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22 중꺾마 2천자

SC2

“그렇게 좋으면 이적해.”

 

그게 언제였더라. 2015년이었나, 2016년이었나. 맨정신에 떠보려고 했던 소리였던가, 술김에 한 소리였던가. B가 말했다. 뭐라고요? 그 말에 A는 없던 책임감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뭐라도 말해야 한다.

 

“우리 팀으로 이적하라고. 연습생부터 시작한다면 받아줄 거야.”

 

그 이야기를 들은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아니? 말하면 듣냐고! 걔가. C였나. 분위기가 심상찮아서 저도 모르게 구석으로 숨었다. A가 그에게 잘못한 것 하나 없는데도.

 

“X도 안 들어. 진심, 하나도 안 들어. 인터뷰에서 타팀 선수 이야기 그만 좀 하라고 벌써 백 번, 아니 천 번은 말했을걸? 들었냐? 말할 때만 네네, 알겠습니다~ 하고 돌아서면 그런다니까. 작심삼일도 아냐. 작심일초도 될까 말까다, 진짜…”

 

이번에는 D였나. 말 많고 수다 떠는 거 좋아한다는 소문처럼 불만을 우수수 쏟아낸다. 특별히 누구라고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뻔히 알 것 같다. 삼성 갤럭시 칸 소속이면서 인터뷰에서 타팀 선수 이야기 그만 좀 해야 할 선수가 누가 또 있겠는가. B밖에 없지. 그러니 A가 이적 이야기를 꺼낸 건 동정심 비슷한 것도 있었던 것 같다. 너 그런 이야기 들으면서까지 계속 거기 있을 거냐고. 실력, 없지 않다. 무관심한 면모는 그저 팬과 자신과 팀 성적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막연히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마냥 자신의 뒤를 쫓는 것만이 아닌, 같이 정상에 오르는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보여주고 싶다고. 자신이라면 할 수 있다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침묵. 그 사이 A는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B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표정으로 – 웃는 건지 우는 건지 – A를 바라보았다.

“그건 좀…”

 

침묵 끝에 나온 말은 의외였다. 그건 좀…아닌 것 같은데요. 시원시원한 B의 성격을 생각하면 표정도 말도 통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다. A는 생맥주를 한 모금 홀짝인다. 왜? 너 나 좋아하잖아. 나 좋아해서 동기들에게는 그런 취급 받고, 감독님 한숨 쉬게 만들고…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또 그렇게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A는 B가 말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저도 자존심이 있어서…”

“자존심?”

“그게…언제냐, 저 2013년부터 여기 연습생 했잖아요. 2년이나 고생했다고요? 데뷔하기까지. 그러면 단물은 쪽쪽 빨고 가야지. 또 연습생 하라니 너무 자존심 상하잖아요.”

 

선배 좋아하는 거랑 제가 개고생한 그거랑은 별개죠. 술이 들어가 벌개진 얼굴로 B이 하하, 웃었다. 그 모습에 A는 괜한 말을 꺼냈구나, 싶어 되려 머쓱해진다.

 

‘그래, 역시 이건 2015년쯤 일이 분명해.’

 

A가 눈을 감았다.

 

눈을 뜨면 2020년을 마무리하는 겨울이었다.

 

2019년에서 2020년으로, 십의 자리의 자릿수가 바뀌었을 때 B는 이 판을 떠났다. 2017년에 프로리그가 끝나고, 수많은 팀이 해체되고…끝났다고 생각하고 떠난 사람, 아직 이 게임을 좋아한다는 사람, 이것 외에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사람이 있었다. B는 어느 쪽이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그가 GSL 8강까지 갔을 때는 자기 일처럼 기쁘기도 했다. 결국 떨어졌지만. 그 이상 올라가는 일은 절대 없었지만…어느 순간부터 선배라고 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존댓말을 하지 않았다. 뭐, 동갑이니까 원래부터 그래야 했던 거지. A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은퇴만큼은 아니었다. B는 데뷔도 그다지 시끄럽지 않았고, 은퇴는 죽음보다도 조용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오버워치, 그리고…다른 종목이 요란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가는 동안 여기는…

 

A는 기다렸다. 언젠가는 전화하지 않을까. 그러다 가끔은 까먹었다. 2년의 세월이 흘렀다. 결혼을 했지만 식은 올리지 않았다. 슬슬 군대 가야겠지. 또 기다렸다. 그동안 스타크래프트 2를 했다. B가 있거나 없거나 그의 인생은 달라질 것이 없다. 아쉬운 것도 없다.

 

그러나 2015년 그날, B가 정말 이적했더라면?

A는 아직도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 가끔은 까먹었지만,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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