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니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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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생각이나 감정 따위를 읽어내는 것은 눈치다. 하지만 그를 통해 상대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섬세함의 영역에 가깝다. 

B는 눈치가 꽤 빠른 편이었다. 넘어질 것 같은 사람을 붙잡아 주고, 비가 올 것 같은 날 미리 우산을 챙기라 충고하고. 하지만 정작 B를 두고 눈치 빠른 사람이라고 말할 이는 몇 되지 않았다. 어쩌면 한 손에 겨우 꼽을 만큼일지도 모른다. 이유는 간단했다. B에게는 섬세함이 없으니까. 

넘어질 것 같은 사람을 잡아줄 줄은 알아도 이미 넘어진 사람을 위해 반창고를 사다주지는 않는다. 우산을 챙기라 충고할 줄은 알아도 정작 우산이 없는 사람과 우산을 나누어 쓰지는 않는다. 그 모든 것들이 모여 B를 눈치 없는, 혹은 무정한 사람으로 만들곤 했다. 

실제로도 B는 자신에 대한 평가를 신경써 듣지 않는 편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은 크게 틀리지 않은 이야기였는지도 몰랐다. 

B님... 혹시 제가 너무 귀찮게 구는 편인가요?

B는 커피 스틱을 휘적이던 손을 멈추고 A를 가만히 응시했다. 말의 맥락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나온 행동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한 얼굴로 웃고 있던 사람이 어째서 저런 이야기를 꺼냈는지. 머뭇거리던 A는 이내 말을 덧붙였다. 

별로 심각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

딱히 귀찮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는데. 좋은지, 싫은지에 대해 말하는 거라면 좋은 쪽에 가까울지도 몰라요. 오히려 A씨는 어때요? 나랑 대화하는거 힘들지 않나?

설마요! 그 비슷한 생각도 해본 적 없는걸요. 

대놓고 손사래를 칠 기세던 A는 이내 누그러진 기세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하얀 손가락이 커피잔을 몇번이고 문질렀다. 

그으러면요 B님... 제가 왜, 좋은지... 여쭤봐도 될까요. 

발갛게 상기된 뺨이 어쩔 수 없는 젊음을 드러내는 것만 같았다. B는 이번에야말로 입을 다물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데 이유가 있을 수 있나? 사람의 인상은 냄새로 결정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른 사람을 처음 만나는 순간 그 사람의 냄새가 마음에 드냐, 들지 않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상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호감은? B는 그것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의 행동이 마음에 든다면 그것은 그 사람 자체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고, 어떤 사람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사람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B는 특징을 통해 사람을 가늠하는 것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부류였으므로 A의 질문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제와서 A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려 들어 보았자 나올 수 있는 답은 한정적이었다. 

A씨는 제 말을 주의깊게 들어주는 사람이니까요. 오답이다. B가 A를 싫어했다면 그 행동 하나하나에 꼬리표를 붙여 분석해 댔을 테니까. 저 사람은 내 말을 경청하는 척 하는 것 뿐이야. 언젠가는 내 말을 멋대로 왜곡해 다른 사람들에게 떠벌리고 다닐지도 모르지. 

A씨는 착한 사람이니까요. 오답이다. 타인의 속내를 완전히 파악할 수도 없는 주제에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어떤 방법으로 구분한다는 말인가? B 자신이 그런 말을 들었다면 속으로 코웃음 쳤을 터였다. 

생각에 잠겨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A의 얼굴은 점점 하얗게 질려만 간다. 강박적으로 보여질만큼 커피잔을 문지르는 손길에 B는 얕은 한숨을 내쉬며 A의 손을 잡아떼었다. 짧은 순간에도 덜덜 떨리는 손이 선명히 느껴졌다. 

좋은 사람이었다. 성격 면에서나 성향 면에서나 자신과 닮은 부분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오히려 그 점 때문에 더 마음에 두었는지도 모른다. 굽히라면 굽히고, 맞춰달라면 맞춰준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호구처럼 구는 것도 아니고... B에게 있어 A는 여러모로 신기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몇 마디 말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B는 입을 꾹 다물었다. A에게는 미안한 일이 되겠지만 결국 원하는 답을 줄 수는 없었다. B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잘그락. 오래도록 손대지 않은 커피 속 얼음에 금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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