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 파일 025: 순간을 반영구적으로 보존하기
ㅋ님 실제 커미션 / 3인칭 지정 오마카세 / 1차, 현대 일본, 스토리텔링 성격 有
녹음 파일 025: 순간을 반영구적으로 보존하기
241107 실제 커미션
―그러고 보니, N 군은 장신구가 없네?
소란한 식당에서 간신히 상대에게 닿은 말이었다. 제 몫의 스키야키에서 두부를 집던 N은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 뭐……없기는 하지? 그런 건 왜 묻느냐는 듯 의아한 목소리에 도리어 발화자가 호들갑을 떤다. 성인 된 지가 한참인데 아직 귀도 안 뚫었느냐느니, 조금쯤은 관리해서 나쁠 것 없다느니, 영 관심 없는 이야기였던 탓에 N은 떨떠름히 두부를 삼키며 한 귀로 그 말들을 흘렸다.
야마노히가 낀 골든 위크. 오키나와에 있으면서 시간이 흘러넘쳤던 고교 졸업생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소모임을 주최했다. 그 결과 모인 이들이 각자 쌓인 이야기를 풀어내던 참이었으므로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식당 안은 북적였거니와 그들의 테이블에만 열 명쯤 앉아 있었으니 걱정은 필요하지 않겠지만. 저 애는 주얼리 쪽으로 진로를 잡았던가? 이쪽을 향해 반짝이는 시선을 난감한 듯 흘려보내며 N은 기억을 더듬었다. 학창 시절부터 붙임성 좋은 사람들에게는 영 익숙해지기 어려웠다.
―별로 아프지도 않아. 괜찮다니까?
―아니. 일할 때 거슬릴 수도 있어서. 나는…….
필요 없어, 그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동창의 부담스러운 표정을 피하고자 슬쩍 고개를 돌린 끝에는 E가 있었다. 맞은편의 친구에게 잔을 건네주는 그의 귀에서 은색 피어스가 반짝였다. N은 순간적으로 딴생각에 접어들었다. 저 녀석은, 2학년 때부터 저걸 달고 다녔던 것 같은데……. 꾸밈에는 이렇다 할 관심이 없는 그였으나 E의 귀걸이는 나름 괜찮다 생각하는 축이었다. 그럭저럭 어울리고. N은 문장을 잇는 대신 잠시 멈춰 있자, 이때다 싶었던 목소리가 불쑥 사이를 치고 들어온다.
―내가 귀걸이 하나 선물해줄게. 이참에 뚫어봐!
어. 이게 아닌데.
“정말 괜찮겠어?”
“어쩔 수 없잖아……. 나 참. 그 녀석은 왜 남의 귀에 그렇게 의욕적인지.”
으음. 한 손에 바늘을 든 E가 침음을 흘렸다. N의 물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두 명 모두 대답을 알고 있었다. 으레 갓 취직한 20대들은 의욕이 가득한 법이다. 작은 동창회에서 비슷한 처방을 받은 사람이 그 외에 없던 것도 아니라, N 역시 그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 채 결국 며칠 후 작은 귀걸이를 소포로 받은 것이다. 무난한 스터드 피어싱을 눈으로 훑으며 N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야말로 괜찮은 것 맞아? 부탁하긴 했는데, 꼭 직접 안 해도 돼.”
선물까지 받은 이상 아예 무시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 유야무야 넘긴다고 탓할 사람은 없을 텐데도 제 양심껏 사는 N은 내린 선언은 그랬다. 그 결정에 누군가의 피어싱 여부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렵겠으나. 결국 귀걸이를 한 지인 중 가장 가까운 사람―E에게 무턱대고 찾아가, 귀를 뚫을 수 있겠느냐 묻는 결말이었다.
한참 영문을 몰라하던 E는 전후 사정을 전달받고서야 겨우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단히 위험성이 따르는 일이라면 재고했겠으나, 다행히 그는 예전 팀 동료들의 부탁으로 두어 번쯤 바늘을 잡아본 사람이었다. 마침 E가 피어싱에 열의가 있다 착각하고 선물을 보낸 팬 덕에 필요한 도구도 그럭저럭 구비된 상태였으니 그가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E가 고개를 내젓는다.
“아냐. 내가 할게. ……해주고 싶어.”
“네가 정 그렇다면야.”
엄한 곳 찌르는 것만 아니면 됐지. 본인이 그러겠다고 하니 순순히 수긍한 N은 제 머리칼을 귀 뒤로 모아 넘겼다. 그 모습을 보던 E는 알코올에 적신 솜으로 바늘 끝을 깨끗이 닦아냈다. 고개, 기울여볼래? 물음에 N은 얼굴을 조금 움직인다. 이렇게? 아, 조금 더 가까이…….
중얼대는 E의 목소리 끝이 뭉개졌다. N의 뺨을 잡고 기울이는 손길이 더없이 조심스럽다. 깜빡, 깜빡. 두어 번 눈을 감았다가 뜬 N은 슬쩍 시선을 저만치로 옮겼다. 바늘이 쉽사리 제 위치를 못 찾고 잠시 멈춰 있었다. 이도 저도 아닌 정지 사이로 괜한 소리가 한 번 흐른다. “……뭘 그렇게 긴장해. 그냥 한 번 찌르면 되는 걸로.” 의미 없는 소리. 그 말 이후 부산스레 침묵을 깨지 못한 것은 N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말대로, 약간의 긴장은 꼭 제 손에 바늘이 들려 있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E는 얼핏 동의했다. 미지근해진 금속이 행여나 미끄러지지 않도록 다시 고쳐 잡는다. 직후 날카로운 감촉이 N의 귓가를 관통했다.
후텁지근한 여름 공기, 털털대며 돌아가던 선풍기 소음. 전등 빛을 받으며 부유하던 먼지. 그리고 그 은색의 침묵. 조용한 곳에 방치했던 녹음기를 틀면 소라껍데기의 바람 소리를 머금은 고요가 재생되듯. 나열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그날 여름밤을 설명했으나 온전치 못했다. 가느스름한 따끔함이 침묵을 꿰뚫었을 때 N은 그렇게 느꼈다. 클러치를 꾹, 눌러 끼우는 손길이 이유 모를 감상을 뒷받침한다. 조곤조곤 가라앉았으면서도 걱정 어린 목소리가 가까이서 울렸다.
“아프진 않았지?”
대답 대신 작게 끄덕이자, E는 그제야 조금 안심한 듯 손을 뗐다. 아직 반대쪽이 남아 있었다. 다시 소독용 알코올 병의 뚜껑을 여는 그를 보고서 N은 픽 웃는다. 의미를 알지 못한 E만이 어리둥절하게 첨언했다. “자칫하면 염증 생겨.” “알아, 네가 고생했던 것 기억하고 있거든. 관리 잘할 테니 걱정하지 마.” 그리고……. 잠깐 뜸을 들인 N은 목소리를 조금 줄였다. 그 탓에 뒷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E가 이쪽으로 몸을 숙였다. 그러자 상처에 닿지 않도록 귓불 끄트머리를 만지작대던 손이 멈춘다. 머뭇댄 끝에 문장이 한 번 더 반복됐다.
“귀걸이, 하나 더 살 테니까 같이 가주라.”
네가 고른 디자인도 하나쯤 갖고 싶으니까. 작은 덧붙임에 E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짧은 생각을 거쳤다가, 이윽고 기쁜 듯 미소 짓는다. 응, 그러자. 수긍이 선선하다. 귀를 뚫은 건 분명 자신이 아닌데도, 그는 어쩐지 제 피부 끄트머리 역시 날 선 어딘가에 스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너무 아프지도 심각하지도 않은 따끔함. 실은 반짝임에 가까운 그것. 아물지 않을 흔적이 오후 아홉 시 삼십육 분의 E에게 남았다. 구태여 장신구를 달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서로로 말미암은 변화와 자취에 익숙하기 때문에.
N은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대화 대신 선풍기 작동하는 소리가 귓등으로 섞여들었다. 아홉 시 삼십칠 분을 가리키는 바늘은 아직 무언가를 찌르지 않았다. E가 바투 다가선다. 습기 머금은 공기가 흘러가는 밤을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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