는 것은 내가 그녀를 마음 깊이 사랑하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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