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28 T님 썰 3천자
LCK CL AU
A와 C 남매는 우여곡절 많은 삶을 살았음. 어린 시절 버스 사고를 당한 남매. 동생이 일분일초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모습을 본 그는 트라우마로 버스를 탈 수 없게 되었고, 오랜 시간 함묵증을 앓았음. 고통스러운 시간, 그에게 위안이 되어준 건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 속에서 활약하고 있으면 자신이 말에 서투른 것도 외롭다는 것도 잠시 잊을 수 있었음. 그렇지만 동생을 살리고 싶다는 소망만큼은 잊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살려 하루빨리 가계에 보탬이 되고 싶었음.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음. 준프로 수준의 ADC 실력을 가진 A에게 프로 제의가 들어온 것임. 어린 나이치고 조용하고 깨끗한 과거도 팀이 A를 좋게 보는 데에 영향을 끼침. 하루빨리 뭐라도 하고 싶었던 그는 그 영입 제의를 바로 받아들임. 1년 약 2백만, 한달 17만 골드의 최저연봉 계약서에 사인하는 펜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음. 집에서 출퇴근하면서 3군부터 시작하는 애들도 있고, 심지어는 4군도 있는데 2군이면 운이 좋다고 웃는 플레잉코치의 미소가 영 석연찮고.
3군, 심지어 4군에서부터 올라온 애들도 있대서 2군에 즉시 꽂힌 스카우트 출신인 자신은 어떨까,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도 C의 고생을 덜게 할 수 있다면 참아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A였음. 생각보다 텃세나 경쟁 같은 건 덜했는데 그 이유가…첫째, 포스트 리그 진출 팀은 거진 결정되었고, A의 팀은 시즌 아웃이며, 잔여경기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둘째, 텃세나 경쟁 같은 걸 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임. 그러니까, 서로를 미워할 여유조차 없었음. 2군 코치와 감독은 뭐라도 하나 ‘역작’ 만들어내서 1군으로 올라가고 싶은 건지 2군 애들을 콜업시키려 정말 끝없이 쥐어짰음. 그게 팀이나 선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들을 위해서라는 게 너무 뻔히 보이는 상황이였음.
시즌 아웃이니까 1군 감독이 경험치라도 먹이겠다고 2군 한 놈 부르겠지. 그 각만 재는 2군 감코에 대한 감정은…다들 떨떠름했음. A만이 묵묵하게 게임을 하고 또 했음.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갈 곳이 없었으니까. 물러설 곳이 없었으니까. 그 등 뒤를 바라보는 사람이 한 명 있었음. 팀 2군 매니저 B였음.
B는 LCK에서 드문 여성 매니저였는데, 사실상 아르바이트였음. 매니저라기엔 너무 하는 게 보잘 것 없었음. 2군 담당 아주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일을 돕고, 청소를 하고, 야식 시켜주고…뭐 그런 잡일이나 하는 사람이었음. 사람들은 E스포츠네 뭐네, 그 팀에서 유명한 누구더라 – D였나? 아닌가, 걔는 다른 팀이었나…하여튼, 사인 좀 받아달라, 하지만 B에게는 그냥 PC방 아르바이트나 진배 없었음. 다들 열심히는 하는데 어쩐지 결정적인 한 방이 부족했음.
그래도 계속 뭔가 하는 애가 있었음. 그게 A였고.
B는 1군 매니저를 본 적이 있음. 여럿이서 함께 다니며 뭔가를 바쁘게 체크하고 선수들의 사기를 돋구고 또 바쁘게 전화를 하고…생기가 가득찬 사람들이었음. 그렇게까지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게 단순히 PC방 아르바이트보다는 낫게 느껴지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음. 그렇지만 쌩무시 당할 것 같아서 나서서 와~ 와~ 나서고 싶지는 않고. 그래서 A를 좀 이용해보기로 했음. 그가 부탁하지도 않은 컵라면을 끓여주면서.
오빠, 이거 부탁했잖아.
?
당연히 부탁한 적 없는 A는 고개만 갸웃. B는 시치미를 뚝 떼며 먹으라고 내밈. 안 먹을 거냐고. 자기 손 뜨겁다고. A는 어쩔 수 없이 먹기로 했음. 입도 심심하고, 돈 내는 것도 아니고…고마워. 개미 기어가는 소리로 답하자 B가 물었음. 오빠는 1군 가고 싶지 않아? A가 묵묵히 답했음. 가고 싶어.
왜?
…하루라도 경기를 뛰면 최저 연봉이 6백만 골드로 올라서…
…뭐 이런 속물 같은 이유가 다 있지. B는 생각했음. 그래도 감코 때문에 조져진 분위기를 어떻게든 바꾸는 게 그의 목표였음. B는 끈질기게 A에게 달라붙으며, 연봉이 올라가면 뭐가 좋은데? 라고 물으며 안경을 쓱 닦았음. 그러자 A는 매칭을 돌리며 말했음.
동생이 많이 아파. 치료비가 필요해서…
순간 속물이라고 생각한 자신이 쓰레기처럼 느껴지는 B였음. 진심으로 이 사람이 1군에 올라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어버림. 그러고 아…둘은 뭔가 어색한 분위기로 대화를 끝냄. 다음 날, 출근하는 B. 어쩌다보니 A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탐. A는 잠깐 아침 조깅을 다녀온 모양이었음. 그리고 숙소 문을 열자, 굉장히…난리가 나 있었음. 감독은 A를 찾고 있었다며, B의 어깨를 툭 치고 둘이 함께 나갈 준비 하라고 말을 휙 던짐. 무슨 일이에요? 오ㅃ…아니, 큼큼, 선수님이 왜요? 코치 한 명이 퉁명스럽게 답했음.
쟤 콜업이야. 1군 원딜 손목 부상. 전력 보존 차원에서 올리기로 했댄다.
B가 눈을 깜빡였음. 눈을 돌려 오른쪽에 선 A의 얼굴을 올려다보는데…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 아님…!? 이, 이렇게까지 좋아할 일인가…!? 바쁘게 움직이는 감코에게 폴더인사를 하는 그를 숙소로 밀어넣으며 장비나 챙기라고 하는 B. 지금 아니면 언제 나가보겠냐고 A 눈물도 닦아주고 가방도 들어주고 할 것 같음. 근데 버스를 못 타는 고질병이 있으니까(…) 사비로 택시 타고 오라고 해서 B가 택시도 잡아주고 경기장까지 안내해주고…
오빠, 잘할 수 있어?
잘할 수 있는지가 아니야.
응?
잘해야 해. 무조건 잘해야 해.
어쩐지 멍해보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단호하게 결의를 다지는 모습을 보아하니 할 때는 하는 사람이구나. B는 생각했음.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은, 2군도 아니고 1군에서 첫 데뷔전이구나. 그 부담감이 얼마나 심할지. 그리고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해주기로 했음.
힘내, 오빠. 나는 오빠 동생은 아니지만, 응원 정도는 해줄 수 있어.
그러면서 몬X터 큰 캔을 건네주는 B. A는 갑자기 멍한 얼굴로 돌아와 그 캔을 바라보더니, 단숨에 다 마시고 선수 대기실 쪽으로 걸어갔음. 아니, 근데 가방은 챙겨가야지! 허겁지겁 따라가는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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