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리즈료샤

2023.04.20 작성 글 백업

"드미트리의 재판에 대해 들었어요, 알료샤."

알료샤는 리즈의 방에 들어선 거의 직후에 그런 말을 들었다. 리즈는 곧장 알료샤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가서는, 제 방 문의 손잡이를 잡고 확 잡아당겼고 (알료샤는 그 탓에 손에 들고 있던 트레이를 하마터면 놓칠 뻔 했다.) 문은 쿵 소리를 내며 닫혔다. 벽 너머로 호흘라코바 부인의 호통치듯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리즈는 '바람에 문이 세게 닫혔어요!' 하며 소리를 질렀다. 째질 듯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알료샤는 리즈의 표정을 살폈고, 알료샤와 눈이 마주친 리즈는 곧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유형을 선고받았다죠? 아주 오랜 시간동안 고통받아야 한다는 소문을 들었어요―그래요, 소문을요! 그가 정말 어떤 형을 선고받았는지, 아니, 당초에 형을 선고받은 게 맞기는 한지 나는 몰라요. (당신도 알잖아요, 나의—사랑하는—어머니는 내가 너무나 많은 것을 아는 걸 정말, 정말로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알료샤, 난 모든 걸 알 수는 없어도 당신의 표정에서부터는 모든 것을 건져낼 줄 알아요."

리즈는 모–든 것, 하고 '모든'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문 근처에서 알료샤를 이리저리 살피던 리즈는 생글거리며, 제 침대로 가서는 주저앉듯 앉았다. 알료샤는 여전히 양 손으로 트레이를 든 채, 리즈에게 천천히 다가가 곁에 앉았다.

"그 소문은 사실이었던 거죠? 그렇죠?"

리즈는 트레이 위의 두 찻잔 중 하나를 가져다 입에 대었다. 으, 이 차는 너무나 달아요! 입에 맞지 않는 건가요? 네에, 하지만 당신의 입에는 맞을 것 같네요, 알료샤. 심술궂은 투로 말하는 리즈의 모습에 알료샤는 눈꼬리를 휘어 웃었다.

"맞아요, 리즈, 사실이에요. 그는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엄중한 죄로써 판결된 만큼 힘든 노역을 해야 할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그가 죽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군요?"

리즈는 별안간 손뼉을 짝, 하고 치며 알료샤의 말을 가로막았다. ('채갔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알료샤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잠시 리즈를 바라보다가, 못 이긴다는 듯이 웃었다.

"그래요, 리즈. 당신은 내가 거짓을 고하지 못하게 만드네요. 언제나요…."

"난 당초에 당신의 형님께서 수감되어 있다는 걸 알았을 적부터, 당신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 믿고 있었는 걸요."

리즈의 천진한 눈빛이 총명히 빛났다. 리즈는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더 마시고는, 아까와 같이 으, 하는 싫은 소리를 한 번 뱉어내었다. 트레이에 찻잔을 다시 얹은 리즈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가, 곧 알 수 없는 웃음소리를 흘렸다.

"알료샤, 난 역시 악마인가봐요."

"어째서인가요, 리즈?"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날 경멸하지 않을 수 있나요?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리즈는 그리 말하며 알료샤의 한 손을 두 손으로 힘 주어 잡았다.

"그럼요, 리즈, 어떤 말이어도요." 알료샤는 트레이를 옆으로 대충 치우고는 붙들리지 않은 쪽의 손을 리즈의 양 손 위에 감싸듯 얹었다.

"아뇨, 당신은 날 경멸할 거예요." 리즈는 알료샤와 눈을 마주했고, 몇 초 지나지 않아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그거 알아요,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실은 난 그게 당신이었으면 했어요. 다른 누가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는 내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죠. 그게 정말 드미트리, 그러니까 당신 형님의 짓이든 누구의 짓이든… 그 빌어먹을 인간—세간에서는 표도르 파블로비치를 그리 부르곤 하더군요—을 쇠공으로 내리친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했어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요?"

"내가 유형을 가길 바라나요?" 알료샤는 미소지었다.

"오, 그럴리가요!" 리즈는 열성적으로 외치며 알료샤의 손을 꽉 쥐었다. "당신에게도 까라마조프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내게 증명시켜주길 바랐던 거예요. 불온한 아비를 죽인 수도사를 그 누가 용서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역설적이게도 당신은 대중의 용서를 받는 그 순간 아주 까라마조프적인 사람이 되고 말겠죠! 난 그 모습이 보고싶었어요. 당신의 마음 속에도 악마가 살아있음을 증명해주었으면 했지요."

"하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는걸요."

"맞아요. 그러지 못했죠. 애초에 당신의 마음 속에는 악마 따위 살고있지 않았으니까."

"나를 원망하나요?"

"아니요, 오히려 그 반대예요! 난 당신의 타락을 바라면서도 당신의 천사같은 면을 사랑하곤 했으니까요. 그보다 당신은 나를 전혀 경멸하지 않는 군요? 어째서죠?"

"사랑하는 리즈,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요."

"난 악마예요,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리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알료샤를 내려다보았다. 터질 듯이 붉어진 양 볼을 본 알료샤는 웃음을 터뜨릴 뻔한 것을 꾹 참아내었다. 리즈, 차가 다 식었어요. 아, 이런! 새로 타와야겠군요. 이번에는 설탕을 아주, 아주 조금만 넣어달라고 부탁해야겠어요. 리즈는 알료샤의 옆에 놓인 트레이를 빼앗듯이 가져가서는, 빙글 돌아 방 문을 향해 걸어갔다. 알료샤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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