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브레이크와 악셀은 대개 양쪽이 한 번에 고장나는 법이다

와지 현대au

* 잔불의 기사 와론X지우스 cp

* 대략 17금, 욕설 주의, 담배 묘사

망했다. 

회사선배랑 술먹고 일쳤다. 

오랜만에 회식에 한때 같은 팀에서 일하던 파디얀이 놀러오고, 만취한 상태에서 무슨 정신으로 자기 집으로 기어들어오기는 했는데, 문제는 혼자 들어온 게 아니었다. 

그리 크지 않은 더블 사이즈 침대 바로 옆 자리에서 시원스럽게 드러난 등판이 누워 자고 있다. 넓다랗게 견갑골을 따라 선명하게 두 개로 갈라진 등근육과 어깨 골격을 따라 붙어있는 험상궃은 근육들에 지우스는 보디빌더 내지는 이종격투기 선수를 떠올린다. 그러나 햐얀 피부 때문에 격투기 선수보다는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고, 목 주변에만 울긋불긋한 자국들이 심각했다. 

하, 무슨 뱀파이어 새끼도 아니고. 

술에 취한 자신은 이상성욕이라도 있는 건가? 목 부근의 피부를 거의 물어뜯어 놓다시피 했다. 유연하게 쑥 들어가는 허리에 남은 손자국에 가서는 지우스는 생각하기를 포기한다. 

엎드린 얼굴은 베개와 머리카락에 파묻혀 있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더라도 이미 지우스가 알고 있는 누군가다. 늘상 두툼한 자켓이 가리고 있던 체구를 직접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라 해도 말이다. 베개를 안은 팔 밑에서 신음하는 소리가 난다. 

"으... 일어났냐? 물 좀 갖다줘.."

지우스는 아무 말 없이 탁자 옆에 생수병을 열어 그에게 건넨다. 그는 누운 채로 아무렇게나 들이킨다. 

"으.. 죽겠다,"

"하.. 일어나. 지금 안 가면 회사도 늦을 거다"

둘의 목소리가 쉬어있는 꼴이 가관이었다. 자신의 목소리에는 술기운이 남아있는 듯 했다. 

"회사? 난 반차 썼지."

"뭐?"

그럼 나도, 하고 순간 생각하던 지우스는 한 사무실에 둘이나 반차를 썼을 때 벌어지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시발, 너무 수상하잖아. 회식 다음날 나란히 두 사람이나 출근을 안하다니. 더 이상 끔찍한 일이 일어나선 안된다.

"하... 일단 나중에 얘기해."

반차라고 해봤자 몇 시간 더 자고 나올 뿐이다.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수면시간을 아끼기로 했는지 대답없이 잠에 빠져든다. 지우스는 아침부터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며 그를 내버려둔 채 눈에 보이는 대로 준비하고 집을 나선다.

힘겹게 오전 업무를 처리한 지우스는 숙취로 지끈대는 머리를 부여 잡으며 피로회복제를 비워낸다. 평소에 즐겨 마시던 카페인이나 니코틴을 지금 섭취하면 죽을 지도 모른다. 분해되지 못하고 혈관을 떠도는 알코올과 근육통과 부족한 수면으로 이미 몸이 만신창이였다. 완전히 끊기지 않은 필름에 감사하며 그는 상황을 정리했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선배는 어제 회식이 끝나고 만취한 지우스를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즈음 지우스는 스스로가 조금 정신을 차렸다는 착각에 빠져서 뭔가 대화를 시도했다. 아마 선배가 보기에는 여전히 술 취한 사람의 알아들을 수 없는 주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그가 무슨 말을 했고, 문간에 서 있던 그를 자신이 다짜고짜 덮쳤던 기억이 난다. 덮쳤다기 보다는 매달린 것에 가까웠겠지만. 왠만한 일반인보다 훨씬 힘이 세서, 만취한 성인 남성을 부축하여 데려온 그가 왜 자신을 멈춰주지 않았는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알코올을 즐기지 않는 그는 어제 술을 마시지 않아 취했을 리도 없고, 어쩌다 그에게 술을 먹이고 싶어하는 선배들끼리의 대작에서도 그가 취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지우스는 그가 자신에게 베푼 과도한 친절을 원망하다가, 심해지는 두통에 키보드에 머리를 박는다.

점심시간이 되자 그도 회사로 출근했다. 

그들은 사내식당으로 가지 않고 회사를 벗어나 근처 음식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지우스는 회사 주변의 그나마 한적한 쌀국수 집으로 간다. 사무실에 들리지 않고 바로 음식점으로 온 그가 2인 테이블에 앉아있다가 자신을 보고 인사한다.

"야, 니네 집 침대 좋더라."

아침에 칼칼했던 목소리는 많이 나아졌지만, 하얀 셔츠 안에 입은 타이트한 목티(아마 지우스의 옷장에서 꺼낸 것 같다)를 본 지우스에게 죄책감과 수치심이 밀려온다. 지금이 여름이 아니었기에 망정이다. 선배, 와론은 익숙하게 메뉴를 주문하고는, 이마 앞으로 내려온 머리카락을 손으로 툭툭 만져댄다. 

"몸은?"

"보다시피?"

와론이 어깨를 으쓱인다. 

"숙취는? 어제 자네 진짜 취했어."

"안 그래도 죽을 맛이야."

선배인 와론과는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면 말을 놓는 사이다. 그렇다고 지우스가 그의 이름을 대놓고 호명하지는 않는데, 그건 선후배 지간의 예의라기보다는 와론이라는 인간과 최소한의 거리를 두고 싶은 지우스의 노력이었다. 매콤한 해장 쌀국수와 보통 쌀국수가 그들 앞에 놓인다. 지우스는 수저를 꺼내 와론에게 건네며 묻는다.  

"앞으로 어떡할 거야,"

"뭘 어떻게 해야 하나? 그냥 하룻밤 서로 선 넘었다고 생각하지?"

와론은 이 일에 대해서 별다른 조치를 취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사실 이제 와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는 조금 피곤해 보일 뿐 아무렇지 않은 것 같다. 지우스를 대하는 태도는 딱히 이전과 다른 점이 없다. 불어가는 쌀국수를 앞에 두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걸로 하루 아침에 그들의 관계가 바뀌기에는 이미 5년이나 봐온 사이였다. 그런가, 지우스는 묵묵히 젓가락을 집어 든다. 

퇴근 후 돌아온 지우스는 아무도 없는 집에 불을 켠다. 평범하게 방 한 칸과 거실이 있는 빌라는 어제도 오늘도 다를 바가 없다는 듯 평화롭다. 

틀린 말이 아니긴. 역시 점심 때까지도 술이 깨지 않아 제정신으로 판단할 수 없었던 거다. 

지우스는 저녁이 되자 더 선명해지는 기억에 몸서리 친다. 젠장, 낮까지는 숙취에 업무에 와론의 일까지 정신이 없어 죽을 맛이었는데 조용한 저녁이 되자 오히려 어제 일이 떠올라 괴롭다. 소파에 드러누운 지우스가 이마를 팔로 덮는다. 시발, 진짜 미친거 아니야. 술에 취해 허둥댔을 자신이 꼴 사나웠다. 그렇게 취했는데도 그게 가능했나? 아, 뭔가 와론의 표정이 평소처럼 실실대지 않고 웃음기가 사라져 시종일관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끝에 가서는 그가 멈춰달라고 했던 것도 같은데, 이미 그도 저도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흐릿하게 신음 속에 파묻히는 말을 머리가 이해하지 못했다. 더 해달라고, 지우스의 머리는 그렇게 해석하고 있었다. 

와론은 그가 입사 했을 때부터 이미 유명한 선배였다. 당시에는 부장이었고 지금은 이사인 달잔이 아니었다면 그로서는 엮일 일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는 부서간에 깽판을 놓고 느닷없이 팀원들이 한달 동안 작업한 계약을 깨버리는 또라이였으나 그만큼 유능해서 회사에서 인정받았다. 와론이 지우스에게 관심을 보인 만큼 지우스 역시 내심 그와 붙어다니며 그를 이용해왔다. 지우스는 끈질긴 협상을 통해 이번 프로젝트에서 와론을 자신의 팀으로 영입하는 데에 성공했다. 지우스로서는 그와 함께 다니는 일이 잡다한 불편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우스는 자신이 그를 감당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라는 착각을 한 적도 있지만, 결국 어제처럼 그는 자신을 챙겨주는 일을 도맡아 왔던 건가 싶기도 하다. 

다 떠나서 그는 회사사람이고 같은 팀 선배인데, 하여튼 지우스는 자신이 하룻밤 새에 그 관계를 망쳐 버린 건가 싶어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정신이 아찔했다. 

좋았냐고? 좋았는데, 솔직히 하룻밤이란게 아쉬울 정도로 좋았지만 좋았다고 말하면 자신은 미친 놈이다. 그가 절대로 이런 실수를 하면 안 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와론이다. 와론이 속으로는 어떤지 몰라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걸 보면 그저 하룻밤의 무례 쯤으로 생각하고 용서한 것 같았다. 지우스가 절대 내보이고 싶지 않은 건 5년 동안 홀로 마음고생을 하면서도 죽어라 숨겨온 마음이다. 와론을 마음에 품은 사람이 있다? 그건 미친 놈이다. 그리고 지우스 자신이었다. 

와론은 위험한 사람이다. 아무리 같이 있어도 속내를 짐작하기 어렵고, 지우스도 그가 무슨 행동을 할 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그는 물리적으로도 학창시절에 무슨 격투선수도 했었다고 한다. 어딘가 문신이라도 크게 그려져 있을 것 같던 그의 몸은 아무것도 없이 희고 깨끗해 지우스를 놀라게 했다. 살이라고는 없는 옆구리에 잘 짜여진 근육들이 물결치면서 움직일 때마다 볼록하게 솟아올랐다. 골반의 뼈대를 따라 굴곡진 근육이 움직이던 모습을 생각하자 온몸에 다시 열이 오르는 게 느껴진다. 낮게 신음하면서 찌푸리던 미간 같은 걸 떠올리다가 지우스는 회상에 제동을 건다. 더 이상은 그 자신에게 좋지 않다.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해보니 어제 그와 함께 회식 테이블에 앉아 있던 시간이다. 그때부터 방금까지 오전의 몇 시간을 제외하고는 내내 와론과 붙어 있었다. 멍청하게도 내일 아침까지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그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연락을 하려던 손이 멈칫한다. 아마 자고 있겠지. 궁금해 해서 뭐하나. 지우스도 그만 아무 생각 없이 잠에 빠져들고 싶어 그대로 소파에서 정신을 놓는다.

다음 날, 지우스는 목과 어깨의 근육통을 느끼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일주일에 이틀이나 이런 식으로 기상을 하다니, 건강이 빠른 속도로 작살나는 게 느껴진다. 정신을 깨워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와론이 침대시트를 세탁기에 넣어 놓은 것을 발견했다. 그는 세탁 버튼을 눌러 놓고 주방으로 가 어제 사온 편의점 죽을 꺼내 렌지에 데운다. 간단한 아침식사 후 기계적으로 짐을 챙기고 집을 나선다. 운전면허를 딴 것은 최근이라 지우스는 아직까지 뚜벅이 신세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자신밖에 없는 게 그나마 평온한 정신을 유지 시켜주었다. 30분 이내에 망가질 평안일지라도 말이다. 

그로부터 한 달 정도 지났다. 

"후...."

지우스는 미세먼지가 가득한 건물 너머를 올려다보다가 깊게 연기를 내뱉는다. 하늘의 푸른색은 담청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데, 그는 문과에서 공부하며 들었던 상식을 떠올린다. 흐리지도 않은 날이 먼지로 덮여 회색이다. 담배와 함께 하는 귀중한 명상시간이다. 지우스는 어김없이 바쁘게 업무를 처리했고 컨디션이 좋은 와론은 오늘도 타부서와의 회의에서 시비가 붙었다. 그 날 이후 몇 번인가, 하룻밤의 헤프닝으로 정리해버린 와론의 발언과 달리 한 번 넘어간 선을 두 번은 넘기 어렵냐는 듯 같은 일이 반복됐다. 지우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감이 좋은 와론이 그의 속내를 눈치 챈 거 같지는 않았지만, 그가 다가오는 것을 전혀 거절하지 않는 지우스 자신이 문제였다. 

지우스는 다시 담배를 태우며 상념에 빠져든다. 

어쨌든 와론이 타인에게 하는 것과 다르게 그에게 벽 없이 대해준 게 사실이다. 애초부터 와론은 사람들과 친해지지도 정해진 것 이외의 일을 좋아하지도 않는 데, 그와는 늘상 함께했고, 그를 도와주고 호의를 베풀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친절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최근의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우스를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속내는 미지수였다. 오히려 벽이 없는 와론의 태도가 벽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속내를 보여주지 않는 듯이 굴다가도 지우스에게 하는 행동에서 말 없는 배려를 읽어내는 것이다. 그것에 별다른 의미를 기대해서가 아니라, 둘은 타인과 다르다는 착각에 빠져있던 것 같아 감상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어쩌면 그와 쉽게 친해진 것도, 그가 지우스를 봐주는 것도, 비록 그 역시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해도 그의 호의를 이용하는 걸 내버려두는 것도, 모든 게 특별하다는 착각말이다. 

저편에서 사무실 동료들이 건물 쪽으로 걸어온다. 지우스는 덜 핀 담배를 끄고 그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이 모든 일은 지난 5년간 그에게 익숙해졌다. 그리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반복될 일이다. 오후에는 와론과 함께 외근을 나가기로 했다. 

지우스가 그의 멱살을 잡고 확 끌어당기자 코와 코가 맞부딪히고, 곧이어 말캉한 입술이 와론의 입술을 빨아댄다. 와론이 입을 약간 벌려주자 부드러운 혀가 와론의 입술과 입안을 핥으며 혀를 찾는다. 하, 자신의 셔츠 위를 더듬는 손길에 와론은 멈칫한다. 미쳤구만, 이거. 

확 밀쳐 버릴까? 눈을 감고 와론에게 입술을 부비던 지우스가 그를 부른다. 

"와론,"

하, 시발 진짜 취했네 이 새끼.

와론은 크게 입을 열어 그의 입술을 머금는다. 저항하는 지우스를 꽉 붙들고 얼굴이 맞닿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알딸딸한 알코올 향이 훅 와론에게 넘어오며 그는 오랜만에 취하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흐릿하게 뜬 노란 두 눈이 달이 뜬 모양과 같다. 

지우스의 손이 머뭇대자 와론이 빠르게 자신의 셔츠 단추를 풀어내렸다. 상체를 더듬는 지우스의 손을 무시하고 셔츠를 뒤로 젖히며 거칠게 키스한다. 몸을 굽혀 그의 입을 탐하고 그의 손에 자신의 머리칼이 엉키는 걸 느낀다.

"읏, 읍, 츕, 와론, 하아, "

하아, 와론이 약간 입을 열어 떼어내자 가늘게 타액이 늘어진다. 사나운 눈빛이 고개를 숙인 채로 그를 올려다 본다. 

"이제 와서 빼지마라."

와론은 낮게 속삭인다. 아마 그에게는 이 말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와론은 망설이지 않고 집안으로 들어선다. 거칠게 서로의 입안을 탐하면서 와론은 침대를 찾아 지우스를 그리로 밀친다. 훅, 침대에 눕혀진 지우스가 몸을 일으킬 새도 없이 와론은 그를 내리누른다. 밑에서 방황하던 팔다리가 점차 제 위치를 찾아가며 깊게 파고 든다. 그의 손에 깍지를 끼고 엉망으로 몸을 겹친다. 5년이면 많이 참았지, 와론은 진즉 그를 잡아먹지 않은 자신의 인내를 칭찬하며, 허울 뿐인 배짱을 부리던 가면을 사납게 벗겨낸다. 얌전한 척 하다가도 가끔 자신에게 이빨을 세우는 게 자꾸만 와론의 성질을 건드려 왔다. 말로만 선후배지,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그는 입만 열면 거짓말을 했다. 와론은 손수 그 답답한 변명거리를 없애주기로 한다. 그 거짓 밑에 숨겨놓은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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