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파상

목주와론 목와

231211

*사망소재 주의


오랜만에 그쪽 지방을 들려 옛동네를 걸어 다니다가 의도치 않게 그 건물을 보고야 말았다. 모교를 보는 위장 속에는 묵직한 돌덩이가 내리 눌렀다. 원치 않았고, 왜 오랫동안 고향에 들리지 않았는지 그제야 기억에 떠오른다. 아니, 실은 알고 있었겠지. 기억하지 않으려 필사적이었던 연유다. 한번도 잊어본 적 없는 심상함이 머릿속을 저어 차가운 벽돌 담장에 기대 식히었다.

이윽고 결심을 굳히고 다리를 쭉 뻗어 교문 안으로 들어선다. 아무렇지 않은 체하는 허세와 달리 주머니 속의 손은 차가운 땀으로 축축히 젖어 미끈하고 울렁일 정도의 긴장이 목 뒤로 삼켜진다. 병신 같이 굴지 말고. 저려오는 주먹을 다잡고 교정 안으로 발걸음을 옮겨낸다. 따스한 건물의 그림자가 어깨를 훑고 지나갔다. 긴장한 숨을 뱉으면서 들어선 교정에는 눈이 꿰고 있는 사물의 위치가 여상하다. 까칠한 인조잔디가 깔린 운동장을 따라서 교사와 화단의 익숙한 배치가 들어온다. 오후의 미색 햇살이 더해져 기억 속의 풍경과 다른 점을 모두 가리어 마치 이곳에 발을 들인 후로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것 같은 장면을 연출한다. 사각의 유리를 통해 운동장을 내려다 보고 있는 교사가 그 안에 아는 얼굴들이 교실에 앉아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중학교 시절 모교의 교정은 십 수년이 흐른 지금도 옛풍경이 상당히 남아있었다. 저가 그때로 잠깐 돌아간 것인가 싶을 정도로 대부분은 변함 없었다. 이곳에서 보낸 삼년 남짓의 짧은 기간이 놀라울 정도로 단박 떠올라 수많은 감정과 추억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주택단지에 자리한 작은 중학교. 오밀조밀하게 빈틈 없이 세워진 시설들 사이로 추위에 벌거벗은 나무들이 자리한다. 두 개의 기다란 구교사와 기역자로 꺾인 신교사는 조금 낡기는 커녕 페인트칠을 새로 했는지 외관이 멀끔하다. 저곳에서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뛰어다녔지, 체육복을 결국 어디에 뒀더라. 건물의 내부는 들어가지 않아도 그 구조가 절로 외어진다. 생경한 감상에 진입로에 멈춰서 운동장 둘레의 하얀 선을 따라 교내를 빙 둘러본다. 마침 방학을 맞았는지 학생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정말이지 그 안의 학생과 선생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어렴풋한 기억에 있는 대로였다. 


운동장의 별관 옆에 자리한 체육관이 눈길을 끈다.

체육관....

마지막으로 운동장을 돌며 구령을 해본 것이 언제였는지조차 희미하다. 한때 운동부에 취미를 붙여 아침마다 잠을 포기하고 아무도 없는 학교에서 부원들과 훈련을 했었지. 스스로도 꿈이 넘치고 성실한 시절이었다. 운동부 내에선 가끔 좆같은 일도 벌어졌지만 그만두어야 할 때까지도 드물게 미련이 남을 정도로 즐거운 추억이었다. 

그리고 스탠드에는 어김없이 멀리서 따라오는 시선이 있었다. 

교정에 들어선 순간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한 사람 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저를 포함한 모두가 이곳을 떠났다니. 낯선 감상이 든다. 


비스듬히 보이는 교정 밖으로 낮게 줄이은 연립주택과 좁은 도로로 주차된 차들이 언뜻 보인다. 뒷골목으로 접어드는 그늘 아래 숨어 담배를 피우던 그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래도 돼?

연기에 입을 막고 콜록대며 묻자 그는 그 연기가 좋다는 엉뚱한 대답을 한다. 폐를 데우는 뜨거운 느낌, 매캐하고 하얀 재로 날려버린 날숨의 형태. 저렴하고 집 안에 널려있어 한두 개피쯤은 사라져도 알 수 없던 종. 에쎄. 그의 손가락보다 얇은 담배.  재가 좋은 거라면 자신에게도 비슷한 색을 찾아볼 수 있지 않냐는 농담을 던졌지. 그 때에도 담배를 한 개피도 피워본 적이 없었고 합법적으로 살 수 있는 나이가 된 후론 그가 생각나 잘 피우지 않았다. 수명이 줄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원인이라는 말에 당시에는 걱정이 컸으나 그는 웃으며 잔소리를 넘겨들었다. 이제는 꽤나 고루하게 느껴지는 과거의 말들은 시덥잖은 걱정이 되어버렸다. 

당시의 사소한 걱정들은 대부분 그로 인해 비롯된 것이었으며 좁은 학교와 동네 안팎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관심이 도는 곳이야 뻔했기 때문이다. 친구, 가족, 연애, 학교. 공부는 거의 관심 밖이었다. 그는 그런 말들이 싫었는지 골목 마트의 아이스크림을 사물리는 것으로 저의 입을 막곤 했다. 진지하지 않았어도 그런 심심풀이나 분풀이가 아니라, 정말 그를 아끼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못 들은체 하는 그 천연덕한 웃음만은 일품이어서 져주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 담에 커서 뭘 할거야?

커서? 장래희망 같은 거야? 오글거려... 아니, 굳이 직업을 말하라는 게 아니잖아... 그럼 십 년 뒤에? 

좋아. 뭐하면 좋을 것 같아?  

그는 자기가 묻고도 대답을 내놓았지만, 정작 그렇게 밝아 보이는 그가 미래에 대해 바라는 것이 있다는 건 소박한 놀람이었다. 그렇지만 그럼 너는 이 동네를 떠나려고? 저는 그를 만나고 나서 보내던 나날이 가장 행복한 시기라, 무엇도 더 원할 게 없는 지경이었는데, 교복을 입지 않은 그와 저가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때는 지금을 상상해놓고 정작 지금은 그때를 떠올리느라 여념 없는 모습이. 바보 같다며 엇댄 웃음도 나지 않는다. 교장실 앞 화단에 심겨진 향나무와 구령대를 지나 구교사의 중문으로 들어선다. 나이가 많지 않은 경비 하나가 붙잡고 묻는다. 


-졸업생인가요?

-아하, 네네. 그렇죠.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훤칠한 키와 젊은 나이의 외모를 가늠하던 경비가 의외로 군말없이 들여보내 준다. 이곳의 졸업생들은 너도 나도 사나운 인상을 가지고 있을 테니 얼굴을 전부 가린 오토바이 헬멧에도 학교를 나온 배달원인가 싶은 정도인 것이다. 오토바이 헬멧을 썼다고 한들 사람이라면 모교 정도는 있을 테니. 경비는 저를 두고 반댓편으로 가버린다. 졸업생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이들도 있는 법이라지만 여전히 느슨한 곳이었다.


일층의 복도에는 서늘하고 축축한 음기가 서려있었다. 습기를 머금은 석회벽이 더욱 어둡게 느껴진다. 껑충 뛰어버린 장신의 몸으로 가죽 무스탕에 두 손을 꽂아넣고 휘적이기에 회색 복도는 지나치게 낮고 답답하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소리가 통로를 울린다.

복도 끝으로 몇 십여개의 신발장이 층층이 쌓여있다. 잠시 서서 다소 멍하니 그 장면을 응시했다. 햇볕이 들이치고 있었다. 볕에 타버린 바깥은 다른 곳으로 이어진 듯 홀로 아득하다. 저곳에서 매일 아침 그를 만나던 시절이 있었다. 바쁘게 신을 갈아신는 학생들 틈에서 쓰레빠를 질질 끌며 간식을 사러가기도 했지. 검은 구두를 갈아 신어야 했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지만 이 계절에 시멘트 복도는 발이 시리다. 그것이 벌써 믿을 수 없는 오래전이었다. 저벅이며 발걸음이 층계를 향해 돌아섰다.  


계단을 하나 오르며 이 넓은 교사의 어디를 돌아야 하는지 고민한다. 가로로 긴 교사는 기억하기로는 한 층에도 교실 열 개가 훌쩍 넘었다. 사람을 만나고 싶어도 교무실에 아는 얼굴은 남아있을 리 없다. 누군가는 남아있을지도 모르지? 감흥에 젖은 가운데 이성적인 음성이 훼방을 놓는다. 있다고 해도 아무도 출근하지 않는 방학기간이다. 그들이나 상황을 기억하는 사람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 심경도 있다. 반을 찾을 수 있으려나? 배치가 달라서 알아보지 못할지도 몰라.

위에서 나지막히 소음이 나더니 누가 다가온다. 마주 내려오며 스쳐 지나가는 여학생의 얼굴을 관심이 없는 척 헬멧에 가려진 눈살을 옮겨 유심히 뜯는다. 당연하게도 처음 보는 얼굴일 뿐더러 당시에 알던 어떤 후배들도 모르는 게 분명할 아무런 연이 없는 까마득히 어린 후배다. 명찰로 보아 일학년이다. 시안색의 명찰. 교복을 보니 무언가 구체적인 기억들이 색을 더한다. 

발걸음이 계단을 오르다 말고 멈춰 서서 시선이 그대로 그 학생을 따라 내려간다. 방학 내 물건을 가지러 온 것인지 책 몇 권을 품에 안고 하나로 묶은 머리를 흔들며 계단 아래로 사라진다. 삼 년 동안 몇 반이었는지 그제야 전부 생각이 난다. 

층수까지는 모르겠으나 익숙한 습관이 이끄는 대로 계단과 복도를 지난다.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되는 말소리와 장면들을 보고 있다. 교문을 들어선 순간부터 둑이 터지듯 조용한 교내에 장소마다 시끌벅적한 소음이 차오른다. 걸어다니면서 볼 수 있을 정도로 낮은 창턱과 녹색 칠판. 나무 교탁과 격자로 놓인 책걸상. 여전히 이곳에 있을 것만 같은 그가 저를 불러내는 게 아닌가 싶다. 홀린 듯이 지나다니지도 않던 거리에 접어든 순간부터. 


3-6반. 녹색 팻말이 걸려 있는 교실의 문은 열려있다. 묘한 기시감을 느끼면서 십수 년 만에 문을 지나 교실로 들어선다. 공기에 한때 이곳을 채웠던 시끄러운 소음이 고여있다. 기억 속의 교실과 많이 달랐으나 설명할 수 없이 눈에 익은 느낌이었다. 눈길이 스치는 곳에 부분 부분 기억과 일치하는 점으로 남는다.



한 책상 앞에서 멈춰선다.


-안녕,

나 왔어.



차마 이름까지는 부르지 못하고 책상 앞으로 무너진다.


앉은 이의 무릎에 얼굴을 묻는 것처럼 책상을 부여잡은 두 손등에 이마를 기대어 파묻는다. 이렇게까지 작았던가? 그가 머물렀던 책걸상은 이렇게, 낮았던가?

잘 잤어?

어제 무슨 일 없었어? 잘 지냈어?

-잘 지냈어?

수없이 반복했던 아침인사가 울려퍼진다. 

풍경 밖으로는 신학기가 되면 벚꽃이 피었다.

3월에 벗었던 나뭇줄기 위로 가지의 끝이 산화하듯이 피어난 봄꽃이

4월 내내.

높이 자란 벚나무가 팔을 벌리고 교실로 들어오는 양광을 대신 쐬며 하얗게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지금보다 춥지 않은 미온을 머금은 바람에 꽃잎이 교실 안으로 들어오곤 했다. 청소되고 버려지는 것들.

그가 벚나무를 본 적이나 있었던가?

와론은 변수와 비일상과 변칙을 사랑했다. 몇 가지 내용이 빠지고도 기억과 추억은 짧지만 수없이 반복되는 강한 힘을 가졌다. 되풀이 해낼 수록 강렬해진다. 가로로 길게 뻗은 교사. 그늘진 주택가로 하나 둘씩 들어온 전등이 아직 눈에 띄지 않는 희미한 시간. 

여러 색이 섞인 노을은 그가 하지 못한 많은 말을 대신 전하고 있었다. 분명. 인간이 견뎌내기 어려운 낮과 밤이 뒤집히는 순간이 거기에 있었다.


성장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 교복을 입고 앉아 있는 그는 외울 듯이 눈에 선하다. 손에 펜 하나를 쥐고, 책을 보고, 그의 목소리가 저를 불렀다. 그 앞에선 여전히 십대 아이로 되돌아가 하나의 그리운 글자에 얽매이는 소심하고 속좁은 사람이 되어 가슴 속에 걸린 서러움은 치밀어 오른다. 그들이 겪은 조우란 어느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아주 특별한 것이었다고. 금이 가고 파손 되어 가는 중에도 깨진 유리에서 더 아름다운 빛을 발견케 했다고. 함께 한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아 눈을 감으면 고스란히 그가 느껴졌다. 


자신은 다녀온 학교수에 비해 졸업장의 갯수가 하나 모자란다. 이곳에서 받지 못한 것이 집 혹은 짐의 어디에도 없다.

치루지 못한 졸업.

이곳을 전부 견뎌내지 못한 채 도망쳤지만 어디를 가도 그는 찾을 수 없었다.

그것은 버텨냈다고 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기억만 떠안은 채로 방법은 여전히 찾지 못하고 살아온 세월의 편이 오히려 거짓 같다. 그를 잊을 수는 없었으나 그가 잔류하는 이곳만은 올 수 없었다. 수많은 물음과 질문을 뒤로 하고 사실은 그만 못이겨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었다. 그 이해는 마지막 우애의 표시가 되길 바라면서. 억지로 억지로 묻어왔던 것들이었다. 


뺨을 태울 것처럼 따갑게 번쩍이던 앰뷸런스의 붉은 빛.

뒤에서 오갔을 알지 못하는 약의 이름과 의사들 사이의 말. 핏기를 잃고 선고를 받는 알 수 없는 그의 마지막 순간. 

익숙한 장소를 막아서는 하얀 테잎.

정신 없이 지나간 학기의 끝. 깁스를 하고 돌아간 학교의 비어있는 자리를 보는 일은 남은 한 줌까지 저를 파괴하는 일이었어도

가장 떠오르는 건 선명하다 못해 눈을 부시게 했던 구급차의 장면이 아니라 그가 저에게 보낸 한 통의 문자였다고 하면 믿을까.

메신저에 남아있는 별볼일 없는 대화들. 추억들. 갤러리의 많은 사진들.

우리 사이에 직접 전해졌던 몇 글자의 대화. 

마지막으로 주고 받은 검은 액정 속 네가 내게 했던 말이라면 믿어져?



그때 그는 무서움을 느꼈을까. 죽음에 내리 깔리는 일을 견딜 수 있었을까. 저는 괜찮지 않았다. 볼 수 없다고 잊히지 않듯이 어디를 가도 따뜻한 그림자를 지울 수 없었다. 그가 자라지 않는다는 걸. 더 이상 이곳에 없다는 걸. 어떤 대가를 치러도 돌아가지 못한다는 걸 아는 데도 해가 지나올 수록 짙어진다. 차가운 그의 무게가, 보고 싶다는 말이, 아쉬움과 붙잡지 못한 회한과, 부족한 저에게 주었던 마음의 무게가 저며온다. 그 시절에는 저를 비추던 빛이나 다름 없고 지금와서는 미세하게 구부러지고 기울어진 날짜들. 

기억은 어쩔 수 없는 사랑의 무늬라고 한다해도.

아마도 이것은 사랑보다 무거운 감정이다. 호흡을 누르는 무게는 짊어질 수 없이 등을 굽게 떠민다. 젖어가는 팔에 기대어 흐느낌이 조용한 교실로 퍼져나간다.



파상

1 波狀  물결의 모양. 어떤 일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차례로 되풀이되는 모양.

2 破傷  몸이 다치거나 물건, 건물 따위가 부서져서 상함. 또는 그런 상처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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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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