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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색증

아비규환 by 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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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눈이 날린다 연말에 봄은 오지 않는다 눈발이 세상의 모든 물기를 박탈해 말라붙은 밤이다 공기는 냉증을 앓는 손마디를 내리찍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세우기를 거듭했다 한 해가 저무는 걸 보며 다이어리를 주문하고 올해는 정말 담배를 끊어보리라는 선언과 비슷한 절차를 밟았다 매 해 매 학기 혹은 계절의 시작마다 시간의 절취선을 따라 족적을 오려내고 떠났다 발목을 잡아끄는 손을 저주하고 난도질하는 일이 나의 계절나기다 아무런 빌미가 없는 날에는 머리를 염색하고 인테리어를 바꾸며 스스로 유기의 구실을 만들어냈다 다음 개명은 어떻게 할지 고민하지만 역마살은 도망칠 수 있는 곳에서 오는 게 아니다 조개의 혀 아래에는 진주가 있음을 아는 나는 비단벌레의 날개를 벗기고 에메랄드빛 우울을 뜯어먹는다 한 꺼풀 한 꺼풀씩 녹색 페인트를 내장에 들이붓고 각설탕을 태우다 삐 소리가 울리면 심상이 멎는다

그 소리는 뇌가 스스로를 고치려다 실패한 소리라는 낭설이 있다 목덜미가 시려 이발을 미룬다 연말에는 봄이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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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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