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작업물

Trauma

소설 TYPE / 오마카세 / 연극 벙커 트릴로지

골방 by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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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는 짙은 어둠에서 눈을 떴다. 그는 자신이 복중 태아처럼 몸을 둥글게 만 채로 자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오감의 마비로 가득한 이곳에서 마주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이었다. 눈을 떠도 보이는 것이 없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가늠할 수 없다. 다만 바닥과 벽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로 밤, 혹은 겨울을 의심할 수 있었다.

바닥을 더듬어 입구를 찾았다. 손에 잡히는 우둘투둘한 돌덩이와 모래 언덕만으로도 대충 구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헛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밖으로 나서기 전에 주머니 근처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회중시계가 단단하게 잡혔다. 아더는 그제야 문을 열어젖혔다. 달빛이 희미하게 새어 들어왔다. 회중시계를 열고 온 신경을 눈에 집중했다. 두 시 이십삼 분. 한참 새벽이었다. 철문을 두 마디만큼만 열어놓고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또 꿈을 꾸었다. 이 벙커에 오기 전에는 수영장에서 초록 괴물을 만나는 비현실적인 꿈이나 역사 시험에서 0점을 받는 허무맹랑한 꿈―역사는 언제나 만점이었다―도 더러 꾸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비슷한 꿈만 꾸었다. 꿈속에서는 뭐든 가능하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좀 전까지의 꿈에서는 얼굴 없는 디고가 죽었다. 그를 디고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팔이 잘린 채 쇼크로 죽었기 때문이다.

아더는 자신의 죽음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했다. 삼 미터 떨어진 곳에서 팔이 꿈틀거리는 장면을 목격하다 기절할까, 라인강 물만큼의 피를 흘리며 내장이 썩어들어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불꽃놀이처럼 산산이 흩어질까. 마지막은 영 끔찍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유골함에 내 것 아닌 뼈가 섞여 들어가면 그웬은 그 생면부지의 뼛조각이 나인 줄 알게 될 테니까 말이다.

가까운 곳에서 소리가 들렸다. 아더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나머지로 바닥을 짚었다. 몸을 바닥에서 떼어내고 천천히, 뒤로 기어갔다. 암흑으로 물러났다. 손바닥에 질척거리는 액체가 묻는 순간, 비릿한 피 냄새가 공기에 퍼졌다. 몸을 파드득 떨면서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빛나던 눈동자가 하얗게 질렸다.

가웨인과 랜슬롯이 죽었다.

“아더, 아더!”

그웬은 다급히 아더를 흔들어 깨웠다. 아더는 하얗게 질린 천장을 보며 발작하듯 숨을 몰아쉬었다. 그웬은 물컵을 건넸지만, 아더는 완곡히 거절하며 고개만 저었다.

“괜찮아.”

“얼굴이 창백해.”

“정말, 괜찮아.”

그웬은 한참 입술을 달싹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의사 선생님을 모셔 올게.”

아더는 그웬이 나간 자리를 물끄러미 보았다.

카테고리
#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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