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리지

Podar Sheldon

ARK by 척추

BGM : 비익련리


처음 내가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았던 건 집 앞으로 온 편지를 읽고 나서였다. 머글 태생인 집안 계보를 쭉 거슬러 올라가면 괴짜 마법사가 한 명 있었는데 그 피가 나를 마법사로 만든 듯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마법사라는 소식에 기뻐하셨다. 머글은 기적과 마법을 구분하지 못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신비는 기적과 다름없기에 나는 부모님의 환호를 받으며 호그와트에 입학했다.

후플푸프에 배정되었다. 모든 이를 공평히 가르친다는 기숙사. 기숙사를 배정해 준다는 이상한 모자가 날 그곳으로 배정하였는데 훗날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 있다. 호그와트엔 4개의 기숙사가 있다고 했지만 머글태생인 나에게 허락된 기숙사는 3개의 기숙사뿐이라는 사실이다. 초록색 넥타이를 맨 동급생과 종종 공부로 이야길 나누었지만 ‘친구’가 될 순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알렉산더 워커가 총리로 지내는 때에도 이미 뿌리 깊숙이 베인 것은 잘리지 못했다. 위의 잎을 전부 잘라도, 뿌리가 존재하는 한 완전한 소멸이 이루어지지 않는단 뜻이다.

처음 부풀었던 기대는 금방 거품 빠지듯 사라졌다. 한 번 크게 부푼 마음은 거품이 꺼지고 나서야 그 빈자리가 선명히 드러났다.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공허하지 않았을 텐데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발걸음이 무거웠다. O와 E로 점철된 성적표는 날 웃게 만들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가업을 물려받겠다고 말했다. 이후 마법 사회의 소식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조용히 구두를 만들었고 그 삶은 변치 않으리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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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이었다. 몇 없는 휴일, 집에서 책만 읽다가 어머니의 성화에 집 밖으로 쫓겨났다.

“밖에 나가서 산책이나 하고 와!”

책도 뺏겨서 정처 없이 공원을 다섯바퀴나 돌았다. 여섯 바퀴를 돌려는 차에 한 명의 사람을 보았다. 자신이 이곳을 다섯 바퀴나 돌았음에도 멍하니 앉아 허공을 보는 모습이 썩 불길했다. 다가가 말을 거니 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이 입을 열었다. 그 순간 어째서인지 알 수 있었다. 그냥 그의 말이, 어조가, 표정이 익숙했다. 7년을 보아온 사람을 어찌 쉽게 잊을 수 있을까. 첫사랑을 잊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야기를 나눈 그는 집을 나와 당장 미래가 막막하다고 했다. 대책 없는 모습도 이전과 똑같아서 손을 내밀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공원 여섯바퀴를 돌지 않았고 혼자가 아니었다. 어머니의 성화는 뜻밖의 놀람이 덮었다.

천성이 착한 부모와 그가 함께하게 되었다. 부유하진 않았으나 먹고 살 기본이 있었고, 그 또한 일할 의지가 있어 식구가 되었다. 서류상의 가족이 아니라 함께 밥을 먹고 일을 하는 의미의 식구였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을 몰랐다. 기억하지 못했다. 잊은 게 아니었다. 기억조차 되지 못했다, 동급생이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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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두 해를 함께하다 보니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그는 이제 나를 기억한다. 포다르 쉘던. 구두를 만드는 집안의 장남이자 수수하고 인상이 험악한 사람. 때때로 책을 읽으며 지식인 흉내를 내는 사람. 그렇게 자신을 기억하는 듯했다. 휴일엔 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는데 그와 함께하며 점점 나의 휴일은 둘의 시간이 되었다. 그는 끝내 자신이 마법사라는 사실을 내게 알리지 않았다. 그래서 때때로 함께하는 시간은 달콤했으나 뼈가 시리도록 추웠다. 그의 과거에 나는 존재하지만 기억되진 못한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결혼하게 되었다. 그가 비밀을 가지고 있듯이 나 또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 서로의 비밀은 상자에 담겨, 곧 여름에 발아했다. 아버지는 나의 비밀을 듣고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것이 사무치게 미안했다. 언젠가 아들에게 이 비밀을 얘기해야만 했다. 차라리 아들이 머글이길 바랐다. 그렇다면 그 잘난 <국제 비밀유지 법령>을 떠올리며 얘기하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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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입학일. 졸업 하고 마지막으로 왔던 승강장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며칠 전 가족과 이야기하여 비밀을 상자 밖으로 꺼냈다. 그가 놀란 표정이었으나 이내 웃으며 ‘어쩌면 마주쳤을 지도 모르겠네’라고 했으나 나는 언제나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붉은 머리카락이 노을을 삼켰던 때를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직 꺼내지 못한 비밀은 상자에 잘 넣어두어야만 했다. 지금은 고해의 시간이 아닌 배웅의 시간이었다. 아이의 짐을 싣는 동안 그가 아들에게 지팡이를 건넸다. 아내, 테네신시아는 아들이 ‘슬리데린’이길 바란다 얘기했지만 자신은 조용히 ‘후플푸프’의 이야길 했다. 아늑한 곳이 너의 피난처가 되어주길. 자신이 보았던 그 뿌리가 지금은 얼마나 뻗어, 널 향하는 가시가 될지 모르겠으나 자신의 상자가 온전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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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배웅하고 돌아가는 길. 그를 보았다. 아내는 여상한 미소로 내게 이야기했다. 자신은 이름있는 순수혈통 가문으로 잘 지냈으나 어느 날 가세가 기울었다고 한다. 그것이 부끄럽고,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어서 무작정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며 멀리하던 머글 사회로 나왔다고 했다. 차라리 자신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의 사랑은 혈통에 기인하지 않았고 사라진 부에 있지도 않았다. 그저 그가 웃길 바랐다.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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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마법사 사회에서 나온 이후, 아들의 일을 제외하면 마법사 사회의 일에 관심 갖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의 부엉이를 이용해 종종 예언자 일보를 전달받았다. 그는 아들이 호그와트에서 탈 없이 지낼 거라 했으나 내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경험한 호그와트는 안락하고 좋은 교육의 장이 아니었다. 오늘 자 예언자 일보에는 호그스미드 테러가 실려있었다. 아들로부터 전달받은 편지는 전무했다. 아들은 어느 해를 기점으로 흉이 늘었다. 이유가 짐작이 가 마음이 쓰렸다. 그 상자에는 얼마나 많은 것이 담겼을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담함이 발목을 쓸고 지나갔다. 창문을 닦고 거실로 가면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곧 돌아올 아들을 위해 그가 밝은 모습으로 트리를 꾸미고 있었다. 잠깐의 휴식이 다시 버티고 설 힘이 되어주길 바라며 별을 달았다. 나무는 부러져도 죽지 않았다. 잘린 나무의 밑동에서는 새싹이 돋기 마련이다. 그리고 다시 자라게 되면, 그렇게 된다면. 그를 보았다. 어쩌면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가지가 맞닿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스페인어 사전

podar

1. 가지치다, 전정하다, 전지하다 2.(불필요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것에서 어떤 부분을)제거하다, 없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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