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검사 하명진의 일일

발신자 불명 by 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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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이 밝아지며 알람이 울린다. 실상 얼마 잠들지도 못하고 맞이한 아침은 퍽 곤하여 달갑지 않다. 말갛던 미간에 설핏 주름이 잡힐 때 깊이 숨을 들이쉬니 흉부가 크게 들썩인다. 잠에서 깨어나기 싫은 만큼 깊-은 숨을 쉬는 동안에도 날 선 알람이 귓전을 긁는다. 손을 더듬어 기계를 찾고 대충 쥐어진 대로 버튼을 눌러 꺼버린다. 아직 감긴 눈 위로 손바닥을 덮는다. 마른 낯을 비비자 버석한 소리가 난다. 남은 잠을 마저 털어내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하명진의 아침은 고요하다.

얕은 숨소리와 섬유가 스치는 소리, 실내용 슬리퍼가 바닥을 딛는 음과 물소리, 살결이 섬유에 쓸리거나, 약간의 금속성 마찰음 정도가 그의 공간에 울린다.

마지막으로 구두굽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고 찰칵, 현관문이 열리면 집안과는 조금 다른 - 이를테면 겨울엔 선득하고, 지금 같은 여름엔 눅눅하니 후덥지근한 - 공기가 폐부에 스민다.

주변을 떠도는 소리도 점점 크고 다양해진다. 여러 기기의 작동음, 자동차 배기음, 경적이 그 주위를 맴도는 동안 뻐근한 눈을 억지로 굴려 치뜬다. 출근길에 위치한 드라이브스루 카페를 들러 본다.

-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벤티 사이즈로 샷 추가, ... 샷 두 번 추가 부탁드립니다.

쓰린 속을 생각하다 사무실에 그득히 쌓인 서류가 문득 눈앞을 스쳐 결국 주문을 바꿨다. 취향에 맞는 음악도 틀어 보고, 나름의 잠을 깨우려는 노력을 하고 있자니 주문한 음료가 나온다. 까만 음료가 한 모금 목을 넘기고서야 맑게 트이는 눈에 괜스레 입이 쓰다.

정리를 해도 매일 같이 들이닥치는 서류 더미가 맞이하는 사무실. 활자와 활자 사이 어딘가 여백을 바라보며 기소와 불기소 어느 쪽을 택해야 하나 고민하고, 흰 종이 속 빼곡한 활자만큼 골무 낀 손에 넘어가는 종이가 수를 세기 어려워질 즈음. 눈치를 보던 시보가 시계를 가리키며 점심을 알린다. 그마저도 실은 때를 놓친 터라 삼삼오오 모여 자리를 뜬다. 때늦은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것도 사치인 듯 정해진 일과처럼 구내식당으로 향한다.

약간의 담소. 이미 시보에게까지 알려진 상사의 허물. 그걸 디저트 삼아 오후를 버틸 카페인 주유. 식후의 담배를 거절하고 자리로 오면 어느새 점심시간 끝.

다시금 서류를 보기 시작하노라면, 어째서 쉬는 시간은 이리도 짧은지 개탄스럽다. 짧은 숨으로 아쉬움을 표할 뿐. 이제는 흡연으로 숨 돌릴 틈도 없앤 지라 금연 껌 정도로 허전함을 달랜다. 탈탈 비교적 가볍게 구르며 들어오는 수레가 반갑다가도 웃전의 입김에 엎어져 버린 한참 공을 들였던 사건을 생각하면 백목이 붉게 물든다. 임관 때 읊었던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라는 건 제가 넘기고 있는 종잇장의 끄트머리 만큼이나 해진지 오래되었다. 이 집단 중 선서를 기억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밝은 빛이 외려 심란한 직장인들인지라 내려두었던 블라인드 틈을 비집던 햇살도 물러가고 어찌저찌 지난한 하루가 지났다. 명일, 중한 사건의 공판기일이니 곤한 기색 좀 지워보자며 다들 사람 꼴을 갖추기 위해 귀가를 서두른다. 이미 짜 맞춰진 판이 된 꼴이라 준비를 더 한들 속만 뒤집어지는 탓에 저 또한 자리를 물린다.

출근길을 되짚어 돌아가는 귀갓길. 남들보다 늦은 퇴근을 하는 차 안엔 오전과 달리 잔잔한 음악이 퍼지고, 그 낮은 박자에 맞춰 핸들에 손가락을 굴리는 소리가 들린다. 교통체증 하나 없는 도로는 제법 빠르게 길을 터준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집으로 들어서면 소란하던 하명진의 하루가 끝이 난다.

덧, 불면은 익히 오래된 것이라 하루의 경계를 흐트러트려 이 글에는 기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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