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수동행 携手同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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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없이 칠해진 무채색은 곧 공백의 동의어가 된다. 겨울의 도시는 넘치는 공허로 언제나 투명하게 빛났다. 그 안을 걸을 때마다 A는 자신이 색을 모조리 잃은 세계에 떨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A는 겨울을 좋아했다. 쉴새없이 내리는 눈이나 온통 희게 변한 거리를 애정한 것은 아니다. 되려 A가 사랑한 것은 사늘한 바람과 부드러운 냉기 따위였다. 눈을 감아도 느낄 수 있는 것들.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는 것들.

A씨.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세요.

네? 아...

탁. B는 A의 손목을 붙잡아 바로세웠다. 도로 위 얇게 깔린 얼음을 눈치채지 못한 A가 그대로 걸음을 내딛던 순간이었다. 조금 멋을 내보겠다는 이유로 평소 신지 않던 구두를 꺼내온 것이 화근이었을까. 하마타면 제대로 넘어지는 꼴을 보일 뻔 했다는 생각에 A는 난처하게 웃었다. 귀 끝은 이미 새빨개진 상태였다.

감사해요, B님.

무슨 중요한 생각이라도 하고 있었나? 그래도 길에서는 조심해요. 겨울이잖아요.

겨울이잖아요. 그 한 마디가 A의 귓가를 오래도록 맴돌았다. 그렇네요, 겨울이죠... 여즉 B에게 붙잡혀 있던 손목으로부터 간지러운 온기가 타고 올라왔다. 짧게 망설이던 A는 이내 빙긋 웃었다. 조금만 더, 억지를 부려보고 싶었다.

B니임... 저 신발이 익숙하지 않아서 넘어질 것 같은데, 잠시만 더 잡아주시면 안될까요? 겨울이라 손도 시린걸요. 

무슨 일이에요. 어리광을 다 부리고... 

잠시 고민하던 B는 이내 어쩔 수 없다는듯 A의 손을 마주잡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손목 언저리를 맴돌던 온기가 손 전체로 퍼져나가는 감각에 A는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굳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발갛게 달아올랐을 얼굴이 눈에 선했다.

B님은 손이 따뜻하신 편이네요.

거짓말이다. B의 손은 빈말로도 따뜻하다고 할 수 없었다. 여름이면 가끔 스치던 손끝이 그토록 차갑던 것을 A는 선명히 기억했다. 그럼에도 손바닥에 전해지는 그 얄팍한 온기를 찾아 헤메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본능적 갈구에 가까웠다.

글쎄요. 그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유전일까요? B의 시선은 도로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을쎄요... 잡은 손을 신경쓰지 않으려 애쓰며, A는 적절한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B의 무던한 시선이 푹 익은 얼굴을 가라앉히려 안간힘을 쓰는 A의 모습을 느리게 훑어내렸다.

아. 얄쌍한 입매 사이로 짧은 탄성이 샌다.

알 것도 같네...

뭐라고 하셨어요?

아니에요. 그냥 혼잣말.

조금만 더 못 본 척 해줄까. 답지 않게 무른 생각이었다. 그래, 조금만 더... B는 가늘게 떨리는 A의 손을 고쳐 쥐며 미소짓는다. 같은 온도로 맞잡은 손과 달리 머릿속의 이상은 각자의 방향으로 부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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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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