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아이(Ai)

안녕, 아이(Ai) 00

안녕, 아이(Ai)

나의 바다 by 라마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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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U404 이부키 아이 x 시마 카즈미

* 이부시마 교류회 M-TRIP에 낸 글입니다.

* 시점은 원작 이후로 원작과 무관하며 내용은 허구임을 밝힙니다.

*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 2018>에서 일부 모티브를 따왔으나 모르셔도 읽는데 무방합니다.

* 2023. 03. 10 개장판 업로드

태양 빛이 닿지 않은 깊은 바닷속에 오랜 시간을 살아온 고래 한 마리가 존재했다. 거대한 몸 곳곳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새겨져 있어 고래의 지난 시간이 고단했음을 알 수 있었다. 고래는 수 세기 동안 지구를 지켜봐 왔다. 수많은 인종이 각자의 땅 위에서 문명을 이루고 그와 더불어 셈하기 힘든 종류의 동식물들이 땅과 바다와 하늘에서 살아가는 형태를 보고 듣고 기억해두었다. 그는 어느 땐 인간이었고, 네발짐승이 되었고, 거대한 날개로 창공을 가르며 날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깊은 바닷속을 유영해 사는 거대한 고래가 되었다.

그때쯤 지구에는 격변이 일어났다. 인류의 기술력이 급작스럽게 발전했고, 그로 인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전쟁은 불가피한 일로 느껴질 만큼 빈번하게 일어났다. 수많은 인간이, 동물이, 식물이 철과 불꽃 아래 사그라져갔다. 땅은 비명을 질렀으며 새파랗게 빛나던 하늘은 파랑을 잊고 잿빛으로 물들었다. 바다에는 시체와 철의 잔재가 쌓여갔다. 어딜 봐도 죽음이 가득했다. 셈할 수 없는 죽음 위에 세워진 인류의 문명은 하나의 별의 탄생 뒤엔 하나의 별의 죽음이 있다는 전제가 무색하게 한 생명의 탄생에 수없이 많은 죽음이 따라오게 됐다.

오늘 또다시 하나의 종이 멸종을 선고받았음을 깨달은 고래는 지구가 이미 돌이킬 수 있는 지점을 한참 전에 지나가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감고 있던 눈을 떠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깊은 바닷속을 바라봤다. 수십여 년 전만 해도 이 깊은 바다에는 생명이 가득 숨쉬고 있었다. 지금은 어둠만 남아있었다. 희망은 그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이름과 이 별에 오기 전의 일이 하나, 둘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고래는 그제야 오랜 생각의 끝을 매듭지었다.

거대한 몸체가 어두운 바닷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어딘가 구슬픈 울음소리만 남기고서.

이부키는 꿈을 꾸지 않는다.

다만 오늘은 달랐다. 잠이 든 후 새카만 어둠 속에서 둥둥 떠다니며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깊은 바닷속으로 유유히 유영해 사라지는 커다란 고래를 봤다. 그 뒤를 따라 구슬프게 우는 울음소리도 들었다. 분명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분명한데도 이부키는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고래는 이 별에 멸망을 고했다. 그리고 고래는 슬퍼하고 있었다. 이 지구에 멸망을 불렀지만 슬퍼했다. 앞으로 죽어갈 생명에 대한 진혼곡처럼 구슬픈 울음소리가 깊은 바다를 넘어 지구 곳곳으로 울려 퍼졌다. 이부키가 있는 곳까지.

벌떡.

잠에서 깬 이부키는 조금 전 본 고래를 떠올렸다. 멸망을 부르던 소리. 오랫동안 잊고 있던 소리였다. 일어나며 자연스레 흘러내린 이불을 쥔 손에 꾹 힘이 들어갔다. 불안함을 감지한 심장이 반사적으로 둥둥둥 시끄럽게 뛰어댔다. 그는 두 귀를 꾹 막고 두 눈을 꾹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쉰 뒤 천천히 내뱉었다. 몇 번을 반복하자 심장이 평소와 다름없이 평온하게 뛰었다. 두 귀를 막았던 손에 찬 땀만이 조금 전 불안을 나타냈다. 그마저도 쓱 문질러 닦아내자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두운 밖은 조용했다. 멸망 따윈 그 어디에도 없다는 듯이. 하염없이 밖을 바라보던 이부키는 어느새 울리는 알람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알람을 끄고 습관처럼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잠을 깨우기 위한 세수를 마치고 운동복과 가벼운 후드 집업으로 갈아입은 뒤 관사를 나섰다. 건물을 나서며 가볍게 몸을 풀어 언제나처럼 달릴 준비를 했다. 밤사이 잔뜩 굳어있던 몸이 어느 정도 풀리자 준비 자세를 하고 속으로 출발을 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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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가볍게 땅을 밀어내며 출발하면 그 뒤는 거칠 게 없었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을 맞으며 쉼 없이 발로 땅을 밀어내고 또 밀어내 앞으로 나아갔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항상 달리던 붉은색 트랙이 나왔다. 멈추지 않고 트랙으로 들어가 몇 번이고 달리다 보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때가 온다. 그 어느 때보다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순간. 이부키는 트랙 위에 아무렇게나 누운 채 하늘을 바라봤다. 태양이 찾아온 하늘은 그의 이름만큼이나 새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숨이 차 가슴은 가쁘게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래도 덕분에 머리는 맑았다.

잠에서 깬 후로 이부키의 귓가엔 울음소리가 계속 들렸다. 이미 사라진 소리지만 잊을 수 없어 귓가에 맴돌았다. 멸망을 불렀다는 사실보다 이부키는 그 울음이 걸렸다. 왜 슬퍼했을까. 그걸 계속 고민하느라 생각은 나아가질 못했다. 달리다 보니 단 하나만 남아 결론이 났다.

“살아있으면 얼마든지 기회가 있어.”

말끔한 결론이었다. 곁에 시마가 있었다면 그게 무슨 말끔한 결론이냐고 핀잔을 줬을 텐데 아쉽게도 지금 이부키는 혼자였다. 물론 조금 뒤에 출근하면 만나긴 할 테지만 이건 말하지 않으면 시마라도 알지 못할 테니까. 완벽한 계획에 히죽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이부키는 다시 달릴 준비를 했다. 목표는 그의 파트너 시마 카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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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발이 가볍게 땅을 박차고 나아갔다. 환하게 웃는 얼굴 위로 새하얀 햇살이 눈부시게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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