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박 차장님 오랜만입니다.”

부장실의 문을 열자마자 성큼성큼 내 시야로 걸어들어온 사람은, 서울중앙지검 전략수사부장 한강식이었다.

“소식 잘 듣고 있습니다. 선배님.”

고개 숙여 인사하는 나를, 그는 씨익 웃으며 끌어안는다. 딱 한강식다운 독한 향수 냄새에 잊었던 기억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맞다. 한강식은 이런 놈이었다. 능글맞고 제멋대로인.

 

*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서울 법대 신입생 때였다. 한강식은 나보다 한 학년 위였는데, 여러 가지로 유명한 인사였다. 배우 뺨치게 잘생긴 외모와 부유한 집안 배경, 뻔뻔하고 능글맞은 성격과 잘 논다는 소문 등이 그를 실제로 대면하기도 전에 신입생 사이에 돌았다. 그런 기생오라비에다 자본주의 앞잡이 같은 놈의 소문에는 귀 기울일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조국이 통일되면 가장 먼저 인민의 돌팔매를 맞을 놈이니.

그러나 한강식이라는 자는 왜인지 나에게 관심이 많았다. “네가 올해 수석 입학생이라며?”하고 접근한 그는 학생들이 잘 모르는 도서관 정기간행물실 안쪽 자리를 알려 주고, 수강생 태반이 재수강한다는 행정법 수업의 족보를 물려주었다. 사실 그의 호의가 당찮게 느껴졌다면 정중히 거절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와 대화하고, 밥을 먹고, 같이 수업을 들었다.

왜냐하면 그는 너무나 흥미로운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잘생긴 얼굴도 충분히 흥미로웠지만 그것보단 내 인생에서 처음 접한 자본주의의 첨단에 서 있는 인간이라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비료 사장의 아들이라는 그는 대학생답지 않게 머리카락을 포마드로 싹 넘기고 정장을 갖춰 입었다. 운전기사가 모는 검고 각진 차를 타고 수업을 들으러 오고 가끔 고급 식당에 날 데리고 가서 저녁을 사 주었다. 그는 내게 어떤 식기를 언제 사용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었고, 샤토브리앙이 어떤 부위인지를 알려 주었고, 식전주에는 어떤 와인이 알맞은지를 알려 주었다. 그리고 어떤 날에는 함께 당구를 쳤고, 또 테니스를 치러 가기도 했다.

“근데 넌 이렇게 나랑 놀러 다녀도 괜찮아? 나 너 성적까진 책임 못 져.”

“괜찮아요.”

“괜찮긴 뭐가 괜찮아. 난 너 수석이라서 좋아하는 거야.”

“이건 비밀인데요.”

나는 내가 가진 온갖 비밀 중에 제일 사소한 것을 마치 대단한 것인 양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저 한 번 본 건 다 기억하거든요. 사진처럼.”

“와…넌 진짜 인생 편하게 살겠다.”

편하긴 개뿔. 나는 나의 그 능력 때문에 가족들과 생이별하고 죽기 딱 직전까지 훈련받다가 이곳 남한에 왔다. 나한테 그 능력은…저주다.

“좋아. 네 비밀을 하나 알았으니까 나도 내 비밀을 말해 줄게.”

스물한 살의 한강식은, 마흔셋의 한강식이 절대로 하지 않을 말을 했다. 진짜를 말하는 것. 하지만 그때는 그도 어렸다.

“나 사실 ○○비료 한정수 그 노인네 아들 아니야.”

한강식은 실로 자본주의의 노예 그 자체였다. 그는 한정수 사장 집 식모의 아들이었다. 성씨가 같았던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잘생기고 똑똑하고 눈치까지 빠른 그는 한정수의 딸 한수연의 과외 교사를 자청했다. 한정수는 머리도 나쁘고 우울증까지 있는 자기 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강식을 데릴사위처럼 키워 검사로 만든 다음 딸과 결혼시킬 심산이었다.

“그래서, 그 집 딸이랑 결혼할 생각이에요?”

“미쳤어? 절대 안 하지.”

“그럼 어떡해요? 그들은 선배의 비밀을 공유한 사람들이잖아요.”

“비밀이란 건 말이야.”

한강식은 뭔가 굉장히 잘 아는 분야에 대해 말하게 되어 즐거운 듯 양손을 턱에 괴고 지긋이 날 쳐다보았다.

“언젠가는 세상에 나오게 되어 있어. 중요한 건 언제 누가 어떻게 터뜨리느냐 하는 거지. 타이밍만 잘 잡으면 핵폭탄을 피식 꺼지는 불발탄으로 만들 수도 있거든.”

저 자신만만한 한강식의 미소, 아무래도 난 저걸 좋아하는 것 같다. 머릿속이 돈과 출세로 가득 찬 이 자본주의의 노예를, 조국 통일의 그날이 오면 광장에 높이 매달릴 저 머리통을. 나는 그가 마시던 위스키를 빼앗아 마시고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겹쳤다.

“근데 나한테 그렇게 쉽게 얘기해도 되요? 선배의 비밀?”

“너 그거 누구한테 알릴 건데? 알려서 뭐 할 건데?”

“글쎄요. 아직은 모르지만, 저한테도 그 비밀을 유용하게 쓸 타이밍이 올 수도 있잖아요.”

“맞아. 그 타이밍이 오면 유용하게 써.”

그는 내 머리통을 예쁘다는 듯 쓸어내리며 말했다.

“사실 난 내가 남들에게 식모 아들이란 얘길 안 했듯이 한정수 아들이란 얘기도 한 적 없어. 그냥 사람들은 보이는 대로 믿는 거야. 저렇게 생긴 사람, 저런 옷을 입은 사람은 저렇게 하겠지 하면서. 다들 자기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거지.”

“그치만 선배는 보여줬잖아요. 운전기사가 딸린 차, 비싼 시계, 비싼 옷 이런 것들.”

“그게 가짜는 아니잖아. 내 것도 아니지만 내가 훔친 것도 아니지. 잠시 나에게 허락된 것들을 누리는 것뿐이야.”

이상한 논리라는 걸 알겠는데, 그러면 뭐 어떤가 싶다. 이 사람은 언젠가는 저 모든 것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 사람인데.

 

나를 이곳에 데려다 놓은 동지들이 내가 한강식과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날 내버려 두었다. 아마 한강식이 미래에도 좋은 연줄이 되어 줄 거라 판단한 듯했다. 근데 내가 자본주의 선봉장 흉내를 내는 놈과 노닥거리다가 변절이라도 한다면? 하긴 나조차도 그건 걱정되지 않네. 내가 온몸을 사치품으로 휘감고 비싼 음식을 입에 넣으며 조국과 동포를 잊는다? 그건 한강식이 빨갱이가 된다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근데 왜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는 걸까. 아니 나는 왜 그를 좋아하는 걸까.

 

“얼굴 때문이에요.”

“…뭐가?”

“내가 선배 좋아하는 이유.”

한 차례의 정사가 끝나고 누워 그가 피우는 담배를 빼앗아 피며 나는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를 읊어 보았다.

“얼굴은 당연하지. 이 얼굴이면 부잣집 딸내미는 물론이고 그 집 엄마도 꼬실 수 있지.”

“혹시 잤어요?”

“누구 엄마랑?”

“아니. 한수연이랑 잤냐구요.”

“당연히 잤지.”

당연히. 라고 말하는 그의 뻔뻔함. 근데 또 당연히 그랬을 것 같아서 나는 금세 수긍하고 만다.

 

한강식은 나 같은 천재는 아니어서, 그는 남들 모르는 데서 쓰러질 때까지 공부했다. 왜 학교 도서관에서 남들처럼 공부하면 안 되는지 난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는 그것도 하나의 ‘이메-지 메이킹’이라고 했다.

“나는 천재 소리도 들어야겠어. 그래봤자 사법시험 합격하고 연수원 들어가면 천재들이 널려 있겠지만. 어떻게든 소문과 관심의 가운데에 서야 평범하게 살지 않을 수 있거든.”

“평범하게 살지 않으면요?”

“쭉쭉 위로 가는 거지.”

“어디까지?”

“글쎄? 한 번 지켜 봐.”

아무리 똑똑해도 천운이 없으면 붙을 수 없다는 사법시험을 그는 무조건 2년 안에 합격하겠다 했다. 자신감에 넘쳐서 하는 그 소리가, 허무맹랑하게 들리지 않는 건 내가 그에게 빠져버려서일까.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힌다.

 

그랬는데 한강식은 진짜 1년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남들은 절에 들어가서 10년씩 공부만 해도 합격할까 말까라는데, 진짜 이 남자 참 잘났다.

“진짜 천재는 여기 있었네.”

“내가 그랬잖아. 천재 소리 들을 거라고.”

한강식은 엎드려 있는 내 어깨에 얼굴을 비비더니 날개뼈에 입을 맞췄다.

“아, 그리고 나 집 나왔어. 어머니 모시고.”

“그들이 뭐래요?”

“뭐라긴…화를 냈다가 설득했다가 협박했다가…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느니 역시 피가 천한 것들은 어쩌고…하는 거지.”

“…”

선배가 천하다니…가당치 않다. 이런 얼굴에, 이런 자신감에, 이런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 천하다는 말은 공격도 못 된다.

“취향이 가끔 천박하긴 해도…”

“못된 소리.”

내 말에 피식 웃은 한강식은 나를 돌려 눕히고 사납게 입술을 덮쳐 왔다.

 

한강식과 내가 늘 고급 레스토랑이나 바만 돌아다닌 건 아니었다. 사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선짓국밥이었고 그는 늘 여자 가수의 유행가를 흥얼거렸다. 특히나 오지 않는 남자를 기다리는 그런 유의 가사들을.

“평호야, 따뜻한 콩국에 설탕 꽈배기를 뚝뚝 썰어 넣어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알아? 그걸 서울에선 왜 안 팔까?”

“선배 고향이 서울이라면서요.”

한강식은 내 말에 씨익 웃는다. 거짓말이었으려나. 그래도 그가 괘씸하지 않은 건, 남들 앞에선 애초에 서울 운운하는 허점조차도 보이지 않았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근데 이렇게 시장에서 선짓국 먹는 건 선배 이메-지랑 상관없는 거예요?”

“평호야, 이메-지라는 건 말이야.”

그가 일장 연설을 할 때가 되면 늘 그렇듯 양손을 턱에 괴었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한번 판단하고 나면 그 판단을 쉽게 바꾸지 않아. 여기서 내가 너랑 이걸 먹고 있는 걸 우리 과 사람들이 다 목격한다 해도 다들 ‘잘나신 한강식이 별일이네’ 정도로만 생각할걸?”

 

한강식이 사법시험에 합격하자마자 서울 시내의 모든 마담뚜가 그를 장가보내려고 줄을 섰다. 그를 만나려고 중년 여인들이 연수원 앞에 진을 친 모습은 그야말로 진풍경이었다.

“그래서, 누구랑 결혼할 거예요?”

“내가 생각해 둔 집안이 있어. 그 집 아니면 어림없어.”

그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는 이제 정말로 위를 향해 가는구나. 당연히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는데, 기분이 이상하다.

“결혼식에 나 초대할 거예요?”

“당연하지. 너 안 오려구 그랬어?”

나는 대답 없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한강식은 그의 듀폰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 주었다. 불빛에 아른거리는 그의 큰 손이 오늘따라 낯설게 느껴진다.

 

한강식은 진짜 자기가 원하던 집안에 장가를 갔다. 그는 정말로 청첩장을 보내왔고, 나는 그의 결혼식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성공 가도를 달릴 속물 검사와 중앙정보부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공작원 활동을 하게 될 새끼 간첩은 더 이상 만나지 않는 게 좋다. 대단한 것인 양 나눠가질 대단치 않은 비밀은 이제 없다. 내게 남은 비밀들은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만찬이 될 것이었다. 한강식은 망설이지 않고 나를 칠 것이고, 나 역시 필요하면 그를 죽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남았다. 나는 그 질문을 비밀들과 함께 가슴 어디엔가 품고 서울의 찬바람을 홀로 맞았다.

*

 

부장실에서의 어색한 인사를 마치고 나오는 나를, 한강식이 터억 붙잡는다. 수사 이첩 때문에 온 마당에 만면에 띤 저 웃음은 뭘까.

“오랜만에 만났는데 너무 차갑게 대하지 마. 나 섭섭해.”

“말 좀 가려 가며 하시죠. 선배님. 여기 회삽니다.”

하지만 한강식은 쉬이 물러날 생각이 없는 듯 나에게 다가섰다. 한발 물러난 내 등 뒤로 차가운 콘크리트의 감각이 느껴졌다. 그때 복도 저편에서부터 주인을 알 것 같은 구둣발 소리가 들려왔다. 상황이 더 복잡해질 것 같군…. 관자놀이가 욱신거리는 기분이 든다.

“박 차장님, 한국 들어오셨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만 이렇게 뵙네요.”

“김 차장, 다시 남산으로 돌아온 거 축하하네. 얼굴이 좋아 보이는군.”

얼굴이 좋아 보인다는 말에 김정도의 턱이 움찔하는 게 보였다. 내가 또 저를 열받게 했나 보군….

“박 차장님 눈에 제 얼굴이 좋아 보인다니 다행이군요.”

“아, 국내팀 차장님이신가 보네요. 저 서울중앙지검 전략수사부장 한강식이라고 합니다.”

“아, 예.”

한강식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지만, 김정도는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필시 저자 속에는 경주마라도 들어 있는 게지.

“박 차장님 오늘-”

“자기야 우리 오늘 같이 저녁이나 먹을까? 내가 괜찮은 데를 아는데 말이야.”

한강식은 부러 김정도의 말을 끊고는 내 어깨에 팔을 두른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그 팔을 내쳤다.

“회사 안인데, 호칭을 제대로 써 주시죠. 검사님.”

“검사님? 아깐 선배님이라면서. 아니면 그냥 옛날처럼 평호야 할까?”

한강식은 하하하 과장된 웃음소리를 내고는 그래, 뭐가 됐든. 하곤 말을 이었다.

“이따 저녁 같이 해.”

“바쁩니다.”

“나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그럼 이렇게 하시죠.”

뭘 이렇게 한다는 거야.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기 시작한 내 앞에 김정도의 넓은 등이 막아섰다.

“여덟 시에,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아니 김정도 차장님이 왜요.”

“제가 안 가면 박 차장님도 안 갈 거니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미친 소리다. 하지만 어쩌면…김정도가 한강식의 비릿한 접근을 차단해 줄지도 모른다. 그는 반듯하게 미친 군바리니까. 이번엔 김정도가 내 어깨에 팔을 걸치는 걸 느끼며 나는 생각했다.

한강식은 흥미롭다는 듯 하…하며 나와 김정도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그러시죠. 그럼” 하고 복도 끝으로 멀어져 갔다. 계단 아래로 그의 발소리가 사라진 다음에야 나는 김정도의 팔을 뿌리쳤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한강식이랑 무슨 사입니까?”

그는 마치, 애인의 전 인연이라도 목격한 듯한 질문을 던진다. 내가 애초에 네 무엇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가소로운 질문에 조소가 올라온다.

“자네한테 그걸 대답해 줘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내가 빠른 걸음으로 차장실을 향해 걷자 그는 특유의 뚝뚝하는 구둣발 소리를 내며 나를 따라왔다. 그래, 내가 내 무덤을 팠군. 김정도를 데리고 이이제이(以夷制夷)를 할 생각을 하다니…. 이건 자충수(自充手)다. 나는 체념하여 차장실 문을 잠그지 않았고, 그는 대번에 따라 들어왔다.

“할 얘기가 남았나.”

“왜 돌아오셨습니까.”

“…”

“아니 애초에 왜 떠나신 겁니까? 어차피 목성사 다 와해시키고 저 좌천시키셨으면 부장으로 승진이라도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이제 와서 그런 얘기가 무슨 소용인가. 그리고 그간 자네 혼자 생각해 볼 시간이 많았을 텐데.”

그랬다. 나는 그를 최악의 방법으로 혼자 내버려 두었다. 우리가 서로의 비밀-내가 동림이라는 것과 그가 베드로 사냥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날부터 나는 바쁘게 움직였다. 최규창과 목성사 멤버들은 모두 석연찮은 죽음을 맞이했다. 나는 김정도의 연줄이었던 안 부장을 협박해 쫓아내고 김의 방콕행 역시 반려시켰다. 방콕에서의 테러는 사전에 저지되었다. 그 바람에 김정도는 완전히 붕괴되었다. 그는 목적도 동지도 잃은 채 지방 임지 어딘가에서 술만 마시다 이혼까지 당했다 들었다. 가엾지는 않다.

“시간은 많았지요. 그런데 도저히 혼자서는 이해가 안 되더군요.”

“꼭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이해할 필요는 없네.”

그건 김정도에게 한 말이었지만 나를 향한 말이기도 했다. 내 인생은 수많은 불가해(不可解)로 가득 차 있다. 내가 그것을 이해하려 했다면…나는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었다.

“그만 나가 보게. 어차피 저녁때 한강식 검사가 신나서 떠들 테니. 자네 호기심도 그때 채우면 될 것 같군.”

한강식이 초대한 곳은 호텔 스카이라운지에 위치한 레스토랑이었다.

“정말 두 분이 함께 오셨군요.”

“나랏일 하시는 분이 씀씀이가 크신가 봅니다. 이런 데서 식사를 다 하시고.”

“제가 좀 유복하게 자라서요.”

“처가가 유복하신 거겠지요.”

“저에 대해 좀 알아보셨나 봅니다.”

“원래 제가 하는 일이 그거라서요.”

“그만하고 식사 좀 하지.”

둘이 투닥대는 꼴이 마치 형제 같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을 놀리는 기분이 들지 않고 나를 찌르는 기분이 든다. 스테이크에서 아무런 맛이 나지 않았다. 나는 손을 들어 와인을 주문했다. 김정도는 물끄러미 내가 하는 양을 지켜본다.

“두 분 이런 자리가 자주 있었던 모양입니다.”

“자주 다녔었죠. 어디 이런 곳뿐이겠습니까. 서울시향 공연도 보러 다니고, 팻 분 내한 공연도 보러 갔었지요.”

“거 다 지나간 얘길 왜 합니까.”

한강식은 김정도를 자극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뻔해 보이는 수작에 김정도는 이미 넘어간 듯 보였다. 안광이 깃든 눈빛에 어금니를 꽉 깨물고 굳게 다문 턱으로, 김정도는 나만을 빤히 노려보았다.

“김 차장 나 그만 쳐다보고 식사해. 눈에서 불 나오겠네.”

“군 출신이라시더니 눈빛이 아주 형형하십니다.”

“군복 벗은 지 오랩니다.”

긴 신경전 끝에, 식사가 끝날 무렵에는 별 의미도 없는 부동산이니 올림픽이니 하는 얘기만 겉돌다가 호텔 밖으로 나왔다. 한강식의 기사가 모는 차가 매끄럽게 호텔 입구에 섰고, 그는 차 문을 열고 자연스럽게 나에게 타라는 눈짓을 했다. 김정도는 나를 향해 팔을 뻗었지만 나를 잡지는 않았다. 나 역시 그를 보았지만, 다시 차에 탔다. 한강식은 곧 차를 출발시켰고, 나의 눈은 백미러 안에서 점점 작아지는 김정도를 좇았다.

“나랑 닮았던데. 저 친구”

“설마요.”

“우리 한 잔 더 할까?”

한강식의 눈은 그때와 다르지 않은 온도로 나를 덥혔다. 하지만 내 눈은 담배를 들고 있는 그의 왼손 약지를 바라본다.

“됐어요. 좀 쉬어야겠어.”

저깟 반지, 저깟 언약이 뭐라고. 어차피 한강식에겐 지조라는 게 없는데. 나는 왜 당사자도 지키지 않는 언약에 기대어 그를 밀어내려 하는 걸까.

“우리 시간은 이미 끝났어요.”

집 앞에서 차가 매끄럽게 멈춰 섰다. 한강식은 손을 올려 부드럽게 내 뺨을 어루만졌다. 느릿하고 축축한 입맞춤이 이어졌다. 그의 몸에서 익숙한 담배 냄새와 잘 익은 누룩 냄새가 났다.

차 문을 열고 나오니 찬 공기가 몸을 감쌌다. 마치 그때 같군. 도망치듯 그에게서 멀어지던 스물셋의 내가 떠올랐다. 그때 나는 울었던가?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엔 울지 않고 말할 수 있다. 아디오스. 한강식.

 

“일찍 출근하셨네요.”

“그러지 못할 이유라도 있나.”

김정도의 눈은 내 입가와 목가, 손목 등을 훑어내린다. 뻔뻔한 건지, 솔직한 건지…애인의 부정을 찾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저 집요한 눈빛은 나를 조금 어지럽게 만든다.

“뭐 그리 애틋한 사이라고 새벽 댓바람부터 내 사무실에 쳐들어온 건가.”

“그럼 어느 정도여야 애틋한 사입니까. 한강식 정도는 되어야 애틋한 겁니까?”

“자네 지금 선 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저 선 넘을 자격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무슨 소리야?”

“그날 저랑 왜 잤습니까.”

대체 김정도는…마흔이 넘은 사내가 왜 이리 어리게 느껴질까. 하지만 정작 우스운 건, 이 유치한 작태를 내가 다 받아내고 있다는 거다.

“잤다는 이유로 자네가 나한테 뭐라도 된 것 같나?”

“남자랑 자는 게…아무것도 아닙니까? 한강식도요?”

“그놈의 한강식 얘기 좀 그만해. 그리고 부탁이니 제발 좀 나가게. 김정도.”

내가 안경을 벗고 까칠하게 마른 손에 얼굴을 묻자 김정도는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그는 내 앞에 시위하듯 서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구둣발 소리를 내며 사무실을 나갔다.

 

그날 이후 한동안은 김정도를 만날 수 없었다. 나는 이문동에 틀어박혀 워싱턴에서 보내온 자료들과 한강식이 보내 준 자료들을 비교하며 진위를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아마 김정도도 바빴을 것이다. 하지만 늦은 밤 가끔 그에게서 호출이 왔다. 0422. 그것이 그의 개인 호출기 뒷번호라는 걸 알게 된 건 5년 전, 그날 밤이었다.

*

나는 동림이었고, 그는 베드로 사냥꾼이었다. 그는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을 잡았다. 모든 진실이 선명하게 드러났지만 우리는 서로의 진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싸구려 모텔에서 몸을 섞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품은 모든 불가해(不可解)가 나를 잡아먹을 것 같았다. 죽일 것처럼 나를 노려보던 김정도는 뭔가에 쫓기는 듯 급하게 나를 헤집었고, 나는 아이를 달래듯 그의 뒷머리를 끌어안았다.

“제 개인 호출기 번호입니다.”

김정도는 그날 나를 집 앞에 내려 주며 그 번호를 알려 주었다. 나는 그 번호를 주머니에 구겨 넣으며 우리는 죽어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

 

지방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사고가 났다. 차는 반파되었으나 의외로 몸은 멀쩡했다. 병원에서는 입원 치료를 권유했으나 그럴 이유가 없었다. 사고 수습을 마치고 경찰서를 나오니 이미 늦은 밤이었다. 근처에서 숙소를 찾기에도 외진 곳이라 나는 국도 외곽의 한 슈퍼에서 공중전화의 수화기를 들었다.

김정도는 예상보다 빨리 왔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에 전날 입었던 옷을 다시 걸쳐 입고 나온 듯한 모양새가 퍽 우스웠다. 하지만…사실 우습지만은 않았다.

“자는 걸 깨웠나 보군.”

“아닙니다. 저도 일이 있어서.”

“자넨 거짓말을 못 하는군.”

“괜찮으십니까.”

“괜찮네.”

김정도는 운전하면서도 자꾸 나를 살폈다. 이래서 그를 부르는 게 아니었는데.

“앞 좀 보게. 이러다 또 사고 나겠네.”

김정도가 피식 웃었다.

“죽을까 봐 두려우십니까.”

“사고가 곧장 죽음으로만 이어지지 않으니 하는 말일세.”

멀쩡한 몸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매일같이 지켜본 자가 왜 그걸 모르나 라는 말이 입 끝에 걸렸지만 가볍게 삼켰다.

“박 차장님.”

“…”

나지막한 김정도의 음성이, 어딘지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박평호, 당신 때문에 매일 잠을 설칩니다. 당신은 대체 뭡니까?”

“뭐냐니….”

말끝을 흐린 채 눙치고 넘어가려고 했으나 김정도는 끈기 있게 기다리는 눈치였다. 나는 차창을 조금 내리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제 뒷방으로 밀려난 낡은 간첩이자 껍데기만 남은 늙은 남색일세.”

자조를 담배 연기에 섞어 시커먼 하늘로 날려 보냈다. 늘 속으로만 곱씹던 말을 내뱉는다는 게 이런 기분이던가.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저더러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지 않았냐 물으셨지요.”

“…”

“그 시간 동안 내내 생각했습니다.”

“…”

“나는 당신의 손가락을 그렇게 만든 게 미안했고, 당신이 날 군바리 취급하는 게 고까웠습니다. 당신이 간첩이라는 걸 알았던 날엔…”

“내 목줄을 쥐어서 짜릿했겠군.”

“잠시 동안은, 그랬습니다.”

그는 적절한 말을 고르려는 듯 잠시 말을 멈췄다. 어느새 시커먼 차창에는 똑 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배신감이 더 컸습니다.”

“배신감?”

“중정이 생길 때부터 지금까지 기관에 남아 있는 유일한 사람이, 나라의 수장이 바뀌고 기관이 바뀌고 직원이 모두 바뀌도록 여기서 살아남은 사람이 간첩이라니, 이게 무슨 역설이란 말입니까.”

“…사과라도 할까.”

“아뇨. 사과는 이다음 얘길 듣고 하셔야죠.”

“…”

“제 동지들이 다 죽거나 실종되었죠. 그리고 저는 계획도 목표도 모두 잃고, 낡은 껍데기만 남았습니다.”

나는 이번에는 사과하지 않았다. 김정도를 이렇게 만든 건 순전히 내 의지였다. 인생에서 단 한 번, 온 마음을 다해 진행한 작전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김정도를 멈추게 하는 것이었다. 그가 죽거나 괴물이 되지 않도록, 나처럼 껍데기만 남아 세상을 부유하도록.

“자네의 패착은 딱 하나야. 그날 날 죽이지 않은 것.”

“아니요.”

그는 곧장 대답했다.

“하나만 묻죠.”

“물어봐.”

“한강식은 알고 있습니까? 당신의 비밀?”

한강식이 알던 나의 비밀은 이제 누구에게도 가치가 없는 먼지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를 죽일 비밀은 오로지 김정도만이 알고 있다.

“그는 지나간 기억이야.”

“그럼 됐습니다.”

차는 어느덧 서울 시내로 진입했다. 나는 시트에 깊숙이 기대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김정도의 잘생긴 옆얼굴이 빗줄기와 겹쳐 보였다. 김정도가 부드럽게 핸들을 꺾었다.

fin.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